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연구원 소속 유지 결정 시작일 뿐이다

2020.06.16 01:10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청와대가 15일 회의를 열어 질병관리본부를 질병관리청으로 승격하는 방안을 확정했다. 아울러 청 승격과 함께 보건복지부로 관할을 이전하려던 국립보건연구원을 질병관리청 소속으로 두기로 했다. 앞서 행정안전부는 이달 3일 질병관리본부의 청 승격을 발표하면서 산하 국립보건연구원을 복지부로 옮기는 방안을 내놔 연구 기능을 상실한 '무늬만 승격'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를 우려한 의료계 지적에 이어 청와대 게시판에 국민청원까지 일자 이 안에 대한 전면 재검토를 지시했고 당·정·청은 이날 국립보건연구원을 질병관리청 소속 기관으로 두기로 결정한 것이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코로나19)은 물론 앞으로 다가올 다양한 감염병 사태에 대비해 질병관리본부가 지금보다 더 확실한 역할과 기능을 해야 한다는 문제 제기는 이미 오래 전부터 방역 전문가들은 물론 국민들 사이에서도 충분한 공감대를 이뤄왔다. 그런 점에서 뒤늦게나마 질병관리청 승격의 취지를 살리는 방향으로 결정이 나온 것은 바람직해 보인다.  하지만 관련부처 관계자들이 처음부터 정책을 입안하면서 초기 취지에 맞게 기능과 역할을 고려했다면 코로나19와 북한 관계 악화로 어려운 지금 같은 시기에 불필요한 사회적 논란까지 초래하는 상황으로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질병관리본부의 이번 청 승격은 꼭 필요한 일이었음에도 공무원들이 조직도를 이리 그리고 저리 옮기는 방식으로 급조해 발표한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승격의 필요성은 코로나19 사태가 나기 훨씬 전에도 제기됐고 충분히 논의할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급히 내놓는 정책들은 어쩔 수 없이 겉포장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그간 정부의 조직개편 정책을 보면 정책의 철학을 살리는 척하면서 인력과 예산 배정을 두고 이해 당사자간 힘겨루기로 넘어가는 사례가 자주 눈에 띄었다. 본부를 청으로 승격할 뿐 권한은 기존 부처가 갖는, 겉포장만 그럴싸하고 내용이 없는 조직개편안이 나온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기존 개편안이 백지화되자마자 국립보건연구원도 독자 기관으로 독립해야 한다는 둥 제3, 제4의 안들이 쏟아진 것만 봐도 얼마나 많은 이해당사자들이 '동상이몽'에 빠져있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질병관리청 승격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감염병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체계를 마련하려면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  당·정·청은 감염병 대응에서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 국립보건연구원의 상호 인적 교류와 유기적인 협력을 기대하고는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 잘 이뤄질지는 앞으로 잘 살펴봐야 할 일이다. 무엇보다 부처 간, 기관 간 장벽을 극복하는 것은 큰 숙제다. 정부는 청 승격을 발표하면서 국립보건연구원 산하의  감염병연구센터를 국립감염병연구소로 확대 개편한 뒤 백신과 치료제를 포함해 감염병에 관한 포괄적 연구와 사업을 진행하도록 맡기기겠다고 했다.  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에 한국바이러스기초연구소를 설립해 모든 바이러스에 관한 기초연구를 진행한다는 계획도 내놨다. 전체적인 구도는 그럴싸해 보이지만 그간 신약 개발과 바이오 헬스 연구개발(R&D) 분야에서조차 두 부처가 그간 보여온 모습은 별로 유기적이지 못했다는 점에서 과연 얼마나 유기적일지 회의적이다.

 

실제로 이런 지적은 정부 보고서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 4월 발표한 코로나19 대응 종합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와 같은 주요 사회적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정부는 R&D사업 예산 규모를 크게 늘리고 관련 연구센터나 연구단을 신설했지만 대부분 사업 기획과 예산 배분에 주력하는 경향이 있어 향후 결과와 성과에 대한 추적이 소홀해질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앞으로 질병관리청이 감염병 사태를 막는데 과학적 근거와 무기를 뒷받침해야 하는 두 연구소가 해묵은 칸막이에 가로막혀 시너지는커녕 각자도생하기도 어려운 결과를 내지 않도록 정책적 감시가 필요해 보인다. 

 

이쯤에서 새로 연구소를 더 만드는 것이 바람직한지도 한 번 더 살펴봐야 할 것 같다. 과기정통부만 해도 최근 수년간 출연연들에 대해 위상과 역할을 명확히 부여하지 못하고 출연연들에게 그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출연연들의 중복 연구도 여전히 해소하지 못하고 미세먼지나 기후변화처럼 국민이 해결책을 요구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뚜렷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새 연구소 설립은 당장 필요해 보일지 모르지만 자칫 예산이 있으니 우선 조직이나 대뜸 만들어놓고 임무는 그다음에 생각해 보자는 안일한 상황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명확한 책임과 역할을 제시해야 한다.

 

감염병 컨트롤 타워가 보유해야 할 연구 기능을 확보하고 조직을 만드는 일은 어쩌면 시작에 불과하다. 이번만큼은 반복되는 감염병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고 국민이 믿고 신뢰하는 방역 관리 체계를 만들겠다는 신념이 끝까지 잘 관철됐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댓글 0

작성하기

    의견쓰기 폼
    0/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