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당혹스러운 63대 36 논란

2020.04.29 14:00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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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두려움 속에서 치른 총선이 조작되었다는 주장이 쉽게 잦아들지 않는 모양이다. 서울·인천·경기의 사전투표에서 여당과 야당 후보자의 ‘상대 득표율’이 63대36으로 똑같이 일치했다는 주장이 시작이다. 사전선거와 본투표에서의 ‘득표율 차이’가 지난 총선 때보다 지나치게 크고, 서울 424개 투표소 모두에서의 사전투표가 여당 후보에게 유리했다는 사실도 정상이 아니라고 한다. 그런 일은 의도적 조작이 아니라면 절대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 통계 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이라고 한다. 그런데 전문가의 권위만 강조하는 의혹 제기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상대적 득표율의 표시 방법

 

서울·인천·경기의 득표율이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이 흔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물론 세 지역 유권자들의 성향이 비슷해서 생긴 일일 수 있다. 그러나 훨씬 더 구체적이고 확실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볼 수도 있다. 정부와 여당을 신뢰하지 않는 입장에서는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런데 두 후보의 상대 득표율이 63%와 36%라는 주장이 이상하다. 두 후보의 상대 득표율의 합이 100%가 아니다. 득표율 1%가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계산기로 얻은 득표율에서 소수점 아래 숫자를 뭉뚝 잘라내서 생긴 일이다. 결코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니다. 잘라버린 1%는 함부로 버릴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가능한 확률의 합은 100%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누구도 어길 수 없는 통계의 기본 원칙이다. 

 

사라진 1%를 살려내면 사정이 달라진다. 서울은 64대 36이 되고, 인천과 경기는 63대37이 된다. 서울의 여당 후보들은 인천·경기의 후보들보다 1%포인트를 더 획득했고, 야당 후보들은 거꾸로 서울보다 인천·경기에서 1%포인트를 더 얻었다. 세 지역의 득표율이 비슷한 것은 사실이지만,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상대 득표율이 똑같은 인천과 경기는 사실 얼마 전까지 같은 행정구역으로 묶여 있었다.

 

상대 득표율을 더 자세하게 살펴보면 신비감은 더욱 옅어진다. 인천과 경기도 사실은 63.2대36.8과 63.1대36.9으로 비슷하기는 하만 일치하지는 않는다. 결국 서울·인천·경기의 득표율이 얼추 비슷한 것은 사실이지만, 세 지역의 득표율이 기적처럼 똑같이 일치하는 것은 아닌 셈이다.
정반대로 상대 득표율을 10% 단위로 표시하면 상황이 더 우스워진다. 1위와 2위의 사전투표 상대 득표율이 6:4가 돼버린다. (이 경우에도 두 후보의 합은 100%가 된다.) 그런데 상대 득표율이 6대4인 지역은 서울·인천·경기만이 아니다. 그렇다고 여러 지역의 상대 득표율이 6대4로 ‘일치’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할 수는 없다.

 

통계나 실험의 결과를 나타내는 수치는 마음대로 적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통계나 실험에서는 6과 6.0은 통계적으로 똑같은 것이 아니다. 오차 범위가 구체적으로 적혀 있지 않다면 6은 5.5~6.5의 값을 나타내고, 6.0은 5.95~6.05 미만의 값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통계치나 실험치에서 오차를 줄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표시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이 바로 ‘유효숫자’다. 통계나 실험에서 유효숫자의 표기 오류는 절대 가벼운 실수가 아니다. 자칫하면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했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

 

확률에서도 기적은 일어난다

 

확률은 어떤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수치로 나타낸 것이다. 동전 1개를 던져서 앞면이나 뒷면이 나올 확률은 정확하게 50%다. 확률적으로는 동전을 두 번을 던지면, 한 번은 앞면이 나오고, 한 번은 뒷면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실제로 동전을 두 번 던지면 반드시 (순서에 상관없이) 한 번은 앞면이 나오고, 한 번은 뒷면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두 번 모두 앞면이 나오는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 누구나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일이다. 반복 횟수가 무한히 크지 않은 현실에서는 확률의 예측에 맞지 않는 일도 일어난다.

 

확률이 기적의 불가능성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동전 1000개를 던져서 모두 앞면이 나올 확률은 실질적으로 0(정확하게는 10의 301승 분의 1)이다. 동전 1000개를 가지고 평생 던지는 일을 반복하더라도 모두 앞면이 나오는 기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그래서 장시간의 측정을 통해 얻어지는 실험값을 통계적인 ‘앙상블 평균’으로 설명하는 통계물리학에서는 그런 가능성을 처음부터 무시해버린다. 그런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런 일이 일어나기는 하겠지만 그 기여가 실험치의 오차로 무시해버릴 정도로 작을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실 세계에서는 확률이 묘하게 작동한다. 확률이 낮더라도 나에게 손해가 나는 일은 반드시 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누구나 알고 있는 머피의 법칙이다. 실제로 동전 1000개를 던지면 모두 앞면이 나오는 일도 일어난다. 그런 기대를 버리지 않은 사람을 우리는 ‘도박꾼’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당첨 확률이 170억 분의 1에 불과한 로또에서도 당첨자가 나오고, 카지노에서도 잭팟이 터진다. 그렇다고 아무도 당첨자가 조작을 했다고 의심하지는 않는다.

 

선거도 마찬가지다. 선거에서는 통계적으로 확률이 매우 낮은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선거의 결과를 논리적으로 완벽하게 설명하려는 시도는 무망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투표장에 들어서는 유권자들이 오로지 자신만의 독립적인 판단을 따를 것이라는 통계적 전제를 따를 것인지조차 확실하지 않다. 통계를 근거로 의혹을 제기하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통계는 복잡한 사회·경제 현상을 분석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매우 중요한 수단이다. 직관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큰 규모의 정보를 압축해놓은 통계는 정부·기업·개인 모두에게 유용한 의사결정의 기초자료가 된다. 통계는 자연을 이해하고, 위험을 예방하고, 효율을 향상시키는 수단을 제공해주기도 한다. 

 

그렇다고 통계가 만능일 수는 없다. 마크 트웨인은 세상에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가 있다고 했다. 통계는 생성하기도 어렵지만, 해석하는 일은 훨씬 더 어렵다는 뜻이다. 그래서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통계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는 순진한 기대일 수 있다. 그렇다고 절망할 이유는 없다. 세상이 살맛나는 진짜 이유가 바로 통계와 확률이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사실 세상만사가 확률과 통계로 결정되어버린다면 우리의 창의력이나 자유의지는 아무 쓸모가 없어져 버린다.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대한화학회 탄소문화원 원장을 맡고 있다.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교육‧에너지‧환경‧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5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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