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N사피엔스]분광학, 천문학의 새 장을 열다

2020.08.06 13:00
2019년 4월 처음 관측된 블랙홀의 모습. 공개된 이미지에서 아랫부분은 밝고 윗부분은 어두운데, 아랫부분이 관측자인 지구로 향하는 빛이고, 윗부분이 지구에서 멀어지는 빛이기 때문이다. 굉장히 빠른 속도로 가스가 회전한 탓에 도플러 효과가 극대화된 것이다. EHT 제공
2019년 4월 처음 관측된 블랙홀의 모습. 공개된 이미지에서 아랫부분은 밝고 윗부분은 어두운데, 아랫부분이 관측자인 지구로 향하는 빛이고, 윗부분이 지구에서 멀어지는 빛이기 때문이다. 굉장히 빠른 속도로 가스가 회전한 탓에 도플러 효과가 극대화된 것이다. EHT 제공

19세기가 남긴 또 하나의 위대한 유산은 분광학(spectroscopy·分光學)이다. 분광학이란 말 그대로 빛을 파장에 따라 죽 깔아놓고 (스펙트럼) 파장대별로 나누어서 분석하는 분야이다. 밤하늘을 광학망원경으로 본다는 건 어차피 가시광선을 보는 것이다. 나중에 등장하는 전파망원경은 확대된 가시광선, 즉 전자기파를 보는 것이다. 물리학자들에겐 전파나 가시광선이나 어차피 전자기파로서의 빛일 뿐이고 양자역학적으로는 빛 알갱이인 광자(photon)일 뿐이다. 20세기 후반에는 광자 이외에 중성미자로 우주를 ‘보기’ 시작했고, 21세기에는 중력파로도 우주를 관측할 수 있게 되었다.


어차피 광학망원경을 통해 우주에서 날아오는 가시광선을 보는 것이라면 그 빛을 파장별로 쪼개서 살펴봐야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마치 빛을 해부하는 것과도 같다. 독일의 요제프 폰(1787~1826)은 현대적인 분광기를 개발해 불꽃을 관찰하던 중 그 스펙트럼에서 두 줄의 노란 선을 발견했다. 훗날 이는 나트륨 원소의 고유한 스펙트럼선임이 밝혀졌다. 소금을 불에 태우면 노란 빛을 볼 수 있다. 이를 흔히 나트륨 D선이라 부른다. 노란색 가로등 불빛이 보인다면 십중팔구 나트륨 D선에서 나오는 빛이다. 프라운호퍼는 나트롬 D선과 태양광을 비교하던 중 태양광 스펙트럼에서 570여 개의 수많은 검은 선을 발견했다(1814년). 이를 프라운호퍼선이라 부른다. 프라운호퍼는 자신이 발견한 선들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39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프라운호퍼선의 비밀을 밝힌 사람은 독일의 로베르트 분젠(1811~1899)과 구스타프 키르히호프(1824~1887)였다. 분젠은 과학실험실에 하나씩 있는 분젠버너를 만든 사람이다. 분젠버너는 천연가스에 불을 붙인 버너로 알코올램프보다 화력이 훨씬 더 세다. 분젠과 키르히호프는 새로운 분광기도 개발했다. 이를 이용해 특정 원소를 포함한 시료를 높은 온도로 가열했을 때 각 원소별로 독특한 스펙트럼을 방출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프라운호퍼가 발견한 태양빛 스펙트럼의 프라운호퍼  선들. 위키피디아 제공
프라운호퍼가 발견한 태양빛 스펙트럼의 프라운호퍼 선들. 위키피디아 제공

프라운호퍼의 노란 선은 나트륨 때문이라는 것도 밝혀졌다. 각 원소별로 독특한 선 스펙트럼을 보인다면 이는 마치 상품의 바코드처럼 (선 스펙트럼의 모양이 바코드와 비슷하기도 하다.) 또는 지문이나 유전자 코드처럼 미지의 원소를 규명하는 데에 활용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세슘과 루비듐을 발견하기도 했다. 또한 프라운호퍼가 발견한 검은 선의 의미도 제대로 해석했다. 즉, 다양한 파장의 연속 스펙트럼이 낮은 온도의 원소들 속을 지나가면 특정 파장대의 빛이 온도가 낮은 원소들에 흡수되어 전체 스펙트럼에서 그 파장이 빠진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를 흡수 스펙트럼이라고 한다. 이때 특정 원소가 흡수하는 특정 파장은 그 원소를 높은 온도로 가열했을 때 그 원소가 방출하는 스펙트럼의 특정파장과 일치한다. 그러니까 어떤 원소를 가열했을 때 얻는 방출 스펙트럼과 그 원소가 낮은 온도에서 특정 파장의 빛을 흡수할 때의 스펙트럼은 사실상 같은 셈이다.

 

이때는 아직 원소 또는 원자의 내부구조가 알려지기 전이고 양자역학적인 이해도 없던 시절이라 왜 특정 원소가 특정 파장대의 빛에만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그 근본적인 원인을 알지는 못했다. 각 원소별로 독특한 불연속적인 스펙트럼이 나오는 이유는 양자역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닐스 보어가 1913년 자신의 원자모형을 제시하면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하나의 독자적인 동역학 체계로 양자역학이 구축된 것은 그로부터 다시 십여 년이 지나서이다.


실험실에서 어떤 원소가 어떤 스펙트럼을 내는지 정리해 두면 미지의 소스에서 나오는 빛의 스펙트럼을 조사해 그 속에 어떤 원소가 포함돼 있는지를 역으로 추적할 수 있다. 분젠과 키르히호프는 태양광 스펙트럼을 조사해 프라운호퍼의 노란색 D선이 있음을 알아냈다. 즉, 태양의 대기 속에 나트륨이 있음을 규명한 것이다. 나트륨뿐만 아니라 다른 원소들의 존재유무도 이런 식으로 알아낼 수 있고 태양 이외의 다른 별빛으로부터도 같은 분석을 진행할 수 있다. 지구에 가만히 앉아서 분광기를 조작해 저 멀리 있는 별 속에 어떤 물질이 있는지 알아낼 수 있다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실험을 설명하는 프라운 호퍼. 위키피디아 제공
실험을 설명하는 프라운 호퍼. 위키피디아 제공

분광기술의 위력은 그 역방향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1868년 프랑스의 피에르 장상(1824~1907)은 일식 때 태양광의 스펙트럼을 분석해 나트륨 D선 근처에서 노란 선을 발견했다. 얼마지 않아 영국의 노먼 로키어(1836~1920)도 똑같은 선을 발견했다. 처음엔 나트륨에서 나오는 선이라고 생각했으나 결국 로키어는 새로 발견한 선이 그때까지 지구상에서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원소라고 결론지었다. 이 원소는 태양을 뜻하는 그리스 신화의 태양신 헬리오스에서 이름을 따 헬륨이라 불렀다. 


지구에서 헬륨이 발견된 것은 1895년이다. 헬륨은 수소 다음 원자번호 2번에 해당하는 원소이다. 지구에는 헬륨이 극히 드물다. 드물기 때문에 비싸다. 액체 헬륨은 녹는점이 아주 낮아서 초전도체 등을 위한 초저온 냉각제로 많이 쓰인다. 별이나 우주에는 헬륨이 풍부하다. 별이 빛나는 이유는 수소를 원료로 해서 헬륨 원자핵을 합성하는 핵융합 반응 때 에너지를 방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별에서 만드는 헬륨의 양보다 우주에서 관측되는 전체 헬륨의 양이 훨씬 더 많다. 이 많은 헬륨이 다 어디서 왔을까 하는 문제는 결국 우주의 기원인 빅뱅이론까지 연결된다. 그러니까 19세기 프라운호퍼의 흡수 스펙트럼 발견, 분젠과 키르히호프의 분광분석법이 결국 20세기 태양과 우주의 비밀을 밝히는 기틀이 된 셈이다. 


분광법이라는 유력한 무기가 있으니 이를 태양에만 써먹었을 리는 없다. 영국의 윌리엄 허긴스(1824~1910)와 그의 부인 마거릿 허긴스(1848~1915)는 태양보다 멀리 있는 별에서 나오는 빛을 분광기로 분석했다.

베텔게우스의 모습을 유럽남방천문대(ESO)가 상상한 그림이다. ESO 제공
베텔게우스의 모습을 유럽남방천문대(ESO)가 상상한 그림이다. ESO 제공

허긴스가 결혼 전부터 관측했던 별 중에는 지금 전 세계 과학계에서 가장 유명한 별인 오리온자리의 베텔게우스도 있었다. 지구에서 640광년 떨어져 있는 베텔게우스는 최근 관측 결과 계속 그 밝기가 어두워지고 있어서 별의 생애를 마감하고 초신성으로 폭발할 시기가 임박하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초신성이 터지면 두어 달 정도 밝게 빛나는데, 가장 밝을 때 밤하늘을 보름달보다 환하게 밝히고 낮에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 장엄한 우주쇼가 언제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당장 내일 터질 수도 있고 수백만 년 뒤에 터질 수도 있다. 천상계가 지구와 완전히 다른 세상이라면 별의 대기를 구성하는 성분도 지구에서 볼 수 없는 것들일 것이다. 허긴스의 관측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지구에 없는 특별한 원소는 없었다. 


허긴스 부부는 1868년 밤하늘에서 가장 밝은 별인 큰개자리의 시리우스에서 재미있는 결과를 관측했다. 시리우스의 별빛 스펙트럼이 태양의 흡수 스펙트럼과 똑같은 패턴을 갖고 있으나 전체적으로 파장이 늘어져 있었다. 이렇게 파장이 길어지는 현상을 적색편이라고 한다. 반대로 파장이 짧아지는 현상은 청색편이이다. 가시광선 스펙트럼에서 붉은색의 파장이 길고 파란색이나 보라색의 파장이 짧은 까닭에 붙은 이름이다. 파장이 길어진 이유는 광원인 시리우스가 지구에 대해 멀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그 유명한 도플러 효과의 결과이다.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인 크리스티안 도플러(1803~1853)는 1842년 파원의 움직임이 파장에 미치는 효과를 발견했다. 관찰자가 움직일 때에도 비슷한 효과가 생긴다. 상대성이론에서는 파원과 관측자의 상대적인 운동만 중요하다. 도플러 효과의 가장 흔한 사례는 앰뷸런스가 다가왔다가 멀어지는 경우이다. 앰뷸런스가 소리를 내면서 다가오면 파동의 진행방향으로 파원이 계속 다가가므로 파장이 짧아지는 효과가 생긴다. 그 결과 진행방향에 서 있는 사람은 정지한 앰뷸런스가 내는 소리보다 더 짧은 파장(더 큰 진동수)의 소리, 즉 더 높은 소리를 듣게 된다. 앰뷸런스가 멀어질 때는 그 반대이다. 

 

도플러 효과. 똑같은 소리를 내는 앰뷸런스가 똑같은 거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지해 있느냐, 접근 중이냐, 후퇴 중이냐에 따라 사람이 듣는 소리의 크기는 다르다. 과학동아DB
도플러 효과. 똑같은 소리를 내는 앰뷸런스가 똑같은 거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지해 있느냐, 접근 중이냐, 후퇴 중이냐에 따라 사람이 듣는 소리의 크기는 다르다. 과학동아DB

빛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빛의 파장은 짧아지고 멀어지는 빛의 파장은 길어진다. 스피드 건은 이 원리를 이용해 물체의 속도를 잰다. 별빛의 도플러 효과가 중요한 이유는 이를 이용해 별의 운동 상태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시리우스가 지구와 시리우스를 연결한 직선에 수직인 방향으로 움직인다면 우리는 그 움직임을 밤하늘의 멀리 있는 별을 배경으로 해서 시리우스의 움직임을 시각적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리우스가 지구-시리우스를 연결한 직선방향으로 움직인다면 지구에서 그 움직임을 시각적으로 알기는 어렵다. 즉, 어떤 별이 지구로부터 얼마나 가까워지는지 멀어지는지를 알아보려면 도플러 효과가 아주 쓸모 있다. 이 또한 별빛의 스펙트럼을 분석한 결과니까 분광학의 쓰임새란 참으로 대단하다. 


20세기의 천문학자들은 별 뿐만 아니라 성운에서 나오는 빛의 스펙트럼을 조사해 성운의 움직임도 분석했다. 앞서 말했듯이 1920년대를 지나면서 우리가 성운이라고 알고 있던 상당수는 독립된 은하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도플러 효과를 이용해 은하들이 날아다니는 양상을 분석할 수 있게 된 셈이다. 그 결과는 무척 놀라웠다. 아마도 20세기 과학의 가장 위대한 발견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이렇게 보면 20세기 과학의 위대한 성취들은 19세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쌓아 올린 성과와 유산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는 확신이 든다. 

 

※참고자료

-Kirchhoff, G.; Bunsen, R. (1860). "Chemische Analyse durch Spectralbeobachtungen" [Chemical analysis by spectral observations]. Annalen der Physik und Chemie. 2nd series. 110 (6): 161–189.
-The Editors of Encyclopaedia Britannica, William Huggins, Encyclopædia Britannica, May 08, 2020;
https://www.britannica.com/biography/William-Huggins

-The Editors of Encyclopaedia Britannica, Helium, Encyclopædia Britannica, March 14, 2019; https://www.britannica.com/science/helium-chemical-element

 

※필자소개 

이종필 입자이론 물리학자. 건국대 상허교양대학에서 교양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신의 입자를 찾아서》,《대통령을 위한 과학에세이》,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아주 특별한 상대성이론 강의》, 《사이언스 브런치》,《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이론》을 썼고 《최종이론의 꿈》, 《블랙홀 전쟁》, 《물리의 정석》 을 옮겼다. 한국일보에 《이종필의 제5원소》를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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