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과기계 갈등은 묻어도 되나

2020.02.28 18:46
윤신영 기자
윤신영 기자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으라는 말은 요즘 한국 사회 구성원의 마음 상태를 가장 잘 표현하는 말 가운데 하나다. 적은 기회가 소수의 사람에게만 돌아온다. 그 때가 얼마나 지속될지, 언제 다시 찾아올지는 예측이 불가능하다. 기회를 발견한 사람은 그 문이 닫히기 전에 최대한 노를 저어 많은 이득을 취해야 이후의 삶을 살 수 있다. 각자도생의 시대에 걸맞는 생존법이다.


문제는 이 방법으로 기회를 잡을 필요가 별로 없는 주체가 이 생존법을 지나치게 활용할 때다. 자칫 진정성을 인정 받기보다는 생색내기나 시류에 편승한 치적 홍보로 오해를 받을 수 있다.

 

최근 정부 부처가 전국민의 관심사인 코로나19와 관련한 주제에 골몰하며 “우리도 이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중이다”라는 홍보를 반복하는 모습을 보면 그렇다.  홍보가 담고 있는 내용과 의도에 진정성이 있다는 사실은 의심하지는 않는다. 국가적으로 중차대한 문제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 다른 부처와 보조를 맞추기 위해 애쓴다는 사실도 믿는다. 하지만 그 때문에 다른 부분에서 꼭 해결해야만 하는 일들이 미해결된 채 시간을 보내게 된다면, 결국 코로나19와 관련한 각종 이벤트, 시류에 편승한 ‘물 들어올 때 노 젓기’ 전략에 자원을 집중하느라 다른 중요한 문제를 미뤘다는 의심을 피하기 힘들다.


지난 일주일 동안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보낸 일일브리핑에 등장한 장차관의 동정을 살펴봤다.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각종 대면회의와 행사를 줄이라는 권고에 따라 예정돼 있던 여러 행사가 취소된 가운데 장차관의 코로나19 관련 현장 방문과 간담회는 계속 이어졌다. 기존의 회의도 코로나19 관련 회의로 주제를 바꿔 실시됐다. 관련 기업이나 기관을 방문하고 의견을 청취한다는 이유였다.


28일에도 최기영 장관과 정병선 제1차관은 경기 성남시의 파스퇴르연구소를 찾아 코로나19를 치료하기 위한 약물 재창출 연구현장 간담회에 참석했다. 같은 날 장석영 제2차관은 대구경북 지역의 우체국 마스크 판매현장을 방문했다. 김성수 과기혁신본부장은 과학기술 정책자문포럼을 개최해 과기 연구현장 전문가와 코로나19 관련 상황을 진단하고 R&D 대응방향을 논의했다. 최 장관은 26일에는 코로나19 진단기업 씨젠을 현장 방문해 간담회를 가졌다. 21일에는 최 장관은 코로나19 정보통신기술(ICT) 민관합동대응반 회의를 개최했다. 같은 날 김 본부장은 감염병 분야 산학연 전문가 간담회를 만나 R&D 현황을 살폈다.


국민의 시름이 큰 감염병 연구를 독려하고 현장에 필요한 지원책을 강구하기 위해 부처의 수장이 직접 관심을 갖고 현장으로 움직인다는 것은 고무적이다. 최고위 공무원이 간다는 것은 부처 차원에서 그만큼 관심을 많이 갖고 정책적 지원 의사도 강하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 


다만 그 중요하고 극적인 일을 감염병 확산이 한창인 지금 이 순간에만 하는 게 옳은지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사스)부터 중동호흡기중후군(MERS, 메르스)까지, 감염병은 이미 몇 년에 한 번씩 한국을 전국적인 혼란과 공포에 몰아넣었다. 그 때마다 수많은 연구개발(R&D) 지원책이 제시됐고 막대한 예산이 배분됐다. 지금은 정부가 급히 나서서 대비 현황을 점검하거나 지원 대책을 강구할 때가 아니라, 오히려 그간의 성과를 바탕으로 국민에게 구체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어야 할 때다. 더구나 과기정통부는 현 사태에 실시간으로 대응해야 하는 보건복지부나 질병관리본부와 달리 보다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R&D를 고민하는 곳이다. 감염병 사태가 아무리 급하더라도, 지금 당장 단기간에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반면 그 사이에 정말 해결이 필요한 현장의 갈등들은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해를 두 번 넘긴 신성철 KAIST 총장 사태는 여전히 속시원한 결론이 나지 않은 채 답보 상태다. 과기정통부는 “공이 검찰에 넘어가 있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기초과학연구원(IBS)을 둘러싼 논란 역시 장관이 큰 관심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리지만, 아직 아무런 변화가 없다. 몇몇 정부출연연구기관은 전현직 기관장과 연구원들이 관여한 내부 갈등으로 흉흉하다는 소문이 과학기술계에 파다하지만, 역시 중재에 적극 나서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다. 투서를 통해 갈등이 거칠게 제기되고 확대되는 현상이 과학계를 병들게 한다는 비판은 많이 있지만 그렇다고 외면하는 것만이 능사인지는 불분명하다.


부처의 장은 정치적인 결단을 내리고 책임지는 사람이다. 정책의 방향, 정부의 관심사를 반영해 제시하는 행보도 필요하지만, 갈등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판단을 내리고 행동하며 책임지는 모습도 필요하다. 최 장관은 지난해 9월 취임시 기자들과 만나 이런 갈등에 대한 해결 의사를 묻는 질문에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은 반면 일본 소재부품장비 사태 등 국가적으로 시급한 현안은 많다”고 답했다. 이 말이 이런 갈등은 그냥 묻어두고 가겠다는 뜻은 아니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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