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고무줄이 돼버린 방역 대책

2020.09.02 12:00
서울시와 용산구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방역수칙 합동 점검에 나선 가운데 8월 26일 오후 서울시내 한 영화관을 찾은 관람객이 떨어져 앉아 있다. 연합뉴스 제공
서울시와 용산구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방역수칙 합동 점검에 나선 가운데 8월 26일 오후 서울시내 한 영화관을 찾은 관람객이 떨어져 앉아 있다. 연합뉴스 제공

수도권이 꽁꽁 얼어붙었다. 저녁 9시 이후에는 식당도 문을 닫았고, 시내버스도 멈춰 서버렸다. 서울시도 시민들에게 ‘일상을 포기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실질적으로는 미국과 유럽의 봉쇄(lockdown)에 버금가는 ‘3단계’ 거리두기가 시작됐다는 뜻이다. 그런데 정부의 방역 대책이 묘하다. 정부의 ‘강화된 2단계’를 언론은 ‘2.5단계’라고 부른다. ‘2단계’라고 쓰고, ‘3단계’라고 읽어야 한다는 절묘한 해석도 있다. 방역 대책을 고무줄처럼 늘여서라도 ‘일상’과 ‘방역’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것이 정부의 희망사항이다. 정부의 기묘한 처방으로 방역의 부담은 온전하게 국민들의 몫이 돼버렸다.

 

‘경제’에 막혀버린 ‘방역’

 

지난 8월 31일로 누적 감염자가 2만 명을 넘어섰다. 지난 4월 3일에 1만 명을 넘어서고 151일 만이다. 8월 26일에는 하루에 무려 441명의 감염자가 발생했다. 신천지 폭증이 한창이던 2월 29일에 발생한 813명의 절반에 가까운 수준이다. 감염 경로를 파악하지 못한 깜깜이 감염의 비율이 22.7%까지 치솟았고, 감염 확산의 정도를 나타내는 재생산지수가 아직도 1.5에 머물고 있다. 걷잡을 수 없는 지역 감염이 전국적 현실이 돼버렸다. 자칫하면 하루 감염자가 800명에서 최대 2천 명까지 늘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 질병관리본부의 추정이다.


상황이 매우 엄중한 것은 사실이다. 방역 전문가들이 모인 감염학회도 공식적으로 ‘3단계’ 거리두기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물론 사회 전체를 멈춰 세우는 3단계가 쉬운 일은 아니다. 국민들이 감당해야 하는 고통이 엄청나다. 그렇다고 꼼수를 용납할 수는 없다. 필요하다면 생살을 도려내는 것보다 더한 아픔이라도 견뎌낼 수밖에 없다. 그래야만 더 큰 고통과 혼란을 막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를 초토화시키고 있는 코로나19의 현실은 절대 만만치 않은 것이다.


그런데 기획재정부를 비롯한 경제부처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다. 3단계 격상에 손사래를 치고 있다고 한다. 3분기의 성장도 마이너스를 기록하게 되고, 올해 연간 성장률은 한은이 예상하는 –2.2% 아래로 추락하게 된다는 것이 반발하는 이유다. 극단적인 봉쇄를 선택했던 선진국이 여전히 극심한 후유증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봉쇄로 급한 불은 껐지만 코로나19를 깔끔하게 없애지는 못했다’는 경제 부처의 인식은 황당한 것이다. 아마도 경제가 살아있어야 코로나19의 퇴치도 가능하다는 주장을 하고 싶은 모양이지만, 현실적으로 어떠한 근거도 찾을 수 없는 착각이다.


대통령도 경제부처의 판단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8월 16일에 시작한 ‘2단계의 효과를 지켜본 후에 신중하게 판단해도 된다’는 것이 대통령의 확고한 생각이라고 한다. 하루에 수만 명의 감염자가 발생하고, 천 여 명이 사망하는 미국과 비교하면 여전히 사정이 좋은 편이라는 평가도 내놓았다. 일부 전문가들의 우려는 그동안 방역에 성공적이었던 우리의 현실에서 발생하는 착시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일부 무책임한 종교 집단만 적극적으로 관리하면 정상 복귀가 가능하다는 것이 대통령의 희망적인 인식이다.


물론 국민 생활과 국가 경제에 엄청난 충격을 주는 방역 대책은 신중하게 결정해야만 한다. 코로나19도 무섭지만, 경제의 붕괴도 못지않게 두려운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나라에서 봉쇄의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했다는 경제부처의 평가는 위험스러울 정도로 섣부른 것이다. 


오히려 미국의 안타까운 현실을 반면교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방역 전문가들의 절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선을 앞둔 연방 정부가 오로지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주 정부에게 봉쇄를 완화하도록 강요했다. 대통령이 약효가 검증되지 않은 치료제를 직접 복용하기도 했다. 약효와 안전성에 대한 검토가 진행 중인 백신의 조기 개발을 대통령이 앞장서서 장담하고, 절실하게 필요한 진단(testing)도 줄이도록 강요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조급증이 방역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는 흔적도 찾을 수 없다.

 

그래도 ‘과학적 방역’을 믿어야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질병관리본부장, 가운데)을 비롯한 직원들이 충북 오송 질병관리본부에서 코로나19 환자 진료 및 치료에 힘쓰는 의료인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덕분에 챌린지’에 참여하고 있다 중앙방역대책본부 제공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질병관리본부장, 가운데)을 비롯한 직원들이 충북 오송 질병관리본부에서 코로나19 환자 진료 및 치료에 힘쓰는 의료인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덕분에 챌린지’에 참여하고 있다 중앙방역대책본부 제공

방역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고통을 줄여주는 지름길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역시 믿을 것은 ‘과학’뿐이다. 백신이나 치료제를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감염 현실에 대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분석을 바탕으로 하는 ‘과학적 방역 대책’을 믿어야 한다는 뜻이다. 모자란 것보다 지나친 것이 훨씬 더 바람직하고, 방역에 대한 정치적 고려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는 교훈도 중요하다. 우리가 지난 7개월 동안 반복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진실이다. 경제도 살리고, 방역에도 성공하겠다는 정부의 기대는 비현실적인 욕심일 수 있다.


'K-방역'의 정체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필요하다. K-방역의 핵심은 ‘민주주의’와 ‘투명성’이고, K-방역의 성공이 질병관리본부와 식약처의 ‘긴급사용승인’ 덕분이라는 주장은 어처구니없는 궤변이다. 우리가 2주일 만에 세계 최초로 개발한 ‘RT-PCR 진단키트’와 교통카드·신용카드·폐쇄회로(CC)TV를 이용한 ‘추적 기술’이 K-방역의 진정한 핵심이다. 대덕에서 성장한 바이오·IT 벤처들이 이룩한 놀라운 성과였다. 정부와 언론도 그런 사실을 더욱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알려줘야만 한다.


K-방역의 한계도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헌법에 보장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는 위험성은 절대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보건복지부가 광화문 근처에 있던 사람들의 전화번호를 파악해서 방역에 사용한 것은 개인정보보호법을 무시한 명백한 불법 행위였다. 사회 질서를 핑계로 정부가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일은 이제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권위주의 시대의 낡은 악습이다.


바늘구멍으로 황소바람이 들어오는 법이다. 과학적 방역을 무시한 어설픈 정치적 고려는  독약이다. 중국에 대한 입국 차단 조치를 머뭇거린 것이 1차 확산의 원인이었다. 정부가 일방적이고 성급하게 사회적 거리두기를 완화했던 것이 2차 확산으로 이어졌다. 해수욕장을 개장하고, 소비 쿠폰을 뿌리면서 여행‧외식을 권장하고, 임시공휴일을 만들었다. 책임 떠넘기기와 낙인찍기도 정치적으로는 쓸모가 있겠지만 과학적 방역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팬데믹이 위험 수위를 넘나드는 상황에서 질병관리본부의 권한을 축소하고, 의료 제도를 뒤엎겠다는 보건복지부의 정책은 용렬하고 어리석은 것이다. 과학적 방역을 위해서라면 오히려 보건복지부를 해체 수준으로 개편해야 할 수도 있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대한화학회 탄소문화원 원장을 맡고 있다.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교육‧에너지‧환경‧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5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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