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형 스탠퍼드대 교수 “보물찾기 의존 벗어나 공학적 접근해야 의·생명 혁신”

2020.09.16 16:47
16일 '세계지식포럼' 강연
이진형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매일경제가 16일 개최한 ′세계지식포럼′에 참석해 ″의생명과학 분야가 혁신하려면 설계와 정량적 접근이 가능한 공학적 플랫폼 도입이 필요하다″라며 ″뇌과학에서 뇌 기능 회복을 최우선하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중″이라고 밝혔다. 세계지식포럼 강연 캡쳐
이진형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매일경제가 16일 개최한 '세계지식포럼'에 참석해 "의생명과학 분야가 혁신하려면 설계와 정량적 접근이 가능한 공학적 플랫폼 도입이 필요하다"라며 "뇌과학에서 뇌 기능 회복을 최우선하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중"이라고 밝혔다. 세계지식포럼 강연 캡쳐

“신약 연구는 ‘보물찾기’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물질을 탐색하면서 효과가 있는 물질을 찾지만, 보물찾기다 보니 연구가 수익을 낼 지 보장이 없습니다. 시스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결과를 설계하고 이를 현실화시키는 ‘공학적 접근법(플랫폼)’을 의생명 분야에 적용할 수 있다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뇌를 연구하는 공학자’ 이진형 미국 스탠퍼드대 신경과학연구소 교수는 16일 오후 매일경제가 개최한 ‘세계지식포럼’에 참석해 “의학과 생명과학의 혁신을 위해서는 인체를 시스템적으로 이해하고 접근하는 새로운 접근법이 반드시 필요하다”라며 이 같이 주장했다.


이 교수는 “정보기술(IT) 분야에서 애플이나 아마존 등 시가총액이 1조~2조에 이르는 기업들이 탄생하고 있지만 의,생명과학에서는 아직 이 같은 혁명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며 “두 분야의 연구 방식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피 한 방울로 질병 진단이 가능하다고 해서 큰 화제를 모았지만 결국 기술이 없는 사기극으로 밝혀진 미국 스타트업 ‘테라노스’의 사례를 들어 IT 기업과 바이오 기업 사이의 간극을 설명했다. 이 교수는 “테라노스는 과학 기반이 탄탄하지 못해 시장이 요구하는 기술 수준을 따라가지 못했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일을 보여준 사례”라며 “정보기술(IT) 분야에서는 투자를 받고 그 돈으로 기술을 개발해 성공에 이르는 모델이 성공할 수 있지만, 의학, 생명과학 분야에서는 신뢰할 수 있는 정량화 플랫폼이 없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생명과학은 가설을 세운 뒤 실험을 통해 이를 증명해 나가는 방법을 쓰고 있다. 예를 들어 어떤 물질 후보군이 질병 치료에 효과가 있는지 확인하려면 일일이 치료 실험을 하고 결과를 비교하며 검증해야 한다. 때문에 연구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일 수도 없고, 연구 성공 가능성을 정량적으로 예측하기도 힘들다. ‘공학적 접근’이 불가능하다.


이 교수는 자신의 연구 분야인 뇌과학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알츠하이머 치매의 경우 가장 큰 관심을 받는 분야지만, 아직 제대로 된 치료제는 한 개도 나오지 않았다. 검사를 받으러 가도 상담부터 시작해 다양한 인지 검사와 측정을 통해 다른 질병 가능성을 제외하면서 진단을 좁혀가는 방법으로 확진을 한다. 


그는 “전자기기를 고칠 때 IT 기술자와 상담을 하지는 않는다”며 “뭘 해결해야 할지 문제를 정확히 모를 때에는 해결이 어려운데, 현재 의생명과학 분야가 그렇다”고 말했다.


치료도 비슷해서, 현재는 알츠하이머와 상관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뇌 속 노폐물 단백질 아밀로이드 베타 등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치료를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 교수는 “스마트폰의 음향에 문제가 있을 때 음량조절 버튼만 고친다고 해결책이 될 수 없듯 이 방식으로는 근본적 해결은 이뤄질 수 없다”며 “두뇌의 ‘기능 회복’을 주요 치료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 서울 성북구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서 열린 ICAN학회에 참석한 이진형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뇌공학의 성과가 급격히 나타날 시기가 곧 온다”고 말했다. 윤신영 기자 ashilla@donga.com
지난해 5월 서울 성북구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서 열린 ICAN학회에 참석한 이진형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뇌공학의 성과가 급격히 나타날 시기가 곧 온다”고 말했다. 윤신영 기자 ashilla@donga.com

그는 현재 두뇌의 움직임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예측할 수 있는 회로 또는 ‘알고리즘’을 파악하고 이를 통해 뇌의 기능을 회복시키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2017년 세계 최초로 세포 기반 두뇌 기능 회로를 만들어 뇌의 기능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나아가 뇌신경질환이나 퇴행성 뇌질환이 생겼을 때 이를 해결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뇌 회로라고 하면 단순한 뇌신경망 지도(뇌지도)를 떠올리기 쉬운데, 이 교수가 연구하는 회로는 이와 다르다. 여러 기술을 이용해 뇌의 기능과 작동 원리를 밝힌 것으로, 질환이 일어난 곳이 있을 때 그 곳을 정확히 고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기존에도 기능적자기공명영상(fMRI) 등을 이용해 행동 또는 기능과 뇌 특정 세포 또는 영역간의 상관관계를 파악하는 연구가 있었지만, 단순한 상관관계만 알 뿐 시스템적인 이해는 부족했다.

 

이 교수는 “현재 두뇌 기능 회로에 인공지능(AI)을 적용해 뇌전증을 치료할 수 있는 효율적인 세포 및 유전자치료법을 선별하는 연구를 하고 있으며 대상 질환을 파킨슨병과 알츠하이머 등으로 넓히고 있다”며 “환자 별 맞춤 치료법 지원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기술을 바탕으로 2015년 기술기업 엘비스(LVIS)를 창업했고, 최근 한국 지사 엘비스 코리아도 문을 열었다.

 

그는 “한국과 미국에서 창업을 해보니 인력과 문화, 제도에서 차이가 많더라”라며 “각기 장단점이 있지만, 한국은 인력이 탁월하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개인정보보호 규제가 강하고 금융 거래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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