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N사피엔스]파스퇴르와 백신의 등장

2020.09.03 16:19
장경수 국방부 정책기획관(왼쪽)과 주한미군사 헤드룬드 기획참모부장이 17일 오후 서울 용산구 주한미군기지에서 ′주한미군 오산기지 탄저균 배달사고 관련 한미 합동실무단 운영 결과′ 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장경수 국방부 정책기획관(왼쪽)과 주한미군사 헤드룬드 기획참모부장이 서울 용산구 주한미군기지에서 '주한미군 오산기지 탄저균 배달사고 관련 한미 합동실무단 운영 결과' 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파스퇴르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게 ‘백조목 플라스크’이다. 효모나 다른 미생물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백조목 플라스크는 시각적으로도 상당히 흥미로워서 기억에 오래 남는다. 내 머릿속에도 파스퇴르 하면 어릴 때 TV에서 봤던 애니메이션 속의 그 플라스크가 가장 인상적으로 남아 있다. 이는 생명의 기원과 관련된 논쟁을 종식시켰다. 파스퇴르가 살았던 19세기이면 20세기 직전이고 서양의 제국주의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대라 (프랑스 군대가 강화도를 점령했던 병인양요가 1866년에 있었다.) 어지간한 주제에 관해서는 전근대적인 사고를 벗어났을 법도 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자연발생설이라는 이론도 그렇다.

 

이 이론에 따르면 벼룩이나 구더기 같이 작은 동물은 썩은 고기 등에서 자발적으로, 자연발생적으로 생긴다. 자연발생설의 원조도 역시 아리스토텔레스이다. 예컨대 아리스토텔레스는 뱀장어를 열심히 관찰했으나 그 어떤 알 같은 것도 찾을 수 없어 뱀장어는 모래 속에서 자연발생적으로 태어난다고 생각했다. 그의 다른 유산들과 마찬가지로 자연발생설도 2천 년을 넘게 살아남았고 19세기에도 위세를 떨쳤다. 19세기까지 자연발생설에 의문을 가진 사람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혈액순환론을 주장한 17세기의 윌리엄 하비, 이탈리아의 프란체스코 레디, 18세기 프랑스의 루이 자블로, 이탈리아의 라차로 스팔란차니 등이 자연발생설에 의문을 품고 실험 등을 통해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자연발생설은 파스퇴르의 시대까지 굳건하게 살아남았다. 


최후의 수문장은 프랑스의 펠릭스 푸셰였다. 푸셰는 유기물, 물, 공기, 온도 등의 조건만 맞으면 미생물이 자연적으로 생겨난다고 주장했다. 푸셰는 플라스크 안에 고기와 내장을 넣고 끓인 뒤 밀봉하면 미생물이 생기지 않는다는 스팔란차니의 이전 결과를 반박하며 자신은 반대의 결과를 얻었다고 주장했다. 파스퇴르는 푸셰의 실험결과를 믿지 않았다. 밀폐한 플라스크 속에서 미생물이 생기지 않았다는 결과는 얼핏 스팔란차니나 파스퇴르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될 수 있으나 푸셰 등에게도 할 말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미생물이 끝까지 살아남으려면 공기가 계속 공급돼야 하는데 플라스크를 밀폐하면 공기가 차단돼 죽어버린 것이라고 결론지을 수도 있다. 즉, 미생물이 아예 생기지 않았는지 또는 생겼다가 죽었는지를 분별할 수 없다는 말이다. 

 

파스퇴르의 백조목 플라스크 실험 장치(1859). 위키미디어 제공
파스퇴르의 백조목 플라스크 실험 장치(1859). 위키미디어 제공


이 딜레마를 깨기 위해 파스퇴르가 들고 나온 것이 바로 백조목 플라스크였다. 플라스크 속으로 공기만 통하게 하고 미생물을 차단할 수 있다면 누가 옳은지 즉시 판별할 수 있다. 플라스크 목을 길게 늘여 S자 모양으로 구부려 백조목과 비슷하게 만들면 공기는 잘 통하는 대신 휘어진 목의 트랩 부분에 외부의 미생물이 포함돼 있을지도 모를 먼지 등이 쌓이게 되니까 바로 이런 조건을 만들 수 있다. 푸셰와 파스퇴르의 격돌은 파스퇴르의 일방적이고도 싱거운 승리로 끝났다. 미생물은 썩은 고기에서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이 모든 업적에도 불구하고 내 생각에 파스퇴르의 가장 큰 업적은 면역의 원리를 발견해 백신을 개발한 것이다. 파스퇴르 이전에 영국의 제너가 종두법을 시행하긴 했으나 질병의 원인이 되는 병원체를 분리 배양해 이로부터 인공적으로 백신을 만든 건 파스퇴르가 처음이었다. 백신(vaccine)이라는 말은 암소를 뜻하는 라틴어 ‘vacca’에서 따온 말로 제너 시대에는 우두접종에만 좁게 쓰이다가 파스퇴르 이후로 현대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다.

 

그 시작은 닭 콜레라였다. 파스퇴르는 닭 콜레라균을 배양해 건강한 닭에 투입하는 실험을 계속했다. 지금은 세균이나 바이러스(그 유명한 코로나19를 포함해서!)가 질병의 직접적인 원인임을 알고 있고 어떤 병원체가 어떤 질병을 일으키는지 많은 목록을 갖고 있지만 이런 개념이 정립된 것이 바로 19세기 후반의 일이었다. 그 주역은 파스퇴르와 동시대를 살았던 독일의 로베르트 코흐(1843~1910)였다. 코흐에 관한 이야기는 잠시 뒤에 하기로 하고 다시 파스퇴르로 돌아오자면, 코흐든 파스퇴르든 미생물과 질병 사이의 관계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들에게는 특정 질병의 원인으로 의심되는 세균 따위를 우선 찾아내고 이를 따로 추출해 배양하는 일이 중요했다. 이를 건강한 동물에 주입했을 때 똑같은 질병이 나타나는지를 우선 확인해야 하고 그래야 그 다음에 병원체를 없애거나 피하는 길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파스퇴르는 닭 콜레라균에 대해서도 똑같은 작업을 수행하고 있었다. 배양된 균이 주입된 닭은 닭 콜레라 증상을 보이다가 죽어나갔다. 그러다가 우연히 (실수였다는 얘기도 있다.) 몇 주일 방치된 닭 콜레라균을 건강한 닭에 주입하게 되었다. 놀랍게도 이 닭은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여기에 다시 생생한 닭 콜레라균을 투입하자 여전히 닭은 죽지 않았다. 파스퇴르는 방치된 닭 콜레라균의 독성이 약해진 것이 원인이라 생각해 여러 단계로 독성이 약화된 균을 배양해 똑같은 실험을 반복했다.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한번 병을 앓고 나면 내성이 생겨 같은 질병을 다시 앓지 않는 것처럼 약화된 병원체가 그런 내성을 키워준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내성을 갖기 위해 직접 질병에 걸리는 것은 맹독성 병원체에 신체를 노출하는 행위이므로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만약 독성이 약화된 병원체로 똑같은 내성을 키울 수 있다면 아주 안전하게 그 질병을 예방할 수 있게 된다. 파스퇴르가 닭 콜레라에서 면역의 기본원리를 발견한 것이다. 엄밀해 말해 제너는 다른 질병의 병원체를 백신으로 접종한 반면 파스퇴르는 같은 질병의 병원체로 백신을 만든 셈이다.


다음으로 파스퇴르가 눈을 돌린 곳이 탄저병이었다. 탄저병은 당시 프랑스의 농가를 휩쓸어 수많은 소와 말, 양 등의 가축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탄저병에 걸리면 발열과 호흡곤란 등으로 갑자기 폐사한다.

 

탄저병균. Bacillus anthracis 제공
탄저병균. Bacillus anthracis 제공

탄저병의 원인이 되는 탄저균은 코흐가 이미 1877년에 분리했다. 파스퇴르는 닭 콜레라의 성공사례가 탄저병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확신하고 백신개발에 착수했다. 1881년 5월에는 관계자들이 모인 가운데 공개적으로 탄저백신 접종을 시연하기도 했다. 이 행사는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이후 상황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파스퇴르의 백신을 구하려는 농가가 줄을 이었고 수요에 맞추려고 파스퇴르 연구실은 밤낮으로 백신을 만들었다. 무슨 일이든 무리해서 급하게 하다보면 부작용이 따르는 법, 이렇게 급조한 파스퇴르의 백신들 중에는 불량품도 상당했던 모양이다. 그 결과로 백신 때문에 오히려 많은 수의 가축이 피해를 입기도 했다. 지금도 백신접종을 꺼리는 사람들은 혹시나 있을지도 모르는 백신의 부작용 또는 불량 백신을 우려한다. 파스퇴르의 탄저백신을 살펴본 코흐는 순도가 높지 않고 오염된 경우가 많았다고 결론지었다. 
 
탄저균은 인간에게도 매우 위험한 균이다. 그러지 않았다면 탄저균이 대표적인 생물학무기로 쓰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탄저균은 동물의 생체 밖에서는 포자형태로 존재하는데 외부 환경으로부터의 생존력이 아주 강하다. 이 포자가 인체에 들어오면 탄저병에 걸린다. 감염경로는 크게 피부, 소화기, 호흡기 등이다. 소화기 감염 때에도 치사율이 높지만(25~60%), 호흡기 감염 시 최대 90%가 사망할 수도 있다. 


 미국에서는 2001년 9.11테러 직후 우편물을 이용한 탄저균 테러가 있었다. 미세한 포자가 분말이나 스프레이로 퍼질 수도 있고 물이나 음식 속에도 들어갈 수 있으며 냄새나 맛도 없어 감지하기 어렵다. 탄저균은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지난 2015년 미군 연구소가 살아있는 탄저균을 주한미군에 제공한 사실이 밝혀졌다. 배송은 미국의 유명한 택배회사인 페덱스의 일반화물로 이루어져 더욱 충격이 컸다. 탄저균의 배송 사실은 우리 정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또한  그전부터 서울 한복판인 용산의 미군기지에서 탄저균 실험을 무려 15차례나 진행한 사실도 드러났다. 


사태의 심각성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이다. 최근에는 주한미군이 부산항에 실험용 생화학물질을 반입한 사건도 있었다.  이는 현재 진행 중인 사인이다. 이쯤이면 주한미군이 동맹군인지 점령군인지 의심이 들 지경이다. 


불량 백신으로 상승하던 명성에 큰 상처를 입었으나 파스퇴르는 굴하지 않고 다음 도전에 나섰다. 광견병이었다. 광견병은 광견병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인수공통 전염병으로 사람이 걸렸을 때는 공수병이라고도 한다. 감염자가 물을 무서워하는 증세를 보이기 때문이다. 광견병에 걸린 개나 고양이 등 동물이 사람을 물면 감염된다. 사람의 경우 잠복기가 3주~3개월 정도이고 발병하면 두통, 발열, 타액 과다분비, 부분마비 등의 증세를 보이다 호흡근 마비나 합병증으로 사망한다. 


바이러스가 중추신경계에 침투하는데, 치사율이 아주 높다. 광견병의 병원체는 세균이 아니라 바이러스이다. 바이러스는 세균보다 훨씬 크기가 작다. 광견병 바이러스를 발견한 것은 1932년이었다. 그러니까 파스퇴르는 현미경으로도 보이지 않던 정체불명의 병원체와 싸웠던 것이다. 이 때문에 파스퇴르가 실체도 모르는 병원체를 분리 배양하는 데에 큰 애를 먹었다. 결국 보통의 배양액이 아닌 살아있는 토끼의 척수를 이용해 여러 단계를 거쳐 독성이 약해진 백신을 만들 수 있었다. 


파스퇴르에게 닭 콜레라나 탄저병의 경우는 가축을 살리는 일이었지만 (물론 사람도 탄저병에 걸릴 수 있다.) 광견병은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이었다. 원리적으로야 백신을 개발해 동네 모든 ‘댕댕이’와 ‘냥이’들을 예방접종하면 사람도 안전하겠지만(실제로 야생동물에게 광견병 백신이 포함된 먹이를 살포하기도 한다.), 결국 종두법처럼 사람에게 접종할 수밖에 없다. 일단 파스퇴르는 의사가 아니었기에 본인이 백신을 환자에게 놓을 수도 없었다. 더불어 탄저 백신 실패의 경험도 아프게 다가왔다. 그러던 중 1885년 요셉 마이스터라는 9세 소년이 광견에게 14군데나 물려 파스퇴르에게로 왔다. 병원에서는 요셉을 살릴 길이 없었다. 부모는 최후의 방법으로 지금까지 전혀 시도해보지 않았던 처방이라도 써보려고 했던 것이다. 파스퇴르는 그란처라는 외과의사에게 부탁해 자신의 백신을 요셉에게 접종하도록 했다. 접종은 13회에 걸쳐 진행되었다. 뒤로 갈수록 점점 독성이 강해지는 백신이었다. 

 

광견병 환자. 위키미디어 제공
광견병 환자. 발병하면 두통, 발열, 타액 과다분비, 부분마비 등의 증세를 보이다 호흡근 마비나 합병증으로 사망한다.위키미디어 제공

만약 광견병의 잠복기가 아주 짧았다면 요셉은 비참한 죽음을 면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행히 잠복기가 충분히 길어 13차례에 걸쳐 접종한 백신이 효력을 발휘했다. 요셉의 치료는 비공개였으나 이후 다른 환자들도 성공적으로 치료했고 그 소식은 순식간에 유럽 전역에 퍼졌다. 파스퇴르의 백신 덕분에 광견병에서 살아난 요셉은 이후 파리 소재 파스퇴르 연구소에서 수위로 일했다. 2차 대전 때 나치가 파리를 점령한 뒤 파스퇴르의 지하묘실을 열라고 하자 요셉은 권총자살로 응했다고 한다.  


그러나 요셉의 최후에 대해서는 또 다른 주장도 있다. 나치에 맞서 파스퇴르의 무덤을 지키기 위해 권총으로 자살한 것이 아니라 가족들이 독일군 폭격으로 사망했다고 오인하고 이를 비관해 가스를 마시고 자살했다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이는 파스퇴르연구소의 연구팀장 유진 울먼의 일기 및 요셉 손녀의 진술에 따른 것이다. 실제 그의 가족들은 살아 있었고, 얄궂게도 요셉이 자살한 그날 파리로 돌아왔다고 한다. 아마도 요셉의 최후에 관련된 가장 구체적인 증언이 아닐까 싶다. 스토리만 놓고 보면 전자의 경우가 훨씬 더 극적이며 과학적인 영웅주의에 부합한다. 독일과 프랑스의 관계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나치가 파리를 점령했을 때 요셉이 자살했다는 것은 팩트이다. 사람들은 나열된 팩트들을 하나의 유기적인 서사로 연결해 기억하고 싶어 한다. 나치의 파리 침공이 실제로 요셉의 자살에 영향을 주긴 했으나, 아마도 사람들은 나치와 요셉의 자살 사이에 더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원했을지도 모른다. 그 결과 나치군인과 요셉의 대치라는 극한 상황이 연출됐을 것이다. 국내에서 가짜뉴스가 만들어지는 과정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과학에서는 항상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과학적 내용뿐만 아니라 과학을 둘러싼 주변 상황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애국심도 남달랐던 파스퇴르는 우리에게 ‘마지막 수업’으로 잘 알려진 1870년 프러시아와의 보불전쟁 때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겐 조국이 있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듬해에는 독일 본 대학에서 받은 명예박사학위도 반납했다. 이 전쟁에 자원입대한 아들은 전사했다.

 

루의 파스퇴르((1822~1895))와 그의 사인. 위키미디어 제공
루이 파스퇴르((1822~1895))와 그의 서명. 위키미디어 제공

 

※참고자료 

-쑨이린, 《생물학의 역사》(송은진 옮김), 더숲출판사.
-질병관리본부, 탄저, http://www.cdc.go.kr/CDC/cms/content/mobile/55/68955_view.html
-폴 드 크루이프, 《미생물 사냥꾼》(이미리나 옮김), 반니.

-이성철, 살아있는 탄저균 1년 넘게 제공…주한미군에 페덱스로 배송, SBS뉴스(2015.5.29.);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2998727&plink=COPYPASTE&cooper=SBSNEWSEND
-김귀근, 미군, 한국서 16차례 탄저균 실험…"올해 처음" 주장 '거짓', 연합뉴스(2015.12.17.);
https://www.yna.co.kr/view/AKR20151217026100014.
-황석하, 부산항 8부두 ‘미군 생화학 실험’ 의혹, 부산일보(2019.3.13.); 
http://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19031219355136177.
-이준석, 미군, ‘생화학 물질 반입’ 인정…시민단체 “실험실 철거”, KBS뉴스(2019.12.20.);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347318.
-질병관리본부, 공수병, http://www.cdc.go.kr/CDC/cms/content/mobile/44/68844_view.html
-한국 파스퇴르 연구소, 루이 파스퇴르, http://www.ip-korea.org/ko/network/legacy.php.
-이종호, 《천재를 이긴 천재들》, 글항아리.
-H. D. Dufour et S. B. Carroll, "Great Myths Die Hard", Nature 502, p. 32–33, 2013.
-의학사를 왜곡시킨 4대 신화, 라포르시안, 2013.10.09., ;
http://www.rapportian.com/news/articleView.html?idxno=14023

 

※필자소개 

이종필 입자이론 물리학자. 건국대 상허교양대학에서 교양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신의 입자를 찾아서》,《대통령을 위한 과학에세이》,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아주 특별한 상대성이론 강의》, 《사이언스 브런치》,《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이론》을 썼고 《최종이론의 꿈》, 《블랙홀 전쟁》, 《물리의 정석》 을 옮겼다. 한국일보에 《이종필의 제5원소》를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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