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고고학산책]2000년전 고대 한반도의 국제항

2020.03.21 06:00
일러스트 리노 / 어린이과학동아 DB
일러스트 리노 / 어린이과학동아 DB

경상남도 사천시 앞 바다에는  ‘늑도’라는 땅콩 모양의 작은 섬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섬은 한국에서 가장 많은 유물이 출토된 곳 중 하나입니다.  늑도 유적은 1979년 남도 민요를 조사하러 온 기자가 처음 흔적을 발견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그 뒤 1980년대 들어 육지와 늑도, 늑도 옆의 창선도를 잇는 두 다리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이 지역에 살던 고대인이 남긴 주거지, 무덤, 패총과 함께 만여 점 이상의 유물이 발굴됐습니다.


늑도에서는 우리나라에서 흔히 발견되지 않는 유물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중 하나는 ‘개의 공동묘지’로, 무려 26기의 무덤에서 인간과 개가 같이 묻힌 채 발견됐습니다. 개의 유골만 따로 묻혀있는 구역도 있었고, 묻힌 개들 중 5마리에는 뼈가 부러진 뒤 치료된 흔적도 있었습니다. 이 개들이 정성껏 보살핌을 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늑도에서 발견된 무덤. 인간의 머리맡에 함께 묻힌 개의 모습이 보인다.  동아대학교 이동주 교수 제공
늑도에서 발견된 무덤. 인간의 머리맡에 함께 묻힌 개의 모습이 보인다. 동아대학교 이동주 교수 제공

개의 공동묘지는 한반도에서 한 번도 확인된 적 없는 사례였습니다. 우선 우리나라에서는 무덤 안에 동물을 같이 묻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장례 의식의 일부로 무덤을 덮는 뚜껑돌 위나 무덤 주위에 동물을 묻는 경우가 있는데, 이도 신라나 가야의 지배층 무덤에서나 가끔 볼 수 있습니다.


특이한 유물은 또 있습니다. 몇몇 무덤에 ‘개오지’라는 조개가 부장품처럼 함께 묻혀 있었거든요. 이 조개는 선사시대에 장신구는 물론, 중국,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등 세계 곳곳에서 화폐로 거래되었습니다. 그런데 늑도에서 발견된 개오지는 따뜻한 바다에 사는 종으로, 한국에서는 잡히지 않습니다.


이밖에도 중국의 동전, 일본의 토기, 동남아시아의 상감 구슬 등 동아시아 전역의 유물도 출토됐습니다. 고고학자들은 늑도가 약 2000년 전 삼국시대의 국가들이 세워지기도 전에 형성된  국제 항구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세계 사람이 드나들던 국제항

 

고고학자들은 고대인들의 항해법을 알아보기 위해 직접 당대의 배를 타고 항해하기도 한다. 작년에는 일본과 대만의 공동 연구팀이 고대의 방식으로 만든 보트를 타고 대만에서 일본 남부의 섬으로 노를 저어 떠나는 실험을 하기도 했다.  Y. Kaifu 제공
고고학자들은 고대인들의 항해법을 알아보기 위해 직접 당대의 배를 타고 항해하기도 한다. 작년에는 일본과 대만의 공동 연구팀이 고대의 방식으로 만든 보트를 타고 대만에서 일본 남부의 섬으로 노를 저어 떠나는 실험을 하기도 했다. Y. Kaifu 제공

그렇다면 다른 곳이 아닌 늑도에 세계 사람들이 모여든 이유가 있을까요? 고고학자를 따라 늑도 주변의 지리를 살펴보면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고고학들도 처음 현장에 나가기 위해 훈련을 받는데 이때 가장 처음 익히는 것 중 하나가 지리를 살피는 법입니다. 고고학자들은 일단 조사 장소에 도착하면 조금 떨어진 높은 곳에 올라 주변을 살펴봅니다. 동서남북 방위를 살피고 이곳이 평지인지, 산지인지, 주변에 강이 있는지, 사람들이 쉽게 올 수 있는 곳인지, 쉽게 구할 수 있는 자원은 무엇인지를 파악합니다. 


이런 훈련은 고대인의 삶을 복원하는 데 정말 중요합니다. 유적이 발견된 장소의 지리적 조건에 따라 이 유적을 왜 만들었고 무엇을 했는지 추측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늑도는 한반도 남해안의 섬으로, 지도에서 보면 중국과 일본의 중간 쯤에 위치해 배를 타고 건너오기에 적합합니다. 섬이지만 육지와 가까워 본토와 교류하기도 쉽습니다.


섬 안에는 남쪽에 해발고도 90m의 ‘큰섬산’이, 북쪽에 해발고도 60m의 ‘작은섬산’이 있습니다. 두 산 사이의 평지가 넓지는 않지만, 섬 남쪽의 넓은 암초 지대에서 다양한 식용 조개류가 자랍니다. 주변 다른 섬들에 비해 지하수도 풍부해서 사람이 살기에 어려움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육지와 늑도 사이를 흐르는 빠른 조류로, 늑도 동쪽과 서쪽의 만에 배를 대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


중국과 일본의 중간이라는 위치, 물과 음식을 구하기 쉬운 조건, 먼바다에서 접근하기에 편하고 배를 대기에도 좋은 이점, 여기에 유적에서 발견된 많은 외래 유물까지. 고고학자들은 이런 증거를 통해 2000년 전 늑도가 여러 문명의 사람들이 거쳐간 국제 항구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한반도는 물론, 가깝게는 일본과 중국, 멀게는 동남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이 늑도를 오가며 다양한 물건과 문화를 주고받은 겁니다 그 교류의 영향은 우리나라에서 찾기 힘든 개의 공동묘지나 개오지 부장품같은 흔적으로 남았습니다. 


이국적인 공간인 늑도에서의 삶은 어땠을까요? 늑도에는 지금도 사람들이 살고 있어 섬의 동쪽 일부만 발굴됐을 뿐입니다. 늑도는 2000년 전 바닷사람들의 삶을 간직한 채 여전히 잠들어 있습니다.(연재 마침)

 

※고화질 이미지는 아래 어린이과학동아 링크에서 확인하세요

 

 

 

※관련기사 어린이과학동아 6호(3.15호) [Go!Go!고고학자] 늑도의 특이한 유물들, 어디서 왔을까?

 

※필자소개

고은별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에서 고고학을 공부했다. 시흥 오이도 유적, 구리 아차산 4보루 유적, 연천 무등리 유적 등 중부 지역의 고고학 유적 발굴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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