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진실은 어디까지?

2014.03.13 18:00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봤어요?”
 “(아카데미상) 남우주연상 받은 거?”
 “예”
 “아니.”
 “시간되면 꼭 보세요.”
 “글쎄…”

 

  미녀가 나오는 아름다운 영화(탕웨이의 ‘만추’ 같은)가 아니면 극장엔 좀처럼 가지 않는 필자의 취향을 모르는지(내 돈 내고 에이즈 같은 무거운 주제를 다룬 영화를 보면서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는 않다!) 눈치 없는 친구가 영화 스토리까지 얘기하기 시작한다.

 

 “그거 뭐죠? 에이즈치료약…”
 “AZT?”
 “아, 예. AZT. 알고 보니 끔찍한 약이더라고요.”
 “무슨 소리야?”

 

  영화 줄거리를 들어보니 ‘원죄’가 있는 필자로서는 안 볼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가 뭐 에이즈 관련해서 진짜 죄를 지은 건 아니고 지난해 과학카페(116 ‘약도 재활용한다고? 괜찮을까’ 참조)에서 AZT를 찬양한 걸 두고 하는 말이다. 당시 신약 개발과정에서 탈락한 실패작들을 다른 질병에 적용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는 경향을 소개하면서 대표적인 예로 AZT를 들은 것. AZT는 1960년대 항암제로 개발됐다가 효과는 별로고 부작용은 커서 제품화되지 못했다가 1980년대 에이즈 바이러스 치료제로 화려하게 부활한 약물이다. 그런데 AZT가 사람 죽이는 약이라니. 결국 다음날 필자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을 봤다.

 

영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의 한 장면으로, 론(오른쪽)과 호모로 역시 HIV보균자인 레이언(자레드 레토)이 약물 밀수 동업자로 나온다. 이 역할로 매튜 맥커너히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레토는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그러나 레이언은 가공의 인물이다. - 나이너스엔터데인먼트 제공
영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의 한 장면으로, 론(오른쪽)과 호모로 역시 HIV보균자인 레이언(자레드 레토)이 약물 밀수 동업자로 나온다. 이 역할로 매튜 맥커너히는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레토는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그러나 레이언은 가공의 인물이다. - 나이너스엔터데인먼트 제공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영화화

 

  여기서 이 영화를 못 본 (아마도) 대부분의 독자들을 위해 간단히 줄거리를 요약한다. 참고로 이 영화는 실화를 소재로 했다. 1985년 미국 텍사스 댈러스. 30대 후반의 전기기술자 론 우드루프(매튜 맥커너히)는 로데오 도박과 이 여자 저 여자 안 가리는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합선사고가 나 병원에 실려 갔는데 뜻밖에 에이즈 말기로 살날이 30일 밖에 안 남았다는 선고를 듣는다. 심한 기침(폐결핵으로 보인다)과 현기증으로 졸도하는 조짐이 있었지만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론은 병원을 박차고 나간 뒤 방황한다. 결국 일주일 뒤 대학 도서관에서 주간지 ‘타임’ 등 여러 문헌을 보고 호모가 아니더라도 에이즈바이러스(HIV)에 감염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당시는 에이즈가 바이러스질환임이 밝혀진 지 불과 1, 2년 밖에 안 된 시점이었고 유력한 에이즈치료제 후보인 AZT의 임상이 막 진행되고 있었다. 론은 자신도 임상에 참여시켜달라고 간청하지만 임상의 실상(절반은 AZT를 절반은 위약을 받는다(물론 환자 본인도 의사도 약의 실체는 모른다)을 알고 분노한다. 결국 그는 병원직원을 매수해 AZT를 구해 과량 복용하지만 상태는 급격히 나빠지고 그나마 약도 더 구할 수 없게 된다.

 

  결국 론은 병원직원이 알려준 멕시코 의사를 찾아가고 여기서 AZT가 아닌 펩타이드T와 ddC, 비타민과 알로에 등 다른 약물과 건강보조식품 처방을 받고 기적적으로 상태가 호전된다. 그 뒤 론은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이 난 AZT만을 에이즈치료제로 쓸 수 있는 미국에 이들 약물을 밀수해 팔면서 돈도 벌고 환자들의 생명도 연장시킨다.

 

  영화 제목인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Dallas Buyers Club)’은 론이 1987년 설립한 모임으로, 당시 미국에는 HIV보균자들이 정보를 교환하고 미국에서는 불법인 약물을 구하기 위한 바이어스 클럽이 여덟 곳 있었다고 한다. 영화에서 보면 월 400달러를 내고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에 가입하면 약물을 받을 수 있다. 한편 영화에서와는 달리 FDA는 에이즈 환자들의 절박성을 인지해 많은 경우 이들의 불법 활동을 눈감아줬다고 한다.

 

1996년 칵테일요법 등장으로 에이즈 사망자가 급감하면서 인류는 에이즈 공포에서 한 시름 돌렸다. 파란선은 칵테일요법 복용자 비율을 나타내고 보라색선은 에이즈환자 100명 당 사망자 숫자다. - 사이언스 제공
1996년 칵테일요법 등장으로 에이즈 사망자가 급감하면서 인류는 에이즈 공포에서 한 시름 돌렸다. 파란선은 칵테일요법 복용자 비율을 나타내고 보라색선은 에이즈환자 100명 당 사망자 숫자다. - 사이언스 제공

  1987년부터 1992년 8월 사망할 때까지 론은 무려 300여 차례나 미국 멕시코 국경을 오가며 약물을 밀수했고 에이즈에 좋다는 약이 있다는 정보를 보면(주로 학술지에서) 일본, 이스라엘 등 지구촌 반대편까지 찾아가 구했다. 이 과정에서 때로는 의사나 성직자 복장으로 신분을 위장하기도 했다. 놀랍게도 영화에 나오는 이런 설정들은 모두 실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영화에서 론은 처음 한 달 간 AZT를 복용하고 거의 죽을 뻔 했다가 멕시코 의사의 처방으로 상태가 호전된 뒤, 돈에 눈이 어두운 제약회사와 FDA의 작품인 AZT 대신 당시 미국이 불법화하고 있는(아직 허가가 안 난 상태이므로) ‘더 뛰어난’ 약물들을 쓸 권리가 환자들에게 있다고 절규하고 있다. AZT가 HIV감염자 수백 만 명의 목숨을 구한 약물로 알고 있던 필자로서는 당황스러운 스토리였다.

 

●1996년 칵테일요법 등장으로 한시름 돌려

 

  영화를 보고 난 뒤 집에 돌아온 필자는 저널과 잡지, 인터넷을 뒤적거리며 도대체 진실이 무엇인지 알아봤는데, 영화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는 거의 찾을 수 없었다. 물론 AZT가 부작용이 심한 약물인 건 사실이지만, 당시로서는 사실상 유일한 약물이었기 때문에 불가피한 선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영화에 나오는 ddC는 후에 FDA 승인이 났지만 약효는 더 별로이고 부작용은 더 커 2000년대 중반 생산이 중단됐고, 펩티이드T도 에이즈 관련 치매에 효과가 있는 정도지 영화에서처럼 그렇게 대단한 약물은 아니다.

 

  필자 생각에는 1981년 처음 미국에서 에이즈가 보고되고 1983년 이게 바이러스 질환이라는 게 밝혀지고 1986년 AZT가 승인이 나고, 즉 너무 급박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초기 환자들은 불운할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이미 에이즈 증상이 심각한 상태인 환자들이 대다수였기 때문에 약을 쓰기에는 시기를 놓친 경우도 많았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독한 치료제 대신 몸을 보하는 약물이 목숨을 연장하는데 더 나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HIV 검사법이 보편화되면서 증상(HIV에 감염된 뒤 개인에 따라 1년~수십 년의 잠복기를 거치며 면역계가 서서히 약화된 뒤 에이즈가 발병한다)이 나오기 전에 AZT를 투여하게 되면서 효과를 봤다. 물론 이 과정에서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투여량이 줄어들었다.

 

  사실 부작용도 부작용이지만 바이러스 내성이 더 큰 문제였다. AZT는 염기 티민(T) 유사체로, 바이러스가 RNA게놈을 주형으로 DNA를 합성할 때 티민으로 착각해 쓰게 해 합성에 실패하게 만드는 약물이다. 그런데 AZT와 티민을 구분할 수 있는 변이 바이러스가 등장하면서 약물이 소용없게 된 것. 다행히 과학자들은 HIV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했고 그 결과 여러 약물이 속속 등장했다. 그 결과 이들 약물을 섞어 써 바이러스가 대응하지 못하게 만드는 칵테일요법이 1996년 처음 소개됐고 대성공을 거뒀다.

 

지난해 타계한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1994~1999년) 중 에이즈 퇴치 운동을 소홀히 한 걸 가장 후회했다고 한다. 퇴임 후 여생을 에이즈 퇴치와 HIV보균자 차별 철폐에 보낸 만델라는 ‘HIV양성’이라고 쓴 티셔츠를 즐겨 입었다. - 국경없는의사회 제공
지난해 타계한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1994~1999년) 중 에이즈 퇴치 운동을 소홀히 한 걸 가장 후회했다고 한다. 퇴임 후 여생을 에이즈 퇴치와 HIV보균자 차별 철폐에 보낸 만델라는 ‘HIV양성’이라고 쓴 티셔츠를 즐겨 입었다. - 국경없는의사회 제공

  1980년대 초반에서 1990년대 초반 10년 동안 미국에서만 무려 15만 명이 에이즈로 목숨을 잃었지만 칵테일 요법이 쓰인 뒤부터는 사망자가 급감했다. 그 결과 오늘날 북미와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에이즈가 현대의 흑사병에서 고약한 만성병으로 위상이 ‘격하’됐다.

 

  그렇다고 에이즈가 한 물 간 질병은 아니다. 2102년까지 전 세계에서 에이즈로 죽은 사람은 3600만 명으로 추정되고 오늘날 지구촌 인구의 0.5%인 3530만 명(2012년)이 HIV보균자다. 매년 230만 명이 새로 감염되고 160만 명이 사망한다. 따라서 여전히 증가추세다. 특히 사하라사막이남 아프리카는 에이즈로 초토화됐는데, 현재 전체 보균자와 사망자의 3분의 2가 이 지역 사람들이다.

 

  최악의 지역은 남아공을 비롯한 아프리카 남부 8개 나라로 인구의 15%가 감염자라고 한다. 지난해 타계한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은 1994년부터 1999년까지 남아공 최초 흑인 대통령으로 있으면서 너무 바쁜 나머지 에이즈에 신경을 쓰지 못한 걸 후회해 퇴임 후 여생을 HIV 퇴치와 환자 차별 반대 운동을 펼치는데 보냈다. 스스로 HIV보균자라고 쓴 티셔츠를 입고 다니기도 했다.

 

●HIV 완치 가능한가?

 

  칵테일요법 등으로 에이즈 공포는 꽤 누그러들었지만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다. HIV는 굉장히 교활한 바이러스이기 때문에 상황이 안 좋을 때(약물을 복용 할 때)는 숙주(사람)의 게놈에 끼어들어가 조용히 있다가 상황이 호전되면(약을 끊을 때) 다시 튀어나온다. 결국 HIV 보균자는 평생 칵테일 약물을 복용해야 하는데, 초기 약물에 비해 부작용이 많이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고통스럽고 비용도 만만치 않다. 따라서 이런 약물이 아닌 완치를 목표로 하는 치료법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학술지 ‘네이처’ 2월 27일자 서평란에는 ‘Cured(완치된 환자)’(2014)라는 신간에 대한 서평이 실렸다. HIV 치료제를 연구하고 있는 면역학자 나탈리아 홀트가 쓴 책으로 HIV에서 완치된 것으로 알려진 두 환자의 이야기를 다룬 내용이라고 한다. 즉 ‘베를린 환자(Berlin Patient)’로 알려진 이들 가운데 한 명인 크리스티안(가명)은 1998년 HIV 감염 수일 뒤 항바이러스와 독한 항암제 치료를 집중적으로 받았는데, 그 결과 놀랍게도 약물을 끊은 뒤에도 바이러스 수치가 올라가지 않았다.

 

지난 수년 동안 과학자들은 HIV 완치 가능성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HIV에서 완치된 두 환자의 사례를 다룬 책 ‘Cured’가 최근 출간됐다. - 아마존 제공
지난 수년 동안 과학자들은 HIV 완치 가능성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HIV에서 완치된 두 환자의 사례를 다룬 책 ‘Cured’가 최근 출간됐다. - 아마존 제공

  다른 한 명은 티모시 브라운으로 HIV 보균자인 상태에서 백혈병에 걸려 골수 이식을 받은 뒤 역시 완치됐다. 알고 보니 이식받은 골수가 만드는 세포에는 HIV가 면역세포에 감염할 때 인식하는 표면단백질인 CCR5수용체가 없다는 게 밝혀졌다. 2009년 학술지 ‘뉴잉글랜드의학저널’에 브라운의 사례가 발표되면서 현재 많은 과학자들이 유전자치료(CCR5 유전자를 파괴하는)로 HIV 완치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을 쓴 홀트는 동물실험을 하다 쥐가 버둥대는 바람에 병원성이 큰 HIV가 든 주사기 바늘에 손가락이 찔렸다. 홀트는 예방차원에서 한 달 간 항바이러스제 집중치료를 받았는데, 그때 겪은 부작용(위통, 구역질 등)에 치를 떨면서 문득 ‘HIV 보균자는 평생 이런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다행히 홀트는 HIV에 감염되지 않은 걸로 확인됐지만, 그 뒤 HIV 완치에 대한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됐고 이번에 책까지 쓰게 됐다고. 에이즈에 대한 피상적인 지식만으로 AZT까지 끌어들인 에세이까지 쓴 필자로서는 진짜 속죄의 심정으로라도 이 책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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