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이 통증보다 아프다

2020.02.10 08:09
6일 경기 수원시 성균관대에서 기자가 열 통증 실험장치를 이용해 팔에 통증을 가하는 실험을 체험하고 있다.
6일 경기 수원시 성균관대에서 기자가 열 통증 실험장치를 이용해 팔에 통증을 가하는 실험을 체험하고 있다.

“방금 준 통증은 46.5도입니다. 이제 1도를 더 올려보겠습니다.”

 

이달 6일 경기 수원 성균관대 엔(N)센터 1층의 한 실험실. 우충완 성균관대 글로벌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가 더 강한 통증을 주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우 교수가 국내에는 4대 밖에 없는 열 통증 실험장치를 조작하자 실험 대상으로 나선 기자의 팔에 붙인 패치에서 찌르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사우나보다 훨씬 낮은 온도인 46.5도를 가했을 때도 미간을 찌푸릴 정도의 고통이 왔는데 1도를 더 올리자 참기 힘들 정도의 통증이 느껴졌다.

 

우 교수는 이 열 통증 실험장치로 '차별의 고통'을 연구하고 있다. 열 통증과 사회적 차별은 과연 어떤 관계일까. 우 교수는 “방금 느낀 통증의 차이는 미국 사회에서 같은 차별에 노출됐더라도 백인계 미국인과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느끼는 고통의 차이와 같다"고 말했다. 

 

우 교수는 엘리자베스 로진 미국 마이애미대 심리학과 교수와 토어 웨이거 미국 다트머스대 신경과학과 교수와 함께 심리 실험과 뇌과학 분석을 통해 차별을 당할 때 고통을 느끼는 정도 차이를 밝힌 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 인간 행동’에 이달 3일 발표했다. 오랫동안 미국에서는 흑인이 백인보다 고통을 더 잘 견딘다는 주장이 통설처럼 내려온다. 혹독한 노예 제도와 오랜 차별을 견뎌오면서 고통과 통증에 무뎌졌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연구진은 이 통설이 완벽히 틀렸다는 것을 입증했다. 오히려 흑인들이 차별의 기억이 뇌에 각인되면서 고통을 더 강하게 느낀다는 것이다. 우 교수는 “미국에선 의사들이 같은 통증에도 백인에게 알약을 2개 주지만 흑인에겐 1개만 준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라며 "여러 연구에서 흑인이 통증을 잘 견딘다는 통설과 반대되는 결과가 보고됐고 이번에 이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백인계 미국인 30명과 히스패닉계 30명, 아프리카계 28명을 상대로 열 통증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팀은 먼저 실험 참가자들이 느낀 차별의 수준을 판단하기 위해 평소 겪은 차별 빈도와 이에 대한 심리적 태도를 묻는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각각의 실험 참가자에게 열 통증을 가했다. 실험 결과 흑인 참가자들은 차별에 대한 저항감이 크면 클수록 같은 열을 가했을 때 더 큰 통증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별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는 것은 그만큼 차별 겸험이 많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연구팀은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장치로 뇌의 어떤 부분이 이런 차이를 만드는지도 살펴봤다. 흑인 참가자들에게서만 차별을 당한 횟수가 많을수록 열 통증을 가했을 때 뇌의 측좌핵(NAc) 영역이 다른 영역보다 더 많은 신호를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 교수는 “측좌핵에는 뇌가 학습을 하는 데 필요한 예측 회로가 있다"며 "차별에 대한 경험에 따라 통증을 예측하고 반응하는 정도가 달라진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과거 차별의 경험이 뇌에 각인되며 통증을 느끼는 시스템까지 바꿨다는 분석이다.

 

우 교수는 인공지능(AI)이 학습을 통해 신경망을 스스로 바꾸듯 인간의 뇌를 연결하는 신경망도 차별로 시시각각 변화할 수 있다고 비유했다.  우 교수는 “통증은 몸 보호에 워낙 중요한 기능이기 때문에 특정 부위가 관할하는 시각과 청각과 달리 모든 뇌 영역에서 담당한다”며 “차별이 얼마나 뇌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지 확인했다”고 말했다.

 

우 교수는 차별 외에도 외로움이나 거절, 집단 따돌림 같은 사회적 관계가 통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연구하고 있다. 우 교수는 “차별은 결국 한 사람의 몸에 흔적을 남긴다”며 “이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기반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댓글 0

작성하기

    의견쓰기 폼
    0/150
    * 21대 국회의원 선거운동 기간에는 실명확인 과정을 거쳐야 댓글을 게시하실수 있습니다.
    * 실명 확인 및 실명 등록 서비스는 선거운동기간 (2020. 4. 2 ~ 2020. 4. 14) 동안에만 제공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