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조기 개발과 평등한 활용 위해 각국 지도자들 74억 유로 모았다…미·러·인도는 '불참'

2020.05.05 16:49
미국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에 있는 더 센터 포 파마슈티컬 리서치에서 8일(현지시간) 한 임상 시험 참가자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후보를 주사로 투여받고 있다. 바이오 기업인 이노비오 파마슈티컬스가 개발한 백신 후보 INO-4800을 검증하는 임상 1상 시험이다.  AP/연합뉴스 제공
미국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에 있는 '더 센터 포 파마슈티컬 리서치'에서 8일(현지시간) 한 임상 시험 참가자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후보를 주사로 투여받고 있다. 바이오 기업인 이노비오 파마슈티컬스가 개발한 백신 후보 INO-4800을 검증하는 임상 1상 시험이다. AP/연합뉴스 제공

세계 30여 개국 정상과 각계 지도자들이 4일 화상 회의를 열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조기 확보와 전세계 고른 공급을 위해 최소 74억 유로(9조9148억원)를 분담하기로 했다. 한국도 5000만 달러(613억원)를 분담하기로 했다. 일각에서 코로나19 치료제가 수백만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을 하는 가운데 이뤄진 이번 합의는 가난한 나라에도 공평하게 사용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발표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빠졌고 러시아와 인도 등 일부 주요국가가 참가하지 않으면서 국제적인 보건 공조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중국도 지난주 겨우 설득을 통해 참여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연합(EU)이 주도한 이날 화상 회담은 프랑스,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캐나다, 일본, 요르단, 노르웨이, 이스라엘, 남아프리카 및 EU의 정치 경제 사회 지도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3시간 동안 릴레이 발표 형식으로 진행됐다.  

이날 회담은 세계보건기구(WHO)와 세계은행이 공동 구성한 '전 세계 준비태세 감시 위원회'(GPMB)가 추산한 국제적 자금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마련됐다.  코로나19 백신뿐 아니라 치료와 진단에 국제적 협력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도자들은 이날 짧은 연설을 통해 WHO를 비롯한 다자간 협력 구조의 지지를 선언했다. 미국은 지난달 WHO가 중국에 대해 우호적이라고 비판하며 자금지원을 중단을 선언했다. 

 

에르나 솔베르그 노르웨이 총리는 “유엔 기구가 없으면 유행성에 대한 효과적이고 협조적인 대응은 불가능할 것”이라며 “WHO의 지도력을 지지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다자간 협력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며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세계 운동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WHO에서 철수하려는 미국 결정은 전략적 실수”라고 말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이번 회담과 관련해 전 세계 과학자들 사이에서 중국이 바이러스의 유전자 서열을 얼마나 빨리 공유했는지 소개했다.

 

코로나19로 한달 가까이 병상에 있었던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도 이번 정상회담에 초대됐다. 존슨 총리는 “어느 나라나 어느 제약회사도 이 일을 혼자 할 수 없다”며 “바이러스를 물리치기 위해 백신을 발견하는 경쟁은 국가간 경쟁이 아니라 우리 삶의 가장 시급한 공동 노력”이라고 밝혔다. 

 

이날 EU 집행위원회는 10억 유로(약 1조3398억원)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노르웨이가 10억 달러, 일본이 8억 달러 등 비교적 거액을 내겠다고 밝히면서 각국 지도자의 지원 선언이 이어졌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5억 유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5억2500만 유로를 약속했다. 영국도 3억800만 파운드(5899억원)를 약속했다. 이탈리아는 1억4000만 유로, 스위스는 3억8100만 달러, 네덜란드는 2억950만 달러, 호주는 3억5200만 호주달러(2760억원)를 약속했다.

 

한국은 해마다 5000만 달러를 투자해온데 덧붙여 이번에 추가로 5000만 달러를 내놓기로 했다. 한국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대표로 발표자로 나서 코로나19의 초기 충격을 받은 국가로서 쌓은 방역 노하우를 웨비나와 화상회의, 발표 자료 형태로 전세계와 공유하겠다고 밝혔다. 강 장관은 "한국은 국제백신연구소를 비롯해 이미 감염병 협력에 매년 5000만달러를 투자하고 있다"며 "코로나19에 대응하는 감염병혁신연합(CEPI)에 재정지원을 하게 되어서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우디는 5억 달러, 쿠웨이트는 4000만 달러, 아일랜드는 2000만 달러, 스웨덴은 1700만 달러, 포르투갈은 1090만 달러, 핀란드는 3930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130만 달러를 약속하며 아프리카연합(AU) 회원국들로부터 6100만 달러를 더 걷겠다고 밝혔다. 이스라엘도 6000만 달러를 내놓기로 했다. 이밖에 중국, 아랍에미리트(UAE), 오만, 터키, 모나코 등은 금액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동참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들 국가는 이달 중 구체적인 지원액을 밝힐 것으로 예상된다. 


인도주의 단체인 빌앤멜린다 게이츠 재단의 공동 창립자인 멜린다 게이츠도 1억 달러, 팝스타 마돈나도 110만 달러를 내겠다고 밝혔다. 참여국과 기구들은 새로운 기금이 WHO를 비롯한 기존 보건기구들과 협력 아래 활용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번에 조성되는 기금은 제약회사의 백신과 치료제 연구에 속도를 내고 빈곤한 국가에 조달을 보장하는데 활용될 전망이다. EU관계자들은 74억 유로 가운데 40억 유로는 백신 개발에, 20억 유로는 치료에, 15억 유로는 진단기 생산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했다.  기금 집행은 국제 민간공동기구인 세계백신면역연합(GAVI)와 감염병혁신연합(CEPI) 등을 통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마크롱 대통령은 “분배될 백신은 누구도 소유하지 못한다”며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한 사람에겐 공평하게 보상이 이뤄지겠지만 선택된 기구에서 전 세계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도록 분배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가디언과 로이터 등에 따르면 자금을 지원받는 제약 회사는 새로운 백신과 치료법에 대한 지적 재산권을 포기할 것을 요구받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신 적정한 가격으로 각국에 공급하겠다는 약속을 요구받을 것으로 보인다. 폰 데어 라이엔 EU집행위원장은 “이번 회담의 추진력은 환상적이었고 바이러스에 대응하는 조류를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회담의 실효성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미국무부는  이번 기금 모금 정상 회담이 전세계적인 참여로 이뤄졌음에도 ‘유럽이 주도한 선언’이라며 환영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미국은 이번 회담에 참여할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다. 미국은 이번 회의를 주도한 EU와 통상 마찰과 방위 정책을 두고 갈등을 빚고 있다. 또 코로나19 사태에서 무능과 친중국 성향을 주장하며 WHO를 비난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말까지 백신이 준비될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과학자는 글로벌 협력이 이뤄져도 이 시간표를 맞추는 것에 회의적인 전망이다. 안보 문제 때문에 EU와 마찰이 커지고 있는 러시아도 참여하지 않았다. 

 

자국 인구에 우선해서 백신과 치료제가 공급되어야 한다는 자국 우선주의의 흐름도 계속 감지되고 있다. 대규모 백신제조 공장이 유럽 외에도 이번에 참여 의사를 밝히지 않은 미국과 인도에 있는 것도 위협 요인으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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