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N사피엔스]"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어도 인간 광기는 계산할 수 없다"

2020.01.23 14:00
'프린키피아'를 들고 있는 뉴턴이 새겨진 1파운드 영국 지폐. 뉴턴은 1699년에는 조폐국장에 임명돼 생을 마감할 때까지 약 30년간 일했다.
'프린키피아'를 들고 있는 뉴턴이 새겨진 1파운드 영국 지폐. 뉴턴은 1699년에는 조폐국장에 임명돼 생을 마감할 때까지 약 30년간 일했다.

아이작 뉴턴의 만유인력은 생각해 보면 참 신기한 힘이다. 무려 1억5000만km나 떨어져 있는 지구와 태양이 텅 빈 우주공간을 가로질러 서로의 존재를 느끼며 서로의 질량중심을 중심으로 같이 돌고 있다. 중력은 원격작용(action at a distance)이다. 말이 좋아 원격작용이지 다른 익숙한 말로 표현하자면 일종의 마술 같은 힘이다. 해리포터를 떠올리면 딱이다. 볼드모트가 지팡이를 들고 “크루시오”라고 외치면 저 멀리 있던 해리포터가 괴로움에 울부짖는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이 문제는 말하자면 중력에 관한 ‘하우(how)'의 문제이다. 뉴턴 자신이 이 문제에 만족할만한 답을 찾지 못해 불만이었다고 한다. 한편 뉴턴이 이런 마술적인 힘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그의 독특한 이력과도 관계가 있다는 의견들도 있다. 근대과학을 완성한 뉴턴의 이미지와 잘 어울릴 것 같지는 않지만 뉴턴은 거의 30년 정도 연금술에 매진했다. 연금술은 좁은 의미로는 구리나 납 같은 평범한 금속으로 금, 은, 백금 같은 희귀금속을 만드는 기술이다. 조금 범위를 넓히면 만병통치약을 제조하는 일도 포괄한다.

 

지금 기준으로 보자면 대표적인 사이비 과학이라고 할 수 있다. 연금술의 연원을 따져 올라가면 아리스토텔레스도 마주치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엠페도클레스의 4원소인 흙, 물, 불, 공기에 각각 습도와 온도의 성질을 부여하고 이 성질들이 변하면 원소들이 변환된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흙은 차고 건조하다. 만약 찬 성질이 뜨거운 성질로 바뀌면 뜨겁고 건조한 원소, 즉 불로 바뀐다. 그러니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오랜 세월에 걸쳐 수많은 사람들이 헛된 꿈을 쫓아가게 만든 ‘원흉’ 중의 한 명이다. 뉴턴이 시골집에서 불과 1년 반 정도 만에 고전역학의 핵심을 정초했던 점을 감안하면 그 똑똑한 천재를 무려 30년 동안 연금술에 붙들어 둔 아리스토텔레스가 원망스러울 지경이다.

 

혹자는 뉴턴을 일러 최후의 연금술사라 부르기도 한다. 뉴턴은 연금술뿐만 아니라 기독교와 성경에도 관심이 많았다. 뉴턴은 자신의 수학적 재능을 발휘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날짜를 계산하기도 했고 성경에 숨겨진 계시를 찾아내려고 애쓰기도 했었다. 1990년대 말에는 한국에서도 성경 속 계시 찾기가 잠깐 유행했었다. 새천년을 앞두고 온갖 종말론, 휴거론 등이 난무하던 때였다. 뉴턴이 수백 년 뒤의 이런 모습을 미리 알았다면 기뻐했을까 아니면 슬퍼했을까, 가금 그런 궁금증이 생기기도 한다. 


연금술이나 점성술, 신성마법 같은 서양도학을 통칭해서 헤르메티시즘이라고 부른다. 신성마법과 대비되는 개념이 악마들의 흑마술이다. 선한 마법과 악한 마법의 대결, 너무나 익숙한 해리포터 시리즈의 대립구도이다. 그러고 보면 해리포터 시리즈 1편의 제목이 《해리포터와 철학자의 돌》인 것도 흥미롭다. 철학자의 돌은 평범한 금속을 귀금속으로 만들 때 꼭 필요한 요소이다. 이처럼 연원이 깊은 제목이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건너가서는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로 바뀌었다. 그 이유는 철학자의 돌이라는 말이 (특히 어린이들에게)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확실히 철학자의 돌과 마법사의 돌은 느낌이 아주 다르다. 

 

뉴턴이 연금술을 연구했던 자료
뉴턴이 연금술을 연구했던 자료

뉴턴의 운동 제2법칙, 즉 힘의 법칙(F=ma)을 헤르메티시즘의 관점에서 해석하기도 한다. 힘의 법칙은 뉴턴역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인 힘을 정의하는 법칙이다. 그런데 이 힘을 정의하는 방식이 독특하다. 보통 어떤 개념을 정의할 때에는 그 개념의 근원이나 본질적인 요소로부터 시작하기 마련이다. 예컨대 아리스토텔레스는 운동을 “운동이란 가능태로서의 존재자 자체를 현실화하는 것이다.”로 정의한다.


뉴턴 자신도 《프린키피아》 1권에서 “물체의 질량이란 밀도와 부피를 곱한 것이다.”, “운동량이란 속도와 물체의 질량을 곱한 것이다”와 같은 정의를 사용한다.


그에 반해 F=ma는 힘의 효과를 정의로 대체하고 있다. 즉, 속도의 변화가 있으면 어떤 형태로든 힘이 작용한 것으로 보겠다는 것이다. 그 힘의 정체는 모른다. 마찰력인지, 중력인지, 사람의 힘인지, 말의 힘인지, 또는 마녀의 힘인지는 괘념치 않는다. 제2법칙은 힘의 정체를 가린 채 다만 그 효과를 이용해 기술적으로만 힘을 정의한다. 이를 두고 헤르메티시즘의 영향으로 힘의 정체를 다소 신비화한 정의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이렇게 놓고 보면 전 세계적으로 5억 부가 팔렸다는 조엔 롤링의 해리포터 시리즈(그리고 툴킨스의 《반지의 제왕》까지도)가 영국에서 나온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흔히 말하기를 옛날부터 음주가무를 즐겼던 우리 민족의 전통이 현대의 BTS 같은 아이돌 그룹에게도 이어져 세계적인 한류로 발전했다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런 전통의 차이가 대서양을 가로질러 철학자의 돌을 마법사의 돌로 둔갑시켰다. 오랜 세월 전 세계를 호령했던 영국의 힘은 바로 이런 데서 나온 게 아닐까? 지난 2008년 런던 올림픽 개막식이 내겐 아직도 큰 문화적 충격으로 남아 있다. 영국이 이끌어왔던 문명의 도도한 흐름이 압축적이고도 장엄하게 느껴졌다. 


대중강연을 하다보면 자녀들을 창의적인 인재로 키우기 위해 또는 과학을 잘하는 학생으로 키우기 위해 어떻게 교육시키면 좋겠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나의 대답은 한결같다. “해리포터 시리즈를 권합니다.” 좋은 스토리는 좋은 과학이론과 비슷하다. 내적 일관성이 있고 필연성이 있고 구조적인 완결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이 인간 지식의 프런티어에서 그 경계를 넓혀 새로운 체계를 세우는 과정은 가상의 공간에 호그와트 마법학교를 세우는 과정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것이 바로 창의력이다. 수학이나 공식이나 계산법은 나중에라도 차차 배우면 된다. 그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내용을 굳이 어릴 때부터 고생하며 배울 필요가 없다. 내 경험상 정말 본격적인 공부는 대학원에 가야 시작된다. 그 전까지는 자유롭고 흥미롭게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훈련을 하는 게 창의적인 인재로 자라는 데에 훨씬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자폐적인 성격으로 혼자 조용히 지내기를 좋아했던 뉴턴이지만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면서 당대의 쟁쟁한 인물들과 갈등을 겪기도 했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로버트 훅이다. 뉴턴과 동시대에 살았던 훅은 젊은 시절 보일의 법칙으로 유명한 보일의 실험조수로 일했을 만큼 물리, 화학, 천문, 생물 등 다방면에 걸쳐 두루 업적을 남긴 당대의 ‘셀렙’이었다. 훅의 가장 유명한 업적으로는 현미경으로 ‘세포’를 발견한 것이었다. 그리고 용수철을 잡아당기거나 압축했을 때 용수철이 작용하는 힘은 그 늘어난 길이에 비례한다는 ‘훅의 법칙’도 그의 작품이다. 


훅과 뉴턴은 중력의 역제곱 법칙을 두고 기여도 논쟁을 치열하게 벌였다. 《프린키피아》가 나오기 전부터 훅과 뉴턴은 여러 방면에 걸쳐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논쟁했다. 여기에는 빛이 입자인가 파동인가 하는 문제도 있었다. 처음에는 둘의 사이가 그리 험악하지는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훅과 뉴턴의 관계는 앙숙으로 변해갔다. 훅의 주장은 자신이 역제곱 법칙에 대한 공헌, 즉 크레딧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뉴턴이 《프린키피아》를 쓸 때에는 뉴턴이 자신의 공을 가져갔으니 서문에 그 내용을 적시해야 한다고, 《프린키피아》출판을 주선한 핼리에게 요구하기도 했었다.


실제로 훅은 이전에 뉴턴에게 쓴 편지에서 역제곱의 법칙을 언급하기도 했었다. 그러니까 훅에게도 역제곱 법칙의 공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훅의 공을 뉴턴이 가로챘느냐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당시에 훅과 뉴턴 등의 학자들이 고민했던 문제는 태양과 행성 사이에 역제곱 법칙의 중력이 작용할 때 행성의 궤도가 어떻게 될 것인가, 행성이 케플러 법칙에 따라 타원궤도를 돈다면 태양과 행성 사이에 어떤 힘이 작용하는가 등이었다.

 

이미 소개했듯이 《프린키피아》에서도 뉴턴은 이 주제를 다루었다. 훅의 주장에 뉴턴은 크게 반발했다. 뉴턴의 요지는 당시 알 만한 사람들은 모두 태양과 행성 사이에 역제곱의 법칙이 작용함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다 알고 있던 사실을 왜 혼자만 알고 있었다는 듯이 주장하느냐, 게다가 수학적으로는 내가 훨씬 더 잘 알고 있었다는 게 뉴턴의 주장이다. 뉴턴은 계속해서 이런 식의 논란에 휩쓸리기를 싫어했다. 이것이 《프린키피아》를 라틴어에다 기하학을 동원해 난해하게 쓴 이유 중 하나였다. 훅은 뉴턴보다 7년 연상이었고 왕립학회에서도 서기로 활동하는 등 사회경력도 앞서나갔다. 훅이 죽은 뒤에는 뉴턴이 왕립학회 회장을 역임했는데 뒤끝이 매끄럽지 않았던 뉴턴은 훅의 원고나 논문을 태워버리는 등 왕립학회에서 훅의 흔적을 하나씩 지웠다. 일화에 따르면 왕립학회가 이사할 때 훅의 초상화를 잃어버려 훅의 공식 초상화가 전해지지 않은 것도 뉴턴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뉴턴은 말년에 공직에 진출하기도 했었다. 계기는 당시 영국의 경제상황과 관계가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그때 유통되고 있던 각종 은화를 사람들이 훼손해서 막대한 양의 은을 국외로 빼돌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같은 양의 은으로 살 수 있는 구매력이 나라마다 달라서, 예컨대 런던에서 빼돌린 은으로 프랑스에서 금을 구매한 다음 그 금을 다시 런던에서 은화로 바꾸면 시세차익을 노릴 수 있었다.


재무장관이었던 윌리엄 라운스는 존 로크 등 유능하고 유명한 사람들에게 편지로 자문을 구했다. 그 중에는 《프린키피아》로 명성이 높았던 뉴턴도 있었다. 어쨌든 그는 천재가 아닌가. 뉴턴이 제시한 해법은 간단했다. 화폐를 개조해 주화 둘레에 톱니모양의 무늬를 넣는 것이었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500원짜리나 100원짜리 동전의 테두리에도 톱니모양의 무늬가 들어가 있다. 이렇게 화폐를 주조하면 동전의 가장자리가 훼손된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이 공으로 뉴턴은 1696년 조폐국 감사로 임명돼 공직을 시작했다. 비교적 한직이라고 제안했으나 뉴턴은 아주 열심이었다고 한다. 1699년에는 조폐국장에 임명돼 이듬해부터 생을 마감했던 1727년까지 국장직을 역임했다. 


조폐국 감사 시절에는 직접 화폐위조범을 검거하는 수사에 나서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다소 잔인한 방법으로 용의자들 심문에 나서기도 했다고 한다. 뉴턴이 수사한 사건 중에 윌리엄 챌로너 사건이 있었다. 


 챌로너는 언변과 손재주가 좋아 화폐위조에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고 번득이는 기지로 법망을 교묘히 잘 빠져나갔다. 뉴턴은 각고의 노력 끝에 윌리엄 챌로너를 붙잡아 재판에 넘겼고 결국 유죄판결을 받아냈다. 당시에는 화폐위조범을 국가반역에 준해 처벌했다. 국가반역자는 이른바 교수척장분지형(또는 마예4열형; hanged, drawn and quartered)으로 처형했다. 죄인을 말로 끌고 가서 목을 매달고 죽기 직전에 교수대에서 내려 죄인의 눈앞에서 내장을 꺼내 불태우고 몸을 네 토막으로 잘라내는 형벌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목숨이 붙어 있을 수 있으므로 대단히 고통스런 형벌이다. 이 형벌을 당한 대표적인 인물로 스코틀랜드의 독립영웅인 윌리엄 월리스가 있다. 영화 '브레이브 하트'의 실존인물이기도 한 월리스는 1305년 런던에서 이 형으로 처형됐다. 그나마 화폐위조범에게는 약간의 자비가 허용되어 목을 매달고 숨이 끊어진 뒤에 신체를 토막냈다고 한다. 챌로너가 처형된 1699년 크리스마스에 조폐국장으로 승진했다. 크리스마스에 태어난 뉴턴에게는 최고의 생일선물이었을 것이다. 


공직에 있는 동안 뉴턴은 대학에서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벌었다. 세기의 수학천재이니 재테크도 아주 훌륭하게 성공했을 것 같은데 사실은 기대와 좀 달랐다. 1720년에 일어난 이른바 ‘남해회사 주식사건’ 때 약 2만 파운드(한화 약 20억 원) 정도의 손해를 봤다. 이는 조폐국장 월급의 40년 치에 해당하는 액수였다. 


원래 이 회사는 남미 식민지의 노예 독점무역으로 영국 정부의 채무를 정리하기 위해 세웠으나(1711년) 이후 금융회사로 변신한다. 1719년 대규모 국채인수 조건으로 주식을 발행할 수 있게 허용된 것이다.

 

이듬해인 1720년부터 남해회사의 주가가 폭등하기 시작했다. 연초 128파운드였던 주가는 3월 330파운드, 5월 550파운드, 6월 1,000파운드를 넘었다. 막판에는 피라미드 사업체 식으로 투자자를 모아 8월에도 1,000파운드 주식을 발행했다. 이후 주식은 순식간에 175파운드로 폭락했다.


뉴턴은 버블 막판에 큰돈을 질렀다가 낭패를 봤다. 수학과 주식은 확실히 다른 모양이다. 이 사건 이후 뉴턴은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어도 사람의 광기는 계산할 수 없다”는 말을 남겼다. 

 

수학자 출신의 억만장자, 제임스 사이먼스. 위키피디아 제공
수학자 출신의 억만장자, 제임스 사이먼스. 위키피디아 제공

가끔 주위 사람들이 내게 주식투자를 권하거나 열심히 공부해서 수익을 내 달라고 농담 반으로 청하기도 한다. 난 아직 한 번도 주식거래를 해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보기엔 물리학을 전공했으면 수학도 잘할 것이고 결과적으로 주식투자에서도 뭔가 수학과 물리학의 첨단기법을 이용해 큰 수익을 내리라 기대하는 것 같다. 뉴턴의 사례에서 봤듯이 이는 섣부른 환상에 불과하다. 언젠가 국내 학회에 갔더니 점심시간 사람들의 화제가 온통 주식투자로 큰 수익을 올렸다는 아무개의 스토리였다. 수다에 동참한 물리학자들 대부분은 크든 작든 주식투자에서 손해를 봤다고 실토했다. 물리학자들은 대체로 세상만사에 아는 체 하길 좋아하지만 실상은 ‘허당’인 경우가 많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미국의 유명한 수자인 제임스 사이먼스는 이론 물리학에서도 큰 업적을 남긴 분인데 1982년 르네상스 테크놀로지라는 회사를 만들어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다. 사이먼스는 ‘연봉 1조원의 사나이’로 유명하다. 르네상스 테크놀로지의 투자 알고리즘은 사이먼스의 수학모델에 기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도 최근 이론 물리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조금씩 금융권으로 진출하고 있다. 물리학자가 금융계로 진출한다고 하면 대개 사이먼스의 성공사례를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확률적으로는 뉴턴의 길을 따라갈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 나중에 ‘사람의 광기’까지도 계산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 출현하면 어떻게 될지 사뭇 궁금하기는 하다. 

 

참고자료

-요하네스 힐쉬베르거, 《서양철학사》(강성위 옮김), 이문출판사
-아이작 뉴턴, 《프린키피아 제1권 물체들의 움직임》(이무현 옮김), 교우사
-제임스 글릭, 《아이작 뉴턴》(김동광 옮김), 승산
-토머스 레벤슨, 《뉴턴과 화폐위조범》(박유진 옮김), 뿌리와이파리. 
-권혁철, 천재 뉴턴도 20억원 손해 본 남해회사 버블…배경엔 정부 있었다, 한국경제(2014.2.28.), https://www.hankyung.com/society/article/2014022823781

-토머스 레벤슨, 《뉴턴과 화폐위조범》(박유진 옮김), 뿌리와이파리.

-김기훈, 수학으로 연봉 1조원 벌다, 조선일보(2006.10.20.),  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06/10/20/2006102060519.html

-조가현, 세계 최고 펀드매니저에서 자선사업가로 변신한 제임스 사이먼스, 동아일보(2014.3.10.), http://www.donga.com/news/article/all/20140310/61561700/1

 

※필자소개 

이종필 입자이론 물리학자. 건국대 상허교양대학에서 교양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신의 입자를 찾아서》,《대통령을 위한 과학에세이》, 《물리학 클래식》,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아주 특별한 상대성이론 강의》, 《사이언스 브런치》,《빛의 속도로 이해하는 상대성이론》을 썼고 《최종이론의 꿈》, 《블랙홀 전쟁》, 《물리의 정석》 을 옮겼다. 한국일보에 《이종필의 제5원소》를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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