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의 사회심리학]성범죄를 단순 호기심이라는 'n번방' 26만명의 성착취 가담자들

2020.04.05 11:09
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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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26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텔레그램을 이용한 성착취 범죄를 저질렀다. 어떻게 26만명이나 그랬냐고 하지만 유구한 여성 차별, 여성 혐오를 가진 이 나라에서는 사실 이미 오래전부터 예견된 일이다. 


소라넷이라고 하는 불법촬영물이 개시되는 성착취 사이트에 이미 100만명의 이용자가 있었다.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기 전까지는 남자라면 얼마든지 호기심 정도의 가벼운 마음으로 성범죄를 저지르거나 여기에 동조할 수도 있는 거라며 크게 문제시되지 않았다. ‘좌표’ 좀 찍어 달라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카톡에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아무 문제 의식 없이 성착취물을 공유하고 가해에 동참한 사람들 또한 적지 않다.


기본적으로 한 인간을 자신과 같은 인간으로 존중하지 않는 행위인 성매수 역시 남성은 얼마든지 여성을 비인간화, 성적 도구화 할 수 있다는 식으로 오랜 시간 동안 묵인됐다. 상대방을 직장 동료나 상사, 학교 선후배 같이 자신과 동등한 인격으로 여긴다면 돈을 줄테니 성적 행동을 해보라고 주문할 수 있을까?


학교 근처나 주거지에서도 ‘아가씨 항시 대기’라며 여성은 남성의 욕구 해결 도구 정도임을 암시하는 문구가 여기저기 널려있다. 대한민국은 성매매가 불법임을 감안하면 더 신기한 일이다. ‘젊은 남성 항시 대기, 2만 원 부터’ 같은 문구가 여기저기 붙어있다고 생각해봐라 이상하지 않겠는가? 


이뿐만이 아니다. 남성이 여성을 향해 휘두르는 폭력에 관대한 문화는 훨씬 어렸을 때부터 시작된다. 남자 아이가 여자 아이의 치마를 들추는 행위에 대해 “쟤가 널 좋아하나보다”고 폭력을 묵인을 넘어 정당화하는 것이 한 가지 예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 고등학교에서도 같은 반 여학생들의 외모에 ‘등급’을 매기며 킥킥대는 남자아이들이 있었다. 물론 남자아이들은 아무도 이에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고 그런 행동들이 이제는 인터넷 커뮤니티와 단톡방으로 옮겨 갔을 뿐이다. 술자리에서 자신의 성적 무용담을 늘어놓으며 남성성을 한껏 과시하던 이들이 이제는 온라인상의 플랫폼들을 통해 성착취물을 공유하며 여전히 왜곡된 남성성을 과시하고 강간을 유희로 삼는  강간문화를 확대시키고 있다. 


예전에는 없었던 성착취가 갑자기 생기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이 사회는 아주 오래전부터 여성을 비인간화하고 성적 도구화 해왔다. 이를 정당화하기 위한 핑계로 남성이 여성을 이용해서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편리할 때만 남성을 이성과 사회성, 자제력이 작용하지 않는 인간 이하의 존재, 철없고 보살핌이 필요한 어리숙한 존재로 치환해왔다. 


설령 진짜로 남성이 이성이 잘 작동하지 않는 미성숙한 존재라서 성범죄를 저지를 수 밖에 없다고 해도, 그렇다면 해결책은 남성 집단에게 이성과 성숙함을 함양시키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어째선지 “그러니까 성범죄를 용인해주자”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저 여성에게 폭력을 휘두를 권리를 달라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여성을 성적도구화 하고 싶다고 얘기하는 것으로밖에 들리지 않는 것이다. 

 

‘바깥’에서도 당당하게 성착취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이 온라인에서는 더 심하면 심했지 바른 행동을 할 확률은 매우 낮다. 같은 성범죄이지만 기술을 활용한 형태의 성범죄라고 해서 기술에 의해 촉진된 성범죄 및 성적 괴롭힘(TFSV)라고 불린다. 


흔히 상대의 동의 없이 성적 이미지 생산 및 유포 (지인 얼굴 합성, 성관계 영상 촬영), 성폭력 장면이 담긴 영상을 만들거나 유포 (강간 영상, 텔레그램 성착취 영상),  단톡방과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한 성폭력 모의,  여러 매채를 활용한 성희롱과 사이버 스토킹,  여성 혐오 발언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성범죄 가해자의 약 80%는 가족, 친척, 친구, 이웃 등의 지인이다. 성범죄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장소는 으슥한 뒷골목이 아닌 ‘집’이다. 온라인에서의 성범죄 또한 가장 흔한 가해자는 현재 또는 과거의 “연인”이다. 친밀한 관계를 악용하여 범죄를 저지르는 인간들이 태반이므로 성범죄는 피해자가 조심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성격의 범죄가 아니라는 얘기다. 


온라인에서의 성범죄가 오프라인과 다른 점이라면 공범의 수가 훨씬 많고 다양한 지역, 사회적 계층에 광범위하게 포진되어 있으며, 훨씬 빨리 퍼져나가 단시간에 피해가 극대화 된다는 점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구분이 무색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현실 친구 및 직장 동료 등과도 SNS 상에서 접점이 있다. 이런 구조로 한 번 원치 않는 성적 이미지 등이 퍼져나가면 피해자는 광범위한 ‘입소문’을 타며 넓은 인간관계에 걸쳐 피해를 입는다. 사회적인 인격 살인의 측면에서 온라인 상에서의 가해는 오프라인 상에서의 가해보다 더 큰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가해자가 높은 협상력을 가지게 되며 합성 사진이나 성관계 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하는 등의 협박이 잘 먹히게 된다. 


온라인 상의 성범죄는 오프라인보다 더 조직적이고 집단적인 양상을 띈다. 예컨대 특정인을 모욕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이미지나 영상물이 올라오면 함께 신상을 캐서 피해자를 공격하고 적극적으로 유포하며 피해를 극대화하는 식이다.  최초 가해자가 커뮤니티의 여성혐오 동지들에게 함께 피해자를 테러해달라고 당당하게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불법촬영물이나 성착취물이 올라와도 보지 않고 퍼트리지 않으면 가해가 커질 일이 없는데 많은 남성들이 ‘그저 호기심일 뿐’이라는 자기 변명 속에서 가해에 적극 동참한다. 이런 식으로 피해자에게 최악의 가해를 가하는 식이다. 

 

26만명, 100만명 혹은 몇쳔만명에 달할 가해자들 중 많은 이들이 ‘호기심에’ 그랬다고 변명한다. 성범죄 창구가 얼마나 일상 도처에 널려있으면, 또 성범죄를 얼마나 가벼이 여기고 여성을 동등한 인간으로 보지 않으면 ‘호기심’ 같은 가벼운 마음으로 성범죄를 저지르는 것인지 아득해진다. 


‘호기심으로 한 번 칼로 찔러봤다’고는 하지 않으면서 성범죄에 대한 변명으로는 고작 ‘호기심에’, ‘실수’ 같은 말을 늘어 놓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이 성범죄를 범죄로 인식조차 하지 않으며 아주 가벼운 일로 치부한다는 뜻이다. 호기심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전자기기를 분해해본다든가 호기심에 새로 생긴 가게에 가본다든가, 처음 보는 색다른 음식을 먹어본다든가, 달고나 커피에 도전해본다든가 하는 것이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으로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변명을 한다는 것 자체가 아직도 성범죄를 유희 정도로 여기는 일부 그릇된 인식이 남성들 사이에 만연해있다는 뜻이다. 


이는 염연히 성범죄를 저질러 놓고도 ‘나는 저런 범죄자들과는 다르다’며 조두순 같은 사람이 성범죄자이지 나처럼 이따금씩 몰카(불법촬영물) 정도나 보고 성착취물을 관전만 하는 사람은 평범한 일반 남성이라고 생각하는 숨은 가해자들이 여전히 남성들 사이에 드글드글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들을 일컬어 '아직 드러나지 않은 성범죄자(undetected rapist)'라고 부른다텔레그램의 26만명소라넷의 100만명 처럼 주로 ‘비슷한 무리 비호를 받으며 계속해서 죄책감 없이 범죄를 저지른다.

 

미국 보스턴의 매사추세츠대 연구팀은 이렇게 아직 발견되지 않은 성범죄자들은 드러나지 않는 상황에서 평균 5.8건의 성폭력을 저지르며 120명의 성폭력범들이 약 1225 건의 서로 다른 성폭력 사건에 개입되어 있다는 연구 결과를 2002년 공개했다. 이들이 계속 숨어서 범죄를 저지르지 않게끔 그 존재를 드러내 처벌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성착취에 가담한 26만명에 대한 전원 처벌은 이렇게 당연히 행사되어야 했을 정의의 시초가 될 것이다. 여성들은 이미 그 수가 어떠하든, 그 안에 내 가족, 친구가 있어도 좋으니 처벌해달라고 촉구하고 있다. 그만큼 수많은 성범죄자들이 '평범한 남성'의 탈을 쓰고 아무 일 없이 일상을 영위하고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몇 명이라고 해도 상관 없다. 범죄를 저지른 자가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만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성범죄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을 것이다.

 

※참고자료 

-Dragiewicz, M., Burgess, J., Matamoros-Fernandez, A., Salter, M., Suzor, N. P., Woodlock, D., & Harris, B. (2018). Technology facilitated coercive control: Domestic violence and the competing roles of digital media platforms. Feminist Media Studies, 18, 609-625.
-Henry, N., & Powell, A. (2015). Embodied harms: Gender, shame, and technology-facilitated sexual violence. Violence Against Women, 21, 758-779.
-Henry, N., & Powell, A. (2018). Technology-facilitated sexual violence: A literature review of empirical research. Trauma, violence, & abuse, 19, 195-208.
-Lenhart, A., Ybarra, M., Zickuhr, K., & Price-Feeney, M. (2016). Online Harassment, Digital Abuse, and Cyberstalking in America. Data & Society Research Institute. Center for Innovative Public Health Research. Retrieved from: https://datasociety. net/pubs/oh/Online_ Harassment_2016. pdf.
Lisak, D., & Miller, P. M. (2002). Repeat rape and multiple offending among undetected rapists. Violence and victims, 17(1), 73-84.
-UNICRI. "Criminal Victimisation in International Perspective: Key findings from the 2004-2005 ICVS and EU ICS". WODC in cooperation with the United Nations Office on Drugs and Crime (UNODC) and the United Nations Interregional Crime and Justice Research Institute (UNICRI): 77–79.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게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과 겸손, 마음 챙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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