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증거 있다" WHO "근거 있다면 달라"…가장 힘센 사내 입 통해 확대되는 코로나19 음모론

2020.05.05 19:06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연합뉴스 제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연합뉴스 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과 관련해 ‘우한연구소 발원설’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중국의 우한바이러스연구소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발원했다고 지목했다. 중국 우한바이러스연구소가 코로나바이러스 관련 연구를 진행하다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에 이어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도 이달 4일(현지시간) 바이러스가 우한 연구소에서 나왔다는 ‘거대한 증거’가 있다며 중국 책임론을 제기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즉각 반박했다. 마이클 라이언 WHO 긴급준비대응 사무차장은 4일(현지시간) 언론 화상브리핑에서 “미국 정부로부터 코로나19의 기원에 대한 아무런 증거를 받지 못했다”며 “미국의 주장은 추측에 기반한 것”이라고 말했다. 라이언 사무차장은 “WHO는 코로나19의 기원에 대한 어떤 증거라도 있다면 기꺼이 받겠다”며 “만약 데이터와 증거가 있다면 공유 여부와 시기는 미국 정부의 결정에 달려 있다”고 덧붙였다. 


마리아 판케르크호버 WHO 신종질병팀장은 구체적 증거를 내놨다. 판케르크호버 팀장은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1만5000개의 유전자 배열을 확보하고 있지만, 우리가 확인한 바로는 모두 자연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28일까지 분석된 3650개 게놈을 바탕으로 바이러스 이동을 시각화한 그림이다. 넥스트스트레인 화면 캡쳐
지난달 28일까지 분석된 3650개 게놈을 바탕으로 바이러스 이동을 시각화한 그림이다. 넥스트스트레인 화면 캡쳐

바이러스 추적 국제 프로젝트 ‘넥스트스트레인’이 내놓은 분석결과도 WHO 입장과 동일하다. 넥스트레인이 분석한 코로나19 바이러스 3900개 게놈에 대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현재까지 전 세계에 퍼진 바이러스는 10개의 계통군으로 나뉜다. 계통군에는 A1a, A2, A2a, A3, A6, A7, B, B1, B2, B4의 이름이 붙어 있다. A가 붙은 계통군은 주로 유럽에서, B가 붙은 계통군은 주로 아시아에서 왔다는 특징을 지닌다. 넥스트스트레인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엠마 호드크로프트 스위스 바젤대 감역학과 교수는 “현재까지 바이러스가 인위적으로 조작되거나 유출됐다는 증거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서방국가 정보기관 네트워크인 ‘파이브아이즈’와 미국의 정보기관 국가정보국(DNI)조차 우한연구소 발원설을 부정했다. 4일(현지시간) 가디언에 따르면 미국과 영국,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정보기관들의 네트워크인 파이브아이즈는 “코로나19 발생과 확산 관련 정보를 중국이 의도적으로 은폐∙폐기했다”면서도 “중국 우한바이러스연구소에서 유출됐다는 미국 행정부의 주장을 시사하는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은폐와 폐기 사실이 있는 것으로 분석되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우한연구소에서 만들어지거나 유출된 증거가 없다는 주장이다.


미국 DNI는 미국의 16개 정보기관을 통솔하는 최고 정보기관이다. 중앙정보국(CIA)과 연방수사국(FBI), 국가안보국(NSA) 등이 여기에 속한다. DNI는 지난달 30일 성명을 통해 "정보기관들은 바이러스가 사람이 만들거나 유전자적으로 변형된 것이 아니라는 광범위한 과학적 합의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다만 DNI는 추가적인 조사를 진행하겠다며 여지를 남겼다.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 있는 바이러스연구소의 모습. 중국 우한바이러스연구소 제공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 있는 바이러스연구소의 모습. 중국 우한바이러스연구소 제공

문제의 우한바이러스연구소는 1950년대 설립된 바이러스 연구소로, 생물안전 4등급(BSL-4) 실험시설을 갖추고 있다. 생물안전 4등급은 치료제나 백신이 없는 현존하는 가장 위험한 바이러스를 취급하는 연구시설을 뜻한다. 

 

일각에선 WHO와 세계 각국 정보기관들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행정부가 발원설을 주장하는 데는 근거가 있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WHO와 DNI가 현재까지 자신들이 수집된 증거에 한해서라는 전제를 달고 있어 트럼프 행정부가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정보를 공개할 경우 논란의 여지는 계속해서 남아 있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우한연구소에서 유래했다고 확신한다”며 “확신을 주는 증거를 봤다”고 밝혔다. 미국 행정부는 관련 사안에 대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너무 머지 않은 미래에 증거를 공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행정부 주장 이전에도 우한연구소 발원설에 대한 여러 억측과 일부 이를 뒷받침하는데 활용된 논문들이 존재했다. 코로나19 사태 초기인 지난 1월 인도 연구팀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에이즈바이러스(HIV)와 닮았고 자연적으로 재조합됐을 가능성이 낮다는 논문을 의학 분야의 학술논문 사전 공개 사이트인 바이오아카이브(bioRxiv)에 실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인위적 조작을 처음 제기했다. 논문은 게재 4일 만에 철회됐다. 이후 중국 연구팀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우한 바이러스연구소에서 유출됐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논문을 연구 사이트 ‘리서치게이트’ 2월 6일자에 발표했다. 


국내 전문가들도 WHO와 세계 각국 정보기관과 마찬가지로 이런 주장들에 대해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바이러스와 HIV가 일부 유전적으로 겹치는 일이 자연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몇몇 연구 결과만으로 두 바이러스를 인위적으로 재조합했다, 안 했다를 단정할 수는 없다고 보고 있다. 


국내 한 전문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HIV 간에 겹치는 염기서열이 너무 짧고 랜덤하다"며 "서열 자체만 놓고 봤을 때는 큰 의미가 없어 보이며, 의미를 찾으려면 추가 검증이 많이 필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자연상에 서로 다른 종류의 바이러스가 염기서열을 공유하는 일은 너무나도 빈번하다"며 "이 연구 결과만 가지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HIV를 인위적으로 재조합했다고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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