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말은 없지만 파랑새는 있다

2014.01.06 18:00

  2014년 갑오(甲午)년을 청마해라고 부르는 말을 처음 듣고 필자는 ‘백마띠는 들어봤어도…’라며 출처를 의심했지만, 중고교 시절 국어시간에 배운 시인 유치환의 호가 청마라는 게 떠올라 근거 없는 말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청마는 상징적인 표현으로 보이는데, 이 세상에 파란 말은 없기 때문이다(‘靑馬는 실제로 있다? 없다?’ 기사(http://www.dongascience.com/news/view/3375) 참조).

 

  어디선가 털이 파란 말이 뛰어온다면 정말 멋있겠지만, 파란 물감으로 염색하지 않고서는 그런 돌연변이도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다. 말 뿐 아니라 척추동물에는 파란색 색소가 없기 때문이다. 대신 말과 사람을 비롯한 거의 모든 동물은 멜라닌(melanin)이라는 갈색 계열의 색소를 갖고 있다. 말의 다양한 털 색깔이나 사람의 피부색, 머리카락색은 모두 멜라닌이 조화를 부린 결과다.

 

●척추동물, 파란색 색소 없어

 

말은 털 색깔이나 패턴이 무척 다양하지만 모두 멜라닌이라는 색소의 타입과 농도, 분포에 따른 결과일 뿐이다. - 위키피디아 제공
말은 털 색깔이나 패턴이 무척 다양하지만 모두 멜라닌이라는 색소의 타입과 농도, 분포에 따른 결과일 뿐이다. - 위키피디아 제공

  멜라닌의 존재하는 일차적인 이유는 몸에 해로운 자외선을 흡수하는데서 찾을 수 있다. 멜라닌이 충분히 존재하면 들어오는 자외선의 99.9%를 흡수할 수 있다고 한다. 멜라닌이 색을 띠는 이유는 자외선뿐 아니라 가시광선 영역도 흡수하기 때문이다. 햇빛이 강한 저위도 지방의 사람들이 피부색이 짙은 이유다.

 

  멜라닌은 피부 표피층에 있는 멜라닌생성세포에서 만들어지는데, 아미노산인 타이로신이 변형된 분자에 여러 가지 분자와 단백질이 달라붙은 복잡한 고분자로 아직까지 정확한 구조는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뉘는데, 검은색에서 갈색 계열인 유멜라닌(eumelanin)과 붉은색 계열인 페오멜라닌(pheomelanin)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피부와 머리카락에는 주로 유멜라닌이 분포한다. 서구인들에서 보이는 붉은빛이 도는 머리카락에는 페오멜라닌이 주로 들어있다.

 

  한편 사람들의 몸 부위에 따라 페오멜라닌이 많이 존재하는 곳이 있는데, 바로 입술과 젖꼭지, 생식기(귀두와 질)다. 이 부분에 분포하는 유멜라닌과 페오멜라닌의 양에 따라 핑크톤에서 적갈색톤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을 보인다.

 

  말의 털 색깔을 결정하는 여러 유전자가 밝혀졌는데, 뭘 하는지 알아봤더니 역시 멜라닌 생성에 관여하는 단백질들을 지정하는 것들이었다. 예를 들어 익스텐션(E) 표현형의 경우 MC1R이라는 유전자가 작동하느냐 여부에 따라 나누어지는데, 이 유전자가 만드는 MC1R 단백질은 멜라닌생성세포 표면에 존재하는 호르몬수용체다. 즉 알파-MSH라는 호르몬이 MC1R에 달라붙으면 멜라닌생성세포가 활동을 개시해 유멜라닌을 많이 만들어낸다. 따라서 부모로부터 둘 다 멀쩡한 유전자를 받은 E/E형이나 한쪽만 멀쩡한 걸 받은 E/e형인 말은 짙은 갈색이나 검은색이지만 ,둘 다 고장난 e/e형은 색이 옅어지고 붉은 톤이 많아진다.

 

  사실 포유류들이야 털 색깔 또는 피부색이 다양해도 대체로 누런 계열이지만 조류는 그렇지 않다. 참새처럼 깃털 색이 촌스러운 녀석도 있지만(물론 멜라닌 때문이다), 마치 물감을 바른 듯 순색(純色)의 선명한 깃털을 뽐내는 새들도 많다. 파랑새라는 새도 있듯이 파란색 깃털도 있다. 척추동물은 파란색 색소를 못 만드는데 도대체 이 녀석들은 무슨 재주로 이런 마술을 부리는 걸까.

참새도 그렇지만 닭이나 꿩 등 많은 새(특히 암컷)의 갈색이나 검은색 계열 깃털은 여전히 멜라닌을 이용한다. 그러나 페오멜라닌으로도 선명한 빨간색은 낼 수 없고 특히 녹색이나 파란색쪽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따라서 이런 깃털을 가진 새들이 있다는 건 다른 전략을 개발했다는 말이다.

 

  얕은 바다에 수만 마리가 떼지어있는 홍학의 붉은색은 베타카로틴이라는, 노란색에서 빨간색의 범위에서 색을 낼 수 있는 색소 덕분이다. 그런데 홍학에는 베타카로틴을 만드는 세포가 없다. 대신 홍학의 먹이인 조류(藻類)와 갑각류에 존재하는 베타카로틴이 깃털을 만드는 세포로 이동해 이런 색을 띠게 된다. 깃털은 소모품으로 빠지고 다시 나므로 이런 먹이를 계속 먹어줘야 붉은 톤을 유지할 수 있다. 실제로 동물원에서 일반 사료를 먹게 되면 점차 색이 빠지면서 나중에는 깃털이 ‘하얀’ 홍학이 된다. 따라서 동물원에서는 새우 같은 갑각류가 포함된 사료를 먹여 색을 유지한다.

 

●앵무새 초록 깃털의 비빌

 

앵무새의 선명한 깃털 색깔은 고유한 색소와 빛의 산란을 통한 구조색으로 만들어진다. 부리 주위의 빨간색은 프시타코풀빈이라는 빨간색에서 노란색에 걸친 색소에서 비롯한다. 녹색 깃털은 프시타코풀빈의 노란색과 구조색인 파란색이 합쳐진 결과이다. 아래쪽에 구조색만으로 이뤄진 파란 깃털이 보인다. - 위키피디아 제공
앵무새의 선명한 깃털 색깔은 고유한 색소와 빛의 산란을 통한 구조색으로 만들어진다. 부리 주위의 빨간색은 프시타코풀빈이라는 빨간색에서 노란색에 걸친 색소에서 비롯한다. 녹색 깃털은 프시타코풀빈의 노란색과 구조색인 파란색이 합쳐진 결과이다. 아래쪽에 구조색만으로 이뤄진 파란 깃털이 보인다. - 위키피디아 제공

  때로는 자체적으로 새로운 색소를 합성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앵무새의 경우 프시타코풀빈(psittacofulvin)이라는 빨간색에서 노란색 범위의 색을 내는 색소를 생합성할 수 있다. 앵무새 깃털의 선명한 빨간색이 바로 프시타코풀핀 때문이다. 그렇다면 앵무새 깃털에서 나뭇잎처럼 선명한 초록색은 어떻게 나오는 걸까. 물론 엽록소가 있는 건 아니고 프시타코풀빈의 노란색과 깃털 자체의 구조로 인해 나타나는 파란색이 합쳐진 결과다. 노란색과 파란색을 섞으면 녹색이 나왔던 예전 미술 시간을 떠올려보라. 그런데 구조로 인한 파란색이란 무엇일까?

 

  색은 색소색과 구조색으로 나눌 수 있다. 멜라닌이나 베타카로틴처럼 분자가 가시광선에서 특정 영역의 빛을 흡수하고 나머지를 반사해 색을 내는 게 색소색이라면, 나노구조를 띠고 있어 특정 파장의 빛을 보강간섭하거나 산란시켜 나타나는 색이 구조색이다. 몰포나비의 번쩍번쩍하는 파란색이 대표적인 구조색으로 파란색 파장의 보강간섭의 결과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구조색으로는 머리를 감을 때나 설거지를 할 때 일어나는 거품의 막에서 언뜻언뜻 보이는 무지개색으로 역시 간섭효과 때문이다. 맑은 날 하늘이 파랗게 보이는 것도 일종의 구조색으로(대기에 파란색 색소분자가 떠다니는 건 아니므로), 햇빛 가운데 주로 짧은 파장인 파란계열 빛이 기체분자나 먼지에 산란돼 우리 눈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레일리 산란이라고 부른다.

 

  구조색을 내는 깃털을 전자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케라틴 단백질이 나노크기 수준에서 공이나 실 같은 모양으로 분포해 있는 스펀지 같은 구조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 예일대 연구진들은 지난 2012년 학술지 ‘영국계면학회저널’에 발표한 논문에서 조류 230종에서 얻은 297개의 깃털 견본을 X선을 쪼였을 때 나타나는 회절 패턴을 해석해 나노구조를 규명한 연구결과를 싣기도 했다.

 

다양한 새에서 나타나는 파란색 계열의 깃털은 깃털을 이루는 케라틴 단백질이 만드는 독특한 나노구조에 짧은 파장의 빛이 산란돼 나타난 결과다. 왼쪽부터 암컷 넓적부리새류(silver-breasted broadbill), 수컷 유리새류(eastern bluebird), 수컷 장식새류(Plum-throated cotinga). 가운데 줄은 각각의 깃털 전자현미경 사진. 맨 밑은 각각의 X선 산란 회절 패턴이다. - 영국왕립계면학회지 제공
다양한 새에서 나타나는 파란색 계열의 깃털은 깃털을 이루는 케라틴 단백질이 만드는 독특한 나노구조에 짧은 파장의 빛이 산란돼 나타난 결과다. 왼쪽부터 암컷 넓적부리새류(silver-breasted broadbill), 수컷 유리새류(eastern bluebird), 수컷 장식새류(Plum-throated cotinga). 가운데 줄은 각각의 깃털 전자현미경 사진. 맨 밑은 각각의 X선 산란 회절 패턴이다. - 영국왕립계면학회지 제공

  그런데 여기서 잠깐. 포유류인 사람도 파란색을 띠는 부분이 있다. 일부 백인에서 보이는 파란 눈이다. 정확히는 홍채 색깔이 파란 건데 이것도 구조색일까. 물론 그렇다. 홍채는 수축과 팽창을 통해 눈동자(동공)의 크기를 조절하는 눈의 조리개로 앞쪽의 기질과 뒤쪽의 상피세포층으로 이뤄져있다. 상피세포층에는 멜라닌이 많아 기질을 통과한 빛을 흡수해 뒤쪽의 망막으로 넘어가지 못하게 한다.

 

  주변 근육에 연결돼 있는 섬유조직인 기질의 경우 우리나라 사람들은 역시 멜라닌 과립이 분포해 있어서 대체로 갈색을 띤다. 반면 일부 백인들은 멜라닌이 없는 빈 과립만 존재한다. 이 경우 빛이 들어오면 짧은 파장, 즉 파란색 계열의 빛이 과립에 산란돼 튀어나가고 긴 파장 빛은 통과해 상피세포층에서 흡수된다. 그 결과 눈이 파랗게 보인다. 이런 현상을 틴들 산란이라고 부른다. 흔히 스킨이라고 부르는 화장품 가운데 반투명한 형태를 보면 푸르스름하게 보이는데, 역시 틴들 산란 때문이다.

 

  홍채는 사람뿐 아니라 다른 많은 동물의 눈에도 존재하는 구조이므로, 이들의 홍채 기질에 멜라닌이 없다면 역시 눈이 파랗게 보이지 않을까. 물론 그렇다. 드물지만 자연계에는 눈이 파란 다양한 동물이 존재한다. 적어도 피부색이나 털색의 관점에서는 사람은 정말 평범한 동물이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사람뿐 아니라 많은 동물에서 파란 눈을 지닌 개체가 발견된다. 홍채 기질에 멜라닌 색소가 없는 경우다. 왼쪽부터 고양이, 까마귀, 코알라. - 위키피디아 제공
사람뿐 아니라 많은 동물에서 파란 눈을 지닌 개체가 발견된다. 홍채 기질에 멜라닌 색소가 없는 경우다. 왼쪽부터 고양이, 까마귀, 코알라. - 위키피디아 제공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댓글 0

작성하기

    의견쓰기 폼
    0/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