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N사피엔스] 기체화학과 플로기스톤

2020.03.19 15:00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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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은 아마도 아들에게 자신의 포도원 어딘가에 금을 묻어두었노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아들은 땅을 파서 금을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포도뿌리를 덮고 있던 흙무더기를 헤쳐 놓아 풍성한 포도수확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이다. 금을 만들고자 노력했던 사람들은 여러 가지 유용한 발명과 유익한 실험들을 가져다줬다.”

 

파라켈수스가 사망한지 20년 뒤에 태어난 프랜시스 베이컨이 연금술을 평가하며 비유적으로 했던 말이다. 화학과 연금술의 관계, 또는 연금술이 근대 화학의 발달에 끼친 영향을 가장 적절하게 비유한 말이지 않을까 싶다. 연금술이 근대화학의 탄생에 기여한 바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다양한 물질을 연구하고 다루는 계기가 됐다. 이 과정에서 알코올, 아세트산, 에테르, 질산, 황산 등을 알게 되었다. 둘째, 수많은 실험도구를 발명하고 개량했다. 도가니, 천칭, 증류기, 플라스크, 시약병 등이 그 결과물이다. 셋째, 물질을 다루는 실험기술도 좋아졌다. 증발, 증류, 침전 등 화학실험의 기본기술들이 개발됏다. 


연금술과의 결별을 선언한 최초의 과학자는 영국의 로버트 보일이었다. 보일은 1661년에 쓴 《회의적인 화학자》에서 케미스트리(chemistry)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했다. 연금술(alchemy)에서 화학으로 첫발을 내디딘 셈이다. 보일은 아리스토텔레스와 파라켈수스를 비판하며 새로이 원소 개념을 도입했다.

 

로버트 보일(1627~1691)
로버트 보일(1627~1691)

원소는 가장 원초적인 물질로서 두 원소가 결합해 새로운 화합물을 만들고, 이는 다시 원래 원소들로 나누어질 수 있다. 근대적인 원소의 개념과 아주 비슷하다. 보일의 아이디어는 화학의 가장 기본인 결합과 분리의 원리를 말하고 있다. 보일의 가장 유명한 업적은 기체의 부피와 압력에 관한 보일의 법칙이다. 즉, 온도가 일정할 때 기체의 부피는 압력에 반비례한다. 또는 일정한 온도에서 기체의 부피와 압력의 곱은 항상 일정하다. 보일의 법칙은 기체의 성질에 관한 가장 중요하면서도 기본이 되는 정리이다. 


보일이 활동하던 시대에는 진공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갈릴레오의 제자였던 이탈리아의 토리첼리는 수은을 가득 채운 유리관을 수은이 담긴 그릇에 거꾸로 세우는 실험을 했다(1643년). 유리관 속의 수은은 중력 때문에 수은이 담긴 그릇으로 흘러나오지만 대기압이 그릇의 수은에 작용해서 유리관의 모든 수은이 빠져나오지 않고 약 76cm의 높이를 유지한다. 유리관 속의 그 이상의 공간은 아무 것도 없이 비어 있다. 즉 진공의 존재를 확인한 것이다. 독일에서는 게리케가 공기펌프를 만들어 진공실험을 했다. 게리케는 금속으로 만든 지름 40cm의 두 반구를 합친 뒤 공기펌프를 이용해 그 안의 공기를 빼냈다. 이렇게 합쳐진 두 반구를 다시 떼어내기 위해 말 8마리가 서로 양쪽에서 잡아 당겨야만 했다. 보일은 그의 조수였던 유명한 훅과 함께 공기펌프를 만들어서 공기와 진공, 연소, 호흡 등의 문제를 연구했다. 

 

연금술과 화학의 경계에서 중요한 주제 중 하나는 연소 문제였다. 나무에는 불이 잘 붙는데 돌이나 금속에는 왜 불이 잘 붙지 않을까? 연금술사가 아니라도 일상에서 누구나 궁금증을 가질 만한 문제이다. 보일은 진공 상태에서 동물이 죽고 촛불도 꺼진다는 점에 착안해 호흡과 연소는 같은 반응일 것이라 생각했다. 

 

보일의 첫번째 진공펌프. 위키피디아 제공
보일의 첫번째 진공펌프. 위키피디아 제공

 

자비르는 황-수은설을 제기했고 파라켈수스는 3원리설에서 황의 원리를 소개했듯이 연금술에서 불은 황과 관계가 있다. 지옥의 불구덩이하면 유황이 즉시 떠오르듯 황은 불의 원소이다. 독일의 연금술사 베허는 파라켈수스의 3원리설을 4원소 중의 하나인 흙에 적용해 흙을 3원리에 따라 분류했다. 즉, 염의 원리가 작동하는 테라 라피다, 황의 원리가 작동하는 테라 핑귀스, 그리고 수은의 원리가 작동하는 테라 메르쿠리알리스가 있다. 쉽게 말해 딱딱한 흙, 기름기 있는 흙, 유동적인 흙이라는 말이다. 베허는 테라 핑귀스, 즉 기름기 있는 흙이 연소할 때 방출된다고 생각했다. 베허의 제자였던 슈탈은 스승의 이론을 이어받아 좀 더 그럴듯하게 포장했다. 슈탈은 테라 핑귀스에 플로지스톤(phlogiston)이라는 아주 멋진 이름을 붙였다. 그리스 말로 플록스(phlox)는 불꽃이라는 뜻이다. 이로써 연소에 관한 ‘아주 정교한 잘못된 이론’이 성립되었다. 과학의 역사에는 잘못된 이론이 너무나 많다. 지금 우리가 옳다고 믿는 이론들 중에서 몇몇은 훗날 잘못된 이론으로 밝혀질지도 모른다. 잘못된, 또는 틀린 이론이라고 해서 그냥 무시하거나 지나쳐 봐서는 안 된다. 그 역사적 맥락이나 시대적인 한계까지 함께 고려하면 결과로서의 과학이 아니라 과정으로서의 과학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재미있게 살펴볼 수 있다. 


플로지스톤은 한 마디로 ‘연소 입자’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자연 현상을 입자로 설명하려는 이런 시도는 뉴턴주의의 영향이다. 플로지스톤으로 연소현상을 설명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어떤 물질에 플로지스톤이 많으면 불에 잘 탄다. 왜냐하면 플로지스톤은 연소입자이니까. 나무에는 플로지스톤이 많다. 나무에 불이 붙으면 나무속의 플로지스톤이 빠져나간다. 연소, 즉 불에 탄다는 것은 어떤 물질에서 플로지스톤이 빠져나가는 현상이다. 돌이나 금속에는 플로지스톤이 별로 없다. 그래서 잘 안 탄다. 그러나 플로지스톤이 많이 함유된 숯을 광석과 함께 넣고 태우면 숯의 플로지스톤이 광석으로 옮겨 가 금속이 생긴다(야금). 얼마나 간단하고 훌륭한 설명인가.

 

 

위키미디어 제공
위키미디어 제공

플로지스톤 이론에도 약점은 있었다. 나무든 금속이든 뭔가를 태우면 그 속의 플로지스톤이 빠져나간다. 그렇다면 연소 이후에는 원래 물질의 질량이 줄어들 것이다. 그런데 금속을 태우고 남은 재의 질량을 재어봤더니 오히려 질량이 늘어난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과학자들은 어떻게 대처할까? 보통 사람들이 과학에 대해 갖고 있는 심상은 베이컨 식의 귀납주의이다. 귀납주의의 전형적인 성공사례인 케플러의 경우를 떠올려 보자. 편견 없이 정밀한 실험으로 연소 이후 금속의 질량이 늘어났다는 것을 확인했다면 그 결과를 믿고 플로지스톤 이론을 폐기했어야 한다. 그러나 여러 차례 말했듯이 과학의 역사에서 이런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슈탈의 입장에서 어떻게 플로지스톤 이론을 방어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곤 한다. 과학에서는 이런 사고가 중요하다. 제한된 조건 속에서 돌파구를 찾는 것. 우리는 지금까지 정해진 정답만을 찾는 교육에 익숙하다. 하지만 현실에서 직면하는 문제는 대부분 정해진 정답이 없다. 과학도 물론 마찬가지이다. 우리에게 창의력이 부족한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지 않을까? 플로지스톤 이론이 결과적으로 옳으냐 그르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연소이론이 발전해온 흐름과 맥락이다. 그게 과정으로서의 과학을 배우는 방법이다. 결과만 배운다면 과학도 흔히 말하는 ‘단순암기과목’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플로지스톤 옹호론자들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플로지스톤에 두 가지 종류가 있어서 한 종류는 양의 질량을 가졌고 다른 하나는 음의 질량을 가졌다는 것이다. 금속에 함유된 플로지스톤은 당연히 음의 질량을 가졌을 것이다. 이렇게 설정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학생들은 내 말에 곳곳에서 피식거린다. 실망과 원성의 탄식이 나오기도 한다. 역시나 과학이 발달하지 못한 옛날 사람들의 어리석은 편법이라는 표정이 역력하다. 


20세기 초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폴 디랙이라는 천재적인 물리학자가 자신의 이름이 붙은 ‘디랙 방정식’을 만들었을 때 그 방정식에서 이상한 풀이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디랙은 그 이상한 풀이를 음의 에너지를 가진 입자로 해석했다. 나중에서야 음의 에너지를 가진 입자가 아니라 전기전하가 반대인 입자의 풀이임을 알게 되었다. 그 결과 반입자의 존재를 예측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무턱대고 음의 질량을 가진 플로지스톤이라는 해석을 마냥 비웃을 일이 아니다. 보일조차도 연소 과정에서 ‘불의 입자’가 금속 안으로 들어가서 질량이 증가했다고 해석했다.


이렇게 플로지스톤 이론은 18세기 말까지 100년을 풍미했다.


여기서 두 가지 주목할 사항이 있다. 첫째, 정량분석의 중요성이다. 반응 전후에 질량이 늘었는지 줄었는지, 그 정도는 얼마인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플로지스톤에 대해 더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높은 정밀도의 정량분석이 일찍이 가능했다면 플로지스톤 이론의 수명이 좀 더 짧아졌을지도 모른다. 둘째, 기체 연구의 필요성이다. 연소반응은 어쨌든 그 과정에서 기체를 수반하므로 기체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증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18세기에 접어들면서 다양한 기체들이 속속 발견되었고 수상치환법 등 기체를 포집하는 방법들도 개발되었다. 


이 두 가지 사항에서 큰 획을 그은 사람이 스코틀랜드 출신의 조지프 블랙(1728~1799년)이다. 블랙은 글래스고 대학에서 부친의 뜻에 따라 의과대학에 들어가서 의사시험을 통과한 뒤에는 에든버러에서 박사과정을 밟았다. 이때 블랙은 석회석(CaCO3)을 가열하면 생석회(CaO)가 만들어지고 질량이 줄어든다는 점에 착안해 석회석에 고정돼 있던 어떤 공기(‘고정공기’)가 빠져나왔다고 생각했다. 이 공기가 바로 이산화탄소이다. 블랙은 개량천칭을 사용해 실험의 모든 단계에서 질량을 측정했다. 질량측정이나 시약의 순도에 무척 엄격했던 블랙은 정량화학의 창시자로 추앙받는다. 

 

조지프 블랙(1728~1799)
조지프 블랙(1728~1799)

과학에서 정량분석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정량분석이 중요한 이유는 어떤 현상을 객관적으로 기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쉬운 예를 들자면 요즘 아주 인기 있는 예능 방송 프로그램인 ‘골목식당’이 있다. 여기서 백종원이 언제나 강조하는 것이 바로 조리법의 계량화이다. 물은 적당량, 소금은 조금, 설탕은 많이 넣었다고 하면 ‘적당량’과 ‘조금’과 ‘많이’가 어느 정도인지 다른 사람은 절대로 알 수가 없다. 여기서 우리는 객관적 지표로서의 정량화가 재현가능성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임을 알 수 있다. ‘골목식당’에서 백종원이 항상 같은 맛을 유지하려면 계량화를 해야 한다고 말한 것과 똑같은 이유이다. 영국에서 블랙이 실험한 내용을 바다 건너 프랑스의 누군가가 재현해서 검증해 보려면 블랙이 어떤 식으로 실험했는지 그 과정이 정량적으로 자세히 기록돼 있어야 한다. 실험결과의 재현과 검증은 과학의 발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재현가능성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한 언명은 과학이라 부르기 어렵다. 그 출발점이 정량화이다. 조리법의 계량화로 가장 크게 성공한 업체가 바로 맥도날드이다. 덕분에 맥도날드는 세계 어디서나 똑같은 맛을 내는 햄버거를 공장처럼 찍어낼 수 있었다. 아마 경제적으로는 비용도 크게 절감했을 것이다. 물론 공장식으로 찍어내는 햄버거가 최상의 맛을 내지는 못할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일정 수준의 맛은 언제 어디서나 최소한으로 유지할 수 있다. 백종원의 레시피가 성공한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다.


블랙은 이산화탄소의 성질을 연구했고 이 모든 성과를 논문으로 작성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블랙은 또한 얼음이 녹아 물이 되는 데에 필요한 열인 잠열과, 특정양의 물질을 특정 온도로 올리는 데에 필요한 열량인 비열의 개념을 도입하기도 했다. 


블랙의 연구 덕분에 엠페도클레스 이래 단일한 물질로 인식되었던 공기가 사실은 다른 여러 기체(또는 여러 종류의 공기)의 혼합물이라는 단서를 확보하게 되었다. 실제로 블랙의 제자였던 다니엘 러더퍼드는 질소를 발견했고(1772년), 헨리 캐번디시는 수소를 발견했다(1766년). 하지만 캐번디시나 러더퍼드도 여전히 플로지스톤의 패러다임 속에서 살았기 때문에 자신들이 발견한 결과물도 플로지스톤의 이론 속에서 이해했다. 특히 수소는 불에 매우 잘 타니까 캐번디시는 자신이 플로지스톤을 추출했다고 여겼다.


조금 긴 호흡으로 보자면 보일의 법칙이 나온 게 1660년인데 각종 기체를 발견하며 기체화학이 번성한 것은 그로부터 약 100년이 지난 18세기였다.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린 이유는 통제 가능한 열원 때문이었다. 


화학반응에는 대체로 열이 필요하다. 특히 정량적인 실험을 하려면 열량을 섬세하게 조절할 수 있어야 하고 온도의 변화도 정확하게 알 수 있어야 한다. 즉, 열과 관련된 기술적 진보가 뒷받침이 돼야 근대과학으로서의 화학이 탄생할 수 있었다. 18세기에는 그럴 여건이 마련되었다. 누구나 잘 알듯이 18세기의 영국은 산업혁명기였다. 산업혁명하면 떠오르는 인물, 증기기관을 혁신적으로 개량한 제임스 와트는 조지프 블랙의 절친한 친구였다.


그러나 이 모든 성과에도 불구하고 ‘화학혁명’이라 부를 만한 근본적인 변화는 아직 일어나지 못했다. 여전히 플로지스톤 이론이 연소와 공기를 지배하고 있었다. 이 틀이 깨지기 시작한 것은 또 다른 형태의 공기, 즉 산소가 필요했다.

 

※참고자료 

임경순, 정원, 《과학사의 이해》, 다산출판사.
김성근, 《교양으로 읽는 서양과학사》, 안티쿠스.
엄재국, 이광, 홍영석, 《서양중심의 세계과학사》, 자유아카데미.
찰스 길리스피, 《객관성의 칼날》(이필렬 옮김), 새물결.
존 그리빈,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과학》(강윤재, 김옥진 옮김), 들녘

 

※필자소개 

이종필 입자이론 물리학자. 건국대 상허교양대학에서 교양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신의 입자를 찾아서》,《대통령을 위한 과학에세이》,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아주 특별한 상대성이론 강의》, 《사이언스 브런치》,《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이론》을 썼고 《최종이론의 꿈》, 《블랙홀 전쟁》, 《물리의 정석》 을 옮겼다. 한국일보에 《이종필의 제5원소》를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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