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에 빛나는 연기파 배우가 보여준 중독

2014.02.09 18:00
고(故)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 위키피디아 제공
고(故)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 위키피디아 제공

  이달 2일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을 안타깝게 하는 소식이 미국으로부터 들려왔다. 부기 나이트(1997), 매그놀리아(1999), 다우트(2008) 등 수많은 영화에서 강한 인상을 남겼던 미국의 대표적 연기파 배우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이 약물 과다 복용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그것이다.

 

  미국 맨하튼 웨스트 빌리지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 욕실에 쓰러져 있던 그를 작가인 데이비드 바 카츠가 발견해 신고했지만 이미 숨을 거둔 후였다고 한다. 경찰에 따르면 그의 방에서는 다량의 헤로인과 주사기가 발견됐다.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했던 배우의 사망 소식은 충격에 가까웠다. 아쉬운 마음에 최근 그가 출연해 강렬한 인상을 남긴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2012년작 '마스터'를 다시 한 번 봤다.

 

  이 영화는 극 중 그가 연기한 캐릭터와 실제 배우 본인의 마지막 순간이 '중독'이라는 단어로 연결돼 있는 작품이다.

 

● 사람을 홀리는 종교적 중독

 

  영화는 주인공 프레디(호아킨 피닉스 분)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일상으로 돌아오면서 시작된다. 프레디는 백화점 사진기사 자리를 얻지만 현실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채 자신이 만든 밀주에 항상 취해 말썽을 피우며 살아간다. 어느 날 그는 취한 상태에서 선상 파티가 한창이던 유람선에 들어가게 되고, 그 곳에서 인간 심리를 연구하는 집단 '코즈'를 이끄는 랭케스터(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분)를 만난다. 이후 프레디는 실험대상자 신분으로 랭케스터 곁에 머물게 되고, 랭케스터는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프레디를 다루는 과정을 통해 자신이 구축한 이론을 증명해 보이려 애쓴다.

 

영화
영화 '마스터'에서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이 연기한 랭케스터가 이끄는 '코즈'는 1954년 SF작가 론 하버드가 창시한 신흥 종교 '사이언톨로지'를 모델로 한 집단이다.

 

   앤더슨 감독은 SF작가 론 하버드가 1954년 창시한 신흥 종교 '사이언톨로지'에서 영감을 얻어 영화 속 '코즈'라는 집단을 탄생시켰다고 한다. 즉, 랭케스터는 일종의 사이비 종교 교주로서 신도들을 '중독'시키려 한 인물이고, 신도들에 대한 설득을 낯선 프레디를 통해 이뤄내고자 했던 것이다.

 

  랭케스터가 프레디를 정면에 앉혀두고 이상한 질문을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대답을 강요하는 장면은 실제 사이언톨로지에서 '프로세싱'이라 부르는 교화 작업과 유사하다.

 

  사이언톨로지 전문가인 '오디터'들은 론 하버드가 25년 이상 과학적으로 연구해 완성한 프로세싱을 '프리클리어(신도)'에게 실시해 그들을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이겨낼 수 있는 최상위 단계 '세탄(Thetan)'에 이르게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결국 이 영화에서는 랭케스터가 오디터이고, 프레디는 프리클리어였던 셈이다.

 

  첫 번째 프로세싱에서 자신도 모르게 과거 아픈 기억들을 다 털어놓고 눈물까지 흘린 프레디는 랭케스터를 진짜 '마스터'로 맹신하게 되지만, 시간이 갈수록 마스터도 자신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인간임을 깨닫고 갈등을 겪는다.

 

  랭케스터를 향한 관객의 조롱 섞인 비웃음도 프레디의 의구심과 함께 커지게 되는데, 이는 현실의 우리들이 SF작가가 만들어낸 낯선 종교를 바라보는 냉소와 크게 다르지 않다(론 하버드가 사이언톨로지의 사전 연구로 집필한 '다이어네틱스'는 1994년 이그노벨문학상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사이비 종교로 규정짓고 있는 사이언톨로지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800만 명 이상의 신도를 거느린 종교로 성장했다. 각자의 마음속에 내재된 영원의 상징 세탄을 끄집어내기 위해 과학적으로 철저히 검증된 교화 방식을 적용하겠다는, 시대를 앞서간 융합(?) 논리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중독'시킨 것일까.

 

● 종교보다 무서운 약물 중독

 

랭케스터는 프레디(호아킨 피닉스 분)이 직접 제조한 술을 매우 좋아한다. 프레디가 만든 이 술에는 사실 휘발성 시너(thinner)가 포함돼 있다.
랭케스터는 프레디(호아킨 피닉스 분)이 직접 제조한 술을 매우 좋아한다. 프레디가 만든 이 술에는 사실 휘발성 시너(thinner)가 포함돼 있다.

  이 영화에서 랭케스터의 프로세싱만큼 강렬한 중독성을 가진 또 하나의 소재는 '술'이다. 남의 유람선에 무단으로 침입한 프레디가 랭케스터에게 호감을 살 수 있었던 이유 역시 그가 제조한 술에 랭케스터가 홀딱 반했기 때문이다.

 

  영화 속 프레디는 맛있는 술을 만들기 위해 시너(thinner)까지 섞는 기괴한 행동을 벌인다. 휘발성의 시너가 중독성이 강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랭케스터가 프레디의 술에 '반했다'기보다는 '중독됐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술 자체도 시너처럼 중독성이 있다는 사실을 놓고 보면, 이 영화에서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이 연기한 랭케스터라는 캐릭터는 어딘가로 끊임없이 중독(종교)을 요구하는 동시에 어딘가로부터는 중독(시너+술)을 요구받는 인물이었던 셈이다.

 

  실제의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도 마약의 일종인 '헤로인'에 중독 돼 사망했다. 강한 마취작용을 일으키는 헤로인은 사용을 멈추면 심한 금단현상과 함께 식욕부진, 신경쇠약, 구토, 불안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으며, 심할 경우 호흡 곤란을 겪다가 사망에 이를 수 있는 독성 강한 약물이다.

 

   그래서일까. 그의 사망 소식을 듣자마자 중독에 관한 그의 영화로 기억해 온 '마스터'가 가장 먼저 떠올랐던 건 어쩌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지 모른다. '필립이 랭케스터다운 죽음을 맞이했다'는 섬뜩한 생각마저 들었을 정도이니 말이다.

 

  낯선 방문자가 만들어주는 술에 중독 돼 가던, 남들을 자신에게 중독시키려 애쓰던 사이비 종교 교주를 연기한 이 배우는, 실제 자신도 약물에 중독된 상태로 그렇게 세상을 떠나 버렸다.

 

  영화 '다크 나이트(2008)'에서 맡은 '조커' 역할에 지나치게 몰입한 나머지 촬영이 끝난 후에도 수면 장애를 겪다가 2008년 약물 중독으로 세상을 떠난 영화배우 히스 레저를 여전히 추억하 듯이, 고(故)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역시 '중독성'있는 연기력을 지녔던 배우로 영화 팬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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