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동물원 생활]스라소니가 동물원 마스코트가 된 사연

2020.03.07 06:00
2019년 7월, 청주동물원에서 촬영한 유라와 새끼 두 마리.청주동물원 제공
2019년 7월, 청주동물원에서 촬영한 유라와 새끼 두 마리. 청주동물원 제공

동물권을 존중하는 사회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동물원의 존폐를 두고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대부분의 사회 문제가 그렇듯 '동물원의 존폐' 결정도 '예스(Yes)' 아니면 '노(No)'라는 이분법적 사고로 해답을 찾기 어렵다. 지난해 9월 개봉한 영화 '동물, 원'은 동물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인간과 동물의 공존에 대해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 수작으로 호평을 받았다. 이달부터 매월 영화 '동물, 원'에 출연한 청주동물원 김정호 수의사가 직접 들려주는 동물원 이야기를 싣는다. 동물들과 함께 사는 수의사가 직접 쓰는 동물원과 멸종위기 동물에 대한 기록이다.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동물원의 속사정을 들어보고 앞으로 동물원을 어떤 모습으로 바꾸어야 할지 함께 고민하는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 

 

청주동물원의 마스코트 '스라소니'

 

청주동물원을 돌아다녀본 사람이라면 이 동물원 마스코트가 무엇인지 대번에 알아볼 수 있다. 관리자들이 타고 다니는 전기 카트의 앞에 커다랗게 '스라소니'가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청주동물원 전기 카트에 그려진 스라소니.  김정호 청주동물원 진료사육팀장 제공
청주동물원 전기 카트에 그려진 스라소니. 김정호 청주동물원 진료사육팀장 제공

스라소니는 고양이과 포유류 동물로 전 세계에 유라시안, 캐나다, 이베리안, 밥캣 총 4종이 살고 있다. 그중 가장 몸집이 큰 유라시안 스라소니는 한반도에도 살았단 기록이 남아있다. 안타깝게도 남한에서는 스라소니를 발견했다는 공식적인 기록은 없다. 하지만 1993년 북한 함경북도 동해안에 있는 어랑군에서 발견됐다는 공식 기록이 있다. 그렇다면 어째서 남한에서 찾기 힘든 이 귀한 동물이 동물원의 마스코트가 됐을까? 그 이유는 2019년 봄 청주동물원에서 일어난 경사에 있다. 

 

산 넘어 산, 스라소니 번식 대작전

 

2018년까지 청주동물원에는 모두 5마리의 스라소니가 살고 있었다. 봄이(5살), 유라(4살), 시안(4살), 가을(4살), 스라(9살)이다. 스라소니는 환경부에서 지정한 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이고 지난 2016년 서울대공원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국내 번식에 성공한 터라 동물원 식구들은 스라소니들 사이에서 새끼가 태어나길 한마음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청주동물원의 스라소니 거처가 동물원에서 가장 붐비는 입구, 매점 근처에 있는 게 문제였다. 소리에 예민한 스라소니에게 시끌벅적한 입구 자리는 편히 쉬기는 어려운 공간이다. 그래서 2018년 10월 29일 일본원숭이사가 있던 동물원 안쪽 자리로 스라소니를 옮기고 대신 소리에 덜 예민한 일본원숭이를 스라소니가 살던 자리로 옮기는 대규모 이사를 감행하기도 했다.

 

대형 고양잇과 동물사를 옮길 땐 블로우건 마취는 필수다. 사진은 블로우건을 불고 있는 김정호 청주동물원 진료사육팀장. 청주동물원 제공
대형 고양잇과 동물사를 옮길 땐 블로우건 마취는 필수다. 사진은 블로우건을 불고 있는 김정호 청주동물원 진료사육팀장. 청주동물원 제공

2018년 11월부터 본격적으로 스라소니들을 합사시키기 시작했다. 처음엔 암컷인 봄이와 수컷인 시안이를 합사했으나 봄이의 다리뼈가 부러지는 사고가 일어나면서 봄이 대신 암컷 유라를 시안이와 합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스라소니는 60m 밖에서 쥐가 지나가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청각이 예민한 동물이다. 둘을 합사한 뒤에도 동물원 식구들 모두 스라소니의 번식을 위해 눈치를 보곤 했다. 사육사들은 먹이를 가져다줄 때조차 사뿐사뿐 걸으며 작은 발소리에도 신경을 썼다.


2019년 4월 23일 시안과 유라가 살던 스라소니사에서 모두가 기대하던 작은 울음소리가 들렸다. 방사장에 있던 유라가 무언가를 감싸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자그마한 새끼 두 마리였다. 하지만 기쁨은 잠시였다. 무거운 하늘에서 봄비가 가늘게 내리기 시작했다. 야외 방사장에는 비가림 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자칫 새끼가 비에 젖어 체온이 떨어지면 폐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수의사와 사육사들은 급히 회의를 열고 야외 방사장에서 실내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두기로 했다. 선택은 유라가 할 일이다보니 동물원 식구들은 모두 퇴근을 미룬 채 유라를 지켜봐야만 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유라는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새끼를 한 마리씩 물어다가 실내로 옮겼다. 두 마리 모두 푹신한 지푸라기가 깔린 곳에서 꼼지락거리는 모습을 보고서야 동물원 식구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2019년 7월, 청주동물원에서 촬영한 유라와 새끼 두 마리. (사진 제공 청주동물원)
2019년 7월, 청주동물원에서 촬영한 유라와 새끼 두 마리. 청주동물원 제공

태어난 지 10개월이 된 지금, 새끼 스라소니들은 어미인 유라와 구별이 안 될 정도로 덩치가 커졌다. 하지만 행동은 여전히 어리다. 하루 중 대부분 잠을 자고 일어나면 엉키어 서로 몸싸움을 하거나 엄마 유라의 꼬리를 장난감 삼아 잡고 놓치며 장난을 친다. 새끼 중 수컷인 꿈돌이는 왕성한 식욕 탓에 어미인 유라의 몫까지 욕심을 부리기도 한다.  그럴 때 유라는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다.


스라소니들을 보고 있으면 자연은 늘 필요한 일을 준비한다는 생각이 든다. 유라가 갓 태어난 새끼들을 보호하기 위해 실내로 물어다 옮긴 일도, 새끼들이 꼬리를 잡으며 사냥 연습을 하는 것 모두 누군가가 이들 스라소니 가족에게 가르쳐 준 적 없는, 자연이 준비해 온 일일 테니까. 

 

※관련기사

어린이과학동아 5호(3월1일 발행), [슬기로운 동물원 생활] 시라소니, 동물원 마스코트가 된 사연은? 

 

※필자소개

김정호 충북대에서 멸종위기종인 삵의 마취와 보전에 관한 주제로 수의학 박사를 받았다. 청주동물원에서 학생 실습생으로 일을 시작해 현재는 진료사육팀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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