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과학이 잃어버린 자리를 되찾아야 한다

2020.03.04 14:00

 

MIT 제공
MIT 제공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최악의 재앙이다. 3월 2일 현재 코로나19 확진자가 4,212명을 넘어서버렸다. 감염이 의심되는 사람이 3만 명을 넘는다. 아직 끝을 짐작조차 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인구 10만 명 당 감염자가 8.15명으로 5.61명의 중국을 넘어섰다. 이틀 전부터 시작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중국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판데믹(대유행)을 촉발시켰다는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쓸 수도 있는 황당한 상황이다.


우리의 감염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중국으로부터의 여행객이 저절로 줄어버렸다. 중국의 어려움을 안타까워하던 정부가 머쓱해졌다. 물론 이웃을 걱정하는 인도주의도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 자신이 봉쇄 대상이 돼버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정부의 ‘감염 주도 방역’이 뒤늦게 효력을 발휘했다는 역설적인 지적도 있다. 결국 코로나19 사태는 정부가 과학을 외면해서 생긴 재앙이다. 역시 과학을 외면한 피해가 심각해지고 있는 탈원전의 어려움은 들먹이기도 힘든 형편이다.
 


과학이 보이지 않는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던 ‘우한 폐렴’, 세계보건기구(WHO)의 ‘COVID-19’, 국제바이러스명명위원회(ICTV)의 ‘SARS-CoV-2’는 뒷전으로 밀려나버렸다. 중국을 배려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을 간결한 ‘코로나19’로 바꾼 것은 청와대를 중심으로 하는 정부의 정치적 결정이었다. 뒤늦게 후베이 성을 차단하고, 위기경보를 심각으로 강화한 것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결단이었다. 방역 전문가들의 설자리는 없었다.


코로나19의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던 중국을 차단해야 한다는 질병관리본부·의사협회·감염학회의 요구는 당연하고 상식적이고 꼭 필요한 것이었다. 지금 온 국민이 국민 안전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정부의 정치적 오판에 대한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있는 셈이다. 아직도 중국 차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있지만 너무 늦어버린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감염원 차단이 방역의 첫째 원칙이라는 과학계의 원론적 주장이 설득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과학계가 정부·여당이 총선이라는 잿밥에 정신을 팔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못했고, 정치·경제·사회에서 발생하게 될 어려움에 대한 관심도 보여주지 못했다. 다른 분야 전문가들과의 긴밀하게 협조해서 정부가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강력한 설득논리를 개발했어야만 했다. 과학계가 ‘융합’의 진정한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는 뼈아픈 반성이 필요하다.

 

바이오산업의 눈부신 성과

 

2020년 1월 23일 독일 베를린의 한 실험실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연구가 진행 중인 모습이다. DPA/연합뉴스
2020년 1월 23일 독일 베를린의 한 실험실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연구가 진행 중인 모습이다. DPA/연합뉴스

그렇다고 코로나19 사태에서 과학이 아무 역할도 하지 않은 것은 절대 아니다. 지금까지 10만 명이 넘는 감염 의심자에게 바이러스 검사를 실시한 것은 온전하게 과학의 성과였다. 올림픽을 코앞에 둔 일본이 국제적 망신을 각오하면서도 크루즈선의 승객을 하선시키지 못한 것은 바이러스 검사 역량이 부족한 탓이었다. 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기술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의심자의 검체에서 핵산을 추출해서 유전자증폭기술(PCR)을 적용하는 2단계 판(汎)코로나 진단 키트는 오래 전에 상용화된 것이다. 그런데 24시간이 넘게 걸리는 검사 시간과 400만원이 넘는 검사 비용이 문제다. 그런 불편하고 비싼 검사는 미국·일본에게도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일본이 1,890명 검사에 쓴 비용은 75억 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도 445명의 검사에 17억 원을 썼을 것이다.


중국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바이러스 검사 대신 임상 진단 자료를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의 통계가 들쭉날쭉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더욱이 바이러스에서 핵산을 추출하는 시약도 동이 나버렸다. 중국의 압력으로 다국적 제약회사가 우리나라에 핵산 추출 시약의 공급을 중단했다는 소식도 있었다.


그런데 우리의 사정은 전혀 달랐다. 하루에 1만 건의 바이러스 검사를 실시한다. 심지어 햄버거 가게에서나 볼 수 있는 드라이브스루 검사도 가능하다.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직후 우리 바이오 벤처기업들이 재빠르게 개발한 코로나19 전용 진단 키트가 만들어낸 기적이다. WHO가 알려준 SARS-CoV-2의 특정 염기서열만을 집중적으로 확인해서 검사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한 단계의 ‘실시간 유전자증폭기술’(RT-PCR)은 6시간에 감염자를 가려낸다. 검사 비용도 미국의 25분의 1에 지나지 않은 16만원으로 줄었다. 지금까지 우리는 160억 원의 예산을 썼고, 3,840억 원의 예산을 절감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을 감염의 공포에서 벗어나도록 해준 것이 더욱 중요했다. 그동안의 바이오 기술에 대한 투자가 빛을 낸 놀라운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우리 벤처가 개발한 기술 때문에 우리의 감염 현실이 지나치게 과장되고 있다는 일부 정치인들의 황당한 지적은 과학계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모욕적인 억지다.

 

밖에서는 벗고, 안에서는 써야

 

24일 청주시 상당구의 한 대형마트에 시민들이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24일 청주시 상당구의 한 대형마트에 시민들이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마스크 대란은 못내 아쉬운 일이다. 정부의 행정은 절망적이었다. 매점매석과 밀수출을 단속하겠다는 긴급수급조정조치는 절망적인 전시행정이었다. 제조사와 계약도 하지 않고 밀어붙인 기재부의 마스크 공급 대책은 국민 기만적 탁상행정이었다. 마스크 대란을 두 눈으로 보면서도 중국으로 대량의 마스크를 실어 날랐던 정부와 지자체의 행태도 실망스러웠다.


방역 전문가들이 마스크 수요를 지나치게 부풀려버렸다. 바이러스가 미세먼지보다 작다는 이유로 숨 쉬기도 어려운 방역용 KF94 착용을 강요했다. 반드시 얼굴에 밀착시켜야 하고, 마스크의 표면을 만져서도 안 되고, 일회용 재활용은 절대 안 된다는 병원용 가이드라인이 소비자를 겁먹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심지어 의사협회는 거두절미하고 ‘마스크를 쓰라’고 강요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잠을 잘 때도 써야 한다는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황사용 KF80이나 방한용 면(綿) 마스크는 무용지물이라고 했다. 어쨌든 메르스 때 15%에 불과했던 마스크 착용률이 5배나 껑충 뛰어버리면서 마스크 수요가 크게 늘어난 것은 그런 홍보 덕분이었다.


의사협회가 뒤늦게라도 WHO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권고에 동의한 것은 다행이다. 현실적으로 일반인에게 병원에서의 마스크 착용 기준을 강요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WHO의 공중보건학적 권고다. 오히려 가까운 거리에서 대화를 하거나 많은 사람들과의 밀접 접촉을 피하기 어려운 지하철·버스에서 마스크를 써야 한다는 상식을 알려줬어야 한다. ‘밖에서 벗고, 안에서 쓴다’가 일반인에게 필요한 정보다. 상황이 매우 심각한 대구·경북 지역을 위해 마스크 사용량을 최대한 줄이는 배려도 필요하다.


마스크의 종류에 대한 관심도 지나쳤다. 감염 가능성이 낮은 환경의 일반인에게 바이러스를 걸러내는 기능보다는 내 입에서 튀어나가는 비말이 다른 사람에게 튀지 않도록 해주는 기능이 훨씬 더 중요하다. 더러운 손으로 코와 입을 만지지 못하도록 해주는 기능도 강조해야 한다. 방한용 면(綿) 마스크도 충분히 해낼 수 있는 기능이다. 축축해진 마스크에서 온갖 세균이 증식할 수 있는 위험성도 분명하게 알려줘야 한다. 일반인의 마스크는 잘 말리기만 하면 충분히 재활용이 가능하다.


무작정 마스크 착용을 강요할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남을 감염시키지 않도록 지켜줘라’는 WHO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적극적으로 소개해주는 노력이 필요했다. 물론 나 자신을 감염으로부터 지키는 일도 중요하다. 그러나 감염이 의심되는 사람이 스스로의 활동을 자제하는 자발적인 노력이 훨씬 더 효과적이고 중요하다는 뜻이다.


손 소독제의 수요에도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 손 소독제보다 비누와 깨끗한 물이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을 예방하는 훨씬 더 좋은 방법이다. 손으로 코와 입을 만지는 일도 자제해야 한다. 건물 외부의 보도와 화단에 대한 무차별적인 소독도 의미가 없다. 오히려 출입문 손잡이, 엘리베이터의 버튼과 벽, 실내 테이블의 표면에 대한 소독이 중요하다. 소독제에 들어있는 암모늄염이나 과산화수소수의 건강에 미치는 부작용도 걱정해야 한다.


코로나19의 재앙은 정부가 과학을 적극적으로 외면해버린 결과라는 점에서 탈원전을 쏙 빼닮았다. 빠르게 발전하는 21세기 과학기술의 시대에 과학을 거부하는 사회는 정상적인 생존이 불가능하다. 과학의 합리성이 인문·사회·문화·예술,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치에 녹아들어가도록 만들어야 한다. 모두가 과학의 가치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진심으로 향유(享有)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과학자가 더 적극적으로 노력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대한화학회 탄소문화원 원장을 맡고 있다.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교육‧에너지‧환경‧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5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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