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카페]스트레스는 어떻게 흰 머리카락을 늘리나

2020.02.18 14:00
위키피디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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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한 여행 프로그램에서 흥미로운 장면을 봤다. 불가리아의 장수촌을 찾은 여행자(진행자)가 90세 시어머니와 60대 중반 며느리가 함께 사는 집을 방문했다(어쩐 일인지 아들은 보이지 않았다). 매일 요거트를 먹은 게 장수의 비결이라고 말하는 시어머니는 70대로 보일 정도로 정정했다.

 

여행자가 시어머니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며느리가 오더니 시어머니에게 바늘귀에 실을 꿰달란다. 놀랍게도 시어머니는 맨눈으로 실을 꿰 며느리에게 건네줬다. “어떻게 된 거냐?”고 묻자 며느리는 “나는 돋보기를 껴야 하는데 어머니는 참 대단하다”며 멋쩍게 웃었다. 

 

수정체의 탄력성이 떨어져 주위 근육이 잡아당기지 않을 때도 원래 형태로 돌아오지 못해 가까운 거리에 초점을 맞추지 못하는 현상이 노안이다. 고무줄을 당겼다 놓았다 반복하면 결국 늘어지는 것과 비슷하다. 이는 물리화학적인 현상으로 개인차가 별로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비록 수정체의 노화는 20년 이상 젊은 며느리보다도 늦지만 그렇다고 시어머니가 며느리보다 젊어 보이지는 않았다. 신체 조직이나 장기에 따라 노화 속도와 편차가 꽤 다르다는 말이다.  

 

 

오바마, 4년 사이 흰머리 크게 늘어

 

버락 오바마 미국 전(前) 대통령의 2008년 취임 무렵(왼쪽)과 2012년 취임 무렵(오른쪽) 모습이다. 4년 사이 흰머리가 부쩍 늘었다. 제공 백악관
버락 오바마 미국 전(前) 대통령의 2008년 취임 무렵(왼쪽)과 2012년 취임 무렵(오른쪽) 모습이다. 4년 사이 흰머리가 부쩍 늘었다. 제공 백악관

노화 속도에서 개인차가 큰 대표적인 예가 머리카락의 탈색 아닐까.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라는 표현이 있듯이 나이가 들면 머리가 세기 마련이지만 그 시기와 속도는 정말 천차만별이다. 이는 머리카락의 탈색이 단순한 노화가 아니라 유전과 환경(스트레스)의 영향을 꽤 받기 때문이다. 

 

2012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해 취임할 무렵 미국 언론들은 2008년 처음 취임할 때 모습과 비교하며 미국의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불과 4년 만에 머리가 하얗게 셀 정도로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해석했다. 이에 대해 오바마는 “머리가 일찍 세는 건 유전일뿐”이라며 자신은 대통령 일을 즐긴다고 주장했다. 반면 영부인 미셸은 “남편의 결정 하나하나에 세계가 영향을 받으니 오죽하겠냐”며 스트레스 원인설을 지지했다.

 

생각해보면 머리가 세는 건 꽤 독특한 현상이다. 머리가 세는 건 청바지의 물이 빠지듯이 전반적으로 서서히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라 개별 머리카락을 단위로 ‘모 아니면 도’ 식으로 일어난다. 어찌 보면 방사성 동위원소의 붕괴와 비슷하다. 반감기에 따라 전체적인 붕괴 속도는 정해져 있지만 개별 동위원소가 언제 붕괴할지는 알 수 없는 확률적 현상인 것처럼 말이다.

 

동위원소 붕괴와 다른 점도 있다. 두피의 머리카락은 10만 개 내외로 수가 충분히 크므로 머리가 세는 현상이 순전히 확률적으로 일어난다면 흰 머리카락이 전체적으로 균일하게 분포하면서 점차 밀도가 높아져 최종적으로 모두 하얗게 돼야 한다. 실제로는 각 머리카락에서 독립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은 아닌 것 같다. 머리 부위에 따라 탈색이 먼저 일어나는 곳도 있고 꿋꿋이 검은 머리카락이 우점종을 유지하는 곳도 있다. 

 

필자가 이처럼 머리카락 탈색에 관심이 많은 건 40대 10년을 지나며 엄청난 변화를 겪었기 때문이다. 40살에는 흰 머리카락이 5%가 채 안 됐던 것 같은데 45살에는 한 20%가 되더니 50살이 되자 무려 70%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은 필자의 변한 모습을 보고 ‘세월무상’이라며 혀를 찬다. 

 

그럼에도 필자는 여전히 변화를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정수리를 중심으로는 거의 백발이지만 가장자리는 여전히 흑발의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거울에서는 얼굴 주변 머리카락만 보이므로 사태의 진상을 알 수 없다. 휴대전화로 찍은 머리 뒤통수 사진을 보면 ‘이게 정녕 내 모습인가?’ 싶다. 반면 앞머리나 귀 주변 머리카락이 먼저 세는 사람은 ‘이게 내 모습인데..’라며 탄식할 것이다.

 

40대 후반 5년이라는 길지 않은 기간 사이 머리카락의 절반이 탈색된 건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이 기간 동안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일은 없지만 노화가 진행되며 스트레스에 대한 문턱이 낮아져 탈색이 가속화한 것 아닐까. 그런데 스트레스는 어떻게 머리카락을 탈색시킬까. 그리고 그 작용이 두피에서 불균일하게 일어나는 이유는 뭘까. 

 

모낭의 구조를 보여주는 그림으로 모낭돌출부에 멜라닌세포줄기세포가 있고 모구에 멜라닌세포가 있다. 성장기를 지나 퇴행기를 거쳐 휴지기에 들어가면 머리카락이 빠지고 모낭이 수축하고 멜라닌세포가 죽는다. 다음 성장기에 들어서면 멜라닌세포줄기세포가 분열해 일부가 모구로 이동해 멜라닌세포로 분화한다. ‘피부과학 및 알러지학의 진보’ 제공
모낭의 구조를 보여주는 그림으로 모낭돌출부에 멜라닌세포줄기세포가 있고 모구에 멜라닌세포가 있다. 성장기를 지나 퇴행기를 거쳐 휴지기에 들어가면 머리카락이 빠지고 모낭이 수축하고 멜라닌세포가 죽는다. 다음 성장기에 들어서면 멜라닌세포줄기세포가 분열해 일부가 모구로 이동해 멜라닌세포로 분화한다. ‘피부과학 및 알러지학의 진보’ 제공

흰머리 빠진 자리에선 흰머리만 나

 

학술지 ‘네이처’ 1월 30일자에는 필자의 의문에 답하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논문을 소개하기 전에 머리카락의 생리학을 잠깐 들여다보자.

 

머리카락이나 털은 모낭이라고 부르는, 피부에 있는 주머니 모양의 기관에서 만들어진다. 모낭에서는 털이 성장기, 퇴행기, 휴지기를 거치며 자라고 빠지는 순환을 반복한다. 사람 머리카락의 경우 성장기는 2~8년이고 퇴행기는 2~3주다. 작년인가 TV에서 머리카락 길이 기네스북 신기록을 세운 여성을 본 적이 있는데, 성장기가 예외적으로 긴 경우다. 

 

퇴행기를 지나 자연스럽게 빠진 머리카락의 뿌리는 늦가을 떨어진 시든 잎의 자루 끝처럼 건조하다. 반면 머리카락 하나를 억지로 뽑아 뿌리를 보면 촉촉한 젤에 덮여 있다. 모낭은 3주 정도 쉬는 휴지기를 거친 뒤 다시 성장기로 들어가 새 머리카락을 만든다. 

 

머리카락의 색은 피부색과 마찬가지로 멜라닌 색소 덕분이다. 모낭에 박혀있는 머리카락의 맨 아랫부분이 모구로 이곳에서 세포가 분열하면서 머리카락이 자란다. 이때 모구에 있는 멜라닌세포가 멜라닌을 만들어 공급한다. 쌀가루에 쑥가루를 섞어 반죽을 만들어 찐 뒤 뽑으면 녹색의 가래떡이 나오는 것과 비슷하다. 쌀가루에 아무것도 안 넣으면 흰 가래떡이 나오듯 모구에서 멜라닌이 공급되지 않으면 흰 머리카락이 자란다.

 

모낭 멜라닌세포는 머리카락이 빠지면 죽기 때문에 다음 성장기에는 모구에 새로 채워야 한다. 모낭이 성장기에 들어가면 모낭 중간쯤에 있는 모낭돌출부에 존재하는 멜라닌세포줄기세포가 분열해 일부가 모구로 이동한 뒤 멜라닌세포로 분화한다. 성장기, 퇴행기, 휴지기 주기를 거칠 때마다 이 과정이 반복된다. 

 

그러다가 모낭돌출부의 멜라닌세포줄기세포가 고갈되면 더 이상 모구로 보낼 세포가 없게 돼 결국 멜라닌을 공급하지 못하게 되면서 흰 머리카락이 자란다. 머리카락의 색은 개별 모낭의 줄기세포 존재 여부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당신이 아무리 젊더라도 새치를 뽑은 자리(모낭)에서는 결코 검은 머리카락이 나지 않는다! 

 

 

교감신경이 줄기세포 소진시켜

 

a) 털이 검은 생쥐에게 스트레스를 가하면 새로 나는 털에서 탈색이 나타나는데 특히 통증(nociception) 스트레스에서 뚜렷하다. b) 왼쪽은 소금물을 주사한 생쥐(대조군)의 위아래 사진이고 오른쪽은 통증을 일으키는 약물(RTX)을 주사한 생쥐의 위아래 사진이다. 통증으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로 전체 털의 3분의 1이 하얗게 셌다. ‘네이처’ 제공
a) 털이 검은 생쥐에게 스트레스를 가하면 새로 나는 털에서 탈색이 나타나는데 특히 통증(nociception) 스트레스에서 뚜렷하다. b) 왼쪽은 소금물을 주사한 생쥐(대조군)의 위아래 사진이고 오른쪽은 통증을 일으키는 약물(RTX)을 주사한 생쥐의 위아래 사진이다. 통증으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로 전체 털의 3분의 1이 하얗게 셌다. ‘네이처’ 제공

미국 하버드대 줄기세포・재생생물학과 수야츠에 교수팀이 주축이 된 공동연구자들은 털이 검은 생쥐를 대상으로 스트레스가 탈색을 유발하는 메커니즘을 규명했다. 먼저 스트레스가 정말 털을 세게 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세 가지 유형의 스트레스를 준 뒤 새로 난 털의 색을 조사했다. 

 

그 결과 움직임을 제한하는 스트레스와 예측 불허 스트레스(감전 쇼크 같은), 통증 스트레스 모두 탈색을 앞당겼고 특히 통증 스트레스는 바로 다음 주기의 털에서도 탈색이 심하게 일어났다. 참고로 고추의 자극 성분인 캡사이신과 구조가 비슷한 레지니페라톡신(RTX)를 주사해 통증을 유발한다. 

 

통증 스트레스가 털의 탈색을 유발하는 과정을 단계적으로 살펴보자 흥미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털이 성장기인 상태에서 RTX를 주사하고 5일이 지난 뒤 모낭을 관찰한 결과 모구에는 멜라닌세포가 여전히 존재하는 반면 모낭돌출부에는 멜라닌세포줄기세포가 안 보였다. 이 털은 빠질 때까지 검은색을 유지하겠지만 다음에 날 털은 흰색일 거라는 말이다. 실제 퇴행기가 휴지기를 지나 새로 성장기에 들어간 모낭에서는 흰털이 나왔다.

 

다음으로 연구자들은 스트레스의 어떤 경로가 탈색을 유도하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먼저 면역세포가 피부의 멜라닌세포를 파괴해 백색 반점이 나타나는 ‘백반증’처럼 머리카락 탈색도 자가면역질환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면역세포가 결핍된 돌연변이 생쥐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털이 탈색되는 것으로 나타나 이 경로는 아니었다.

 

다음으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 많이 분비되는 스트레스호르몬이 탈색을 유도할 가능성이다. 대표적인 스트레스호르몬으로는 코티코스테론(사람에서는 코티솔)과 노르아드레날린(노르에피네프린이라고도 부름)이 있다. 역시 돌연변이 생쥐로 조사한 결과 노르아드레날린이 멜라닌세포줄기세포를 파괴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노르아드레날린은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싸움-도망 반응(fight or flight response)’을 할 수 있게 몸의 상태를 바꾸라는 신호를 보내는 물질이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심장과 근육으로 가는 혈관은 팽창하고 당장 급하지 않은 위장관으로 가는 혈관은 수축한다. 간에서는 포도당을 생산한다. 

 

노르아드레날린은 부신에서 분비돼 혈관을 통해 전신으로 퍼져 신호를 전하는 호르몬인 동시에 장기 곳곳에 팔(축삭)을 뻗친 교감신경계의 뉴런에서 내보내는 신경전달물질이기도 하다. 실험 결과 생쥐 모낭돌출부의 멜라닌세포줄기세포를 없앤 건 주변에 팔을 뻗친 교감신경 뉴런에서 방출된 노르아드레날린으로 밝혀졌다.

 

노르아드레날린은 멜라닌세포줄기세포의 분열과 분화를 촉진한다. RTX 주사가 유발한 통증으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로 교감신경이 과도하게 활성화돼 노르아드레날린 수치가 치솟은 결과 모낭돌출부의 줄기세포가 갑자기 분열해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지다 보니 정작 모낭돌출부에는 하나도 남지 않게 된 것이다. 반면 모구의 멜라닌세포는 노르아드레날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 결과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뒤에도 한동안은 털색이 변하지 않지만 털이 빠지고 다음 털이 날 때 영향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런데 생쥐 사진을 보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뒤 새로 난 털 모두가 하얗지는 않다. 마치 얼룩소처럼 하얀 털이 군데군데 몰려서 나고 어떤 곳은 여전히 검은색이다. 정수리를 중심으로는 흰머리이고 주변머리는 아직 검은 편인 필자의 머리 상태가 떠오른다. 

 

이는 모낭에 뻗은 교감신경 뉴런 배선의 밀도 차이로 보인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몸(또는 두피)에 분포한 교감신경 뉴런의 밀도가 일정하지 않다. 교감신경 배선이 촘촘하게 깔려 스트레스 반응으로 방출된 노르아드레날린 농도가 높은 부위의 줄기세포가 더 민감하게 반응해 먼저 고갈된다는 말이다. 

 

 

피부 멜라닌세포는 수명 길어

 

털의 성장기(ana)에 통증유발약물(RTX)를 주사하고 5일 뒤 모낭을 보면 모구에는 분화된 멜라닌세포(Diff. Mcs)가 있지만(아래 빨간색) 돌출부에는 멜라닌세포줄기세포(MeSCs)가 없다. 한편 소금물을 주사한 대조군(Ctrl)의 모낭에는 둘 다 존재한다(왼쪽). 털이 빠진 뒤 휴지기(telo)에서는 모낭이 수축돼 대조군의 멜라닌세포줄기세포만 남아 있다(가운데). 다시 성장기에 접어들면 모낭이 활성화되는데, 대조군과는 달리 약물군에서는 멜라닌세포가 없어 흰털이 자란다.  ‘네이처’ 제공
털의 성장기(ana)에 통증유발약물(RTX)를 주사하고 5일 뒤 모낭을 보면 모구에는 분화된 멜라닌세포(Diff. Mcs)가 있지만(아래 빨간색) 돌출부에는 멜라닌세포줄기세포(MeSCs)가 없다. 한편 소금물을 주사한 대조군(Ctrl)의 모낭에는 둘 다 존재한다(왼쪽). 털이 빠진 뒤 휴지기(telo)에서는 모낭이 수축돼 대조군의 멜라닌세포줄기세포만 남아 있다(가운데). 다시 성장기에 접어들면 모낭이 활성화되는데, 대조군과는 달리 약물군에서는 멜라닌세포가 없어 흰털이 자란다. ‘네이처’ 제공

그런데 교감신경은 왜 모낭돌출부까지 팔을 뻗어 스트레스가 심할 때 멜라닌세포줄기세포에 과도한 분열과 분화를 유도해 고갈로 이끄는 걸까. 이에 대해 연구자들의 논문에서 “아직 모른다”면서도 “진화적으로 보존된 경로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강한 햇빛이나 자외선에 노출됐을 때 몸을 보호하기 위해 멜라닌을 많이 만들어야 하는 메커니즘이 진화했지만 아주 정교하지는 못해 모낭돌출부의 줄기세포의 경우는 종종 소멸한다는 말이다.

 

그러고 보면 여름에 장시간 햇빛에 노출돼 피부가 타는 일이 반복돼도 머리카락처럼 피부가 하얗게 되지는 않는다. 또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백반증 같은 병이 아닌 이상 피부가 탈색되는 일은 없다. 머리카락 색이나 피부색이나 모두 멜라닌세포가 합성한 멜라닌 색소가 내는 건데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일까.

 

피부는 표피와 진피(모낭이 자리한 곳이다), 피하지방으로 나뉜다. 혈관은 진피까지만 분포하기 때문에 표피가 손상돼도(피부가 살짝 벗겨져도) 피가 나지 않는다. 진피는 네 개 층으로 이뤄져 있는데, 진피와 닿는 맨 아래 기저층에 멜라닌세포가 자리하면서 멜라닌 색소를 만들어 표피의 각질세포에 공급한다.  

 

그런데 피부 멜라닌세포는 수명이 무척 길다. 사실상 사람이 죽을 때까지는 산다고 보면 된다. 반면 모낭 멜라닌세포는 머리카락의 성장기 동안(2~8년)만 살아 활동한다. 퇴행기를 지나 휴지기에 머리카락이 빠지고 모낭 구조가 수축될 때 모구에 있던 멜라닌세포도 죽는다. 

 

그렇다면 노화로 인한 머리카락의 탈색 역시 모낭돌출부까지 뻗어 있는 교감신경의 작용 때문일까. 만일 그렇다면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단기간의 탈색은 노화를 압축한 현상일 것이다. 연구자들은 이 부분은 좀 더 연구가 필요하다며 결론을 미뤘다.

 

지금 필자의 머리카락 가운데 30%는 검은색이지만 이 가운데 상당수는 이미 모낭돌출부의 멜라닌세포줄기세포가 고갈된 상태일 것이다. 앞으로 빠질 검은 머리카락의 상당수는 해당 모낭에서 만든 마지막 검은 머리카락이란 말이다. 특히 정수리 부근에서 새로 날 것들은 거의 흰 머리카락일 것이다. 

 

앞으로 주변에 떨어진 검은 머리카락을 볼 때 예전처럼 무심코 집어 휴지통에 버릴 것 같지는 않다. 

 

털이 세는 건 모낭돌출부에 연결된 교감신경(sympathetic nerve) 말단이 스트레스 신호를 받아 노르아드레날린을 방출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오른쪽은 모낭의 현미경 이미지로 빨간색이 멜라닌세포줄기세포(위)와 멜라닌세포(아래)이고 녹색이 교감신경 뉴런이다. ‘네이처’ 제공
털이 세는 건 모낭돌출부에 연결된 교감신경(sympathetic nerve) 말단이 스트레스 신호를 받아 노르아드레날린을 방출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오른쪽은 모낭의 현미경 이미지로 빨간색이 멜라닌세포줄기세포(위)와 멜라닌세포(아래)이고 녹색이 교감신경 뉴런이다. ‘네이처’ 제공

※필자소개

강석기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8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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