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되살아나는 항균‧살균 열기

2020.06.10 14:00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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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을 완전히 죽여 없애버리겠다는 항균‧살균의 광풍이 되살아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의 아픔은 기억에서 완전히 지워져 버린 모양이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를 핑계로 바이러스를 말끔하게 제거해준다는 제품이 지천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항균 스프레이·마스크·내의도 있고, 목에 걸기만 하면 공기 중에 떠다니는 모든 바이러스를 순식간에 죽여준다는 목걸이도 있었다. 엘리베이터 버튼은 정체불명의 ‘항균’ 필름으로 도배가 돼버렸다. 소독을 핑계로 교인들의 입안에 소금물을 뿌려주는 황당한 교회도 있었다.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대통령의 어처구니없는 발언을 믿고 소독약으로 입을 헹구다가 낭패를 당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무차별적인 살균 광풍

 

실제 판매되고 있는 상품 광고페이지 캡쳐
실제 판매되고 있는 상품 광고페이지 캡쳐

우리가 오래 전부터 위생 환경에 신경을 썼던 것은 아니다. 조선 말기에 우리나라를 찾았던 사람들의 눈에 비친 우리의 위생 환경은 결코 자랑할 수준이 아니었다. 한성의 4대문 안에서는 화장실이나 하수 시설이 없었다. 그런 우리가 이제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살균·소독·항균에 적극적이다. 1960년대 초반 60달러 수준이었던 1인당 GDP가 1988년 5,000달러로 치솟으면서 나타나기 시작한 놀라운 변화였다. 살균·항균을 강조하는 생활화학용품과 가전제품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생활환경에서 미생물을 철저하게 제거하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것처럼 겁을 냈다. 냉장고·선풍기·에어컨·세탁기는 물론이고 주방에서 사용하는 그릇도 살균 기능이 있어야만 소비자의 관심을 끌 수 있었다. 비누·샴푸·치약도 살균·항균 기능이 없으면 무용지물이었다. 심지어 항균 기능을 자랑하는 내의와 양복도 있었다. 그런 사회 환경에서 성장한 세대는 지금도 살균·항균·소독에 대한 지나친 관심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과도한 살균·항균 광풍은 대부분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엉터리 과학을 앞세운다. 과학 상식이 턱없이 부족한 소비자들을 과학 용어에 대한 신비감을 이용해서 교묘하게 설득한다. 음이온과 은나노가 최고의 살균제로 자리를 잡았다. ‘방부제’는 끔찍하게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천연’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살균제’에 대해서는 무방비 상태가 돼버린다. ‘99%의 살균력’이 입증되었다는 엉터리 광고만으로도 소비자를 충분히 유혹할 수 있다.

 

무차별적 살균은 위험한 일

 

우리에게 피해를 주는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는 제거를 해야 한다. 그렇다고 미생물을 죽여야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미생물이 우리 몸에 직접 닿거나 몸속으로 침투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더욱이 자연 생태계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미생물도 많다. 우리에게 피해를 주는 미생물이라고 무작정 죽여야 할 이유는 없다. 지나친 살균·항균은 우리의 건강은 물론 자연 생태계의 균형을 깨뜨리는 어리석은 일이 될 수도 있다.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이 바로 그런 사실을 충격적으로 지적한 책이다.


미생물을 죽일 수 있는 살균제라면 인체에도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특히 입을 통해 섭취하거나, 호흡을 통해 흡입하는 경우에는 심각하게 문제가 될 수 있다. ‘천연’이라고 사정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식물들이 자신을 괴롭히는 해충을 퇴치하기 위해 어렵사리 만들어내는 ‘식물성 살상물질’이라는 뜻의 ‘피톤치드’(phytoncide)가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은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억지다. 범용 소독제인 이산화염소가 인체에 안전하다는 광고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엉터리다.


다행히 우리에게 피해를 주는 미생물을 퇴치하는 일은 말처럼 어렵지 않다. 대부분의 미생물은 물에 잘 씻겨 내려간다. 비누와 같은 세제를 이용하면 더욱 쉽게 제거할 수 있다. 미생물은 수분이 없는 곳에서는 생명을 이어가지 못한다는 사실도 유용하다. 빨래를 잘 말리기만 해도 남아있는 미생물을 충분히 제거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식품이나 생활용품의 경우에는 미생물의 침입을 차단해버리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식품을 진공 팩이나 통조림처럼 밀봉된 상태로 보관하기만 해도 상당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WHO가 제시한 손 씻기 방법. 알코올 세정제를 이용해 30초간, 물과 비누를 이용해 60초간 그림처럼 6단계를 거쳐 손을 씻으라고 제안했다. WHO 제공
WHO가 제시한 손 씻기 방법. 알코올 세정제를 이용해 30초간, 물과 비누를 이용해 60초간 그림처럼 6단계를 거쳐 손을 씻으라고 제안했다. WHO 제공

무차별적인 살균·항균에 의한 피해도 심각하다. 2011년에 알려진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바로 우리의 무분별한 살균 광풍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초음파를 이용하는 가습기의 물통에서 증식하는 세균이나 곰팡이를 제거하는 세정제가 인체에 안전하다는 광고가 발단이었다. 가습기를 세척하는 용도로 써야 할 세정제를 밀폐된 실내에 분무하라는 제조사의 엉터리 사용법을 믿었던 소비자들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었다.


음이온의 피해도 심각했다. 음이온이 폭포나 숲을 깨끗하게 만들어준다는 광고는 엉터리였다. 오히려 전기 방전을 이용한 엉터리 음이온 발생장치에서 쏟아져 나오는 오존 때문에 건강을 해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에어컨이나 공기청정기의 필수 기능이었던 ‘음이온’이 사라진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아직도 오존을 쏟아내는 차량용 공기청정기의 인기는 여전하다. 오존의 비릿한 냄새는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이 구리(銅)의 항균력을 인증해준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는 것이다. EPA는 인체에 유해한 물질의 관리기준을 정해주는 기관이다. 소재의 항균력을 인증해주는 일은 EPA의 역할과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광고에서 강조하는 구리의 항균력은 코로나19가 극성을 부리던 지난 3월 미국립보건원(NIH)이 공개한 실험결과를 왜곡한 것이다. 구리판 위에 떨어뜨린 비말에서 4시간 정도 지나면 코로나바이러스의 감염력이 떨어진다는 것이 NIH의 실험 결과였다. 구리의 항균력과는 거리가 먼 결과였다. 플라스틱 속에 들어있는 구리 이온이 항균력을 발휘한다는 주장도 근거가 없는 것이다. 플라스틱에 전하를 가진 구리 이온이 안정하게 존재할 수 없다. 플라스틱 속에 묻혀있는 구리가 플라스틱 바깥에 있는 바이러스를 죽일 수도 없다. 결국 항균 필름은 소비자원이 불법으로 판매를 금지시킨 은나노 젖병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것이다.


자신의 건강과 안전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지켜야 한다. 엉터리 과학을 앞세워 소비자의 주머니를 노리는 엉터리 광고를 경계해야 한다. 신비와 기적에 대한 유혹을 떨쳐버리면 된다. 살균과 소독은 꼭 필요한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미생물을 죽여 없애겠다는 비현실적인 환상은 버려야 한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대한화학회 탄소문화원 원장을 맡고 있다.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교육‧에너지‧환경‧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5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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