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촌평]위기를 기회로 바꾸려면

2020.07.07 17:40
 

매일 오전 10시가 되면 오늘은 어느 지역에서 얼마나 많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 신규 환자가 발생했는지 눈과 귀가 쏠린다. 혹여나 연로한 중증 환자 중 사망자가 추가되지 않았을까 노심초사한다. 

 

아침에 집밖을 나설 때면 휴대전화만큼이나 마스크를 소중히 챙긴다. 재택근무하는 직장 동료를 매일 만나기도 쉽지 않다. 막역한 친구·동료나 가족들 외에는 저녁 모임을 피한다. 매일 등교하던 학생들은 ‘집콕’ 신세를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약 6개월 동안 우리 일상은 이렇게 송두리째 바뀌었다.  

 

일상은 바뀌었지만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바로 과학기술계의 목소리다. 코로나19 국내 확산세가 이어지던 지난 몇 개월간 과학기술계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른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자는 주장이다. 코로나19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인류 전체가 직면한 감염병 문제 해결 주도권을 잡기 위한 연구개발(R&D) 역량을 집중하자는 의견도 커졌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를 비롯한 과학기술 분야 대학, 관련 연구기관들이 앞다퉈 크고작은 포럼과 토론회를 열었다. 물론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온라인 동영상 중계는 대세가 됐다. 포럼과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이후에도 또다른 감염병이 인류를 덮치는 건 시간 문제니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 경쟁력 있는 국내 정보통신기술(ICT)을 중심으로 비대면 디지털 사회 전환을 위한 정책 발굴과 아낌없는 예산 투입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전문가들의 목소리 때문인지, 아니면 코로나19 위기 상황을 어떻게든 극복하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인지 알 수는 없지만 정부도 화답했다. 비대면 디지털 사회를 열어가기 위한 ‘디지털 뉴딜’ 정책을 발표하는가 하면 질병관리본부를 질병관리청으로 승격하고 국립감염병연구소와 바이러스연구소를 신규로 설립하겠다고 했다. 

 

과학기술 분야에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어디선가 많이 본듯한 그림이다. 코로나19와 같은 코로나바이러스 계열인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MERS)이 강타했던 2012년에도 당시 정부는 감염병 대응을 위한 정책들을 내놓고 크고작은 연구개발 전략을 발표했다. 2016년 전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던 구글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 뒤에도 박근혜 정부는 인공지능을 전략적으로 육성해야 한다며 지능정보기술연구소를 설립하고 정부 예산을 투입한다고 발표했다. 자그마치 5년간 1조원을 투자해 한국판 ‘알파고’를 만들겠다는 장밋빛 청사진이었다. 

 

가깝게는 딱 1년 전 일본의 소재·부품·장비(소부장) 무역 공세가 떠오른다. 일본이 반도체 개발 핵심 소재 품목의 한국 수출을 규제하자 과학기술과 산업계 전문가들은 이번 소부장 사태를 계기로 소재 기술 경쟁력을 강화하고 대기업과 중견중소기업이 선순환하는 상생의 생태계를 구축하는 기회로 삼자고 했고 정부도 적극 지원에 나선 채 1년이 흘렀다. 

 

사람이나 사회는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실패를 거울 삼아 진보하고 발전하는 법이다. 그러나 지난 10여년 동안 사회적 파장과 파급력이 있었던 과학기술 분야 이슈가 생길 때마다 반복적으로 이뤄졌던 일련의 대응과 ‘위기를 기회로 삼자’는 주장에 따른 반복적인 정책 실행이 현재 어떤 결과와 성과물을 내놓았는지 진중하게 돌아보지 않고서는 한발짝도 나아갈 수 없는 것도 당연한 이치다. 

 

메르스 사태 이후, 알파고 사건 이후, 소부장 사태 이후 과연 어떤 성과를 내놓았는지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 성과가 미비했다면 어떤 점이 미흡했고 앞으로는 어떤 준비체계와 정책체계를 갖춰야 하는지도 충분히 고민해야 한다. 경험과 반성, 평가가 없는 주장과 대안은 공허할 수밖에 없다. 

 

아울러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은 알파고나 소부장 사태와는 다르다. 기술이 뒤처지고 경제적·산업적 타격을 입는 데 그치지 않는다. 코로나19만 놓고 보면 지난 6개월간 300명에 가까운 285명이 사망했다. 기술 경쟁력과 경제적 파급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사람의 목숨만큼 중한 것은 없다. 이런 의미에서 코로나19 위기를 기회로 삼자는 목소리는 결코 가벼워서는 안된다. 이런 목소리에 무게감이 실리려면 철저히 경험과 평가, 반성에 기반한 정밀한 계획 수립과 실행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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