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다를 바 없는 과학자의 삶, 연극에 담았죠"

2020.02.04 18:00
3일 오후 서울 성북구 ′극단초인′ 연습실에서 과학 연극 ′게놈 익스프레스′의 배우와 연출자들이 연습 중 포즈를 취했다. 왼쪽부터 이빛나, 김신용, 김하진, 최용현 배우와 오정민 조연출, 전혜윤 연출, 정기영 바람의길과학 대표다. 윤신영 기자
3일 오후 서울 성북구 '극단초인' 연습실에서 과학 연극 '게놈 익스프레스'의 배우와 연출자들이 연습 중 포즈를 취했다. 왼쪽부터 이빛나, 김신용, 김하진, 최용현 배우와 오정민 조연출, 전혜윤 연출, 정기영 바람의길과학 대표다. 윤신영 기자

3일 오후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극단 ‘초인’의 지하 연습실. 한 젊은 남성이 여성에게 애타는 표정으로 무언가를 조르고 있었다. 언뜻 사랑을 갈구하는 것 같아 보였지만, 실은 여성이 가진 비밀스러운 자료를 한 번 보여달라고 조르는 과학자를 연기하는 중이었다. 남성은 20대의 젊고 야심만만한 미국 출신 과학자로 DNA의 구조를 처음 발견한 제임스 왓슨의 역할을 맡았고, 여성은 왓슨에게 위대한 발견의 핵심 힌트가 될 자료를 빼앗기고 잊히는 비운의 학자 로절린드 프랭클린을 맡았다. 과학사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대목 중 하나를 연기하고 있었지만, 연습 시간에 두 사람의 대사는 웃음이 배어 나올 만큼 유머러스했고, 표정은 만화처럼 장난스러웠다.


이들은 2월 12~16일 서울 대학로 알과핵 소극장에서 열리는 연극 ‘게놈 익스프레스’를 연습하고 있었다. 게놈 익스프레스는 국내에서 거의 시도된 적 없는 본격적인 과학 연극이다. 과학문화기획사 ‘바람의길과학’의 정기영 대표와 극단 초인이 공동으로 기획했다. 부모와 자식이 닮는 신비로운 생명현상인 ‘유전’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100년 넘게 고군분투해 온 과학자 9명의 삶을 배우 6명의 열연에 담았다. 생물학자이자 교사인 조진호 작가가 2016년 발표한 동명의 그래픽노블을 전혜윤 연출자가 극화했다. 2019년 한국과학창의재단의 제작 지원을 받았다.


과학 연극이라니 골치 아프게 들린다. 과학자가 등장해 신기한 실험을 하면서 과학 지식을 일방적으로 전하는 장면을 떠올리는 사람도 많다. 실제로 기존에는 과학 연극 중에는 이런 과학 '교육 연극'이 많았다. 하지만 게놈 익스프레스는 이들과 다르다는 게 배우와 기획자들의 설명이다. 만화의 영향을 받은 환상적인 스토리 안에 ‘사람’으로서의 과학자 이야기를 담아 재미와 감동이 있다는 것이다. 


전혜윤 연출자는 “많은 인물들이 복작대며 모여 이야기를 만들기 때문에  생생한 캐릭터를 만드는 데 특히 신경을 썼다”며 “배우들도 배역을 이해하기 위해 수많은 자료를 찾아 읽으며 연구했고, 이를 대본에 녹였다”고 말했다. 실제로 로잘린드 프랭클린을 연구한 이빛나 배우는 과학자들도 잘 모르는 구석진 에피소드를 발굴해 이날 연습에서 소품과 함께 연기했다.

 

주인공 중 한 명인 생물학자 바버라 매클린톡을 연기한 김하진 배우는 “과학자들은 맞는지 틀리는지도 모른 상태에서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존재”라며 “때론 성공하고 때론 실패한다는 점에서 과학자도 우리와 똑같은 길을 걷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연기하며 몇 번이나 눈물을 쏟았다”고 말했다.

 

연습은 화기애애했다. 과학에 처음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져본다는 배우들은 ″이야기가 재미있고 캐릭터가 생생하다″며 ″원작과 연극 모두 재미있다″고 말했다. 윤신영 기자
연습은 화기애애했다. 과학에 처음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져본다는 배우들은 "이야기가 재미있고 캐릭터가 생생하다"며 "원작과 연극 모두 재미있다"고 말했다. 윤신영 기자

참여하는 배우들은 신인부터 20년 이상의 경력을 지닌 중견까지 다양하다. 연극만 천직으로 알던 이들은 이번 작품을 연기하며 처음 과학에 눈을 떴다. 왓슨 역의 최용현 배우는 “과학은 멀다고만 생각했는데, 극 중 ‘단순한 것은 옳은 것일 수밖에 없다’는 왓슨의 대사에 과학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며 “철학과 닮은 매력을 새롭게 느꼈다”고 말했다. 유전 개념을 제기한 과학자 아우구스트 바이스만을 연기한 김신용 배우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 세상에 대한 질문으로 나아간다는 점에서 과학과 연극은 잘 어울린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배우와 연출자들은 이날 연습과 인터뷰 내내 화기애애했다. 정말 즐기며 연기하고 있다는 느낌이 물씬 풍겼다. 김신용 배우는 “어려운 과학 개념과 진지한 과학자들이 나오는 연극을 보면서도 울고 웃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라며 “장황한 설명 없이, 빈 무대와 한정된 조명 안에서 배우의 시선과 상상만으로 관객에게 내용을 전달하는 ‘연극만의 매력’을 과학 연극을 통해서도 듬뿍 느낄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정기영 대표는 “과학자를 소재로 한 연극이 몇 편 있지만 우리의 작품은 그 무엇과도 다를 것”이라며 “무엇보다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는 데 애정을 느낀다”고 말했다.

 

3일 오후 서울 성북구 ′극단초인′ 연습실에서 과학 연극 ′게놈 익스프레스′의 배우와 연출자들이 연습 중 포즈를 취했다. 왼쪽 뒤부터 최용현, 김신용, 이빛나, 김하진 배우와 오정민 조연출, 전혜윤 연출이고, 앞에 앉은 인물이 정기영 바람의길과학 대표다. 윤신영 기자
3일 오후 서울 성북구 '극단초인' 연습실에서 과학 연극 '게놈 익스프레스'의 배우와 연출자들이 연습 중 포즈를 취했다. 왼쪽 뒤부터 최용현, 김신용, 이빛나, 김하진 배우와 오정민 조연출, 전혜윤 연출이고, 앞에 앉은 인물이 정기영 바람의길과학 대표다. 윤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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