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지식의 지평 넓히는 연구에서 소외된 한국 "이제는 우리도 뛰어들 때"

2020.04.22 16:40
찬드라 X선 탐사선이 촬영한 대표적인 이미지인 총알 은하단. 분홍색이 X선 영상으로, 물질(분홍색)과 중력원(파란색)이 일치하지 않는다. 강한 중력을 지닌 암흑물질의 증거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사진 제공 NASA
찬드라 X선 탐사선이 촬영한 대표적인 이미지인 '총알 은하단'. 분홍색이 X선 영상으로, 물질(분홍색)과 중력원(파란색)이 일치하지 않는다. 강한 중력을 지닌 암흑물질의 증거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사진 제공 NASA

“우주는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라는 ‘유령’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 유령은 우주의 95%를 차지하지만 아직 중력 외의 대부분의 특징과 정체가 밝혀지지 않았지요. 입자가속기를 이용한 실험과 천문 관측을 통해 연구되고 있습니다만, 5년 뒤 지금보다 몇 배씩 생산될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처리할 기술과 이를 효율적으로 분석할 인공지능(AI) 기술은 세계적으로 걸음마 단계입니다. 한국이 이 분야 기술을 선도할 수 있도록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융합 연구를 제안합니다.”


조기현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국가슈퍼컴퓨팅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이달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엘타워에서 열린 과학난제도전융합연구개발사업 공개세미나에서  “암흑물질 연구의 국제적 현황을 파악하고 있으며 충분한 국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세계가 아직 제대로 시도하지 못한 기술 개발과 연구 분야에서 한국이 우위를 선점할 수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조 책임연구원은 2015년부터 성균관대 등 대학과 한국천문연구원 및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등과 협력해 실제 실험 및 관측 데이터를 얻어 암흑물질 탐색을 위한 기술을 연구해 왔다.

 

●우주에 대한 '인류 지식의 지평' 넓힐 연구 과제 두 건


조 책임연구원의 연구 분야는 세계적으로 아직 아무 연구기관도 해결하지 못한 미지의 과학 영역이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입자물리 데이터 분석 등은 CERN이나 미국 국립페르미연구소 등이 일부 시도하고 있지만, 아직 초기 단계다.

 

그가 참여한 행사는 ‘한국 과학난제도전 온라인 콘퍼런스’다. 연구자가 직접 과학 기술 분양의 난제를 발굴해 과학과 공학을 융합해 해결해 가는 새로운 유형의 연구개발(R&D) 사업인 '과학난제도전융합연구개발사업'에 제출된 아이디어 가운데 선별된 15건이 발표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기획하고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과학난제도전협력지원단이 지원한다. 


한민구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은 “한국은 지금까지 ‘내가 잘 할 수 있는 연구를 추진해 왔다”며 “그 덕분에 산업대국으로 성장하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 같은 위기도 잘 극복했다. 하지만 선진국으로 나아가고 혁신적인 성과를 내려면 도전하는 R&D 문화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연구자가 분야를 넘어 협력하고 문제를 정의할 줄 알아야 한다”며 새로운 연구사업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성창모 과학난제도전협력지원단장(고려대 특임교수)은 “연구개발 성공률이 98%에 이른다는 사실은 난제에 도전하지 않는 분위기를 대변한다”며 “실패 위험 큰 연구를 장기적 관점에서 과감하게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기현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국가슈퍼컴퓨팅연구소 책임연구원이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엘타워에서 개최된 한국 과학난제도전 온라인 콘퍼런스에서 연구 주제를 발표하고 있다. 윤신영 기자
조기현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국가슈퍼컴퓨팅연구소 책임연구원이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엘타워에서 개최된 한국 과학난제도전 온라인 콘퍼런스에서 연구 주제를 발표하고 있다. 윤신영 기자

첫날 오전 주제는 ‘앎의 지평 확장’이었다. 특히 인류의 역사에 기록될 지식을 추구하는 우주 기원 규명 연구 두 건이 발표됐다. 조 책임연구원의 연구는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라는 미지의 우주 구성물질을 찾는 방법론에 대한 연구였다. 암흑물질은 우주의 27%를 차지하는 물질로 중력을 작용해 물질을 빨아들여 별과 은하 탄생에 기여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빛과 물질 등과 반응하지 않아 아직 실체가 관측되지 못했다.

 

암흑에너지는 우주의 70%를 차지하는 에너지로 우주를 밀어 팽창시키는 역할을 담당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여전히 관측이 이뤄지지 않아 정체를 모른다. 조 책임연구원은 "여러 기관과 실제 실험을 수행하고 데이터를 확보해 암흑물질을 탐색하기 위한 지도를 구축하고, 정밀한 자료 처리 기술을 개발해 연구 수행속도도 10배 빠르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중력파-전자기파 관측 '다중신호천문학' 이용 천문학계 논란의 '허블상수' 해결한다


이어진 발표에서 김정리 이화여대 물리학과 교수 역시 우주의 숨겨진 비밀을 풀기 위한 연구를 제안했다. 2002년부터 국내에서 연구자들이 자생적으로 참여해 온 한국중력파연구협력단의 일원으로 2015년 세계 첫 중력파 관측에 기여해 온 김 교수는 “중력파 관측을 포함한 다양한 관측 연구를 활용해 세계적으로도 아직 정밀하게 해결하지 못한 우주 진화 분야의 중요한 난제를 해결하겠다”고 제안했다. 


김 교수와 한국중력파연구협력단이 제안한 분야는 우주 팽창과 관련된 ‘허블상수’다. 많은 천문학자와 천체물리학자들이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 허블상수를 관측해 왔는데, 가까운 거리의 은하를 이용해 관측한 값과 먼 거리에서 관측되는 우주 초기 빛(마이크로파 우주배경복사)을 관측해 구한 값에 큰 차이가 있었다. 이 같은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한국중력파연구협력단은 중력파 관측과 다양한 전자기파 관측을 동시에 수행하는 ‘다중신호 천문학’을 이용한 연구를 제안했다. 

 

김 교수는 “중력파로 충돌하는 블랙홀이나 중성자별 쌍성과의 거리를 측정하고, 이 쌍성이 속한 은하의 거리를 전자기파를 이용해 정확히 잰 뒤 빛 특성 분석(분광학 연구)으로 멀어지는 속도(후퇴속도)를 정밀하게 측정하는 게 연구의 핵심”이라며 “2017년 ‘네이처’에 관련 연구가 나온 적 있지만, 새로운 관측 기법을 적용해 이를 뛰어넘는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중력파연구협력단은 남반구에 설치된 천문연의 외계행성탐색시스템(KMTNet)의 카메라 성능을 향상시키고, 북반구에도 비슷한 카메라를 세 곳 더 설치해 이 같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은하의 거리를 정밀하게 측정할 새 관측 기법으로는 임명신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가 제안한, 지구에서 볼 때 은하의 각도에 따른 밝기 차이를 고려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다중신호 천문학에선 중력파와 우주전파를 모두 활용한다. 멀리 떨어진 여러 대의 전파망원경을 동원하는 초장기선 간섭 관측법(VLBI)도 자주 동원된다. 사진은 미국 하와이 마우나케아 천문대에 자리한 ‘서브미터’ VLBI 관측 장비의 모습. 스미스소니언 천문대 제공
다중신호 천문학에선 중력파와 우주전파를 모두 활용한다. 멀리 떨어진 여러 대의 전파망원경을 동원하는 초장기선 간섭 관측법(VLBI)도 자주 동원된다. 사진은 미국 하와이 마우나케아 천문대에 자리한 ‘서브미터’ VLBI 관측 장비의 모습. 스미스소니언 천문대 제공

김 교수는 “우리의 측정 결과에 따라 현재 우주의 탄생과 진화를 설명하는 우주론인 표준우주론이 맞을지, 또는 보완이 필요할지를 알 수 있게 될 것”이라며 “전용 관측 카메라 설치 등 비교적 적은 예산으로 우주분야의 오랜 난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연구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관측우주 분야의 난제 해결에도 일부 도움을 줄 수 있다. 이영욱 연세대 천문우주학과 교수팀은 우주가 약 50억 년 전부터 점점 빨리 팽창하고 있다는 우주가속팽창 연구 가운데 초신성의 밝기를 '기준'으로 이용한 연구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정밀한 새 관측 연구 결과를 올해 초 발표했다. 초신성을 이용한 밝기 기준 기술을 '표준 촉광'이라고 부르는데, 이 연구를 주도하고 나아가 우주가속팽창과 암흑에너지로 이어지는 우주론을 정립하는 데 기여한 학자가 노벨상을 수상했던 천체물리학계의 석학이라 화제가 됐다.

 

기존에 근거리 은하의 허블상수를 결정하는 데에도 바로 이 표준 촉광이 이용돼 왔기 때문에, 김 교수와 한국중력파연구협력단의 연구를 통해 표준 촉광의 신뢰성 문제까지 다룰 경우 이영욱 교수가 제기한 문제도 해결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김정리 이화여대 물리학과 교수가 22일 서울 서초구 엘타워에서 열린 한국 과학난제도전 온라인 콘퍼런스에서 다중신호천문학을 이용한 허블상수 갈등 해결 관련 연구 주제를 제안하고 있다. 윤신영 기자
김정리 이화여대 물리학과 교수가 22일 서울 서초구 엘타워에서 열린 한국 과학난제도전 온라인 콘퍼런스에서 다중신호천문학을 이용한 허블상수 갈등 해결 관련 연구 주제를 제안하고 있다. 윤신영 기자

●92건의 '세상에 없던 연구'...암부터 우주, 진화까지 다양한 주제 다뤄...최종 5건 선정 예정


과학난제도전융합연구개발사업은 올해 3월 연 92건의 연구 주제가 접수됐다. 암 정복부터 기후변화 해결, 지속가능한 도시 개발, 우주 및 진화까지 다양한 주제가 제안됐다.

 

이 가운데 선별된 15건이 이날과 23일 주제 발표된다. 올해 최종 선정될 주제 2건과 2021년 선정될 3건에는 2025년까지 최대 90억 원의 연구비가 진행된다. 코로나19 여파로 콘퍼런스는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최종 선정된 주제를 선정하기 위해서만 온라인 콘퍼런스를 연 것은 아니다. 다른 연구자들도 주제 발표를 보고 각자 참여 가능한 주제를 제안해 발표자의 제안보다 더 풍성한 주제로 발전시킬 것을 목표로 한다. 송완호 과기정통부 융합기술과장은 “개방적인 콘퍼런스로 많은 연구자가 참여해 기초과학과 공학이 각자의 분야 임무를 갖고 ‘초융합’을 이루는 새 이정표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국과학난제도전 온라인 콘퍼런스는 유튜브 등 플랫폼에서 ‘과학난제도전’을 검색하면 실시간으로 시청할 수 있다.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댓글 0

작성하기

    의견쓰기 폼
    0/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