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돈사태 2년]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남았다

2020.01.12 16:48
 2018년 6월 환경보건시민센터 관계자가 서울 종로구 원자력안전위원회 앞에서 라돈침대 등 방사능이 검출되는 생활용품의 안전문제에 대한 정부조사를 촉구하고 있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제공
2018년 6월 환경보건시민센터 관계자가 서울 종로구 원자력안전위원회 앞에서 라돈침대 등 방사능이 검출되는 생활용품의 안전문제에 대한 정부조사를 촉구하고 있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제공

검찰이 이달 3일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1급 발암물질인 방사성 기체 ‘라돈’이 침대에서 검출되며  '라돈침대' 논란을 일으킨 대진침대와 원자력안전위원회에 대해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라돈침대를 사용했다고 직접적인 건강상 문제를 일으켰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이유다.

이번 결정으로 라돈 생활용품을 만들던 제조업체와 실태조차 파악하지 못하며 소홀히 관리했던 정부가 모두 면죄부를 받게 됐다.

 

하지만 검찰의 이런 무혐의 처분은 섣부른 판단과 함께 여론과도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이 있다.  실제 법리적 해석으로는 고소인들이 라돈 침대를 오래 써서 건강이 악화됐다고 보기에 어렵다고 판단할 수는 있다. 하지만  정부 스스로 공식자료를 통해 라돈에 장기간 노출되면 실제 폐암 발생률이 높아진다고 인정했고 인과 관계를 판단하는 데만 20년 이상 걸린다는 점을 감안하면 섣부른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이 틀린 지적만은 아니다.  

 

검찰 발표 직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여전히 사태 책임의 상당 부분을 정부와 제품을 판매한 기업에게 있다고 보는 견해가 더 많다. 


'담배와 폐암 인과 관계 증명 안되는 것과 같다?'

 

서울서부지방검찰청 식품의약품조사부는 방사성기체 라돈과 토론을 내는 원료물질 모나자이트를 바른 음이온 매트리스를 제작해 판매한 혐의를 받는 대진침대 및 하청업체 관계자와 모나자이트 관리의무를 소홀히 해 사태를 초래한 혐의를 받은 강정민 전 원안위 위원장과 원안위에 대해 불기소 결론을 내렸다고 3일 밝혔다.

 

검찰이 무죄를 준 가장 큰 이유로는 폐암이 라돈 흡입만으로 생기는 ‘특이성 질환’이 아니라 후천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비특이성 질환’이라는 사실이라는 점이다. 폐암은 흡연이나 대기오염 등에 의해서도 발생하기 때문에 담배 소송에서도 흡연과 폐암 간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듯 이 사건에서도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라돈에 많이 노출되면 폐암 발병이 늘어나는 것은 정부 스스로도 보도자료에도 나올 정도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WHO가 1급 발암물질로 라돈을 지정한 것도 라돈에 많이 노출될수록 폐암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입증됐기 때문이다.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는 방사선 방호 목적으로 방사능 물질의 위험도를 비례로 평가하고 노출이 많을수록 그에 비례해 위험이 커진다고 본다. 원안위가 라돈사태를 정리하기 위해 준비중인 ‘음이온 효과 표방 천연방사능 함유 상품에 의한 토론 방사선 피폭 사건에 관한 백서’를 보면 라돈 농도가 1㎥당 100베크렐(Bq·방사능의 단위)일 때 폐암 절대위험은 0.8% 늘어나는 것으로 나온다.

 

방사성 물질인 토론의 영향을 알 수 없다는 점도 문제다. 토론은 라돈의 방사성 동위원소로 반감기가 55.6초로 짧다. 라돈 침대 사태전만 해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서 보듯 생활제품이 호흡기 근처에서 쓰인다면 몸에 영향을 미친다. 원안위가 2018년 5월 대진침대 중간조사에서 발표한 피폭선량에서도 토론의 영향은 라돈의 영향보다 최소 10배 이상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토론을 흡입한 사례가 보고되지 않다보니 얼마나 위험한지 연구가 전무한 실정이다. 

 

토론이 인체에 영향을 미치는 방법은 라돈과 동일하다. 인체에 붙어 붕괴하며 방출되는 알파 방사선이 인근 세포에 악영향을 준다. 토론의 영향은 라돈의 72%로 추정한다. 백서안에서는 실내주택 라돈 농도 기준인 ㎥당 148Bq의 4배에 달하는 ㎥당 525Bq의 토론 농도를 가진 침대 매트리스를 5년 사용했을 때를 가정하고 그로 인한 폐암 위험 증가 수준을 0.5%로 평가했다. 침대를 5년 쓰는 것만으로 폐암의 발병률이 0.5% 늘어난 것이다.

 

20년 뒤에야 영향 나타나...그때는 누가 책임지나

 

검찰이 방사성 물질의 영향이 장기적으로 미치는 문제를 간과하고 단기간만 고려해 내린 근시한적 판단을 내렸다는 지적도 많다.  

 

폐암은 진전이 느린 질환이라 영향이 늦게 나타나는 점도 문제다. 2003년 스웨덴 연구진에 따르면 폐암 발암원에 노출된 후 폐암이 진단될 때까지는 20년이 걸린다. 2008년 제작된 침대부터 문제가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폐암 진단까지는 8년 이상 남은 것이다. 폐암은 오래 관찰해야 한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연구는 많다. 흡연과 폐암의 관계를 연구한 결과에서도 흡연이 늘어나는 것과 폐암이 발병하는 사이에는 25년 시차가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하버드대 연구팀에 따르면 폐암의 암 위험 영향지속기는 55년 내외로 나타났다. 라돈에 한번 노출되면 55년간 위험영향이 따른다는 것이다.

 

이번 검찰 결정은 소비자들을 납득시키기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소비자 상당수가 정부와 기업 책임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환경보건시민센터와 서울대 설문조사에서 기업과 제조기업이 공동 책임을 져야 한다는 답변이 44.7%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제조기업 책임이 가장 크다는 응답이 35.9%로 나타났다. 정부의 책임이 크다는 응답도 14.8%였다. 소비자의 책임이라는 응답은 2.6%에 머물렀다.

 

20개월 넘게 불안에 떨었는데  정부·기업 책임 없다? 

 

소비자 단체와 환경 단체는 피해자의 건강을 오래 관찰하는 건강영향조사의 필요성을 높게 보고 있다. 환경보건시민센터와 서울대 보건대학원 직업환경연구실이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서치뷰’에 의뢰해 지난해 12월 전국의 성인남녀 109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64.4%는 라돈이 검출된 침대 사용자에 대한 건강영향 조사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제대로된 피해조사도 하지 않은 검찰이 섣부르게 무혐의 처분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국민의 의견”이라고 밝혔다.

 

원안위는 건강영향조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원안위 관계자는 “대진침대의 경우 동일모델이라 하더라도 선량값이 모두 제각각이며 평가를 위해서는 개별 소비자의 수면자세, 수면시간, 침대 사용기간 등 사용행태에 대한 정확한 정보 등이 필요하나 개인의 과거 기억에 의존할 수 밖에 없어 조사에 한계가 있다”며 “평가를 할 수 있는 마땅한 방법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원안위는 다만 "연간피폭선량 100 m㏜(밀리시버트) 이하에서 현재까지 인체에 영향이 있다고 보편적으로 입증된 과학적 근거는 없다"며 "대진침대 전체 모델에 대해 10시간 동안 엎드려 자는 상황을 가정해 평가한 결과, 연간피폭선량이 1.11~13.74mSv 수준이었다"고 덧붙였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라돈침대 사태는 세계 어디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발견되지 않아 관련 연구조사가 없는 것도 당연하다"며 "정부가 건강피해를 입증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센터는 또 “정부가 사태를 안이하게 보고 어떤 노력과 조치도 취하지 않아 입증을 못한 것이지 입증 불가능하다고 확정된 것은 아니다”며 “역학조사나 동물실험 등 연구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혐의가 없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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