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바이오 벤처가 이룩한 ‘진단 강국’의 안타까운 현실

2020.03.18 14:00
서울 금천구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진단시약 제조업체인 코젠바이오텍에서 연구원들이 진단시약 실험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서울 금천구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진단시약 제조업체인 코젠바이오텍에서 연구원들이 진단시약 실험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세계보건기구(WHO)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코로나19)의 팬데믹(대유행)을 선언하면서 전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이탈리아는 모든 국민의 이동을 금지시켰고, 미국도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길거리가 텅 비고, 상점의 생필품이 동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많은 국가가 문을 꽁꽁 닫아거는 ‘투박한’ 정책에 매달리고 있다. 국경을 완전히 차단해버린 나라도 있다. 과연 자가진단 앱에 의존하는 우리의 특별입국 조치가 정말 ‘매끄러운’ 정책인지는 확실치 않다.

 

기술만큼 중요한 도전 정신

 

우리가 코로나19의 ‘진단 강국’으로 우뚝 서게 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40여 일 만에 27만 건의 검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도 뒤늦게 우리의 ‘드라이브스루’ 검사소를 흉내 내려고 안간 힘을 쓰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의 탁월한 진단 능력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도 아니고, 정부의 요술 방망이가 만들어낸 것도 아니다. 


우리의 기적은 ‘코젠바이오텍’이라는 바이오 벤처 기업에서 시작됐다. 물론 탁월한 바이오 기술이 핵심이었다. 그렇다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자칫 기업을 통째로 날려버릴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도전하는 결단력이 훨씬 더 중요했다. 기술력을 갖춘 미국의 수많은 스타트업들도 못해낸 일이다.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전국에 설치해놓은 저용량(low throughput) PCR(중합효소 연쇄반응) 기기가 걸림돌이었다.


코젠바이오텍이 ‘RT-PCR(실시간 중합효소 연쇄반응)'을 이용해서 16만 원의 비용으로 6시간 만에 사스-CoV-2 감염 여부를 가려내는 진단 키트의 긴급사용승은일 받은 것은 2월 4일이었다. 중국의 폭증이 시작되고 정확하게 보름 만이었고, 대구의 31번 감염자가 등장하기 보름 전의 일이었다.

 

참고로 미국의 판(汎)코로나바이러스 키트는 400만 원의 비용과 24시간의 시간이 걸린다. 우리의 싸고 빠른 진단 키트 덕분에 우리 사회가 지금까지 절약한 비용이 1조 원을 넘는다. 과학기술이 아무 성과도 내지 못했다고 비판하던 정치인과 정책 전문가들이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현재 코젠바이오텍을 비롯한 씨젠·솔젠트·SD바이오센서 등 4개사가 일주일에 100만 명을 진단할 수 있는 키트를 생산하고 있다. 코로나19에 떨고 있는 유럽과 미국도 충분히 도와줄 수 있는 물량이다. 이제는 1시간 45분 만에 진단을 끝내는 키트도 개발했다고 한다. 미국 FDA는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 뒤늦게 로슈가 개발한 RT-PCR 키트의 사용을 허가했다.

 

일본에게도 진단 키트를 제공해야

 

울 송파구 씨젠 본사에서 천종윤(왼쪽) 씨젠 대표가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게 제품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울 송파구 씨젠 본사에서 천종윤(왼쪽) 씨젠 대표가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에게 제품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코젠바이텍을 비롯한 바이오 벤처들이 이룩한 성과의 가치를 우리에게 알려준 것은 미국의 CNN이었다. 그동안 국내 언론에 소개되었던 작은 단신들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정부도 우리 진단 키트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과기부·중기부 장관들이 의례적으로 씨젠을 방문해 현장 연구자들을 격려했을 뿐이다. 오히려 과도한 진단이 우리 현실을 왜곡해서 문제라는 것이 우리 정치인들의 부끄러운 현실 인식이다.


미국에도 우리의 진단 키트에 대한 정보가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 지난 11일에 개최된 미국 하원 관리개혁위원회의 청문회에서 드러난 사실이다. 미국 FDA는 공화당의 마크 그린 의원에게 우리의 RT-PCR 키트 대신 상용화에 실패해버린 엉뚱한 항체 검사 키트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로슈가 개발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한국의 진단 키트는 대용량(high throughput) 플랫폼이 필요하기 때문에 미국에는 맞지 않는다’는 로버트 레드필드 CDC 소장의 답변도 황당했다.


국무총리와 외교부 장관이 어설픈 ‘무감염 인증제’ 대신 우리의 RT-PCR 키트를 국제적으로 보급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우리의 진단 키트가 코로나19의 해결에 가장 중요한 기술이라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 물론 경제적 이익도 챙겨야 한다. 


아직도 판코로나바이러스 키트에 매달리고 있는 일본에게도 우리의 최첨단 진단 키트를 보내주겠다는 제안을 해야 한다. 우리의 드라이브스루에 대한 일본 후생노동성의 오해는 안타까운 것이다. 드라이브스루의 핵심은 의사의 진찰이 아니라 대규모 진단 능력이다. 오히려 진찰 과정에서 감염이 확산될 수도 있다. 우리의 드라이브스루에서도 누구에게나 검사를 해주는 것은 아니다. 미국도 구글을 통해 자가진단을 근거로 검사 대상자를 선정하는 시스템의 개발에 착수했다.
  
정부의 방역 정책은 실망스러웠다

 

정부가 적극적인 감염원 차단 대신 공항의 열화상 카메라를 선택해버린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다. 정부 입장에서는 국민 안전이 최우선 과제가 아니었다. 대남병원과 신천지라는 뜻밖의 돌발변수도 나타났다. 결국 2월 20일부터 폭증하기 시작한 감염이 최악으로 치닫고 말았다. 우리 국민의 입국을 반기지 않는 나라가 130개국을 훌쩍 넘어섰다. 세계 최고의 보건·의료 환경을 갖추고 있다는 우리에게는 몹시 부끄러운 일이다.


다른 나라가 부러워하고 있는 것은 정부·여당의 어설픈 방역 대책이 아니다. 정부의 잘못된 선택을 원망하는 국민을 탓할 상황이 절대 아니다. 오히려 정부·여당은 그동안 쏟아냈던 황당한 망언·억지·궤변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아무 치료도 받지 못한 감염자의 사망, 확진자 동선의 무차별 폭로에 의한 인권 침해, 사망자 가족에게 강요한 비인도적인 장례에 대한 정부·여당의 진지한 사과와 반성이 필요하다. 그런데 아직도 ‘방역의 컨트롤타워인 질병관리본부를 믿으라’는 정치인이나 장관은 찾아볼 수 없다.


전문가들의 역할도 중요하다. 정부의 방역 대책에 대한 적극적인 비판과 정치인들의 헛소리에 대한 날카로운 반론이 반드시 필요하다. 물론 공포와 두려움에 떨고 있는 국민들에게 안심하고 노력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대단을 제시해주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의사협회의 마스크 사용법 권고안은 처음부터 실망스러웠다. 호흡기 증상이 없이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일반인에게 마스크 착용을 권하지 않는다는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 CDC의 권고는 함부로 무시하지 말았어야 한다. 거두절미하고 ‘마스크 쓰세요’라고 우기는 것은 전문가다운 권고안이 아니었다. 잠 잘 때와 식사 중에는 마스크 착용이 불가능하다. 길을 걸을 때는 마스크를 쓰고, 카페에서 친구와 마주 앉아 대화할 때는 마스크를 벗는 황당한 상황도 막았어야 했다.


'재사용 금지’와 ‘면(綿) 마스크 금지’는 비현실적이고 지나치게 가혹한 권고다. 정부의 사회주의적 배급제 때문에 일주일에 2장의 ‘공적’ 마스크조차 구걸하기 어려운 국민들에게 퇴로를 차단시켜버린 셈이다. 재사용을 하지 않으면 일주일에 닷새를 마스크 없이 지내야 한다. 사용 후 버려지는 마스크에 들어있는 폴리프로필렌 부직포에 의한 환경오염도 외면할 수 없다. KF94의 착용이 생각처럼 쉬운 것도 아니다. 얼굴에 제대로 밀착시킨 상태에서는 20분을 견디기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인 경험이다. 호흡기가 약한 사람에게는 오히려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면 마스크의 효과는 연구해보지 않았으니 착용하지 말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의사협회가 뒤늦게 양보해준 KF80은 어차피 시장에서 구할 수 없는 것이다. 마스크 표면의 바이러스를 걱정해야 한다면 입고 있던 옷도 걱정해야 한다. 권고의 주체를 알 수 없는 ‘권고되지 않는다’와 같은 유체이탈적 표현은 의사협회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남을 지켜주는 일’을 강조하는 새로운 방역 패러다임을 더욱 분명하게 강조해주었어야 한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사람을 감염원으로 인식해서 전전긍긍하는 현실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 임상실험에 1년 이상 걸리는 백신과 치료약의 무분별한 개발 소식에 대한 경고도 필요하다. 사스와 메르스도 아직 백신과 치료제가 없는데 코로나19에만 기적을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아무 소용이 없는 분무 소독에 대한 의사협회의 의견도 필요하다. 무분별한 분무 소독이 오히려 국민의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대한화학회 탄소문화원 원장을 맡고 있다.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교육‧에너지‧환경‧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5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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