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바랜 신화’ 한미약품 '5년간 무슨 일 있었나'

2020.05.20 18:03
 

2015년 11월 초 한미약품은 프랑스 다국적 제약사 사노피와 약 5조원 규모의 당뇨 신약 기술 수출 계약을 발표했다.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는 물론 국민 전체를 놀라게 할 만한 깜짝 소식이었다. 계약 규모도 규모지만 마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여겨졌던 신약 개발 시장에서 굴지의 다국적 제약사가 한국 기업의 기술을 높게 평가했다는 점은 그 자체만으로도 자긍심을 자극하기엔 충분했다. 

 

한미약품은 사노피와의 계약 이전에도 각종 크고작은 기술수출 계약을 성사시켰다고 발표했다. 같은 해 3월 미국 제약사 스펙트럼과 다중표적 항암신약 기술 수출 계약(계약규모 비공개), 일라이릴리와 면역질환치료제 기술 수출 계약(6억9000만달러·약 8000억원), 7월 독일 베링거인겔하임과 내성표적 항암신약 기술 수출 계약(7억3000만달러·약 8400억원)을 성사시켰다. 

 

사노피와의 계약 발표 직후에도 미국의 다국적 제약사 얀센과 약 1조원 규모의 당뇨비만치료 신약 기술 수출 계약을 맺었다고 공개하기도 했다. 2015년 한 해에만 약 8조원 규모의 신약 기술 수출 계약을 이뤄내며 한미약품은 국내 제약산업의 새 역사를 썼다. 언론들도 한국 제약 바이오산업이 이뤄낸 쾌거라며 연일 관련 소식을 쏟아냈다. 

 

한미약품의 이런 성과는 2015년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꼽은 ‘올해의 10대 과학기술 뉴스’에도 이름을 올리며 과학계로부터 높은 점수까지 받았다. 과학기술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이슈는 아니었지만 과총이 10대 뉴스에 꼽을 정도로 센세이션을 불러왔다. 당시 박근혜 정부 혁신성장 정책 핵심이었던 ‘창조경제’의 모범 사례로 거론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전신인 미래창조과학부를 비롯한 보건복지부는 ‘제2의 한미약품’을 육성하기 위한 지원책을 내놓기 시작했고, 정치권을 비롯한 전국민이 제약바이오 산업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영예는 불과 5년여가 흐른 지금 전혀 찾혀 찾아볼 수 없다. 지난 5월 14일 한미약품은 기술 수출 계약을 체결한 사노피가 당뇨 신약 ‘에페글레나타이드’의 권리를 반환하겠다는 의향을 통보했다고 공시했다. 이로써 2015년 당시 기술 수출 신화를 써내려간 한미약품의 대규모 기술 수출 계약의 상당수는 사실상 없던 일처럼 되어 버렸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신약 기술 개발의 높은 벽을 절감하는 동시에 기술 수출(라이선스 아웃) 전략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 파란만장했던 5년...빛 바랜 기술 수출 신화

 

한미약품이 2015년 사노피와 수출 계약을 체결한 기술은 ‘지속형 에페글레나타이드’와 ‘주1회 주사용 에페글레나타이드·인슐린 콤보’, ‘주1회 주사용 지속형 인슐린’ 등 3종이다. 모두 독자 개발한 기술이 적용됐다. 이번에 라이선스를 반환한 것은 이 가운데 지속형 에페글레나타이드다. 이보다 앞선 지난 2016년 사노피는 ‘콤보’와 ‘지속형 인슐린’ 2종에 대한 권리를 한미약품에 반환했다. 약 5조원에 달했던 사노피와의 계약이 모두 결실을 보지 못하게 된 셈이다. 

 

한미약품은 "이번 사노피의 통보는 일방적 결정이며 기존의 기술 반환과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또 에페글레나타이드의 유효성 및 안전성과는 무관한 결정이며 에페글레나타이드의 글로벌 임상 3상은 마무리 단계라고 덧붙였다. 

 

한미약품의 기술을 사들인 글로벌 제약사들이 권리를 반환한 것은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7월 얀센은 당뇨비만치료제의 권리를 수출한지 약 3년 8개월만에 반환했다. 지난해 1월에는 일라이릴리가 면역질환 치료제의 개발권리를 한미약품에 반환했다.

 

베링거인겔하임은 2016년 9월 내성표적 항암신약 ‘올리타(성분명 올무티닙)’의 임상시험 개발을 중단하기로 하고 개발권리를 한미약품에 반환했다. 같은 신약 기술을 도입했던 중국 생명공학기업 ‘자이랩’도 2018년 3월 말 한미약품에 개발권리를 반납했다. 한미약품은 2016년 5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국산신약 27호 ‘올리타’로 허가를 받았다가 2018년 4월 개발을 중단했다. 글로벌 임상 2상에서 피부 독성 부작용으로 임상 환자가 사망하는 사례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특히 2016년 9월 베링거인겔하임과의 수출 계약 해지 당시에는 공시 전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를 받아 내홍을 겪기도 했다. 한미 측이 공시 전 내부 정보를 이용해 주식으로 이득을 봤다는 의혹이다. 검찰의 압수수색이 이뤄졌고 결국 대표가 공식사과에 나서면서 회사 전체의 도덕성에 큰 흠이 생겼다. 


● 글로벌 블록버스터 신약 개발 높은 벽 절감

 

2015년 당시 이관순 한미약품 대표는 창조경제박람회 개막식에서 이뤄진 특별강연에서 “계약이 이뤄졌다고 모든 게 끝난 것이 아니며 계약을 맺은 신약이 상업화에 성공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만큼 장기간의 임상시험이 녹록치 않다는 뜻이다. 한미약품의 기술 수출 신화와 잇따른 계약 해지 사례는 글로벌 블록버스터 신약 개발의 높은 벽을 절감하게 한 계기가 됐다. 

 

보통 '라이선스 아웃'으로 부르는 기술 수출 계약은 신약 후보 물질과 신약 기술을 개발한 뒤 기술에 대한 권리와 상용화 판권을 다른 기업에 파는 것이다. 기술을 구매한 기업은 천문학적인 비용이 투입되는 글로벌 임상시험을 수년간 공동으로 진행하며 상용화를 추진한다. 기술 수출 기업은 계약금과 임상 단계별 로열티를 받는 방식이다. 

 

하지만 대형 제약사들조차도 수천억원의 비용이 드는 글로벌 임상을 부담하기에는 위험요소가 크다. 임상2상에 성공하더라도 대규모 환자 사례를 통해 안전성과 유효성을 확인하는 임상3상에서 유의미한 결과가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으로서는 글로벌 신약 개발을 위한 글로벌 임상을 부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한미약품의 라이선스 아웃 전략이 현실적인 대안이다. 그러나 임상에서 나타나는 부작용, 임상 환자 모집, 경쟁 약물 등장 등 시장 환경의 변화, 기술을 사들인 기업의 R&D 정책 변화 등으로 한계에 부딪혔다는 분석이다.

 

수년에서 10년이 걸리는 상용화 기간도 글로벌 신약 개발의 장벽이다. 한미약품과 베링거인겔하임이 계약을 체결한 내성표적 폐암 항암신약 ‘올리타’만 해도 임상 과정에서 경쟁 약물인 ‘타그리소’가 글로벌 신약으로 빠르게 허가받으면서 경쟁력이 상실됐다. 아무리 우수한 기술과 신약 후보물질이라고 해도 신속하게 글로벌 임상과 상용화를 하지 못하면 혁신 신약으로서의 가치가 없어지는 것이다. 

 

한미약품은 2018년 4월 당시 올리타 개발 중단 소식을 전하며 “현재 올리타와 경쟁 관계에 있는 제품이 전세계 40여개 국가에서 시판 허가를 받아 본격적으로 환자에게 투약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경쟁 약품이 작년 말 건강보험 급여를 받으면서 올리타 임상 3상이 더욱 어렵게 됐다”고 밝혔다.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가 개발한 타그리소는 2017년 11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약가 협상이 타결되며 국내에 공급되고 있다.

 

국내 제약사들이 기존 의약품의 효능을 높이는 기술력에서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에 계약이 해지된 사노피와의 당뇨 신약이 그런 사례다. 사노피가 사들인 기술은 투여 횟수를 줄이기 위해 지속 시간을 늘린 한미약품이 독자 개발한 ‘랩스커버리’가 적용된 것이다.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신약이 아닌 것이다. 한미약품은 이번 사노피 계약 반환 통보 건은 사노피 측의 연구개발 및 사업변경에 의한 것이라고 밝혔다. 

 

제약업계 한 전문가는 “우수한 신약 후보물질이나 기술이 수출되는 당시에는 가치가 있어도 임상 과정에서 임상 환자 모집이 어려워지고 생각하지 못했던 부작용이 나오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특히 글로벌 다국적 제약사들은 여러 기술들을 사들인 후 임상 과정에서 시장성이 없다고 판단하면 바로 손을 떼기 때문에 국내 기업의 라이선스 아웃 전략에 대한 재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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