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가공식품의 합리적 소비

2020.09.16 12:00
′크릴 오일′은 남극 바다에 주로 서식하는 갑각류인 크릴새위에서 추출한 것으로
'크릴 오일'은 남극 바다에 주로 서식하는 갑각류인 크릴새위에서 추출한 것으로, 국내에 심혈관 예방 등의 효과가 있다며 열풍이 크게 불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크릴 오일의 인기에 찬물을 끼얹어버렸다.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140개 제품 중 49개에서 잔류허용기준 이상의 에톡시퀸이나 추출용매가 검출되었다는 것이다. 사용이 금지된 용매가 검출된 제품도 있었다. 부적합 제품은 전량 회수·폐기 조치했고, 소비자들에게는 반품을 당부했다. 지난 7월에는 829건의 허위·과대 광고도 단속했다. 9월부터는 제조사가 스스로 제품의 안전성을 확인한 경우에만 수입을 허용하기로 했다.

 

불법성과 유해성은 구분해야 

 

크릴 오일의 효능에 환호하던 소비자들이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식약처가 유해성을 확실하게 밝혀내지도 않았으면서 지나치게 호들갑을 떨었다는 것이다. 체중 60kg의 성인이 매일 크릴 오일 제품 1알씩 먹더라도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없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식품안전 전문가들의 입장도 어정쩡하다. 크릴 오일 제품이 ‘안전하다고 믿는다는 데에 한 표를 던지고 싶지만 조금은 불안한 구석이 없지는 않다’고 한다. 식약처도 적극적인 반론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식약처가 제기한 문제는 제품의 안전성이 아니라 생산 공정이었다. 잔류허용기준을 초과하고, 금지 물질이 검출된 것을 문제 삼은 것이다. 특히 일부 제품에서 검출된 에톡시퀸은 양식장에서 쓰는 사료의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물질이다. 남극의 청정 해역에서 잡은 크릴 새우에서 검출될 이유가 없다. 그런 물질이 기준치 이상으로 들어있는 제품을 규제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식약처의 규제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식약처의 규제는 고속도로의 과속 단속과 같은 성격이다. 제한속도를 위반했다고 반드시 치명적인 사고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제한속도를 지켰다고 100% 안전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속을 한 운전자는 단속 된다. 교통경찰이 사고가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하고 단속을 하는 것은 아니다. 법률에 따라 정해놓은 제한속도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단속을 하는 것이다.


잔류허용기준을 지키지 않았거나 사용이 금지된 용매를 사용한 크릴 오일도 마찬가지다. 그런 제품을 하루에 한 알씩 먹어도 건강에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가공식품의 위법성을 판단하는 식약처의 입장에서는 그런 지적에 신경을 쓸 이유가 없다. 시중에 유통 중인 제품이 식약처가 고시한 기준을 지켰는지가 중요할 뿐이다. 금지된 용매를 사용하고, 허용기준을 지키지 않은 것은 식약처가 아니라 제조사다. 기준을 지키지 않은 제품도 ‘안전하다고 믿고 싶다’는 전문가의 발언은 부적절한 것이다. 식약처의 고시가 합리적인지의 문제는 규제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교통경찰이 제한속도가 합리적으로 설정되었는지를 따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식약처의 고시가 크릴 오일에만 적용되는 것도 아니다.

 

가공식품은 사회악이 아니다

 

식약처가 시중 크릴오일 제품 중 부적합 제품을 회수조치 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 일부의 모습이다. 9월부터는 제조사가 스스로 제품의 안전성을 확인한 경우에만 수입을 허용하기로 했다. 출처 식품의약품안전처 보도자료
식약처가 시중 크릴오일 제품 중 부적합 제품을 회수조치 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 일부의 모습이다. 9월부터는 제조사가 스스로 제품의 안전성을 확인한 경우에만 수입을 허용하기로 했다. 출처 식품의약품안전처 보도자료

이제 가공식품과 패스트푸드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대세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코라나19 팬데믹을 통해서 더욱 절실하게 확인하게 된 명백한 팩트다. 식품의 생산과 소비가 확실하게 단절된 현실에서 전통적인 슬로푸드만 고집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오히려 좋은 품질의 가공식품과 패스트푸드를 합리적으로 선택해서 현명하게 소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근거 없는 대중적 인기에 대한 관심은 의미가 없다. 진홍색 크릴 오일의 인기가 치솟은 것은 작년부터였다. 소비자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2018년 3톤을 수입하던 크릴 오일이 2019년에는 588톤으로 늘었고, 올해는 5월까지 473톤이 들어왔다. 언론의 관심도 뜨거웠다. 2018년에 57건이었던 언론 보도가 작년에는 4,813건으로 무려 84배나 늘어났다. 구글에서도 무려 235만 개의 검색 결과가 얻어진다. 부작용에 대한 검색 결과도 9만 개나 된다. 그런데 남이 장에 간다고 무작정 따라 나서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식품의 화학적 성분에 대한 엉터리 주장도 경계해야 한다. 크릴 오일에 들어있다는 아스타잔틴·인지질·오메가3에 대한 제조사의 일방적인 주장은 누가 봐도 지나친 것이었다. 심혈관 질환과 고지혈증에 탁월한 효과 정도가 아니다. 혈행 관리에 좋고, 혈중 콜레스테롤을 줄여주고, 면역기능을 강화시키고, 강력한 항산화 작용이 있고,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고, 시력저하를 막아주고, 눈 건강과 피로회복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비만·고혈압·뇌졸증도 줄여준다. 두뇌 활동과 기억력을 향상시켜주고, 치매·노화도 억제해주고, 관절염과 통증도 없애준다는 광고도 있다. 만병통치의 명약은 마음이 약한 소비자를 노린 고약한 상술일 뿐이다.


소비자의 얄팍한 주머니를 노리는 제조사들은 곧바로 들통이 날 거짓말도 서슴치 않는다. 크릴 오일 제품이 식약처가 인정해준 건강기능식품이라는 주장은 누구나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크릴 오일 광고에 대해서 사전심의를 받았다는 주장도 황당한 것이다. 광고의 사전심의는 헌법에 보장된 언론·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중대한 범죄 행위다. 크릴 오일이 혈관에 쌓여있는 지방뿐만 아니라 식용유·소기름·돼지기름도 녹여버리는 ‘기름 청소부’라는 주장도 황당한 거짓말이다. 식용유를 녹여버리는 청소부가 우리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근거도 없다.


소비자가 똑똑해져야 한다. 가공식품의 화학적 성분을 기적의 만병통치약으로 둔갑시키는 선정적인 마케팅 전략을 단호하게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충분히 관리할 수 있는 화학물질의 유해성을 일파만파로 과장하는 노이즈 마케팅 전략이 있다는 사실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의학적 효능이나 유해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언론 보도나 인터넷 정보는 처음부터 믿을 이유가 없다.


가공식품과 패스트푸드만 ‘화학물질’로 만든 것이 아니다. 가정에서 정성들여 만든 슬로푸드도 역시 화학물질로 만들어진 것이다. 화학물질이 없는 세상에서는 우리 자신도 생존할 수 없다. 가공식품과 패스트푸드, 그리고 생활화학용품을 부정적인 ‘화학 혐오증’의 온상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오늘날 우리의 화학물질을 현명하게 활용하는 ‘화학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대한화학회 탄소문화원 원장을 맡고 있다.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교육‧에너지‧환경‧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5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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