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재의 보통과학자]과학 논문도 변해야 한다

2020.01.17 14:32
동아사이언스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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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스비어(학술논문 전문출판사)가 이들 논문의 창작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다. 엘스비어 웹사이트에 등록된 모든 논문은 연구자들이 쓴 것이다. 연구자들은 엘스비어로부터 돈을 받지 않는다. 이는 창작자들이 팔린 만큼 돈을 받는 음악이나 영화 산업과는 완전히 다르다. (중략) 왜 연구자들은 (돈도 받지 않는데도) 자신들의 논문을 엘스비어에 제공할까? 그렇게 해야 하는 압력을 느끼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엘스비어는 소위 영향력 높은 저널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연구자가 인지도를 얻기 위해서는 그 저널들에 게재됐다는 커리어를 만들 필요가 있어서다.” 


보통과학자가 살아가야 하는 과학계, 특히 의생명과학 분야는 이미 레드 오션, 즉 시장포화상태에 가깝다. 이는 정부와 대학, 그리고 학술지 기업이라는 삼각동맹이 지난 20세기 중반부터 만들어낸 기형적인 생태계 때문이다. 이 생태계에서 정부는 과학자를 국가의 부속품처러 관리하고, 국가의 경쟁력을 높이려는 욕망을 달성한다. 부분적으로 이러한 정부의 욕망은 대중의 이해를 반영하며, 과학을 경제발전의 도구로 삼는 프레임은 국민세금이 대학으로 흘러들어가게 만드는 근거가 된다.

 

국민세금이 흘러들어가는 대학은 정부의 욕망을 충족시키며 학위장사를 통해 자본을 축적한다. 지난 수십년간 대학은 과학자를 위한 일자리 증가는 고려하지 않은채, 정부의 눈치만 보며 급격하게 대학원의 규모를 증가시켰고, 그 결과 지금과 같은 가파른 피라미드 형태의 인력구조가 형성됐다. 정부와 대학이 이런 심각한 기형적 구조의 물리적 형태를 만들어냈다면, 학술지 시장은 바로 이 기형적 구조를 이용해서 학자들 간의 경쟁을 무한으로 몰아붙이고, 그렇게 극단적으로 서열화된 학술지 사다리를 이용해서 엄청난 수익율로 돈을 벌고 있으며, 나아가 마치 숙주에 기생하는 기생충처럼 결국 과학계를 고사시키는 악행을 저지르고 있다.

 

과학계의 인력구조 피라미드. 대학의 학위장사가 만든 학위공장으로 인해 과학계의 인력구조는 가파른 피라미드형으로 변모했다. Post-PhD Career Trajectory & Funding Ian Humphreys Wellcome Trust Senior Research Fellow Institute of Infection and Immunity
과학계의 인력구조 피라미드. 대학의 학위장사가 만든 학위공장으로 인해 과학계의 인력구조는 가파른 피라미드형으로 변모했다. Post-PhD Career Trajectory & Funding Ian Humphreys Wellcome Trust Senior Research Fellow Institute of Infection and Immunity

모든게 다 논문 때문이다

 

출판하지 않으면 죽는다. 과학계에 널리 퍼진 자조적인 속담이다. 과학자들에게 논문은 일종의 화폐다. 과학자가 자신의 경력을 유지해나가는데 있어, 논문은 정말 화폐처럼 사용되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이 취업하고, 제자를 받고, 논문을 심사하고, 연구비를 신청하고 수주하는 모든 과정에서, 그 과학자가 해 온 연구의 질은 그가 출판한 논문으로만 평가된다. 자본주의라는 경제체제에서 돈이 모든 평가의 기준이 되듯, 과학계는 언젠가부터 오직 논문으로만 과학자의 질을 평가하려는 관행이 자리잡았다. 하지만 불과 백 몇십년전 《종의 기원》을 출판했던 찰스 다윈은 논문이 아니라 책으로 인정받은 과학자였다.

 

과학자들이 맹신하는 현재의 논문출판은 350년 이상 된 낡은 시스템이다. 과학논문은 분야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서론과 방법론, 결론, 토론의 순서로 구성된 글자 약 3만~5만자와 몇 장의 그림들로 구성된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논문을 온라인으로 읽는 세상이지만, 여전히 절반 이상의 학술지들은 논문을 굳이 종이로 찍어 출판한다. 논문 글자수 제한이 있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십여년 전부터 온라인으로만 학술지를 출판하는 곳이 많아졌고, 이제 논문의 글자수 제한이라는 오래된 관습도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논문을 작성하고 나면, 이 초고를 학술지에 제출한다. 예전엔 이 과정도 종이에 인쇄된 논문과 사진으로 인쇄된 그림들을 우편으로 보냈었지만, 이젠 모든 과정을 온라인으로 한다. 이렇게 논문이 제출되면 논문을 심사할 편집자가 배정된다. 논문 편집자는 막강한 권력을 지닌 과학계의 권위 있는 과학자인 경우가 많으며⁠, 이들은 제출된 논문을 동료심사로 보낼지 혹은 편집자 선에서 게재거부 판단을 내릴지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만약 논문이 동료심사를 받기로 결정되면, 편집자는 해당 분야의 연구에 경험이 있다고 판단되는 2~3명의 심사위원에게 초고를 발송하고 심사를 부탁한다. 심사위원들은 초고를 읽고 이를 평가해 편집자에게 제출하며, 편집자는 이렇게 제출된 평가를 모아 논문을 그대로 게재할지, 심사위원들이 지적한 사항들을 수정한 후 게재할지, 혹은 게재를 거부할지 결정해야 한다. 만약 이런 과정을 모두 거치고 편집자가 게재를 승인하면, 논문이 학술지에 출판된다. 이런 과정은 짧게는 3~4개월에서 길게는 1~2년이 걸리는 지루한 과정이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격파하고, 구글의 인공지능이 유방암과 날씨를 정확하게 예측하고, 블록체인 기술이 나날이 발전해서 중앙화된 시스템을 대체하려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과학자들은 350년이나 된 이 낡은 체계를 고수하고 있다. 동료심사와 편집자의 권위에 의존하는 논문 평가 체계가 잘 작동하던 시기가 분명히 존재했을 것이다. 하지만 과학계를 지탱하는 인력구조와 경쟁의 구도가 판이하게 달라진 현대에 이르러, 논문출판 시스템의 문제가 하나둘 드러나고 있다.


낡은 과학 논문 출판의 문제점들


현행 과학 논문출판의 첫번째 문제는, 새로운 지식이 출판되는데 지나치게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다. 수많은 과학자들에 의해 과학이 빠르게 발전하는 현대에, 350년이 넘은 고루한 방식을 적용하고 있으니 이는 당연한 귀결이다. 그래서 물리학과 수학 분야에서는 오래전부터 논문이 학술지에 출판되기 전의 초고를 모두가 볼 수 있는 서버에 보관하는 아카이브를 운영하고 있었다. 프리프린트는 동료심사를 건너뛰고, 과학자가 자신의 연구결과를 우선 동료에게 알리는 좋은 방법이지만, 의생명과학계에서는 이런 프리프린트 아카이브를 꺼리는 문화가 만연해 있다. 그 이유는 만약 자신의 연구를 출판 전에 공개한다면, 경쟁자 그룹이 연구를 베끼거나 자신보다 먼저 출판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다. 마치 오래된 연금술사들처럼, 의생명과학자들은 오랜 시간동안 자신의 연구결과를 논문출판 직전까지 동료들에게 숨기는 모순적인 행태를 보여왔던 셈이다.

 

하지만 과학이 발전하기 위해선, 모든 것이 공유되어야 한다는 과학의 오래된 규범을 어기면서까지, 과학연구를 수행해서는 안된다. 다행히 의생명과학계에도 bioRxiv(바이오아카이브)라는 프리프린트 서버가 생겨서 점차 그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적어도 논문심사과정에서 지연되는 시간 때문에, 과학계 전체가 새로운 발견을 빠르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문제는 해결되어가고 있는 셈이다⁠.

 

두번째 문제는 폐쇄적인 동료심사에서 나타나는 불공정과 인센티브, 즉 동기부여의 부족에서 나타나는 심각한 폐해다. 현재의 동료심사 체계는 일종의 명예보상의 성격으로 운영되는 재능기부 형태다. 즉, 편집자가 동료심사를 수행할 심사위원을 선정하면, 지정된 심사위원은 심사에 응할지 아닐지 결정할 수 있지만, 심사에 응하는 것이 그에게 큰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논문 심사로 얻는 이익이란 기껏해야 남들보아 출판전 논문을 먼저 볼 수 있다는 정도 뿐이다. 하지만 심사에 응하지 않았을 때 잠정적으로 심사위원이 받을 불이익은 존재한다. 즉, 해당 학술지가 심사를 거부한 심사위원에게 차후 해당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할 때 어떤 불이익을 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존재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동료심사는 대부분 재능기부 즉, 무료봉사로 이루어진다. 게다가 현대과학자들은 정말 바쁘다. 그 바쁜 시간을 쪼개서 인센티브도 없는 심사에 참여하는 과학자들의 심기가 좋을리 없다. 과학계의 출판경쟁이 과할정도로 가속화되면서, 심사위원들의 논문에 대한 반응도 점점 거칠어지고 비합리적으로 변하고 있다. 최근에는 페이스북에 ‘두번째 심사위원의 악행을 멈춰야 한다’라는 그룹까지 생겨나고 있다⁠. 왜냐하면 심사위원 중 꼭 한 명은 논문 저자들이 전혀 받아들일 수 없는 비합리적인 이유로 논문 게재를 거부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심사위원들의 이런 히스테리적인 발작이 나타나게 되는 가장 본질적인 원인은 동료심사 과정이 심사위원의 이름을 가린 익명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저자들의 이름은 공개가 되지만, 심사위원은 익명 속에 숨게 되면, 정보의 비대칭이 일어나게 되고, 우리가 잘 아는 인터넷 익명성의 폐해가 고스란히 드러날 수 밖에 없다. 익명성이 유지되는 인터넷 공간에 수많은 악플러들이 활동하듯이, 익명성이 보장되는 논문 심사위원들도 이름이 공개되었으면 하지도 못할 말도 안되는 비합리적인 이유로 논문을 공격하고, 때로는 저자들을 모욕하는 표현까지 쓰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런 익명성의 문제가 심각해지자 논문저자와 심사위원 모두를 익명으로 하자는 이중맹검 심사를 하는 학술지도 생겨났다⁠. 하지만 이 방법은 불완전한데, 저자들이 자신의 연구를 소개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누군지를 공개하지 않는다는게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논문 심사를 이중맹검으로 한다는건 요식행위에 불과하다. 그래서 최근에는 논문 심사를 우선 익명으로 하되, 논문이 출판될 경우 심사위원의 이름을 공개하는 제도도 시행중이다⁠.

 

하지만 이 제도 또한 논문 게재가 거부된 경우, 불공평한 심사가 이루어진 기록과 그 심사위원의 이름이 공개될 수 없다는 한계를 지닌다. 만약 논문 심사위원의 이름이 완전히 공개된다면, 아무도 심사위원을 맞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은 타당하다. 특히, 신진 과학자들의 경우 권위 있는 과학자의 논문을 신랄하게 실명으로 비판하기는 어려울 것이고, 이런 경우엔 익명 심사가 분명 공정한 심사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익명으로 얻는 이익과 손해 중 무엇이 큰지는, 과학계가 숙고해서 결정해야 한다. 

 

과연 현재의 논문 심사 체계가 주사위 굴리기보다 공정하다고 할 수 있을까. 픽사베이 제공
과연 현재의 논문 심사 체계가 주사위 굴리기보다 공정하다고 할 수 있을까. 픽사베이 제공

심지어 과학 논문의 저자들은 논문을 실으면서 학술지에 게재료를 내야 한다. 내가 신문에 글을 기고하면 게재료를 받지만, 과학 논문은 그게 거꾸로 되어 있는 셈이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말도 안되는 관행이 자리잡았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네이처나 엘스비어 등의 거대 학술지 회사들이 창조해낸 이 논문 생태계야말로, 과학계를 썩게 만드는 근본적인 이유 중 하나라는 점이다. 세계 최대 과학학술지 전문 출판사인 엘스비어의 영업마진율은 40%를 넘는다. 40%의 영업마진율은 애플보다 높은 수치다. 즉, 과학학술지 출판사들은 무지한 정부와 나이브한 과학자들의 땀과 피를 착취하며, 궁극적으로는 국민의 세금을 갈취해왔고, 나아가 과학계를 망쳐온 셈이다⁠15. 유럽을 비롯해서 미국 정부등이 국민세금으로 출판된 논문을 무조건 오픈액세스 학술지에 게재하라고 명령하는 이유는 당연한 것이다⁠. 

 

새로운 논문 생태계가 필요하다

 

위에서 다룬 문제들 외에도 현행 과학 논문출판 시스템은 여러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그 중 하나는 재현가능하고 견고한 연구결과들보다 흐름에 민감하고 유행하는 선정적인 연구결과들이 선호된다는 점이다. 논문 출판의 관행을 바로잡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과학계는 재현되지 않는 연구결과들과, 무한경쟁의 루프에 빠져 스스로 자멸하게 될 것이다. 그동안 과학자들은 오픈액세스 운동 및 프리프린트 서버구축 등을 통해 과학 논문출판의 문제점을 해결하려고 노력해 왔다. 하지만 이런 운동은 과학출판의 재현성위기를 근본적으로 처방하지 못했고, 여전히 과학자들은 무한경쟁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을 뿐이다. 이제 정말 새로운 방식으로 과학지식을 공유할 방법을 찾을 때가 되었다.

 

참고자료

-블로터닷넷, 돈 없어 논문 못 본다고? ‘사이허브’로 오라 http://www.bloter.net/archives/259652
-한겨레신문, [야! 한국 사회] ‘학술 시장’의 부패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54519.html
-동아사이언스, [김우재의 보통과학자] 맬서스의 학위공장, 그리고 과학기술인협회, http://dongascience.donga.com/news.php?idx=30312
-[야! 한국 사회] 미국의 과학, 미국식 과학 https://news.v.daum.net/v/20180430183620022
-하지만 지금처럼 학술지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이처럼 거대한 권한을 지닌 편집자의 자리에 갓 박사학위를 마쳤거나 박사후연구원 과정을 마친 과학자들이 포진하게 되었다.
-학술 출판과 프리프린트, https://m.blog.naver.com/enagokr/220952077670
-https://web.facebook.com/groups/reviewer2/?_rdc=1&_rdr
-Single-Blind Vs. Double-Blind Peer Review, https://www.enago.com/academy/double-blind-peer-review-for-better-or-for-worse/
-Peer Review: New initiatives to enhance the value of eLife’s process, https://elifesciences.org/inside-elife/e9091cea/peer-review-new-initiatives-to-enhance-the-value-of-elife-s-process
-동아사이언스, 노벨화학상 수상자, 국제학술지 '논문 철회' 파문 "실험 재현 불가" 원인, http://dongascience.donga.com/news.php?idx=33354
-사이언스온, 재현성 위기는 과학불신과 연구낭비를 초래한다, http://scienceon.hani.co.kr/396048
-[야! 한국사회] 과학지식의 공유,  http://www.bloter.net/archives/259652
-사이허브는 논문을 대중에게 돌려주려는 해커의 저항이다. http://www.bloter.net/archives/259652
-이코노미 인사이트, 과학출판계의 화두 '오픈 사이언스' http://www.economyinsight.co.kr/news/quickViewArticleView.html?idxno=3101
-유럽연합위원회, 2020년까지 국가지원 연구논문을 오픈 액세스화하는 Plan S 발표, 저널 구독시대 종결될까 http://www.nibp.kr/xe/news2/122875

 

※필자소개 

김우재. 어린 시절부터 꿀벌, 개미 등에 관심이 많았다. 생물학과에 진학했으나, 간절히 원하던 동물행동학자의 길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포기하고, 바이러스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박사후연구원으로 미국에서 초파리의 행동유전학을 연구했다. 초파리 수컷의 교미시간이 환경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신경회로의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다. 모두가 무시하는 이 기초연구가 인간의 시간인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다닌다. 과학자가 되는 새로운 방식의 플랫폼, 타운랩을 준비 중이다. 최근 초파리 유전학자가 바라보는 사회에 대한 책 《플라이룸》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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