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동물원 생활]사육장 벗어난 표범, 통나무에서 안식을 찾다

2020.09.12 12:00
아기 표범 ′직지′의 모습.  청주동물원 제공
표범 '직지'의 모습이다. TV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바 있다. 청주동물원 제공

2005년 청주동물원에서 두 마리의 아기 표범이 태어났다. 어미 표범의 보살핌 속에 자라던 어느 날 아기 표범 한 마리가 부상을 입었다. 오른쪽 다리가 어디에 베인 듯 많이 찢겨졌다. 당장 치료를 해야 했지만 사육사들은 선뜻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야생동물은 사람의 손을 타면 자신의 새끼조차 기르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치료를 하지 않으면 폐사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사육사들과 논의 끝에 아기 표범을 인공포육실로 데려오기로 했다.

 

사육사는 인공포육실에서 고양이 분유를 따뜻한 물에 타서 두 시간 간격으로 먹이며 보살폈고 상처 치료도 시작했다. 마취를 한 채 찢어진 부분을 봉합했고 2주 동안 항생제와 소염제 주사를 투여했다. 사육사와 수의사의 정성으로 아기 표범은 상처가 제법 아물었고 힘도 세졌다. 

 

아기 표범의 이름은 ‘직지’


아기 표범이 이유식을 먹을 무렵 ‘TV 동물농장’이라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됐다.  동물원 식구들은 아기 표범에게 ‘직지’라는 이름을 지었다. 직지는 청주시에서 발견된 세계 최초 금속활자본으로 독일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인쇄보다 앞선 고려시대 ‘직지요절심체’의 약자다. 


방송 출연으로 직지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자 직지를 보러 동물원에 오시는 분들도 많아졌다. 그 결과 직지는 동물원에서도 가장 잘 보이는 곳으로 옮겨졌다. 낮에는 사람들이 많이 볼 수 있는 전시관에서 지내다가 밤에는 내실에서 잠을 잤다.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난 뒤 직지는 다시 철창이 있는 좁은 사육장으로 이사했다. 새끼 때보다 인기가 덜하기도 했지만 맹수이기에 위험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직지의 행동이 이상해진 건 이때부터였다.

 

직지, 이상 행동을 보이다

 

청주동물원 제공
시간이 흘러 직지의 몸집이 커지자 하루종일 지내야 하는 공간은 점점 더 좁아졌다. 청주동물원 제공

새로 이사한 집은 철창으로 둘러싸인 좁은 공간이었다. 시간이 흘러 직지의 몸집이 커지자 하루종일 지내야 하는 공간은 점점 더 좁아졌다. 


또 사람과의 유대가 없으니 일상 생활이 몹시 무료해 보였다. 직지뿐 아니라 사람의 손에 크는 동물은 같은 종의 동물보다는 사람과 더 친숙하다. 그래서 이사 이후 사람과의 접촉이 줄어든 생활이 직지에게 큰 스트레스가 되는 것 같았다. 이따금 철창 사이로 손을 내밀면 반가움에 얼굴을 비볐지만 맹수로 자란 직지에게 그 이상 다가갈 수는 없었다. 


좁은 사육장에 홀로 남아 생활하던 직지는 이상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이 지나다니는 길 쪽 창살에서 의미 없이 반복적으로 왔다갔다 하는 모습이 관찰됐다. 어쩌다 사람이 보이기라도 하면 그 행동은 더 심해졌다. 스트레스로 나타나는 정형행동으로 대책이 시급한 상황이었다.


직지의 집을 바꿔라

 

청주동물원 제공
2017년 9월 29일 직지를 위한 새로운 표범사와 통나무 다리가 탄생했다. 청주동물원 제공

문제는 2016년 당시 청주동물원이 이사를 계획하고 있어서 동물원 시설에 투자를 할 명분이 없다는 점이었다. 이사를 하기까지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그 사이 할 수 있는 조치가 필요했다. 이에 따라 청주랜드 소장님과 청주동물원 직원들의 노력으로 예산을 받아 직지를 위한 공간을 만들기로 했다. 


아무래도 하나의 넓은 공간을 만드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대신 다른 공간에 새로운 표범사를 만들고 두 곳을 다리로 연결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표범은 나무 위에 올라가 먹이를 먹을 정도로 나무를 잘 타는 동물이다. 다리를 이용해 공간을 넓게 쓸 수 있고 움직임도 늘릴 수 있다.  


다른 동물원의 표범 다리를 설계한 경험이 있는 업체의 도움을 받아 도면을 완성했고 수개월 동안 공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2017년 9월 29일 직지를 위한 새로운 표범사와 통나무 다리가 탄생했다.

 

직지, 하늘을 걷다

 

좁은 철장을 나와 통나무 다리를 걸어가는 직지의 모습이다. 청주동물원 제공
좁은 철장을 나와 통나무 다리를 걸어가는 '직지'의 모습이다. 청주동물원 제공

표범사가 완공되는 날 동물원 직원들은 직지가 첫발을 내딛을 다리 앞에 숨죽인 채 대기했다. 표범사의 문을 열자 직지는 이상한지 나올 생각을 못했다. 한참이 지나고 담당 사육사가 이름을 부르자 안심했는지 그제서야 다리를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완전히 자연으로 발을 내딛는 것은 아니었지만 10년 동안 지내며 익숙해진 좁은 철장 안을 걸어나오는 직지가 대견했다. 직원들도 감격했는지 말없이 직지의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통나무 다리에는 ‘하늘을 걷는 표범’이라는 명패가 붙었다. 이따금 다리 위에 앉아 있는 직지를 올려다보면 구름이 흘러가는 하늘과 겹쳐 보인다. 주변의 나무가 풍성해져서 한껏 그늘이 드리워지는 여름이 되면 통나무 다리는 직지가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이 되곤 한다. 


올해 직지는 만 15살로 어느덧 사람으로 치면 노년이 되었다. 표범의 평균 수명이 15 ~ 20년 정도라 언젠가 정말 하늘을 걷는 표범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반가운 직지의 눈을 마주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야생을 간직한 표돌이

 

청주동물원 제공
직지는 만 15살로 어느덧 사람으로 치면 노년이 되었다. 청주동물원 제공

동물들은 사실 수의사를 싫어한다. 맹수들은 일 년에 한 번 건강검진을 하는데 이때 수의사들이 마취 주사를 놓는다. 건강을 위한 일이지만 만났을 때 동물들이 점점 경계하거나 화를 내면 마음에 상처를 받곤 한다. 하지만 이성적인 판단을 우선해야 하는 만큼 동물들에게 감정을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표돌이는 청주동물원에서 생활하는 또다른 표범이다. 직지처럼 올해로 만 15살이 되었다. 최근 표돌이가 무료한지 나뭇가지로 장난을 치다 자신을 쳐다보는 저를 발견하고는 흠칫 놀라며 언제 그랬냐는 듯 나뭇가지를 내려놓고 맹수 본연의 눈빛을 내뿜었다. 평소 싫어하는 수의사가 즐거운 시간을 방해한 것 같아 마저 놀기를 바라며 얼른 자리를 피했다. 

 

 

※ 필자소개 

김정호. 충북대에서 멸종위기종 삵의 마취와 보전에 관한 주제로 수의학박사를 받았다. 청주동물원과는 학생실습생으로 인연이 되어 일을 시작했고, 현재는 진료사육팀장을 맡고 있다.

 

※관련기사

어린이과학동아 17호(9월 1일 발행) [슬기로운 동물원 생활] 하늘을 걷는 직지, 건강의 비결은 통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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