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장인들의 협력으로 태어난 '청계시소' …'메이드 인 청계천·을지로' 신화 계속될까

2020.05.16 19:28
참참참그래픽 제공
이달 15일 서울 중구 세운교에 설치된 '청계시소'는 청계천과 을지로 일대 도심 제조업의 힘으로 만든 조형물이다. 시민들이 시소를 타고 청계천 지역의 특성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졌다. 참참참그래픽 제공

이달 15일 서울 청계천 3가와 청계천 4가 사이에 자리한 세운교 위로 시민과 상인들이 오가는 공간이 작은 놀이터로 탈바꿈했다. 길이 5.7m, 무게 3t에 달하는 거대한 '시소'가 은빛 동체를 드러냈다. 시소 한쪽에는 안장이, 반대편엔 무게 350kg의 추가 달려 있는 모습이 흡사 저울같아 보였다. 세운교를 지나던 시민들은 삼삼오오 시소 앞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지켜봤다. 

 

'청계시소'로 이름을 붙인 이 시소는 두 명이 아닌 한 사람만 타도록 제작됐다. 하지만 보통 시소처럼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했다. 사람이 안장에 앉아 무거운 추 위치를 반대쪽으로 움직이게 하면 떠오르는 원리다. 몸무게가 70kg  나가는 5명의 체중과 맞먹는 추와 연결된 페달을 밟으면 추가 조금씩 더 반대편 쪽으로 움직인다. 적은 힘으로 무거운 물건을 옮길 때 쓰는 도르래와 무거운 물체가 중력을 받아 아래로 내려갈 때 발생하는 힘을 회전력으로 바꾸는 장치가 들어갔다. 시소는 천천히 방향을 틀며 시원하게 뚫린 청계천을 내려다볼 수 있는 위치까지 올라갔다. 

 

세운협업지원센터가 이날부터 이달 17일까지 청계천과 을지로 일대에서 개최하는 ‘청계시소 놀이터’ 행사는 이 지역에서 활동하는 기술자들이 직접 제작한 시소를 시민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했다. 

 

황지은 세운협업지원센터 공동센터장(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세운캠퍼스 교장)은 “청계시소놀이터는 청계천과 을지로 일대 제조산업기술 가능성과 가치를 새롭게 바라보는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마련됐다”고 말했다.

 

최혁규 제공
청계시소를 만든 이들이다. 한국 최초로 개인이 제작한 인공위성을 우주로 쏘아 올린 테크놀로지아티스트 송호준 작가와 기계 디자이너 김성수 씨, 미디어아티스트 전유진 작가(왼쪽부터) 등 청계천과 을지로 도심제조업의 영향을 받은 이들이 의기투합했다. 최혁규 제공

시소를 만든 이들은 기계 디자이너 김성수 씨와 미디어아티스트 전유진 작가, 한국 최초로 개인이 제작한 인공위성을 우주로 쏘아 올린 테크놀로지아티스트 송호준 작가다. 시소는 청계천과 을지로 일대 제조기업 20곳과 함께 6개월여간 함께 땀을 흘렸다. 

 

세 사람은 지난해 4월 서울시 시민참여예산사업의 일환으로 세운상가 일대의 상징물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 사업은 처음엔 ‘탱크도 만들 수 있다’는 청계천과 을지로 도심제조업 단지의 명성을 반영해 로봇 조형물을 설치하자는 제안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이들은 일대 특성과 동떨어지지 않으면서도 시민들이 도심 제조업의 특성을 이해할 조형물을 만들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청계천과 을지로 일대의 도심 제조업은 독특한 구조다. 산업화 시기인 1960년대 세운상가를 중심으로 소규모 제조업체가 번창하며 일대 공구상가와 재료상이 유기적으로 얽힌 구조가 탄생했다. 아이디어를 갖고 제품을 만들기 위해 업체를 찾아가면 여기에 필요한 재료와 공구상이 각자의 네트워크를 통해 연결된다. 모인 재료와 공구는 주물 제작에서 가공, 덧칠 등 제품을 만들 때 필요한 모든 공정 분야에 특화된 업체 여럿을 거쳐가며 제품으로 태어난다. 청계천과 을지로 일대를 장인들의 안내에 따라 돌아다니기만 하면 아이디어가 그 자리에서 실현되는 셈이다.

 

이들도 분야는 다르나 청계천과 을지로의 특성을 활용해 수많은 작업물을 만들어 왔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송 작가가 지난 2013년 제작해 발사한 인공위성의 몸체는 일대 장인들의 조언과 정교한 손길을 거쳤다. 전 작가는 2017년부터 세운상가에 설립된 세운메이커스큐브에 입주해 기술 기반 예술품을 만들어 왔다. 김씨는 2011년부터 ‘용도변경’이라는 메이커스페이스를 운영해 오며 서울 메이커스페이스에서도 활발히 활동해 왔다. 송 작가는 “청계천에서 신세를 많이 졌다고 생각한다”며 “인공위성 제작을 도전할 때도 다른 곳에서는 상대도 안해줬지만 이곳에선 진지하게 들어주고 조언해주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도 처음에는 의견을 모으기 쉽지 않았다. 세운교라는 상징적인 공간에 메이커가 이용하는 기계의 원리를 보여주자는 아이디어부터 감상만 하는 게 아니라 실제 체험하는 형태를 만들자는 제안도 나왔다. 청계천의 장인들은 거대한 스테인리스 재질의 시소에 이를 모두 녹여냈다. 청계천 생태계의 장점이 통했다. 시소가 올 2월 처음 완성됐을 때만 해는 손으로 돌려 추를 옮기는 핸들 형태로 제작됐다. 하지만 최근 돌리기 쉬운 페달 형태로 개조했다. 김씨는 “페달로 개조하려고 할 때도 ‘바꿔 달라’고 주문만 하면 됐다”고 말했다.

 

 

청계시소 놀이터 뒤편으로 세운상가와 일대 산업상가의 모습이 보인다. 세운상가는 2014년 서울시가 보존 계획을 발표하며 그대로 남게 됐으나 세운상가 뒤편 공구거리는 개발 계획이 그대로 유지되며 철거 위기를 맞게 됐다. 전유진 제공
청계시소 놀이터 뒤편으로 세운상가와 일대 산업상가의 모습이 보인다. 세운상가는 2014년 서울시가 보존 계획을 발표하며 그대로 남게 됐으나 세운상가 뒤편 공구거리는 개발 계획이 그대로 유지되며 철거 위기를 맞게 됐다. 전유진 제공

청계시소는 청계천과 을지로 일대 제조기술을 상징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시소를 타고 청계천을 내려다보면 금방 이 지역을 둘러싼 복잡한 이해관계가 한눈에 들어온다. 시소에서 오른편을 바라보면 공구를 파는 상가로 가득 들어찬 오래된 청계천 거리가 그대로 남아 있다. 반면 왼쪽에는 주상복합 건물을 짓기 위한 공사가 한창이다. 이곳은 2년 전만 해도 기술자들로 가득한 골목이었다.

 

청계천과 을지로 제조업 생태계는 재개발로 위협받고 있다. 청계 2~4가 사이 공구 거리는 노후화 등을 이유로 2009년 세운재정비촉진지구로 설정됐다. 계획엔 단순히 낙후된 이 일대를 부수고 주상복합건물 등 새로운 도시를 만들겠다는 계획이 담겨 있었다. 생태계 파괴는 세운상가 옆 입정동 일대 세운 3-1, 3-4, 3-5 구역이 2018년 10월 전면 철거에 들어가며 본격화됐다. 한순간에 내몰리게 된 청계천과 을지로 일대 상인과 장인, 이를 이용하던 메이커와 예술가들은 철거를 중단하고 일대를 제조산업문화특구로 지정할 것을 서울시에 요구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서울시도 초기 계획이 이 일대 생태계 특성을 고려하지 못한 것을 인정하고 지난해 1월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정비사업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논의 끝에 올해 3월 일대 관리 방향을 개발과 정비에서 보전과 재생으로 전환하는 대책안을 발표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기존 계획은 지역 산업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조사와 분석이 미흡했고 도로와 공원 같은 기반시설 확보에 치우친 물리적 변화 중심의 계획이었다”며 “공공성이 강화된 정비사업을 유도하고 도심산업생태계 보전을 위한 실행력도 갖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개발은 이미 시작된 터였다. 상인과 장인 상당수가 일터를 잃고 내몰렸다. 서울시는 이미 개발이 시작된 곳은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지키고 있다. 대신 산업 보전을 위해 공공임대상가 700호 이상을 재개발 지역 곳곳에 공급해 일대 상인들을 수용하겠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제조기업들을 공공임대사업으로 만든 공간과 새로 짓는 산업센터 등으로 이주시켜 보전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일대 상인과 장인들은 공급량 자체가 부족하고 산업계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대책이라고 입을 모은다.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에 따르면 재개발이 예정된 세운 3-2, 3-6, 3-7 구역 업체는 172개지만 서울시와 재개발 업체가 제시한 임시영업장 수는 111개에 부족하다. 그나마 영업장의 면적도 기존 가게의 절반에 불과하고 고층 건물에 설치가 어려운 민감한 설비도 많다. 뿔뿔이 흩어지게 되면 지역 특유의 장점도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도 존재한다.

 

황 센터장은 "주거 시설이 들어오는건 찬성하지만 서울 한복판 주거시설에 어떤 연봉을 받는 이들이 들어올지는 뻔하다"며 "지금 세워지고 있는 주상복합 건물처럼 임대용 오피스가 들어오면 어떤 업종이 들어오겠느냐"고 말했다. 개발이 지역 정체성을 보존하면서 병행할 수 있다면 찬성하지만, 지금의 개발 방향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개발 방향이 갈피를 못잡는 사이 장인들은 빠르게 내몰리고 있다. 이날 작가들이 프로토타입3 시소에 필요한 부품을 받으러 방문한 제조업체에서는 말쑥한 차림의 젊은 사람이 일대 업체명이 빼곡히 적힌 종이를 든 채 장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청계시소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기록중인 정동구 감독은 "이 동네에서 옷차림이 깨끗한 사람은 업체의 이주 여부를 묻는 개발업체 직원들뿐"이라고 말했다. 장인들은 이날 저녁 개발업체가 여는 재개발 이주 계획 설명회를 듣기 위해 상당수 자리를 비우고 있었다. 정 감독은 "너무도 빠르게 개발이 일어나는 상황을 일대 장인들이 견딜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작가들이 청계시소를 만들기 위한 부품들을 인근 제조업체에서 만든 다음 옮겨오고 있는 모습이다. 이들은 각자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이 일대 도심 제조업은 장점이 많다고 이야기한다. 전유진 씨 제공
작가들이 청계시소를 만들기 위한 부품들을 인근 제조업체에서 만든 다음 옮겨오고 있는 모습이다. 이들은 각자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이 일대 도심 제조업은 장점이 많다고 이야기한다. 전유진 씨 제공

청계시소에 참여한 이들은 청계천과 을지로 일대 도심 제조업의 장점이 많다고 주장한다. 우선 도심 한복판에 이미 조밀한 생태계가 형성됐다는 것만으로도 큰 장점이다. 김성수씨는 “저도 제품을 개발하는 사람이지만 제품을 개발하는 이들이 지역 공장에 있는 게 아니다“며 “이들은 주로 도시에 있다”고 말했다. 도시에 투자가 몰리며 실제 아이디어를 가진 이들 또한 도시에 있는 만큼 이를 뒷받침할 제조업도 가까운 곳에 있어야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청계천과 을지로의 도심 제조업 생태계는 인공위성을 만들 당시의 송 작가처럼 아이디어를 가졌으나 기술은 없는 초심자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기술을 알려주는 일종의 교육장 역할을 하고 있다.  송 작가는 "처음에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은 자신의 아이디어와 비슷한 제품을 모방하는 일부터 시작한다"며 "이곳에선 이를 제조해주는 역할 뿐 아니라 속에 담긴 원리까지 세세하게 설명해줄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일대 도심제조업 생태계는 아이디어 하나하나에 맞춰 제품화를 해 주는 '다품종 소량생산'의 전형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현실 속 작품으로 만드는 예술가에게도 도심제조업 생태계는 잘 들어맞는다. 전 작가는 “예술도 똑같다. 작품을 100개씩 대량생산하는 게 아니다”며 “시험삼아 무엇인가를 만들 때의 특수성들이 (이곳과) 잘 맞아 떨어진다”고 말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메이커 운동에도 활용 가치가 크다는 의견도 많다. 송 작가는 최근 코로나19 사태에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연구팀이 간이 인공호흡기를 만든 사례를 예로 들었다. 송 작가는 "인공호흡기를 미국에선 MIT에서 만들지만 한국은 누구나 청계천에 와서 만들 수 있다"며 "외국 메이커들은 집에 다양한 공구를 들여와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한국은 이런 공간이 있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세계에서는 사라졌던 도심 제조업을 되살리는 시도가 이어지는데 한국의 청계천은 이에 역행하는 상황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미국 뉴욕시는 2003년 ‘메이드인뉴욕시티(MINYC)’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정보기술(IT)이 발달하며 주력 산업인 금융업과 미디어, 패션업 등 서비스 산업 일자리가 줄자 대안으로 제조업을 육성한 것이다.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 않으면서도 일자리 창출 효과도 크다는 평이다. 황 센터장은 “제조업이 외곽으로 나가며 소비만 남은 도시는 결국 죽어간다”며 “이를 바꾸는 움직임이 서구에서 일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 전문가들의 눈에 청계천 생태계는 그들이 꿈꾸던 미래였다는 설명이다. 황 센터장은 “지난해 5월 세운상가에서 열린 도심 제조업에 관한 국제포럼에 참가한 미국과 독일, 네덜란드 전문가들이 청계천을 보고 ‘이 도시엔 우리가 잃어버린 공간이 이미 있다’며 깜짝 놀래더라”며 “청계천이 과거가 아닌 우리가 지향해야 할 미래인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전통 제조업의 경쟁력이 줄어드는데 이를 유지해야 할 이유가 있냐는 질문도 나온다. 하지만 이는 청계천을 그저 과거의 추억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일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황 센터장은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주변 일대의 매출 추이를 조사해보니 매출이 10년간 떨어진 적이 없더라”며 “내부 경제활동이 여전히 활발하게 진행되는 생태계인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일대 장인들과 기술자들도 일대가 개선이 필요한 공간이라는 점에는 공감하고 있다. 청계천과 을지로 일대는 노후화가 심각하고 시민들이 접근하기엔 편의시설이 부족한 만큼 개선이 필요한 실정이다. 자존심이 강한 장인들이 모인 만큼 고객 응대도 부족함이 많고 가격이 가끔 지나치게 비싸다는 지적도 꾸준히 있어 왔다. 전 작가는 "일대 생태계가 탱크나 전투기까지 만들수 있다고 말하기만 하는데 상황을 정확하게 봐야 한다"며 "단점 또한 이야기하며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번 청계시소 사업이 청계천과 을지로 일대 도심제조업을 유지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리라고 기대했다. 황 센터장은 "청계시소 사업도 이 지역을 보조하기 위한 공적자금이 투입되는 일례"라며 "지원을 통해 제조에 대한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상황임을 보여주고 인정을 받으면 이곳이 어떻게 변할지에 대한 기대가 있다"고 말했다.

 

주최측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으로 생활 속 거리두기를 위해 시소체험을 시간별 예약제로 운영하는 등 만전을 기울였다. 첫날 행사는 비가 오며 아쉽게도 체험은 취소됐다. 행사는 이달 16일과 17일에도 진행된다. 청계시소 놀이터에는 시소 프로토타입 3을 직접 만드는 행사도 열린다. 15일 공개한 시소는 프로토타입2다. 프로토타입3는 2인용으로 청계천에서 만들어진 부품을 시민들과 직접 조립한 후 타볼 수 있게 했다. 프로토타입 1은 시소의 원리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온라인으로 공개된다. 시소놀이터가 중계되는 동안 청계천과 관련한 문제를 맞추는 ‘청계퀴즈쇼’도 진행된다. 행사 전체는 ‘청계시소’ 페이스북 계정(https://www.facebook.com/cgseesaw)을 통해 온라인 중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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