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재의 보통과학자]알렉산드라 엘바키얀, 논문 해적 혹은 지식공유의 화신

2020.02.28 10:17
‘사이허브(Sci-Hub)’ 설립자이자 컴퓨터 과학자인 알렉산드라 엘바키얀. 네이처 제공
‘사이허브(Sci-Hub)’ 설립자이자 컴퓨터 과학자인 알렉산드라 엘바키얀. 네이처 제공

“학문의 길에 놓인 모든 장벽을 없애기 위하여”

-알렉산드라 엘바키얀⁠

 

카자흐스탄 해적, 해킹으로 논문을 무료로 공개하다 


2016년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과학의 진보에 기여한 과학자 10인’을 뽑았다. 구글 바둑 인공지능(AI) 알파고의 아버지라 불리는 데미스 허사비스, 중력파 연구를 주관한 가브리엘라 곤살레스 등의 쟁쟁한 과학자들 이름과 함께 논문 해적 혹은 지식공유 활동가로 불리는 알렉산드라 엘바키얀의 이름도 그 곳에 있었다. 알렉산드라 엘바키얀, 그는 전세계 과학자들이 무료로 논문을 읽을 수 있는 ‘사이허브(Sci-Hub)’라는 사이트를 만든 과학자이자 해커다. 

 

알렉산드라 엘바키얀은 1988년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 러시아와 독일 등에서 컴퓨터 보안과 인간 컴퓨터 인터페이스 등을 공부했고, 인지신경과학 분야에서도 특히 트랜스휴머니즘에 관심이 많은 대학생이었다. 인간과 컴퓨터의 상호작용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2010년 잠시 미국 조지아텍에 ‘의식의 신경과학’을 공부하러 여름 인턴십을 다녀오기도 했다. 의식의 문제와 트랜스휴머니즘에 관심이 많던 그는 2011년 갑자기 ‘사이허브’라는 핵티비즘⁠을 시작하게 된다. 

 

사이허브의 대문 페이지 캡쳐
사이허브의 대문 페이지 캡쳐

간단히 말해서 사이허브는, 온라인에서 학술지의 논문을 무료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게 해주는 서버다. 즉, 예전에는 엘스비어, 스프링거, 네이처 등의 거대학술출판에 구독료를 내야만 다운로드 받을 수 있던 논문을 모두 무료로 배포하는 사이트인 것이다. 바로 그런 이유로 2015년 엘스비어가 엘바키얀을 고소했고 미국 뉴욕지방법원은 사이허브 폐쇄결정을 내린데 이어 2018년 미국 법원은 사이허브에 480만 달러 배상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사이허브는 주소지를 옮기며 여전히 서비스를 지속하고 있다. 사이허브에는 수천만 개의 연구논문이 저장되어 있고, 학술지들이 지불장벽을 통해 인증기관 혹은 구독료 지불이 아니면 볼 수 없게 만든 그 논문들을 모두 볼 수 있게 해준다. 

 

미국법원에 의해 명백하게 불법으로 규정된 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과학자는 얼마나 될까. 사이언스지를 통해 “누가 해적질 당한 논문을 다운로드받는가? 그건 모두다!”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기사를 쓴 존 보아논은  엘바키얀을 소개한 존 보아논은 사이허브를 “경외할만한 이타적 행동 혹은 대규모의 범죄행위”라고 표현했다⁠. 사이허브를 이용하는 사람은 하루 수만면을 넘고, 이용자는 전세계 모든 곳에 존재한다. 2016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가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수행한 결과에서, 1만1000명의 연구자의 88%가 사이허브의 논문을 이용하는게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들 중 51%는 논문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고, 23%는 출판사들만 이익을 보는 구조에 반대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사이허브는 주소지를 옮겨가며 여전히 서비스를 지속하고 있다. 엘바키얀은 잠적했고, 현재 어디에 살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알렉산드라 엘바키얀은 2016년 네이쳐 지가 선정한 올해의 인물 10에 이름을 올린 과학자이자 활동가인 해커다. 그의 활동에 대한 사이언스지의 기획기사 제목은 “누가 해적질한 논문을 다운로드 받고 있는가? 모두”였다.
알렉산드라 엘바키얀은 2016년 네이쳐 지가 선정한 올해의 인물 10에 이름을 올린 과학자이자 활동가인 해커다. 그의 활동에 대한 사이언스지의 기획기사 제목은 “누가 해적질한 논문을 다운로드 받고 있는가? 모두”였다.

 

엘바키얀, 과학지식은 공유해야 한다


2016년 사이언스와 네이처가 엘바키얀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면서, 그에 관한 기사가 한국에도 쏟아졌고 한국에서도 사이허브 이용자는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2019년 엘바키얀은 자신이 운영중인 블로그에 ‘사이허브와 알렉산드라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라는 포스팅을 올렸다⁠. 인터넷은 물론 매체에 보도된 많은 기사들이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그가 올린 포스팅을 바탕으로 알바키얀과 사이허브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요약해보자.

 

엘바키얀은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2011년 9월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사이허브를 만들었다. 카자흐스탄은 라이브저널(LiveJournal)이라는 블로그 기반 논문 작성 플랫폼을 국가가 막아놓았었는데, 엘바키얀은 어노니마이저(anonymizer)라는 웹사이트를 통해 이 블로그에 접근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라이브저널에 접근하게 되면서, 그는 똑같은 아이디어를 과학연구논문에 적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고, 2~3일 동안 코딩을 해서 초창기 사이허브를 구축했고, 사이허브는 연구자들에게 금방 유명해지게 된다.

 

알바키얀은 12살부터 인터넷을 통해 코딩을 배웠고, 이후 고등학교에서 PHP나 델파이(Delphi) 같은 프로그래밍 언어를 공부했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정보보안에 관심을 갖고 이를 공부했고, 십년이 넘는 프로그래머로서의 공부는 그를 능숙한 프로그래머로 성장시켰다. 대학에 들어가 그가 선택한 전공은 생물공학이었는데, 생물공학은 생물정보학과 더불어 컴퓨터에 익숙한 전공자들이 생물학과 만나는 중요한 접점이다. 예를 들어, 합성생물학은 현재 생물공학의 주요한 분야인데, 이 합성생물학 분야에는 스스로를 DIY(Do It Yourself) 생물학자라고 부르는 수많은 해커들이 들어와있고, 이들은 자신의 주차장 등에 실험실을 만들고 연구를 한다. 또한 합성생물학 분야에는 아이젬(iGEM)이라는 유명한 대회가 있다. 엘바키얀이 생물공학을 선택한건, 해커이자 생물학에 관심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었는지 모른다. 

 

생물공학을 공부하면서 엘바키얀은 컴퓨터와 정보에도 큰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 관심은 그를 신경과학에 대한 공부로 이끌게 된다. 신경과학 분야에서 의식과 인공지능은 컴퓨터 과학자가 관심을 많이 갖는 주제였으며, 공부환경이 열악한 카자흐스탄에서 그는 인터넷 해적사이트를 통해 신경과학을 다룬 전자책을 무료로 다운받아 읽었다고 한다. 2010년 러시아, 미국, 독일 등의 연구실험실에서 생물공학과 신경과학 연구를 수행하던 그는 곧 지루해졌는데, 왜냐하면 대부분의 연구실험실의 주제가 지나치게 협소했기 때문이다. 그는 글로벌브레인같은 혁신적인 주제를 연구하고 싶었고, 하버드대에서 트랜스휴머니즘 강의를 듣고 곧 카자흐스탄으로 돌아와 프리랜서 웹-프로그래머의 삶을 시작한다. 바로 이 시기부터, 엘바키얀은 사이허브를 본격적으로 구상하고 실현하기 시작한다.


사이허브의 진실, 그리고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일


엘바키얀은 학술지 웹사이트에 대한 접근 뿐 아니라, 학술지에서 논문을 내려받는 방법에도 관심을 기울였고, 사이허브는 학술지 우회접근 뿐 아니라 다운로드 받은 논문을 아카이빙하는 플랫폼으로도 진화했다. 사이허브는 누군가 계획적으로 시작한 프로젝트가 아니라, 카자흐스탄의 한 프로그래머이자 과학도가 자신의 필요에 의해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즉흥적으로 만든 취미생활이었다. 엘바키얀이 스스로 회고하듯이, “사이허브는 정말 우연히 시작되었고, 어떤 큰 계획도 처음엔 없었다”. 사이허브가 시작되고 온라인의 사용자들이 많은 조언을 해주기 시작했고, 그들의 지원과 무료봉사로 사이허브는 서버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혹자는 사이허브 뒤에 어노니머스 같은 큰 조직이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엘바키얀에 따르면 사이허브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개인의 프로젝트였고 여전히 그렇다. 엘바키얀의 트위터 계정도 그가 직접 하는 것이고, 모든 작업은 그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사이허브의 미러사이트를 만들고 돕는 사람들은 있다. 사이허브는 초창기에 라이브러리 제네시스(Library Genesis)라는 프로젝트와 협업을 했다. 창세기도서관이라는 프로젝트는 모든 책을 스캔해서 공유하는 프로젝트로, 이 프로젝트 또한 미국 법원에 의해 금지된 바 있다. 2011년부터 사이허브는 창세기도서관의 서버를 사용했고, 지금은 독립적인 서버를 운영중이다. 하지만 그들 또한 독립적으로 엘바키얀을 돕는 것이다. 즉, 사이허브는 철저하게 자발적으로 시작되었고, 이타적인 사람들의 노력으로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사이허브의 배후에는 그 어떤 조직도 정부도 존재하지 않는다.

 

엘바키얀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프로그래머이자 인터넷 활동가였던 아론 슈워츠(Aaron Swartz)를 떠올린다. 아론 슈워츠는 유명한 소셜 뉴스사이트 레딧의 초기 개발자였고, 학술 저널 데이터베이스인 제이스토어(JSOTR)에서 다량의 논문을 내려받은 일로 체포되었다가 26세의 나이로 자살했다⁠. 그는 인터넷 자유의 강력한 옹호자였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를 창안하는데 기여했으며, 미국의 지적재산권 보호 강화 법안인 온라인 해적행위 방지법 및 지적재산권법안에 적극적으로 반대한 해커다. 그는 급진적이었지만 우리가 온라인에서 자유롭게 의사를 표현하고 소통하는 행위를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위대한 해커였다. 엘바키얀은 자신과 아론 슈워츠를 비교하는 질문에 대해 자세한 답을 준비해두었다. 아론 슈워츠가 논문을 해적질해서 토렌트에 올리려고 했다면, 사이허브는 사용자가 요구하는 논문을 데이터베이스나 다운로드를 통해 제공하며, 사용자와 엘바키얀에 의해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웹 어플리케이션이다. 즉, 엘바키얀은 아론 슈워츠가 보여주려고 했던 이상을, 현실 속에서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JSTOR에서 논문을 무료로 다운받아 공유하려다가 체포당했던, 인터넷 표현의 자유를 위해 싸운 위대한 해커, 아론 슈워츠의 생전 모습. 출처미상
JSTOR에서 논문을 무료로 다운받아 공유하려다가 체포당했던, 인터넷 표현의 자유를 위해 싸운 위대한 해커, 아론 슈워츠의 생전 모습. 출처미상

엘바키얀의 사이허브는 엘스비어나 네이처 같은 거대독점 학술지들에게는 눈엣가시일지 모르지만, 그가 사이허브를 만들었을 때, 과학연구를 하고 싶어도 논문을 읽을 수 없었던 수백만의 과학연구자들은 사이허브를 통해 새로운 희망에 눈을 뜰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엘바키얀에 대해 연구한 어떤 학자는 그가 “해야만 하는 일을 했다”고 표현했다. 엘바키얀은 과학자로의 짧은 경력에서 연구자들이 논문에 마음대로 접근하지 못한다는 비극적인 사실을 경험했고, 프로그래머로 자신의 경험과 능력을 그 장벽을 깨는데 사용했다. 엘바키안이 말했듯이, “사이허브는 인류의 좋은 아이디어를 공유하도록 돕고 싶었던 내 꿈의 확장판”이었고, 바로 그 공익적 목적의 해킹으로 수십만의 전세계 연구자들은 지금도 과학논문을 읽고 과학자로 전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엘바키얀의 활동은 불법이라는 이름만으로 단죄하기엔 더 복잡한 맥락 속에 놓여 있다. 정치적 해킹, 즉 핵티비즘을 모두 불법으로 치환한다면 인터넷 시대에 우리는 권력과 인터넷 검열 그리고 독점적 자본주의로부터 스스로를 지키지 못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엘바키얀의 말로 글을 맺는다.

 

“엘스비어가 이들 논문의 창작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다. 엘스비어 웹사이트에 등록된 모든 논문은 연구자들이 쓴 것이다. 연구자들은 엘스비어로부터 돈을 받지 않는다. 이는 창작자들이 팔린 만큼 돈을 받는 음악이나 영화 산업과는 완전히 다르다. (중략) 왜 연구자들은 (돈도 받지 않는데도) 자신들의 논문을 엘스비어에 제공할까? 그렇게 해야 하는 압력을 느끼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엘스비어는 소위 영향력 높은 저널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연구자가 인지도를 얻기 위해서는 그 저널들에 게재됐다는 커리어를 만들 필요가 있어서다⁠.”

 

※참고자료
-“학문의 길에 놓인 모든 장벽을 없애기 위하여”는 사이허브 Sci-Hub의 표어다. 
-핵티비즘은 해킹과 액티비즘의 합성어로, 정치적 의사표시를 동반하는 해킹 행위를 뜻한다.
-https://m.blog.naver.com/kcc_press/221244596623
- Bohannon, J. (2016). Who's downloading pirated papers? Everyone.
-http://dongascience.donga.com/news.php?idx=13696
-알렉산드라 엘바키얀은 2016년 네이쳐 지가 선정한 올해의 인물 10에 이름을 올린 과학자이자 활동가인 해커다. 그의 활동에 대한 사이언스지의 기획기사 제목은 “누가 해적질한 논문을 다운로드 받고 있는가? 모두”였다.
-https://engineuring.wordpress.com/2019/03/31/sci-hub-and-alexandra-basic-information/
-http://dongascience.donga.com/news.php?idx=13696
https://scholarworks.iupui.edu/bitstream/handle/1805/19767/DLewis%20Alexandra%20Elbakyan%20Job%20to%20Be%20Done.pdf?sequence=1&isAllowed=y
-http://www.bloter.net/archives/294334
-http://www.bloter.net/archives/259652

 

※필자소개 

김우재 어린 시절부터 꿀벌, 개미 등에 관심이 많았다. 생물학과에 진학했으나, 간절히 원하던 동물행동학자의 길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포기하고, 바이러스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박사후연구원으로 미국에서 초파리의 행동유전학을 연구했다. 초파리 수컷의 교미시간이 환경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신경회로의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다. 모두가 무시하는 이 기초연구가 인간의 시간인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다닌다. 과학자가 되는 새로운 방식의 플랫폼, 타운랩을 준비 중이다. 최근 초파리 유전학자가 바라보는 사회에 대한 책 《플라이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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