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정치인들이 TV토론에 망해도 괜찮은 이유

2020.10.10 06:00
9월29일(현지 시각) 미국 대선후보 TV토론회에 참석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가 격렬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제공
9월29일(현지 시각) 미국 대선후보 TV토론회에 참석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가 격렬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제공

미국의 경우 대선을 코 앞에 두고 후보자들 간의 토론이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다. 특히 첫 번째 토론의 경우 끊임없는 말 끊기와 방해, '닥쳐'처럼 보통 토론회에서 보기 어려운 저급한 언어 사용, 사회자의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않은 점 등을 이유로 역대 최악의 대선 토론이라는 평가를 듣고 있다. 초등학교 토론 수업에서도 수시로 상대의 말을 끊거나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면 지적을 받기 마련이다. 그런데 다 큰 어른들이 그것도 거물 정치인들이 체면이고 뭐고 투닥투닥 싸우는 모습을 보인 것에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다.


그럼에도 한 가지 신기한 사실은 토론회에서 드러난 처참한 언행에 비해 후보자들의 지지율이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토론 결과와 지지율과 따로 노는 듯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특히 현 미국 대통령의 경우 이전 대선 토론회에서 상대 후보자에게 "독한 여자"라는 발언을 하고서도 당선된 전력이 있다. 이쯤 되면 애초에 토론의 '내용'에 신경 쓰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소수여서 답변의 내용이나 질 같은 것은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게 아닐까 싶다. 즉 시청자들은 TV토론을 볼 때 토론의 '내용' 말고 '다른 걸' 보고 있는 게 아닐까?

 

미국 하버드대 토드 로저스 교수는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다. 실제 TV토론 장면에서 후보자가 보건 관련 정책에 대한 질문을 듣고 이에 대해 답변을 하는 장면과, 불법 약물 통제 관련 정책에 대한 질문을 듣고 이에 대해 답변하는 장면을 추출한다. 그리고는 이 둘을 뒤섞는다. 즉 보건 정책 질문 이후 불법 약물 통제에 대한 답변이 나오는 영상과, 불법 약물 통제 정책에 대한 질문 이후 보건 정책에 대해 답변이 이어지는 영상을 만들었다.


이런 식으로 후보자가 질문에 쌩뚱맞게 전혀 다른 답변을 하는 상황을 만든 후 사람들이 질문과 답변이 따로 논다는 사실을 얼마나 눈치채는지 살펴보았다. 영상을 본 사람들에게 '해당 후보가 어떤 질문에 대해 답한 것인지 질문을 기억하는가'라고 묻고 또 해당 후보가 얼마나 신뢰할만하다고 생각되는지 물었다.

 

그 결과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질문이 무엇이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따라서 전혀 상관 없는 쌩뚱맞은 답변을 했다'라는 사실도 잘 눈치채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애써 질문을 기억하고 답변을 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신경쓰거나 메모하면서 듣게 해야 비로소 이상함을 눈치채는 것으로 나타났다. 토론에서 왠만한 얼버무리기나 말바꾸기는 엄청 집중하거나 적으면서 보지 않으면 눈 앞에서 논리에 어긋나는 일이 벌어져도 눈치채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놀라운 사실은 질문에 완전 쌩뚱맞은 답변을 한 후보와 제대로 된 답변을 한 후보 사이에 신뢰도 차이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질문에 적절한 답변을 한 사람과 그러지 않고 말을 돌려버린 사람 둘 다 비슷한 정도의 신뢰도를 얻었다.


물론 엄청나게 쌩뚱맞은 답변을 하는 경우에는 알아차리는 비율이 높아진다. 예컨대 테러 관련 정책을 물었는데 문화 정책에 대해 답변했다거나 하는 등 노골적으로 답변을 회피하는 등 급작스럽게 너무 거리가 먼 주제로 점프하면 어색함이 들통나고 만다. 하지만 보통의 경우처럼 “그 문제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 문제가 더 시급한 것 같다”는 식으로 언뜻 비슷해 보이는 주제들을 두고 요리조리 말을 돌리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고 넘어간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런 말 돌리기를 잘 캐치하지 못하는 걸까? 연구자들은 우리의 주의가 매우 한정되어 있다는 점. 즉 모든 정보에 일일이 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다는 점과 우리는 후보들을 볼 때에도 이 사람의 '정책', '말의 논리성' 같은 걸 일일이 따지기 전에 '이 사람은 호감형인가?', ‘카리스마가 있는가?’, '믿을만 한가?'와 같은 '사회적인 면'들을 우선적으로 본다는 점을 그 이유로 든다.

 

이렇게 한정된 주의력과 인지적 자원을 후보의 사회적인 특성들을 캐치하는 데 주로 쏟다 보니 말의 논리성이나 정책의 우수성 같은 논리적 측면들은 대체로 좋다거나 나쁘다 정도로만 판단하고 아주 구체적인 내용들은 놓치기 쉽상이라는 것이다.

 

로저스는 이런 점에서 정치인들이 인간의 이런 한계에 편승해서 부당한 이득을 보고 있다고 말한다. 즉 유권자로써 호구가 되지 않으려면 토론 내용에 더 많은 주의를 쏟아야 한다는 얘기다. 사실 대선 토론 외에도 정치인들 간의 토론은 늘상 일어나는 일이다. 서로 다른 주장의 내용을 이해하고 자신의 입장을 정하는 것은 대부분의 시민들이 마주하는 과제다. 특히 루머와 가짜 뉴스를 포함해서 다양한 정보가 범람하는 시기인 만큼 더더욱 내 눈으로 직접 정치인들의 말을 듣고 판단하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참고자료 

Rogers, T., & Norton, M. I. (2011). The artful dodger: Answering the wrong question the right way. Journal of Experimental Psychology: Applied, 17, 139–147.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게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과 겸손, 마음 챙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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