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카페]벼가 물에 잠겼을 때 일어나는 일들

2020.08.11 15:14
24일 충남 태안군 근흥면 안기리 논에서 한 농민이 폭우로 유입된 물을 빼고 있다. 태안에는 23일 새벽부터 하루 사이 199.5㎜의 비가 내렸다. 연합뉴스
24일 충남 태안군 근흥면 안기리 논에서 한 농민이 폭우로 유입된 물을 빼고 있다. 태안에는 23일 새벽부터 하루 사이 199.5㎜의 비가 내렸다. 연합뉴스

지난 2018년 기록적인 무더위로 지쳐갈 때 기상당국의 희망고문이 있었다. 처음에는 8월 10일 경이면 끝날 거라더니 15일, 20일, 25일로 몇 차례 연기되며 결국 폭염 일수와 열대야 일수 기록을 세웠다(각각 31.4일과 17.7일).

 

올여름은 장마 희망고문이 이어지고 있다. 8월 초면 끝난다더니 10일, 14일, 16일로 늦춰지고 있다. 8월 11일로 중부지방 최장 장마 기록인 49일에 이르렀고 16일에 끝난다면 무려 54일이라는 신기록을 세우게 된다. 기록적인 장마 덕분에 폭염과 열대야를 겪지 않아도 되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위로해야 할까.

 

그러기에는 장마철 호우로 인한 피해가 너무 심하다. 특히 지난 주말 남부지방의 수해 광경은 충격적이었다. 물이 차올라 떠내려가다 엉겁결에 한 주택의 지붕 위에 올라가 피신해 있던 소들이 물이 빠진 뒤 내려오지 못하고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담은 사진 한 장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다.


○침수로 인한 피해 막대

 

그래도 사람이나 소 같은 동물은 피할 수라도 있지 식물은 꼼짝없이 침수를 견뎌야 한다. 올해 장마 폭우로 침수된 농경지는 9일 14시 현재 2만4387헥타르로 추산되는데 이 가운데 85%인 2만655헥타르가 논이었다. 이번 주도 폭우가 계속되고 있어 장마가 끝날 때까지 침수 면적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전체 논 면적이 83만 헥타르이므로 이번 장마로 대략 3%는 물에 잠기지 않을까.

 

그러나 이게 곧 쌀 수확량이 3% 준다는 걸 뜻하지는 않는다. 폭우로 벼가 완전히 물에 잠기더라도 대부분 24시간 이내에 물이 빠지기 때문이다. 만일 하루 이틀 침수가 이어지면 물이 빠진 뒤에도 벼가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따라서 수확량에 차질이 생긴다. 침수가 3일 이상 이어지면 벼가 죽기 시작해 농사를 완전히 망친다. 

 

국내에서는 이런 극단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지만 우기에 많은 비가 내리는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는 침수로 인한 수확량 감소로 매년 10억 달러(약 1조2000억 원)가 넘는 손실을 보고 있다. 최근 급격한 기후변화로 침수로 인한 피해는 점점 더 늘어나는 추세다. 

 

그런데 벼 가운데는 장기간 침수에도 살아남는 품종이 몇 가지 있다. 이들의 전략은 두 가지로 나뉜다. 먼저 물에 잠긴 채 버티는 전략을 쓰는 종류로 완전히 잠긴 채 2주 동안 생존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물에 잠겼을 때 줄기가 급격히 자라게 해 수면 위로 머리를 내밀어 살아남는 종류다. 

 

기후변화로 인한 침수 피해가 늘어나면서 이들 벼의 생존 메커니즘을 규명하려는 연구가 진행됐다. 물에 잠긴 채 버티는 전략의 비밀은 2006년 일찌감치 밝혀졌고 키를 키워 윗부분이 물 밖으로 나오게 하는 메커니즘이 최근 규명됐다. 이를 계기로 벼가 물에 잠겼을 때 일어나는 일들을 살펴보자.

 

○ 뿌리에 통기조직 발달

벼는 물에 잠겨 산소가 부족한 환경에 처해도 비교적 잘 적응하게 진화한 식물이다. 논에 물을 대 뿌리가 늘 물에 잠겨 있는 조건이 되면 통기조직이 발달해(오른쪽) 위의 줄기에서 산소가 원활히 공급된다. 식물 생리학분자생물학 제공
벼는 물에 잠겨 산소가 부족한 환경에 처해도 비교적 잘 적응하게 진화한 식물이다. 논에 물을 대 뿌리가 늘 물에 잠겨 있는 조건이 되면 통기조직이 발달해(오른쪽) 위의 줄기에서 산소가 원활히 공급된다. 식물 생리학분자생물학 제공

육상 동물이 물에 빠져 산소를 공급받지 못하면 수 분 만에 죽는다. 육상 식물도 물에 잠기면 마찬가지로 산소 부족으로 죽는다. 다만 동물에 비해 그 과정이 훨씬 느리게 진행될 뿐이다. 사실 벼는 물과 친한 식물이기 때문에 비교적 침수에 강한 편이다. 논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벼는 뿌리와 줄기 일부가 늘 물에 잠겨 있어도 생존이나 성장에 전혀 지장이 없다.

벼는 뿌리에 통기조직(aerenchyma)이라는, 기체로 채워진 공간이 잘 발달해 있다. 물 위에 노출된 줄기와 잎에 존재하는 산소가 통기조직을 통해 뿌리로 확산되므로 논에서도 별 탈 없이 잘 자란다. 그러나 홍수로 식물 전체가 물에 잠기면 얘기가 달라진다. 산소의 공급이 끊기기 때문이다. 게다가 십중팔구는 흙탕물이어서 잠긴 벼에서는 광합성이 일어나지 않아 산소를 발생시키지도 못한다.

 

침수로 광합성을 못하면 포도당이 만들어지지 않지만 한 동안을 버틸 수 있다. 식물체에 저장해 둔 녹말을 포도당으로 분해해 쓰면 되기 때문이다. 포도당은 세포 내에서 피루브산으로 바뀌는데 이를 해당과정이라고 부른다. 그 뒤 피루브산은 세포 내 발전소인 미토콘드리아로 들어가 에너지 분자인 ATP를 만드는 원료가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 과정에 산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침수로 산소 공급이 끊기면 미토콘드리아가 원료인 피루브산을 태울 수 없어 작동이 멈춘다. 동물은 이런 상황에서 얼마 버티지 못하고 죽지만 식물은 이를 대신할 비책을 마련해 뒀다. 바로 에탄올 발효 경로를 켜는 것이다.

 

산소가 없어 미토콘드리아가 무용지물이 돼 피루브산 농도가 올라가면 이를 아세트알데히드로 바꿔주는 효소와 아세트알데히드를 에탄올로 바꿔주는 효소가 늘어난다. 이 과정에는 산소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발효라고 부른다. 식물은 에탄올 발효 경로를 통해 포도당 한 분자에서 ATP 세 분자를 얻을 수 있다. 미토콘드리아의 세포 호흡의 10분의 1 수준이지만 생존에 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침수가 길어지면 쓸 수 있는 녹말도 고갈되고 발효로 세포질의 산성도가 커지면서 세포 손상이 일어나 결국 식물체가 죽게 된다. 

 

○벗어나는 대신 견디는 전략 택해

널리 재배되는 인디카 품종 스와르나(Swarna)는 침수 내성이 없어 2주 동안 침수되면 죽어 물이 빠지고 2주가 지난 시점에서는 누렇게 떠 있다(왼쪽). 반면 침수 내성이 있는 품종인 IR49830(FR13A의 변종)은 2주 동안 침수를 겪고 난 뒤 2주 동안 잘 자랐다(오른쪽). IR49830과 여교배로 Sub1 유전자를 받은 스와르나는 2주 동안의 침수를 견디고 살아남아 잘 자랐다(가운데). 네이처 제공
널리 재배되는 인디카 품종 스와르나(Swarna)는 침수 내성이 없어 2주 동안 침수되면 죽어 물이 빠지고 2주가 지난 시점에서는 누렇게 떠 있다(왼쪽). 반면 침수 내성이 있는 품종인 IR49830(FR13A의 변종)은 2주 동안 침수를 겪고 난 뒤 2주 동안 잘 자랐다(오른쪽). IR49830과 여교배로 Sub1 유전자를 받은 스와르나는 2주 동안의 침수를 견디고 살아남아 잘 자랐다(가운데). 네이처 제공

벼는 이렇게 얻은 에너지의 일부를 줄기를 생장시키는 데 사용한다. 키를 키워 윗부분이라도 물속을 벗어나게 하려는 전략이다. 이게 성공해 식물체의 일부라도 공기와 만날 수 있게 되면 광합성이 재개되고 산소도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에 죽음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줄기가 자랐음에도 여전히 물속에 잠긴 상태라면 에너지 낭비로 오히려 죽음을 재촉하는 결과가 된다. 우리나라에서 재배하는 벼를 비롯해 벼 대부분은 이런 전략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호우가 잦아 논이 오랫동안 침수되는 일이 흔한 지역에서는 이 전략이 통하지 않을 때가 많다. 오히려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해 물이 빠질 때까지 버티는 전략이 생존확률을 더 높일 수 있다. 실제 이런 지역에서 발견되는 몇몇 품종은 침수된 채 2주를 버틸 수 있는데, 메커니즘을 규명한 결과 정말 에너지를 아껴 살아남는 전략을 진화시킨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2006년 미국 캘리포니아대(데이비스)와 필리핀에 있는 국제미작연구소(IRRI)의 공동연구자들은 인디카(indica) 벼 가운데 침수 내성이 있는 품종인 FR13A의 게놈을 분석해 Sub1A 유전자가 핵심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흥미롭게도 우리나라에 심는 자포니카(japonica) 벼는 이 유전자가 소실돼 있다. 참고로 재배하는 벼는 아시아의 Oryza sativa와 아프리카의 Oryza glaberrima 두 종이 있고, sativa는 자포니카와 인디카 두 아종으로 나뉜다.

 

연구자들은 자포니카 품종으로 이 유전자가 없는 니폰베어(Nipponbare)와 FR13A 식물체를 10일 동안 침수시키고 3일 동안 회복시키는 과정에서 유전자 발현 패턴을 비교분석했다. 그 결과 침수 내성이 있는 FR13A에서 줄기 생장을 촉진하는 Sub1C 유전자의 발현이 낮고 에탄올 발효에 관여하는 Adh1 유전자의 발현이 높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물에 잠겨 산소가 부족한 상황에서 줄기 생장으로 인한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하고 에탄올 발효의 효율은 최대한 높여 생존 기간을 늘릴 수 있게 됐다는 말이다.

 

자포니카 품종에 이 유전자를 넣어주자 침수 내성이 생겼다. 그리고 성장이나 수확량, 쌀 품질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다. 논문에 따르면 인도와 동남아 여러 나라에서 현지 재배 품종에 여교배를 통해 FR13A의 Sub1A 유전자를 도입하는 시도가 완성단계라고 하니 지금쯤은 널리 보급돼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여교배(back cross)는 반복 교배를 통해 외래 품종의 유용한 형질만 재배 품종에 도입하는 전통적인 육종법이다. 

 

○하루에 25㎝ 자라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서아프리카의 만성 침수 지역에서는 줄기가 길게 자라는 심수 벼를 재배한다. 벼를 돌보는 농부의 목까지 물이 차 있다. 위키피디아 제공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서아프리카의 만성 침수 지역에서는 줄기가 길게 자라는 심수 벼를 재배한다. 벼를 돌보는 농부의 목까지 물이 차 있다. 위키피디아 제공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이달 6일 FR13A와는 정반대의 전략을 통해 침수를 극복하는 ‘심수 벼(deepwater rice)’의 비밀을 밝힌 연구결과를 실었다. 심수 벼는 논이 만성적으로 침수되는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서아프리카 지역에 자라는 품종이다. 폭우가 내리거나 상류에서 물이 들어와 침수되면 하루 만에 줄기가 25㎝나 자라 물 위로 머리를 내밀고 비가 더 와 또 침수되면 다시 그만큼 자라 상황을 벗어난다. 

 

우리는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벼에 익숙해 심수 벼가 낯설게 느껴지지만 사실 우리가 재배하는 벼는 유전자 변이로 키가 잘 자라지 않게 된 개체를 선별한 것이다. 광합성 산물을 식물체 생장 대신 씨앗을 만드는 데 쓰고 벼가 잘 쓰러지지 않아 수확량이 많기 때문이다. 1960년대 녹색혁명은 벼와 밀의 키가 작아진 덕분이다. 그러나 침수가 만성적인 지역에서는 평범한 벼는 물론이고 FR13A 같은 침수 내성 벼도 버티지 못한다. 따라서 지금도 여전히 심수 벼가 재배되고 있다. 

나고야대를 주축으로 한 일본 공동연구자들은 심수 벼의 게놈을 분석해 이런 특성에 기여한 몇 가지 유전자 변이를 찾았다. 먼저 식물의 성장호르몬인 지베렐린(gibberellin)을 합성하는 효소를 지정하고 있는 SD1 유전자의 변이다. 흥미롭게도 녹색혁명을 이끈 왜소 품종 역시 SD1 유전자에 결함이 생긴 결과다. 물론 심수 벼 SD1 유전자 변이는 결함이 아니라 지베렐린이 더 많이 만들어지게 하는 방향이다. 

 

다음은 줄기의 성장에 관여하는 ACE1의 변이다. ACE1은 줄기의 성장을 유발하는 역할을 하는 데 심수 벼의 ACE1은 그 활성이 컸다. 연구자들은 Sub1C가 ACE1 유전자의 발현을 유발한다는 사실도 밝혔다. 앞서 물에 잠겼을 때 줄기 생장을 억제해 물속에서 견디는 전략을 쓰는 FR13A 품종은 Sub1C 발현이 억제된 상태였다. 그 결과 ACE1 유전자가 제대로 발현이 안 돼 키가 안 컸다는 말이다.

 

올해 긴 장마로 많은 논이 침수됐지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심수 벼는 물론이고 침수 내성 벼도 필요한 시점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기후변화가 가속화된다면 한 세대 뒤 우리나라의 재배 품종에도 침수 내성 벼의 Sub1A 유전자가 들어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심수 벼는 침수가 되면 위쪽 줄기가 하루에 25㎝나 자라 물 밖으로 머리를 내민다. 물이 빠지면 식물체가 쓰러지지만 말단은 중력 반대 방향으로 자라며 적응한다. 최근 일본의 연구자들은 심수 벼가 침수됐을 때 대응에 관여하는 유전자들을 규명하는 데 성공했다. 식물생리학 제공
심수 벼는 침수가 되면 위쪽 줄기가 하루에 25㎝나 자라 물 밖으로 머리를 내민다. 물이 빠지면 식물체가 쓰러지지만 말단은 중력 반대 방향으로 자라며 적응한다. 최근 일본의 연구자들은 심수 벼가 침수됐을 때 대응에 관여하는 유전자들을 규명하는 데 성공했다. 식물생리학 제공

※필자소개

강석기.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8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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