[이덕환의 과학세상] 노벨상 수상도 준비를 해야

2020.10.14 14:00
현택환 서울대 석좌교수(기초과학연구원 나노입자연구단장)가 7일 오후 관악구 서울대학교 연구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노벨상 수상자 발표를 앞두고 현택환 서울대 석좌교수(기초과학연구원 나노입자연구단장)가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면서 7일 오후 관악구 서울대 연구실 앞에 많은 취재진이 몰렸다. 사진은 연구실에 도착한 현택환 교수의 모습이다. 연합뉴스 제공

올해 노벨 과학상 수상자 발표는 유난히 떠들썩했다. 세계적인 과학 정보 분석 기업인 클래리베이트 애널리스틱스가 서울대의 현택환 교수를 화학상의 유력한 후보로 선정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우리의 기대는 안타깝게도 불발이 되고 말았지만 실망할 이유는 없다. 그동안 클래리베이트가 선정한 280명의 ‘인용 수상자’ 모두가 언젠가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과학자들이다. 2014년에 이름을 올린 유룡 교수(KAIST)와 2017년에 이름을 올린 박남규 교수(성균관대)에 대한 기대도 포기할 이유가 없다.

 

노벨상에 대한 간절함

 

실험실을 찾은 유룡 교수가 한 대학원생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유 교수의 아이디어와 대학원생들의 열정이 합쳐져 독창적인 연구결과가 나온다. 동아사이언스DB
실험실을 찾은 유룡 교수가 한 대학원생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유 교수의 아이디어와 대학원생들의 열정이 합쳐져 독창적인 연구결과가 나온다. 동아사이언스DB

우리가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지난 20년 동안 일본이 생리의학·물리학·화학 분야에서 20여 명의 수상자들을 연속해서 쏟아내면서 우리의 목마름은 더욱 절박해지고 있다. 이제 25명의 수상자를 배출한 일본은 미국·영국·독일·프랑스와 함께 당당한 노벨 과학상 강국이 돼버렸다.


전 세계에서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나라는 45개국에 이른다. 아르헨티나·대만·터키·파키스탄·멕시코를 비롯한 20여 개의 개발도상국들도 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그러나 개발도상국의 수상자들은 예외 없이 선진국의 과학계에서 활동하면서 이룩한 업적으로 노벨상을 수상했다. 우리도 이휘소(벤자민)와 김필립 등의 훌륭한 재외 과학자들이 있었다. 다만 아쉽게도 노벨상과의 인연으로 이어지지 못했을 뿐이다.


그렇다고 너무 아쉬워할 이유는 없다. 그동안 우리는 노벨상 대신 절박한 경제 성장을 위한 기술 개발에 총력을 기울였고, 전 세계가 놀라는 한강의 기적을 이룩했다. 1960년대 초 우리의 1인당 국민소득은 60달러 수준이었다. 1달러로 1주일을 견뎌야 하는 힘든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1958년부터 원자력 기술에 투자를 했고, 1965년에는 기술 개발을 위한 종합 연구소인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를 설립했다. 1962년의 제5차 개정 헌법에는 ‘국민경제의 발전과 이를 위한 과학진흥’을 명시하기도 했다.


성과는 대단했다. 불모의 땅에서 중화학 산업을 일으켰고, 1978년에는 고리1호기를 완성했다. 이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석유·화학·반도체·자동차·조선·제철 산업을 운영하는 당당한 기술 선진국이 되었다. 선진국의 기술을 흉내 내고, 모방하던 수준에서 이제는 세계를 선도하는 창의적인 기술 개발 국가가 되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경제성과 안전성을 인정받은 원전을 설계·시공·운영할 수 있는 기술력도 갖추었고,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기 위한 ‘실시간 유전자 증폭기술’을 이용한 진단 키트를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 성과도 거두었다.


물론 정부와 국민이 힘을 합쳐서 오로지 경제 성장을 위한 기술 개발에 전력투구한 덕분에 이룩할 수 있었던 성과였다. 그렇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오늘날 우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산업화와 사회적 민주화, 그리고 산림녹화에 성공한 유일한 국가임에 틀림이 없다. 이제 와서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 기술과 화학산업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동안 우리가 인류 공영을 위한 과학지식의 증진을 위한 노력을 소홀히 했던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동안 ‘축구’에만 올인을 했던 우리가 어느날 갑자기 ‘야구’를 소홀히 했던 것을 아쉬워할 이유는 없다. 그런 뜻에서 우리가 노벨 과학상을 욕심내기가 이르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노벨상이 최종 목표가 아니다

 

박남규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교수가 제자와 함께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소자를 보고 있다.
박남규 성균관대 화학공학과 교수가 제자와 함께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소자를 보고 있다. 동아사이언스 DB

클래리베이트의 ‘인용 수상자’(Citation Laureat)는 온전하게 학술논문의 피인용지수를 근거로 선정한다. 클래리베이트가 운영하는 과학 분야 학술 논문 포털인 ‘웹 오브 사이언스’(Web of Science)에 등재된 5천만 편의 학술논문 중에서 2천 회 이상 인용된 6천 편의 논문을 분석해서 선정한 과학자들이다. 클래리베이트의 인용 수상자로 선정되는 것 자체가 대단한 영광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고 클래리베이트의 인용 수상자가 실제로 노벨상을 받을 확률이 대단히 높은 것은 아니다. 인용 수상자로 선정된 해에 노벨상을 수상한 경우는 없었다. 실제 수상까지는 적어도 2년의 숙성 기간이 필요했다. 그마저도 지난 18년 동안 인용 수상자로 선정된 280명 중에서 13.2%인 37명이 실제로 생리의학·물리학·화학분야의 노벨상을 받았다. (참고로 경제학상은 80명 중 21.2%인 17명이 노벨상을 받았다.) 노벨위원회가 피인용지수를 근거로 수상자를 선정하지 않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클래리베이트의 인용 수상자를 ‘노벨상 후보자’라고 부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뜻이다.


우리가 노벨상의 영역인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를 시작한 것은 불과 20여 년 전이었다. 1998년에 우리의 국가연구개발 예산은 2조 7천억 원이었다. 그마저도 대부분은 경제 성장에 필요한 기술 개발을 위한 예산이었다. 실제로 상용화가 가능한 기술을 개발해서 벤처를 창업하라는 것이 당시 정부가 과학자들에게 요구한 미션이었다. 대학 캠퍼스가 온통 벤처 열기에 들떠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실망할 이유는 없다. 우리는 ‘압축 성장’에 대단한 저력을 가지고 있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다. 실제로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수도 있다. 수상자가 나오기만을 무작정 기다릴 일이 아니다. 준비가 필요하다.


과도한 영웅 만들기는 수상자 본인은 물론 과학기술계와 사회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수상자가 혹시라도 정치나 정부를 기웃거리게 된다면 재앙적인 일이 벌어질 것이다. 노벨상 수상자가 반드시 연구개발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책임자가 되어야 할 이유도 없다.


노벨상 수상자가 배출된 이후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 노벨상이 우리의 최종 목표일 수도 없다. 기초과학은 모든 인류의 공동 번영을 위해 함께 나누어야 하는 공동의 지적 재산이다. 인간과 자연을 이해기 위해 필요한 기초과학의 증진을 위한 투자와 노력을 아끼지 않는 진정한 선진국으로 우뚝 서는 것이 우리의 최종 목표가 되어야만 한다는 뜻이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대한화학회 탄소문화원 원장을 맡고 있다.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교육‧에너지‧환경‧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5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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