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 아니까! 터치는 따뜻한 손으로 천천히…

2014.03.18 18:00

 “내 몸에 손대지 말아요!”

 

  연인 또는 부부 사이에 다툼이 있고 난 뒤 자존심을 굽히고 다가가 화해의 몸짓으로 어깨에 살짝 손을 얹는 순간 이런 말을 듣게 되면 정이 확 떨어지기 마련이다. 우리는 시각(바디랭귀지)과 청각(대화)을 통해 의사소통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상대하기 싫은 사람을 향해서는 “쳐다보지 마”나 “얘기하지 마”라는 말보다는 “건드리지 마”라고 말하곤 한다. 또 감동적인 영화를 보고 나서도 “내 마음을 건드렸다”고 표현한다. 이처럼 사람들은 정서에 관련된 상황에서 촉각의 은유를 즐겨 쓴다.

 

위키피디아 제공
위키피디아 제공

  촉각은 오감 가운데 하나이지만 사실 좀 애매한 면이 있다. 신경과학 대학교재를 보면 감각을 다룰 때 미각, 후각, 시각, 청각(평형감각 포함)은 각각 한 장의 제목으로 올라와 있지만 촉각은 없다. 대신 ‘체감각(somatic sense)’이라는 이름의 장이 있고, 그 가운데 한 절에서 촉각을 다루고 있다. 네 가지 감각에 피부감각의 일부인 촉각을 더해 오감이라고 하는 일상의 감각분류체계로는 우리가 느끼는 모든 감각을 아우를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통각이나 온도감각, 몸 각 부분의 위치에 대한 감각 등도 느끼고 있고, 이들 감각이 전체 감각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신경과학에서는 미각 후각 시각 청각 네 감각을 제외한 잡다한 모든 감각을 묶어 체감각이라고 통칭하고 있다. 마치 로버트 휘테커의 ‘5계 분류체계’에서 진핵생물을 동물계, 식물계, 균계로 나눈 뒤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 나머지를 쓸어 담아 ‘원생생물계’로 분류한 것처럼(참고로 나머지 하나는 모네라(원핵생물)계).

 

  인체에서 가장 큰 감각기관이라는 피부 역시 촉각만 담당하는 건 아니다. 즉 피부 아래 진피층에는 외부자극을 다양한 관점에서 감지하는 여러 종류의 감각수용체가 분포해 있고, 이들이 감지한 정보는 저마다 짝이 되는 신경을 타고 뇌나 척수로 흘러가 지각되거나 반사적 행동을 일으킨다. 그렇다면 필자가 앞에서 언급한 맥락의 느낌, 즉 친밀감을 느끼게 하는 기분 좋은 터치는 어떻게 전달되는 것일까.

 

●피부는 초속 3cm를 좋아해

 

  1990년대 신경과학자들은 ‘C-촉감구심성신경(C-tactile afferents, 이하 줄여서 CT)’라는 신경계가 기분좋은 터치를 매개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즉 피부를 천천히 쓰다듬을 때 발화되는 신경을 찾아낸 것이다. CT는 털이 있는 피부에 분포하는데(따라서 이 경로를 통해 상대가 기분좋게 하려면 손바닥이나 발바닥을 쓰다듬어서는 소용이 없다), CT가 감지한 감각정보는 정서에 관여하는 뇌의 뒤쪽 섬피질(posterior insular cortex)로 연결된다.

 

  학술지 <신경과학저널> 2월 19일자에는 CT의 또 다른 기능에 대한 연구결과가 실렸다. 즉 CT는 쾌감을 주는 촉각 정보뿐 아니라 쾌감을 주는 온도감각 정보에도 관여한다는 것. 아무리 사랑스러운 상대가 내 몸을 쓰다듬을지라도 손이 차갑다면 그다지 기분이 좋지 않은데 CT가 온도 정보를 매개하는 것도 한 요인이라는 것.

 

실험은 속도조절과 온도조절이 되는 인공손으로 수행했다. 인공손은 표면이 둥글고 매끄러운 금속재질로 접촉면적은 5평방센티미터다. - 신경과학저널 제공
실험은 속도조절과 온도조절이 되는 인공손으로 수행했다. 인공손은 표면이 둥글고 매끄러운 금속재질로 접촉면적은 5평방센티미터다. - 신경과학저널 제공

  스웨덴 예테보리대와 살그렌스카대 연구진들은 인공손으로 팔등을 터치할 때 CT의 발화패턴을 측정했다. 연구자들은 먼저 피부온도의 범위(21~37도) 안에 드는 32도일 때 쓰다듬는 속도에 따른 CT의 발화패턴을 측정했다. 그 결과 기존 결과대로 초당 3cm일 때 가장 반응이 컸고 그보다 느리거나 빠르면 반응이 약해졌다. 다음으로 18도와 42도로 맞춘 인공손으로 각각 속도에 따른 발화패턴을 봤다. 그 결과 3cm일 때 발화가 최대치인 패턴은 유지됐으나 그 수치가 전반적으로 떨어졌다. 즉 CT는 촉각 뿐 아니라 온도감각의 정보도 전달한다는 말이다.

 

  연구자들은 실험을 하면서 피험자들에게 각 상황에서 기분 좋은 정도를 체크하게 했는데 32도일 때는 CT의 발화 패턴과 비례하는 결과를 얻었다. 즉 32도의 따뜻한 인공손이 초당 3cm의 속도로 팔뚝을 쓰다듬을 때 가장 기분이 좋다고 답한 것이다. 반면 18도와 42도에서는 속도에 큰 차이없이 전반적으로 쾌감도가 떨어졌다. 저온이나 고온에서는 CT가 아닌 다른 경로로도 불쾌한 온도정보가 전달돼 쾌감도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연구자들은 따뜻한 온도에서 적당히 느린 속도로 쓰다듬을 때 강하게 반응하는 CT시스템이 진화한 이유를 부모와 자식의 유대에서 찾고 있다. 즉 엄마가 아기를 안고 쓰다듬을 때 아기가 좋아해야 이런 행동이 지속될 수 있고 그 결과 아기의 생존확률이 높아졌다는 것. 한마디로 포유류의 생존전략인 셈이다.

 

  자녀들이 어릴 때나 쓰다듬어주면 좋아하지 중학교만 들어가도 몸을 뒤로 빼기 마련이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부모자식간에(특히 아버지와 자녀들) 터치가 끊어지게 된다. 오늘날 부모자식 사이가 서먹서먹한 집들이 많은 데는 이런 요인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부모가 새삼스럽게 다 큰 자식을 쓰다듬기는 어색하다. 하지만 자녀들은 자연스럽게 부모를 터치할 기회가 있다. 바로 효자 효녀의 상징, 즉 어깨를 주물러드리는 것이다. 오늘 저녁은 모처럼 효심을 발휘해 부모님들의 CT를 발화시켜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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