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리포트]핵물리학자는 우주를 만든다

2020.05.23 09:00
일러스트 최연지
일러스트 최연지

인간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 걸까요. 19세기 프랑스 화가 폴 고갱이 던졌던 이 질문은 철학적인 듯 들리지만 과학적이기도 합니다. 인류가 탄생하기 전으로, 지구가 만들어지기 전으로, 별조차 생기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우주가 태어났을 무렵을 밝히는 것이야말로 저 같은 핵물리학자를 포함한 과학자들의 꿈이었습니다. 우주의 근원이라는 너무 거대해서 철학적으로 보이는 목표를 향해 핵물리학자들이 숨을 몰아쉬며 내딛는 여정을 소개합니다.

 

핵물리학자가 ‘미니 우주’를 만드는 이유

 

과학자들은 빅뱅이 일어난 지 약 1마이크로초(1μ초=10-6초) 만에 쿼크와 글루온 등이 합쳐져 양성자와 중성자를 형성했다고 추정한다. 이후 양성자와 중성자는 서로 합쳐져 원자핵을 만들고, 전자와 함께 원자 및 분자를 이루다 별과 은하, 행성 등을 형성했다. NASA 제공


태양은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1929년 미국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은 천체 관측 자료를 바탕으로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허블의 말처럼 우주가 계속 커지고 있었다면 아주 먼 과거에는 우주가 매우 작았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상상에서 등장한 이론이 바로 우주가 한 점에서 폭발해 생겨났다는 ‘빅뱅 이론’입니다.


빅뱅으로 막 태어난 아기 우주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전 우주의 별과 행성, 소행성을 모두 모아 콩알만 한 크기로 줄인다고 상상해 보기 바랍니다. 아마도 우주에 퍼져 있는 열에너지와 별이 내뿜는 빛에너지 등도 모두 한 곳에 모여있습니다. 밀도와 온도가 함께 치솟을 겁니다.


온도가 매우 높아지면 별과 행성을 이루는 물질들이 수프처럼 녹으며 입자 단위로 분리되기 시작합니다. 물을 끓이면 물 분자들이 수증기로 변하며 하나, 하나 떨어져 나오는 것처럼 말입니다. 별을 이루는 물질은 더 작은 분자로, 분자는 원자로, 원자는 전자와 핵으로, 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점점 해체되며 더이상 나뉘지 않는 기본 입자만이 남게 됩니다.


핵물리학자의 관심사 중 하나는 이처럼 기본 입자로만 가득한 초기 우주입니다.  핵물리학자들은 ‘미니 우주’를 직접 만들어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입자를 쏘아 ‘미니 빅뱅’을 만들다

 

미국 브룩헤이븐 국립연구소. 위쪽에 보이는 원이 상대론적 중이온 가속기다. Brookhaven National Laboratory(F) 제공
미국 브룩헤이븐 국립연구소. 위쪽에 보이는 원이 상대론적 중이온 가속기다. Brookhaven National Laboratory(F) 제공

핵물리학자는 ‘입자 가속기’라는 실험 기기로 초기 우주와 비슷한 온도와 밀도를 만듭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우주는 초기 우주와 온도와 밀도만 비슷할 뿐, 진짜 우주는 아닙니다. 가속기에서 핵을 빠르게 쏘아 충돌시키면 핵을 이루는 양성자와 중성자가 깨져 ‘쿼크’라는 기본 입자로 해체가 됩니다. 그 상태가 빅뱅 직후와 비슷해 물리학자들은 이 실험을 작은 빅뱅이라는 뜻으로 ‘미니 빅뱅’이라 부릅니다.


이런 실험은 지난 20년 동안 미국의 브룩헤이븐국립연구소의 상대론적 중이온 가속기와 유럽 스위스와 프랑스에 걸쳐있는 유럽 입자·핵물리연구소(CERN)의 거대 강입자 가속기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필자도 브룩헤이븐 국립연구소에서 2010년부터 실험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보통 금 혹은 납처럼 무거운 원소의 핵을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시키는데, 무거운 물질을 이용하는 이유는 밀도를 높이기 쉽기 때문입니다.


온도와 밀도가 매우 높으면 블랙홀이 만들어져 우리가 사는 시공간을 구부러뜨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핵물리학자가 만드는 미니 빅뱅은 강력한 블랙홀을 만들기엔 지나치게 귀엽습니다. 밀도만 높을 뿐, 크기는 야구공보다 약 1조 배나 작기 때문입니다. 총 에너지가 작은 사탕 하나를 약 30조각으로 쪼개 한 조각만 먹으면 얻을 수 있는 1kcal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입니다. 사탕이 우주를 위협할 수는 없을 테니, 미니 빅뱅 역시 인류를 위협한 적은 없습니다. 


‘아기 우주’의 기본 입자

 
 

전자와 전자가 서로를 미는 전자기력에는 그 힘을 운반하는 ‘매개 입자’가 있습니다. 바로 빛의 입자이기도 한 ‘광자’입니다. 마치 두 사람이 배를 타고 물 위에서 공을 주고받으면 반대 방향으로 힘을 받아 배가 밀려나는 것처럼, 전자들은 매개 입자인 광자를 주고받으며 서로를 미는 전자기력을 받습니다. 


쿼크에게도 이런 매개 입자가 있습니다. ‘글루온’이라는 매개 입자가 쿼크를 서로 당기거나 미는 힘을 운반합니다. 쿼크가 핵에 묶여 있을 때는 글루온이 ‘강한 핵력’이라는 힘으로 서로를 속박하다가 핵이 깨지면 모두 자유로운 상태가 됩니다. 이때 쿼크와 글루온이 뒤섞인 거대한 수프 같은 상태를 ‘쿼크-글루온 플라즈마’라고 합니다. 


여기에 핵물리학자가 미니 빅뱅을 만드는 두 번째 이유가 있습니다. 떠다니는 쿼크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궁금해 합니다. 전자는 멀어질수록 서로를 밀어내는 전자기력이 약해지는 반면, 쿼크끼리 작용하는 힘은 훨씬 복잡합니다. 힘의 크기가 거리에 따라 변하다가도 어떨 땐 일정해지고 맙니다. 심지어 두 쿼크가 멀어지다 위치 에너지가 충분히 커지면 새로운 쿼크가 생겨나기도 합니다. 


이처럼 기본 입자들의 세계를 들여다보면, 우리가 평소에 친근하게 접하는 전자기력이나 중력과는 다른 형태의 힘을 연구할 수 있습니다. 쿼크가 떠다니는 상황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정확하게 이해하는 게 핵물리학자의 과제입니다.  이를 위해 전 세계 수천 명의 연구자들이 가속기와 그 주변에서 일을 합니다.

 

※필자소개

임상훈 부산대 물리학과 교수. 고에너지 핵물리학을 연구하고 있다. 미국의 상대론적 중이온 가속기(RHIC)와 유럽의 거대 강입자 가속기(LHC)에서 각각 피닉스(PHENIX) 실험과 앨리스(ALICE) 실험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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