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의 사회심리학] 걱정을 안고 사는 이를 위한 단상

2020.08.29 15:00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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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걱정이 많은 친구가 있다. 남들은 길어야 1-2년 후의 일에 대해 대해 얘기하고 있을 때 계획이란 적어도 10년치 정도는 짜 놔야 하는 거라며 10년치 계획을 365일 마음 속에 품고 있던 친구다. 계획도 매우 구체적이어서 A를 먼저 시도해봤다가 잘 안 되면 A-1, A-2… 그것도 안 되면 B로 전향. 그것도 안 되면 최종적으로 몽골에 사는 지인을 찾아가서 의탁하기 등 아직 일어나지 않았고 일어날지 확실하지 않은 일들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대단한 친구다. 


한편 나는 아마 타고난 성격이 한 몫 하겠지만 친구에 비해 상당히 무계획적인 인간이다. 삶은 우연과 운, 서프라이즈가 있어서 즐거운 거라고 생각하는 편이고 어차피 머리 아프게 생각해봐야 인생은 항상 내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므로 계획에 큰 효용이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물론 장래에 무엇무엇이 되고 싶다거나 어떤 삶을 살고 싶다는 굵직한 목표는 정해두는 편이지만 그 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계획을 세워도 아무것도 확실해지지 않지만 계획을 세우려고 애쓰는 과정이 내게 즐겁지 않은 것은 확실해서 일단 이 확실한 불행(=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걱정하기)을 피하는 것이 내게는 우선순위다. 

 

이렇게 미래에 대해 많은 걱정과 고민을 하는 것과 그렇지 않는 것 중 뭐가 더 좋고 나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각자 나름의 장점이 있고 나의 경우 분명 좀 더 계획했더라면 좋았을 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예컨대 시험이 가까워지면서 우리는 점점 시험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불안을 동력 삼아 놀고 싶은 욕구를 이기고 엉덩이를 책상 앞에 붙이는 것이 가능해진다. 고민과 걱정이 필요한 순간들이 분명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별다른 효용이 없는 데도 자동 걱정 생산 기계처럼 걱정을 ‘습관적’으로 하거나, 또는 내가 걱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걱정이 나를 소모하는 상황이 되는 것은 정신 건강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평소 생각과 고민, 걱정이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의 경우 일반적으로 ‘완벽주의’적 성향을 보이는 편이다. 여기서 완벽주의란 '완벽하고 싶은 욕망'으로 완벽한 결과물을 내는지의 여부와는 별개이다. 완벽주의는 현실이 어떠하든 다른 사람들은 다 한번쯤 실패하고 실수하지만 나만큼은 절대 작은 실수도 없이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내고 싶다는 비현실적인 욕망이다. 


애초에 목표가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완벽주의가 심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쓸데없는 불안과 좌절이 많다. 예컨대 90점이면 충분히 좋은 성적인데도 100점이 아니기 때문에 여전히 만족하지 못하는 등 꽤 좋은 결과를 얻어도 완벽주의자들은 여전히 불만족 상태인 경우가 많다. 


또 뭐든지 잘 하고 싶은 욕심이 클수록 실패에 대한 불안 또한 커지는 법이다. 예컨대 중요한 경기에 임할 때 잘 하고 싶은 욕심이 크지만 할 수 있는 준비는 다 했으니 스스로를 믿고 맡기자며 마음을 비우는 사람 A와, 매 순간 결점 없는 퍼펙트한 모습을 보이겠다는 욕심으로 머리가 복잡한 B가 있다고 해보자. 전자는 온 마음을 다해 눈 앞의 게임에 최선을 다하겠지만 후자는 경기의 흐름이나 팀원들의 움직임보다 매 순간 “내가 지금 잘 하고 있나? 혹시 실수했으면 어쩌지??” 같은 걱정에 빠져 정작 주의가 흐트러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다보니 실제로 완벽주의적 경향이 높을수록 지나친 불안 때문에 실전에 약한 모습이 나타난다. 

 

최근 한 연구에 의하면 이러한 완벽주의가 심한 사람들의 경우 본인은 필요에 의해 걱정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원해서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걱정이 시도 때도 없이 머리 속을 침범(intrusive)하는 경우가 많고, 같은 걱정을 반복(repetitive)하며, 한 번 걱정을 시작하면 헤어나오지 못하는(difficult to disengage) 편이며 그 결과 우울과 불안이 더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리 갖은 걱정과 고민을 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실수와 실패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런 '효용' 때문에 걱정과 고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습관적으로 걱정과 고민에 쌓여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이건 필요한 걱정'이라고 생각한 걱정들 중 정말 필요해서 시작한 걱정은 별로 없다는 얘기다. 


예컨대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비행기가 추락할 것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의 경우 우선 추락이 일어날 확률이 낮아서 이미 쓸데없는 걱정일 가능성이 높지만 실제로 추락한다고 해도 내가 걱정했는지 여부는 추락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이러나 저러나 쓸데없는 걱정인 것이다. 하지만 완벽주의적인 사람들은 이렇게 쓸모 없는 걱정조차 '다 필요가 있다'고 믿는 편이고, 그 때문에 계속해서 비행기가 추락할까 걱정하며 의미 없는 불안을 안고 산다는 것이다. 

 

앞서 등장한 매일 10년치 고민을 안고 사는 친구는 최근 객관적으로도 큰 성취를 해냈는데 일이 채 끝나기도 전에 벌써 불안해져서 인생 개발 30년 계획 같은 걸 짜기 시작했다. 친구에게 지금 네가 하는 고민이 네게는 매우 진지하고 타당하게 느껴지겠지만 불안에 찌들고 갖은 노력에 지친 뇌가 만들어내는 걱정은 실제로 필요 없는 걱정일 확률이 상당히 높다고, 당분간 뇌를 좀 쉬어주면서 천천히 생각해보자고 이야기했다. 


내 머리로 하는 걱정들은 대체로 쓸모 없는 것들이라는 사실을 인식할 때 주어지는 해방감이 있다. 특히 잘 하고 싶은 욕심과 그로 인한 불안으로 가득찬 뇌가 하는 소리는 신경쓰지 않는 게 낫다는 것은 몇 안 되는 삶의 진리인 것 같다. 

 

※참고자료 

Kannis-Dymand, L., Hughes, E., Mulgrew, K., Carter, J. D., & Love, S. (2020). Examining the roles of metacognitive beliefs and maladaptive aspects of perfectionism in depression and anxiety. Behavioural and Cognitive Psychotherapy, 4, 1-12.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게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과 겸손, 마음 챙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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