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환자 항염증제 ‘이부프로펜’ 복용 두고 의료계 논쟁 중

2020.03.18 17:26
올리비에 베랑 프랑스 보건부 장관 트위터 캡처.
올리비에 베랑 프랑스 보건부 장관 트위터 캡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코로나19) 환자의 항염증제 ‘이부프로펜’ 복용을 놓고 과학계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이부프로펜 복용이 코로나19 바이러스 증식을 강화할 수 있다는 프랑스 보건 장관의 주장으로 시작한 이 논란에 일부 전문가들은 아직 이를 뒷받침하는 데이터 근거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열이 떨어지면 면역시스템이 더 저하된다는 점에서 코로나19 환자가 지속적으로 항염증제나 해열진통제를 복용하는 것은 회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와 논란이 커지는 상황이다. 

 

● “이부프로펜 복용하면 코로나바이러스 증식 기회 늘어나”

 

올리비에 베랑 프랑스 보건부 장관은 지난 14일 자신의 트위터에 ‘이부프로펜’과 같은 항염증제 복용이 코로나19 환자의 병세를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글을 올렸다. 소염, 진통, 해열 작용을 하는 이부프로펜은 아스피린과 함께 대표적인 비스테로이드성 항염증제다. 베랑 장관은 이부프로펜 등 비스테로이드성 항염증제 대신 해열진통제인 아세트아미노펜을 복용할 것을 권고했다. 

 

비스테로이드 항염증제 계열인 이부프로펜은 해열제 등으로 널리 쓰이는 부루펜과 이지엔, 애드빌에 포함돼 있다. 이부프로펜에서 부작용을 일으키는 특정 물질만 제거한 약물은 덱시부프로펜이다. 해열진통제인 아세트아미노펜은 타이레놀과 어린이용인 챔프 등으로 유명하다. 국내에서 잘 알려진 해열진통제인 게보린도 아세트아미노펜에 다른 성분을 일부 섞은 약이다.

 

베랑 장관 발언의 근거는 이부프로펜과 같은 비스테로이드 항염증제를 복용하면 코로나19 바이러스와 결합하는 세포 표면 표적 단백질 ACE2 수용체의 수를 늘려 바이러스 증식 기회가 확대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논문이다. 이 논문은 지난 11일 의학학술지 ‘랜싯 호흡기의학’에 발표됐다. 

 

논문 저자인 마이클 로스 스위스 바젤대 의대 교수 연구팀은 이부프로펜이 코로나19가 인체 세포에 감염될 때 사용하는 ACE2 수용체의 과다 발현을 유발하는 원인 중 하나로 지목했다. 세포 표면 표적 단백질인 ACE2 수용체는 코로나19의 특이적인 ‘스파이크 단백질’이 숙주를 감염시킬 때 결합하는 방식으로 세포 내로 침투한다. ACE2 수용체가 과다 발현하면 바이러스가 더욱 증식될 가능성이 커지는 셈이다.  

 

의학학술지 ‘네이처 리뷰 심장학’은 이달 5일 1형 및 2형 당뇨병 환자, 고혈압환자가 주로 복용하는 ‘안지오텐신2 수용체 차단제(ARB)’가 ACE2 수용체의 과다 발현을 유발해 당뇨나 혈압 등 기저질환자가 코로나19 감염시 복용할 경우 심혈관계 손상은 물론 중증환자로 분류될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결과도 발표됐다.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을 찾은 관람객이 5일(현지시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 마스크를 쓴 채 프랑스 신고전주의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의 그림 옆을 지나고 있다. 하지만 프랑스는 14일 최소한의 상점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상점과 영화관 등 다중이용시설의 운영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연합뉴스 제공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을 찾은 관람객이 5일(현지시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 마스크를 쓴 채 프랑스 신고전주의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의 그림 옆을 지나고 있다. 하지만 프랑스는 14일 최소한의 상점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상점과 영화관 등 다중이용시설의 운영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연합뉴스 제공

● “근거 없지만 지속적인 항염증제·해열진통제 복용은 좋지 않아”

 

전문가들은 프랑스 보건 장관의 주장을 명확히 뒷받침하는 연구는 아직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미국 스탠퍼드대 글로벌보건혁신센터 소장인 미첼 배리 박사는 17일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프랑스 보건 장관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데이터는 아직 없다”며 “코로나19 환자가 일시적인 이부프로펜 복용을 피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비스테로이드 항염증제와 해열진통제를 복용한 환자가 열이 떨어지면 감염에 대한 인체의 방어능력도 함께 저하된다는 게 더 큰 우려로 보고 있다. 다양한 바이러스나 기타 세균에 감염된 환자들이 약물로 열을 낮추면 증상이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다는 기존 연구결과가 있으며 이는 곧 장기간 감염에 시달릴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미국 메릴랜드대 의과대학 마이런 레빈 박사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들의 경우 열을 낮추게 되면 더 오랜 시간 동안 감염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고 밝혔다. 아세트아미노펜과 같은 해열제가 코로나19 환자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가능성이 이론적으로는 존재한다는 의미다. 

 

인간의 면역체계는 통상 체온이 높을 때 더 잘 작동하고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등 병원체를 보다 효과적으로 방어한다. 지금까진 진행된 동물, 파충류, 인간에 대한 연구에서 열이 감염 퇴치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분석됐다. 체온이 1도 오르면 신진대사 속도가 12% 증가하는데 이는 면역체계 활성화로 이어진다는 연구도 있다. 독감에 걸렸을 때 열이 나는 것은 바이러스와 싸우기 위한 반응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다만 코로나19 환자의 고열이 지속될 경우 환자 컨디션이 급격히 저하된다는 점을 감안해 이부프로펜이나 아세트아미노펜을 일시적으로 복용할 수는 있지만 지속 복용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한다. 미국 브라운대의 감염병 전문가인 마게리트 닐 박사는 “한 번 정도 고열을 낮추기 위해 복용하는 것을 틀렸다고는 할 수 없다”면서도 “장기간 계속 복용하는 것은 좋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보건당국 “항염증제 복용 논란 현재 조사중”

 

독일 통신사 DPA에 따르면, 크리스티안 린드메이어 세계보건기구(WHO) 대변인은 17일 스위스 제네바 WHO 본부에서 한 기자회견에서 "코로나19 환자에게 이부프로펜 복용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보고가 있어 현재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며 "만약 코로나19 감염이 의심된다면 의사의 조언 없이 이부프로펜을 복용하지 말고 대신 파라세타몰을 복용하길 권장한다"고 말했다.

 

린드메이어 대변인은 "아직 항염증약이 치명률을 높인다는 연관관계를 연구한 최근 연구는 없다. 전문가들이 현재 문제를 조사 중이다"라고 말했다. 아직 의학적 증거가 충분하지는 않고 조사중임에도 이런 의견을 밝힌 것은 혹시 존재할지 모를 부작용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도 18일 오후 정례 브리핑에서 이부프로펜 사용 관련 진료지침에 대한 추가적인 권고가 필요한지 전문 의료진의 판단을 받겠다고 밝혔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인플루엔자나 다른 바이러스성 감염증에도 아스피린 등 소염제를 사용하지 않도록 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일 것으로 본다”며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임상위원회를 통해 내용을 확인하고 추가 조치 사항이 필요한지 검토해 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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