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애정과 열정이 ‘지나쳐도’ 번아웃 온다

2020.01.04 06:00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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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원대한 계획을 세웠더라도 잔뜩 지쳐 있어서 그것들을 실천으로 옮겨갈 에너지가 없다면 목표 달성은 불가능하다. 어쩌면 괜히 달성 못할 계획들만 세워서 좌절을 더 늘리는 셈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지쳐 있다는 건 구체적으로 어떤 걸까. 지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번아웃이란? 

 

흔히 직장, 학교 등에서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는 번아웃은 지독한 피로(fatigue), 냉소(cynicism), 낮은 성취감의 크게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다. 피로는 말그대로 신체적으로 또는 정신적으로 상당히 피로한 상태라는 느낌이다. 뭘 해도 피로가 풀리지 않으며 개운해지지 않는 듯한 상태다. 냉소는 일을 처음 시작할 때 가졌던 꿈과 열정, 이루고 싶었던 바가 없어지고 일과 나 사이의 간격을 멀리 떨어뜨려 놓은 상태이다. 건강한 심적 거리두기가 아니라 이 일은 나의 소망이나 자아실현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어쩔 수 없어서 하는 것이라는 다소 차가운 태도를 말한다. 냉소는 수동적으로 요구되는 가장 최소한의 일을 하는 것과도 관련을 보인다. 마지막으로 낮은 성취감은 직장이나 학교 등에서 별로 성취한 게 없으며 주변에 내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다는 느낌이다. 


또 다른 증상들로는 주변에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없으며 홀로 고립되어 있다는 단절감을 느끼는 것이나 같은 양의 일도 이전에 비해 훨씬 많게 느끼는 것, 또 자기 자신의 선택과 능력에 대한 의심, 우울한 기분을 달래보려고 해도 잘 나아지지 않고 스트레스가 쉽게 해소되지 않는 것 등이 있다. 

 

                                                                                                                       

우리를 지치게 만드는 것들


남들보다 죄책감이 많다든가 원래 불안이 많은 등의 개인적 원인들이 있겠지만, UC 버클리대의 심리학자 크리스티나 마슬락에 의하면 번아웃에 있어서는 개인적 요인보다 환경적 요인들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지나치게 높은 업무 요구수준, 요구 수준은 높으면서 이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자원과 도움은 부족한 상황, 다양한 갈등(주어진 역할들 간 또는 중요시하는 가치관과 조직의 가치관, 또는 그냥 사람들 사이의 갈등) 등이 그것들이다. 


따라서 마슬락은 번아웃을 판단할 때 다음의 여섯 가지 요소들을 고려해보라고 조언한다. 


① 업무 또는 공부의 양이 지나치게 많은 것은 아닌지(workload)
② 일이나 공부를 할 때 나에게 어느 정도의 재량권이나 자율성이 주어져 있는지(control)
③ 적절한 보상이 존재하는지
④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원만한지, 모르는 걸 묻고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이 주변에 있는지(community)
⑤ 회사의 정책이나 일이 분배되고 진행되는 과정들이 공정하다고 느끼는지
⑥ 내가 하는 일이 가치있다고 느껴지는지, 해야 하는 업무들이 나의 가치관에 위배되어 나의 일부분을 숙이고 들어가야 한다고 느끼고 있지는 않는지


마슬락은 직원들을 번아웃 상태에 빠져들게 하고 싶지 않다면 회사들은 마땅히 이런 업무량, 통제력, 보상, 사회적 관계, 공정성, 가치 등을 잘 모니터링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번아웃에서 벗어나는 법


번아웃의 세가지 요소들 중 피로의 경우 지나친 업무량을 줄이고 잘 자고 잘 먹고 잘 쉬게 하는 것 만으로 어느 정도 향상되는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냉소의 경우 기본적으로 의미의 상실 때문에 찾아오는 것이기 때문에 일이나 또는 최소한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어떤 의미를 찾는 것이 중요할 수 있다. 


의미 찾기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으로 한 가지 추천되는 것이 스스로 업무를 재정의해보는 것이다. 예컨대 음식점에서 서빙하는 일을 하면서 자신의 업무를 단순히 ‘음식을 내오는 일’이라고 정의해왔다면 여기에 어떻게 하면 좀 더 이쁘게 내놓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추가한다든가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나 회계하는 사람 등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쌓으면서 자신의 일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워보는 새로운 시도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일이나 공부 말고도 세상에 중요한 건 많아


일에 애착이 없어서 번아웃에 빠지는 경우도 많지만 의외로 애정과 열정이 ‘지나쳐서’ 번아웃에 빠지는 경우도 많다. 관련해서 어떤 분야에서 끝까지 버티는 사람들은 그 분야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엄청난 열정 또는 집착이 있는 사람이기보다 ‘해보고 안 되면 말지 뭐’ 정도의 가벼움을 한 켠에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대학에 입학할 때부터 ‘나는 최고의 연구자가 될 거야!’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던 친구가 생각보다 녹록지 않은 연구와 업무 외 괴로움들(인간관계, 이상한 문화 등)에 더 빨리, 크게 실망하고 누구보다 빨리 연구를 때려치우는 등의 경우를 종종 보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기대와 열정이 큰 만큼 실망과 후회, 좌절 또한 큰 법이다. 


실제로 운동 선수나 학생, 교사, 의료인 등을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 삶에서 좋은 선수, 학생, 교사, 의료인이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거나, 직업적 성공을 이루지 못하면 내 삶은 의미가 없다며 자아의 너무 큰 부분을 직업에 의지하고, 일 외의 다른 것들(휴식, 취미, 관계 등)을 지나치게 희생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더 빨리 이상을 잃어버리고 냉소에 빠져드는 현상이 관찰되었다. 직업과 자신을 너무나 동일시한 결과 직업과 가장 빨리 멀어진다는 것이 아이러니한 부분이다. 따라서 일을 즐겨보라는 등 열정을 너무 강조하는 분위기를 경계하는 학자들도 있다. 

 

새해에는 부산까지 가겠다고 고속도로에 뛰어들기 전에 나에게 충분한 연료가 있는지 먼저 살펴보는 지혜를 갖도록 하자. 열정이 지나치면 레이스 초반에 이미 다 타버릴 수 있다는 사실도 기억하고 힘들다면 지금보다 대충, 쉬엄쉬엄 해보자. 

 

참고자료

Maslach, C. (2003). Job burnout: New directions in research and intervention. Current Directions in Psychological Science, 12, 189-192.
Maslach, C., & Leiter, M. P. (2016). Understanding the burnout experience: recent research and its implications for psychiatry. World Psychiatry, 15, 103-111.
Vallerand, R. J., Paquet, Y., Philippe, F. L., & Charest, J. (2010). On the role of passion for work in burnout: A process model. Journal of Personality, 78, 289-312.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게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과 겸손, 마음 챙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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