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코로나19 이후의 ‘뉴노멀’, 두려워할 이유 없다

2020.05.13 14:00
1960년대는 세계적인 7번째 콜레라 유행의 시기였다.  한국역사연구회/한국사진기자협회 제공
1960년대는 세계적인 7번째 콜레라 유행의 시기였다. 한국역사연구회/한국사진기자협회 제공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다. 정부가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완화하고, ‘방역 성공’을 선포하자마자 또 일이 터져버렸다. 그렇다고 절망할 이유는 없다. BT(진단)와 IT(추적)를 핵심으로 하는 ‘K-방역’은 여전히 믿을 만한 것이다. 이제 ‘코로나 이후’에 대한 적극적인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낯선 ‘뉴노멀’(new normal·시대변화에 따라 새롭게 부상하는 표준)을 무작정 두려워할 이유는 없다. 어차피 세상은 빠르게 변해왔고, 앞으로는 더욱 빠르고 심하게 변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에서 코로나19 정도의 난관은 수를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았다.

 

전염병은 더 잦아지지 않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이 무분별한 환경파괴의 결과라는 주장이 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삶의 보금자리를 잃어버린 바이러스가 인간을 습격하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고 한다. 이제 코로나19를 극복하고 나면 사회적 거리두기는 물론이고 생태적 거리두기도 생활화해야 하고, 심지어 ‘생태 백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21세기에 들어서 바이러스성 전염병이 잦았던 것은 사실이다. 2003년의 사스(8098명 사망), 2009년의 신종플루(돼지독감, 57만 명 사망, 국내 263명 사망), 2015년의 메르스(국내 39명 사망)에 이어서 코로나19가 찾아왔다. HIV에 의한 에이즈와 에볼라·지카도 있었다. 그렇다고 전염병이 과거보다 자주 발생했다는 주장은 역사적 사실을 철저하게 무시해버린 것이다. 

 

20세기에만 해도 1918년의 스페인 독감(5000만 명 사망), 1958년의 아시아 독감(200만 명 사망), 1968년의 홍콩 독감(100만 명 사망)이 모두 팬데믹 수준이었다. 1961년부터 1975년까지의 콜레라도 팬데믹 수준이었고, 제1차 세계대전 중에 확산되었던 티푸스, 결핵, 말리리아, 황열병의 피해도 엄청났다. 1951년에는 전 세계적으로 4만 명이 천연두에 감염되었다. 1796년 에드워드 제너가 발명한 ‘종두’가 있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계절형 독감의 피해도 엄청났다. (참고로 1900년의 세계 인구는 16억 5000만 명이었다.)

 

인간에 의한 환경 파괴가 거의 없었던 산업혁명 이전의 상황도 만만치 않았다. 흑사병은 14세기에만 재앙적이었던 것이 아니다. 541년 흑사병은 유럽과 중동에서만 최대 1억 명을 희생시켰던 것으로 추정된다. 결국 로마 제국은 역사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당시 지구상의 인구는 3억을 넘지 못했다.


우리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선 왕조실록에는 역병의 기록이 84회나 등장한다. 평균 6년마다 정체불명의 괴질이 돌았다는 뜻이다. 숙종 25년에는 25만 명이 죽었고, 영조 25년에는 60만 명, 26년에는 44만 명이 희생됐다. 당시 우리나라의 인구는 1천 만 명 수준이었다.

 

콜레라가 극성할 당시 조선 민간에서 쓰인 고양이 부적. 한국역사연구회 제공
콜레라가 극성할 당시 조선 민간에서 쓰였다고 알려진 고양이 부적 (샤를 바 라 외 지음, '조선기행'). 한국역사연구회 제공

바이러스와의 갈등이 더 잦아지고, 심각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19세기 말부터 병원체의 정체와 감염 경로를 파악하고, 과학기술을 이용한 보건위생 환경의 개선으로 전염병은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다. 다만 아직도 코로나19처럼 쉽게 대처하기 어려운 경우가 남아있을 뿐이다.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많이 남아있다는 뜻이다.

 

바이러스가 인류의 만행에 화가나서 보복에 나섰다는 주장은 황당무계한 궤변이다. 대도시에 출몰하는 멧돼지는 우리를 해치기 위해 산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숲이 우거지고, 생활이 넉넉해지면서 멧돼지의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이 문제다. 자연 파괴가 아니라 적극적인 보호가 멧돼지의 도심 출몰의 원인이 되어버린 셈이다.

 

바이러스도 지구 생태계의 무시할 수 없는 구성원이다. 다만 바이러스의 서식지는 우리가 알고 있는 자연 환경이 아니다. 다른 생명체의 세포가 바로 바이러스의 서식처다. 바이러스가 자신의 서식처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우리와 뜻밖의 갈등을 겪게 되었을 뿐이다.

 

한편으로는 자연과의 ‘조화로운 균형’을 주장하면서, 돌아서서는 ‘자연과의 과도한 접촉’을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은 심각한 자가당착이다. 코로나19는 누군가가 박쥐나 천산갑을 잡아먹어서 생긴 일이 아니다. 박쥐와 천산갑이 사는 숲에 방호벽을 쌓아올릴 수는 없다. 생태계로부터의 (인수공통) 전염병을 차단하겠다는 ‘생태 백신’도 사실은 달콤한 말장난이다. 코로나19가 인구의 노령화를 해결하기 위한 자연의 노력이라는 주장은 황당한 망언이다.

 

믿을 것은 우리 자신뿐

 

우리가 자연의 조화를 지켜주면, 자연이 우리를 애써 지켜줄 것이라는 기대는 온전한 착각이다. 자연은 우리에게 매우 거칠고 위험한 곳이다. 자연에 대한 비현실적인 환상은 우리 자신의 생존이나 자연의 보호에 절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산업화와 도시화도 무작정 탓할 일이 아니다. 해방 이후 금수강산을 시뻘건 민둥산으로 망가뜨린 것은 42만 명의 ‘화전민’이었다. (요즘 언론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자연인’이 바로 과거의 화전민이다.) 오늘날 우리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일하게 산림녹화에 성공한 나라가 된 것은 1979년까지 화전민을 도시에 정착시키는 사업을 끈질기게 추진한 결과다. 도시화가 진정한 자연보호를 가능하게 해주었다는 뜻이다. 

 

현대인이 도시 생활을 포기하고 모두 과거의 전원생활로 되돌아가면 우리가 지켜야 할 자연은 더 이상 남지 않게 된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아니었다면 지구의 자연은 본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을 것이다. (물론 우리가 자연을 지키기 위해 도시화·산업화를 시작했던 것은 아니다.)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과 치료제의 개발은 중요하다. 그러나 모든 바이러스에 대해서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백신과 치료제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도 아니다. 감기를 일으키는 코로나바이러스의 백신이나 치료제는 아직도 개발하지 못하고 있다. 백신과 치료제(타미플루)가 있었던 신종플루의 경우에도 7억 명이 감염되고, 57만 명이 사망했다. 백신이 개발되어야만 코로나19가 종식된다는 일반적인 주장은 역사적으로도 사실이 아니고, 현실적으로도 가능성이 거의 없는 희망고문이다.

 

그렇다고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첨단 기술을 이용해서 바이러스나 항체를 확인하는 진단 키트도 있고, 감염자의 동선을 추적하는 정보화 기술도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도 정보화 기술을 이용한 온라인 강의와 쇼핑 덕분에 가능해진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사회적 거리두기’ 대신 ‘물리적 거리두기’를 제안했던 것은 전혀 다른 이유 때문이다. 사실 ‘사회적 거리’(social distance)는 ‘계층·종족·성별’에 따른 사회적 집단 사이의 정서적 거리를 나타내는 사회학 용어다. 1924년 사회학자 로버트 파크가 처음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코로나 이후의 현실이 크게 달라질 가능성은 매우 크다. 경제적 어려움이 가장 심각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세계화와 초연결의 미래를 포기할 수는 없다. 인류의 역사를 가득 채우고 있었던 고립주의와 사회적 차별은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 

 

믿을 것은 오로지 우리 자신의 능력과 노력뿐이다. 현대 과학을 통해 자연과 생태계와 인간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우리의 생존과 번영에 필요한 기술을 합리적으로 선택하고,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윤리와 도덕, 환경과 생태계는 공허한 말이나 주장으로 지켜지는 것이 절대 아니다. 우리의 생존이 전제되지 않은 환경주의와 생태주의도 속빈 강정이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대한화학회 탄소문화원 원장을 맡고 있다.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교육‧에너지‧환경‧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5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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