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탈퇴 엄포 놓은 WHO, 코로나19 대응 지켜본 국내 전문가들 평가는

2020.05.20 18:19
지영미 세계보건기구(WHO) 코로나19 긴급위원회 위원이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열린 포럼에서 발제하고 있다. 조승한 기자 shinjsh@donga.com
지영미 세계보건기구(WHO) 코로나19 긴급위원회 위원이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열린 포럼에서 발제하고 있다. 조승한 기자 shinjsh@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세계보건기구(WHO)가 구조적으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부분은 있지만 존재할 필요성이 있다는 국내 전문가들의 의견이 나왔다. 이는 국내 전체 보건 전문가의 의견은 아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WHO에 대한 지원 중단과 탈퇴까지 시사한 상황에서 나온 국내 전문가의 평가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WHO가 중국에 이롭게 운영되고 있다는 불만을 내세우고 "30일 안에 실질적 개선을 이루지 못하면 미국의 자금 지원을 영구적으로 중단하겠다"며 탈퇴 의사까지 시사했다. 

 

지영미 WHO 산하 코로나19 긴급위원회 위원(전 질병관리본부 국립보건연구센터장)은 서울대와 서울대 국가전략위원회가 이달 20일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열린 ‘코로나 팬데믹, 한국의 대응과 과제’ 포럼에서 신종감염병으로 인한 공중보건 위기상황에서의 WHO 역할에 대해 “위기를 평가하고 데이터를 수집하며 정보를 공유하고 ‘테크니컬 가이던스’를 만들어 보급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지 위원에 따르면 WHO는 코로나19와 관련해 지금까지 239개 가이던스를 만들어 보급했다. 연구개발(R&D)과 관련해서는 전 세계 R&D를 조정하면서 기술적 지원이 필요한 나라에 대해서는 ‘GOARN’이라는 전문가 네트워크를 연결해 주기도 한다. 지 위원은 “이달 15일 기준 2300여 개 연구가 WHO에 등록돼 있다”며 “중국과 미국은 각각 161개, 153개인데 반해 한국은 8개로 환자 수가 줄며 연구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WHO가 신종감염병에서 역할을 하는 근거는 국제보건규칙(IHR)에 있다. IHR은 국제사회 전염병 전파를 막기 위해 WHO가 2005년 지정한 국제법이다. 국경을 넘어 질병이 퍼지는 것을 최대한 막고 유행을 빠르게 탐지해 대응하는 최소한의 역량을 갖추기 위한 WHO의 권한을 골자로 하고 있다. WHO의 비상사태 선포도 IHR에 따른 조치다. 각국은 IHR에 따라 감염병이 발발하면 WHO에 24시간 내 보고해야 한다.

 

하지만 IHR은 강제성이 없는 국제법이다보니 무용지물이 되기 십상이다. 이날 포럼에서 발제자를 맡은 이종구 서울대 의대 교수(전 질병관리본부장)은 “IHR에 따르면 국경폐쇄는 국제법 위반이지만 제재가 없기 때문에 그대로 국경폐쇄를 하고 있다”며 “WHO는 국경을 막는다고 전파를 막는다는 과학적 증거가 없다고 이야기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국제학술지 ‘랜싯’에는 국제사회가 왜 비겁하게 IHR를 지키지 않느냐는 기고도 올라왔지만 대부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WHO가 신종감염병과 같은 긴급한 상황에 대응 능력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이 교수는 “WHO는 평시에는 잘 작동하지만 비상시에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어 세계보건긴급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다”며 “WHO 권고 조직이기 때문에 위기 대응이 약하다고 해서 실행 조직을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인력 대부분을 빌리는 구조라 순발력이 상당히 떨어진다”며 “긴급한 상황엔 WHO와 같은 다자외교 방식 대신 속도가 빠른 양자외교로 갈 수밖에 없는 약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일각에선 WHO 대신 다른 대응 체계를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2014년엔 WHO가 에볼라 바이러스 대응에 실패했다는 문제제기와 함께 미국 주도로 ‘글로벌보건안보구상(GHSA)’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GHSA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양자외교 체제로 67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지 위원은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GHSA의 많은 기능들이 WHO로 넘어가고 있다”며 “기존 틀을 깨서 잘하는 것을 만들기 어려운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지 위원은 IHR을 강화하는 방안이 감염병 대응을 강화하는 방법 중 하나라는 의견을 밝혔다. 지 위원은 “엊그제 최초로 디지털 세계보건총회가 열렸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발표한 내용에도 IHR 강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며 “위기상황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찾아 기능을 강화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고 IHR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고려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올해 2월 WHO의 중국 조사단의 일원으로 참가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조직을 참여해서 봤을 때도 중국이 1월 19일에야 병을 보고하는 등 WHO의 현장대응 능력이 떨어지는 걸 볼 수 있었다”며 “WHO가 약한 조직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국제적인 공중보건에 대한 중요성은  전 세계가 공유해야할 의식인 만큼 WHO와 다자외교 또한 중요하다”며 “다자와 양자가 겹쳐 해야할 일이 많다”고 말했다.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댓글 0

작성하기

    의견쓰기 폼
    0/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