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메르스 '슈퍼전파자 늑장대처', 삼성서울병원 책임 아냐"

2020.01.30 10:28

14번 환자 접촉자 파악 늦어진 원인, 당국·병원간 '소통 미스'로 판단

보건당국도 명단 받은 뒤 대처 늦어…"4일간 방치한 잘못"

2심 재판부 "806만원 과장금 취소하고 손실보상금 607억원 지급하라" 판결

 


연합뉴스 제공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당시 '슈퍼 전파자'로 불린 14번 환자에 대한 '늑장 조치'를 둘러싸고 삼성서울병원이 정부를 상대로 소송전을 벌여 1·2심 모두 이겼다.

 

법원은 당시 사태 초기에 메르스를 전국적으로 확산시킨 근본 원인이 삼성서울병원의 잘못된 대처보다는, 병원과 당국 사이의 소통이 조금씩 어긋난 데 있었다고 봤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5부(배광국 김종기 장철익 부장판사)는 삼성서울병원을 운영하는 삼성생명공익재단이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낸 소송의 항소심에서 1심과 같이 "806만원의 과징금을 취소하고 607억원의 손실보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 소송은 메르스 유행 초기이던 2015년 5월 29일 14번 환자가 메르스에 노출됐다는 사실이 확인된 이후 대응 과정을 둘러싸고 제기됐다.

 

당시 질병관리본부 역학조사관들이 삼성서울병원에 14번 환자의 접촉자 명단과 연락처를 달라고 요구했으나, 병원은 밀접 접촉자 117명만 같은달 31일에 제출했다. 접촉자 678명 전체의 명단은 6월 2일에야 제출됐다.

 

14번 환자는 메르스가 전국적으로 퍼지는 기폭제가 돼 '슈퍼 전파자'로 불렸다.

 

보건복지부는 삼성서울병원이 명단을 늦게 제출한 것에 대해 업무정지 15일의 행정처분을 부과했다. 다만 환자들의 불편을 고려해 806만원의 과징금으로 업무정지 처분을 갈음했다.

 

아울러 보건복지부는 삼성서울병원이 메르스 사태 당시 진료 마비로 입은 손해액 607억원도 전혀 보상하지 않았다.

 

이에 삼성서울병원은 과징금 부과와 손실보상금 지급 거부 처분 모두를 취소해 달라고 소송을 냈다.

 

1·2심은 모두 삼성서울병원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당시 14번 환자의 접촉자 명단이 늦게 통보된 것이 질병의 확산에 영향을 줬으리라는 점은 부인하지 않았다.

 

2차 감염자인 14번 환자는 81명을 3차 감염시켰고, 이 가운데 16명이 사망했다. 3차 감염자 중에는 14번 환자와 접촉한 사실이 파악되지도 못한 상태에서 메르스 확진을 받은 경우도 많았다. 또 3차 감염자 중 4명으로부터 17명의 4차 감염자도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재판부는 당시 명단이 통보되기까지의 과정을 세밀히 따져보면 삼성서울병원이 감염병예방법상 금지된 '역학조사 거부·방해·회피'를 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삼성서울병원과 당국 사이에 '연락처가 포함된 명단'을 두고 명확한 의사소통이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봤다.

 

당시 당국이 필요로 한 것은 접촉자들에게 메르스 감염 가능성과 주의사항 등을 알릴 수 있는 연락처였다.

 

그러나 6월 2일 이전까지 역학조사관이 명시적으로 '연락처가 포함된 678명 전체 명단'을 요구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당시 삼성서울병원은 감염관리팀에서 접촉자의 이동 경로와 노출 추정시간 등 20개 넘는 항목의 자세한 내용이 담긴 '마스터 명단'을 작성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정작 연락처 항목이 없었다. 연락처 항목은 원무팀에서 작성했다.

 

역학조사관이 6월 2일 이전에 여러 차례 명단을 요청할 때마다 명시적으로 연락처를 요구하지 않다 보니, 삼성서울병원 감염관리 파트장은 '마스터 명단'을 줬다.

 

6월 2일에야 역학조사관이 명시적으로 연락처 명단을 우선 달라고 요구하자, 병원 측은 곧바로 이를 제출했다.

 

이에 앞서서는 보건복지부 사무관이 별도로 일부 명단 제출을 요구함에 따라, 병원 측에서 명단 제출 창구가 일원화된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까지 발생했다.

 

재판부는 이런 일련의 과정을 종합해보면, 삼성서울병원에 역학조사를 방해하겠다는 '고의'를 발견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보건복지부 측의 실수도 메르스 사태의 확산에 한 가지 원인이 됐다고 봤다.

 

6월 2일 삼성서울병원이 전체 명단을 제출했지만, 보건복지부 측은 6월 6일에야 이를 지역보건의료정보시스템에 입력했다.

 

그 탓에 '비(非)밀접 접촉자'에 대한 시·도 보건소의 연락 조치는 6월 7일에야 시작됐다.

 

재판부는 "14번 환자의 비밀접 접촉자에 대한 조치가 제때 취해지지 못한 원인에는 보건복지부 측이 4일간 방치한 잘못이 작지 않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14번 환자로부터 3차 감염돼 11명을 4차 감염시킨 76번 환자의 경우 6월 5일 메르스 증상을 보였다는 점을 꼬집었다.

 

재판부는 "통상 5일인 메르스 잠복기를 고려하면, 당국이 6월 2일 명단을 제출받아 곧바로 접촉자들에게 적절한 조치를 했다면, 76번 환자에 의한 4차 감염이 예방됐을 가능성을 부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댓글 0

작성하기

    의견쓰기 폼
    0/150
    * 21대 국회의원 선거운동 기간에는 실명확인 과정을 거쳐야 댓글을 게시하실수 있습니다.
    * 실명 확인 및 실명 등록 서비스는 선거운동기간 (2020. 4. 2 ~ 2020. 4. 14) 동안에만 제공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