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독감바이러스, H5N8과 H7N9의 경우

2014.01.20 18:00

  지난 2010-2011년 겨울은 우리나라 가축들에게 최악의 시기였다. 구제역이 걷잡을 수 없이 퍼지면서 무려 350만 마리의 소와 돼지가 살처분됐다. 당시 조류독감도 발생했지만 구제역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2003-2004년 겨울 처음 조류독감이 유행했을 때는 가금류 500만 마리, 2006-2007년 겨울 두 번째 발생했을 때는 280만 마리, 2008년 봄 세 번째 발생했을 때는 무려 1000만 마리를 살처분했다.

 

동아일보DB 제공
동아일보DB 제공

  지난 두 번의 겨울은 유난히 추웠지만 다행히 구제역도 조류독감도 없이 지나갔다. 그런데 날씨가 온화한 올 겨울이 절반 정도 지나간 시점에서 조류독감이 등장해 사람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지난 16일 전북 고창의 한 농장에서 조류독감으로 오리 2만여 마리가 살처분된 뒤 부안의 농장에서도 폐사한 오리들이 조류독감에 걸린 것으로 확인됐다. 한편 고창 오리 농장에서 10킬로미터 떨어진 동림저수지에서 가창오리 천여 마리가 떼죽음한 게 발견됐고, 사인을 분석한 결과 역시 조류독감바이러스가 발견됐다.

 

  이는 이번 조류독감의 감염경로가 철새임을 시사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 바이러스가 야생 조류도 집단 폐사시킬 정도로 강력한 병원성을 갖고 있음을 뜻한다. 독감바이러스의 요람이라고 할 수 있는 야생조류는 오랜 진화를 겪으며 바이러스와 서로 적응이 된 상태이기 때문에 이처럼 독감으로 떼죽음에 이르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이번 조류독감의 또 다른 특징은 기존 네 차례가 H5N1형이었던 것과는 달리 H5N8이라는 새로운 유형이라는 점이다. H5N8형은 낯선 독감바이러스로 1983년 아일랜드의 칠면조 농장에서 처음 보고됐고 그 뒤 30여 년 동안 자취를 감췄다가 지난 2010년 중국에서 야생오리에서 감염된 사례가 보고된 게 기록의 전부다. 당시 아일랜드에서는 칠면조 8000마리, 닭 2만8000마리, 오리 27만 마리를 살처분했다. 훗날 바이러스의 병원성을 조사한 결과 칠면조가 특히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잠깐 독감바이러스의 종류에 대해 알아보자. 독감바이러스의 분류는 좀 복잡한데 크게 A형, B형, C형이 있다. B형은 사람과 물개만 감염되고 C형은 사람과 돼지만 감염되는데 둘 다 드물다. 따라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독감바이러스는 모두 A형이다. A형은 종류에 따라 사람과 돼지, 조류를 감염시킬 수 있다. A형 바이러스 표면에 있는 두 단백질의 구조에 따라 추가로 분류할 수 있는데, H는 헤마글루티닌이라는 단백질의 첫 글자로 모두 18가지 유형이 있다. N은 뉴라미니다제라는 단백질의 첫 글자로 모두 11가지 유형이 있다. 따라서 이론적으로 모두 198가지 조합이 나올 수 있다.

 

  지금까지 확인된 것으로 추정할 때 이번 H5N8형은 적어도 오리류에게는 강력한 병원성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 또 철새가 감염된 게 확인됨에 따라 방역을 아무리 철저히 하더라도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철새는 이동하면서 배설을 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아직까지 H5N8형이 사람에게 감염된 사례가 없다는 것. 물론 변이야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안심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사람이 감염된 사례가 보고되지 않았지만 H5N1형의 경우 2003년 첫 인간 감염 사례가 보고된 뒤 최근까지 동남아시아와 북아프리카에서 648명의 감염사례가 보고됐고 이 가운데 348명이 사망해 무려 59%의 치사율을 보였다. 통상적인 계절성 독감의 사망률이 0.1% 미만인 걸 감안하면 엄청난 고병원성이다.

 

  그렇다면 H5N8과 H5N1형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아직 게놈분석 결과가 나오지 않아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H5N1형과 H?N8형에 이중으로 감염된 야생조류에서 게놈 재조합이 일어나면서 H5N8형이 나왔을 것이라는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독감바이러스는 게놈이 8개 조각으로 나뉘어 있어 이중 감염이 일어났을 때 세포 안에서 이것들이 멋대로 뒤섞일 수 있다. 아무튼 야생 조류도 떼죽음을 당했다는 건 H5N8형이 이제 막 등장한, 조류들에 맞춰 아직 충분히 진화하지 못한(지나친 고병원성은 바이러스의 입장에서도 불리하다) ‘따끈따끈한’ 변이종일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조류독감바이러스와 인간독감바이러스의 사이

 

  우리나라에서는 별로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았지만 사실 중국에서는 지난 봄 새로운 조류독감이 등장해 문제가 되고 있다. 바로 H7N9형 바이러스다. 이 조류독감은 사람도 감염하는데 지난 해 3월 첫 환자가 보고된 뒤 여름에 수그러질 때까지 135명의 환자가 보고됐고 이 가운데 45명이 사망해 33%라는, H5N1형에 육박하는 매우 높은 사망률을 보였다. 그런데 지난 10월부터 다시 환자가 보고되기 시작했고, 올해 들어서도 벌써 33명의 환자가 보고됐다. 이 가운데 세 명이 사망했고 상태가 심각한 환자들도 많다고 한다.

 

  H7N9형 바이러스는 특이하게도 조류에서는 병원성을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사실 이건 심각한 문제인데, 가금류가 멀쩡하니 어떤 개체가 감염됐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환자가 발생한 지역 주변의 가금류를 잡아다 감염여부를 조사하고 있는데, 극소수에서만 양성반응이 나왔다고 한다. 그렇다고 가금류를 죄다 살처분할 수도 없고 중국 당국으로서는 당혹스러운 상황이다. H7N9형의 사례는 조류에서 비병원성이라도 사람에서는 고병원성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는 조류에서 고병원성이라도 사람에서 반드시 고병원성인 건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H7N9은 나온 지가 꽤 됐기 때문에 집중적인 연구를 통해 많은 사실이 알려졌는데 특히 숙주에 따른 감염성 차이에 대한 분자 차원에서의 연구결과가 눈길을 끈다. 즉 원래는 조류를 감염시키는 독감바이러스가 어떻게 사람에 감염할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하는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H5N8의 인간 감염 잠재력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도 있다.

 

  먼저 조류독감과 인간독감의 차이를 보자. 조류독감의 헤마글루티닌은 조류 소화관 세포 표면에 있는 당단백질 말단의 시알산과 갈락토스의 알파2,3-결합을 인식해 달라붙는다. 세포표면에 바이러스가 붙으면 세포막이 안으로 말리면서 바이러스가 세포 안으로 침투한다. 반면 인간독감의 헤마글루티닌은 상기도 세포 표면에 있는 당단백질 말단의 시알산과 갈락토스의 알파2,6-결합을 인식해 달라붙는다. 역시 세포표면에 바이러스가 붙으면 세포막이 안으로 말리면서 바이러스가 세포 안으로 침투한다. 두 분자 사이의 사소한 결합방식 차이가 특정 바이러스의 침투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학술지 ‘네이처’ 2013년 7월 25일자에 발표된 논문을 보면 조류독감에 걸려 사망한 사람의 몸에서 분리한 H7N9형의 게놈을 조사한 결과 헤마글루티닌의 아미노산 서열 가운데 하나가 바뀌면서(228번 글루타민이 류신으로 바뀌었다), 기존 알파2,3-결합을 인식하는데 더해 알파2,6-결합에도 달라붙는 능력을 획득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즉 H7N9형은 조류독감바이러스와 인간독감바이러스의 과도기적 형태인 셈이다.

 

독감바이러스 표면의 헤마글루티닌(HA) 단백질의 한 영역(왼쪽에서 두 번째 그림이 분자구조로 오른쪽 위 회색 원)이 숙주 세포 표면 당단백질의 시알산과 갈락토스 결합을 인식한다. 조류독감바이러스의 경우 알파2,3-결합을 인식해 달라붙고(오른쪽에서 두 번째), 인간독감바이러스의 경우 알파2,6-결합을 인식해 달라붙는다(맨 오른쪽). 현재 중국에서 사람도 감염시키는 H7N9 조류독감바이러스의 경우, 헤마글루티닌에 변이가 일어나 알파2,3-결합뿐 아니라 알파2,6-결합도 인식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 네이처 제공
독감바이러스 표면의 헤마글루티닌(HA) 단백질의 한 영역(왼쪽에서 두 번째 그림이 분자구조로 오른쪽 위 회색 원)이 숙주 세포 표면 당단백질의 시알산과 갈락토스 결합을 인식한다. 조류독감바이러스의 경우 알파2,3-결합을 인식해 달라붙고(오른쪽에서 두 번째), 인간독감바이러스의 경우 알파2,6-결합을 인식해 달라붙는다(맨 오른쪽). 현재 중국에서 사람도 감염시키는 H7N9 조류독감바이러스의 경우, 헤마글루티닌에 변이가 일어나 알파2,3-결합뿐 아니라 알파2,6-결합도 인식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 네이처 제공

 

  그럼에도 사람에게 전염될 확률은 여전히 낮은데 그 이유는 알파2,3-결합에 달라붙는 조류독감으로서의 특성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사람의 기도를 덮고 있는 점막층에 있는 뮤신 단백질에는 시알산과 갈락토스가 알파2,3-결합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에 H7N9이 들어와도 대부분 여기에 붙잡힌다. 따라서 가금류와 살다시피 해서 엄청난 숫자의 바이러스에 노출되거나 아주 불운하게 상피세포까지 바이러스가 도달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설사 조류독감바이러스가 알파2,6-결합을 인식하는 능력을 획득하더라도 사람이 감염되는 경우는 드물다. 아직까지 H7N9형 감염자가 수백 명 이내인 이유다.

 

  그러나 안심할 수는 없다. 228번 아미노산 변이에 또 다른 변이가 더해져 바이러스가 알파2,3-결합을 인식하는 능력을 상실하는 순간, 즉 조류바이러스에서 인간바이러스로 변신하게 되면 감염력이 높아지는 건 물론 사람 사이에서도 전염력을 획득할 수 있다. 이 경우 바이러스 자체가 낯선 유형이기 때문에 사람에게 고병원성일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 팬데믹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실제 지난 세기 인류를 공포로 떨게 했던 몇 차례 독감 팬데믹은 조류독감이 인간독감으로 막 변신한 결과로 일어났다. 실제 이들은 모두 228번 아미노산이 류신이다. 무려 5000만 명이 사망해 역사상 최악의 독감 팬데믹으로 기록된 1918년 스페인독감의 경우도 수십 년이 지난 뒤 한 연구팀이 알래스카 육군묘지에 묻힌, 당시 독감으로 죽은 군인의 사체에서 바이러스 시료를 얻어 분석한 결과 H1N1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사람 간 감염성을 획득해 일어난 것이라는 사실을 2005년 밝혔다. 1957년 유행해 70만 명이 사망한 아시아독감도 H1N1 인간독감바이러스와 H2N2 조류독감바이러스가 돼지에 동시감염 돼 게놈이 섞이면서 인체에 감염성이 있는 H2N2 바이러스가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1968년 100만 명이 사망한 홍콩독감도 H2N2 인간바이러스에 H3 조류바이러스가 합쳐져 나온 H3N2바이러스가 일으켰다.

 

  현재 중국보건당국은 H7N9이 추가 변이를 일으켜 조류독감의 특징을 잃고 인간독감으로 변신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한다. 이번에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H5N8형 바이러스의 헤마글루티닌의 228번 아미노산이 여전히 글루타민이어서 원천적으로 사람 상기도 세포의 시알산 알파2,6-결합을 인식하지 못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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