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와 질병]오랜 친구가 좋다

2019.12.28 07:00
사람 몸속에 사는 편충. 퍼블릭 도메인
사람 몸속에 사는 편충. 퍼블릭 도메인

인간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감염병은 대부분 신석기 이후에 나타났다. 어느 정도 이상 인구 밀도가 높아지고, 정주 생활과 가축 등이 나타난 이후다. 인플루엔자, 결핵, 천연두, 흑사병, 풍진 등이 모두 그렇다. 인류의 오랜 친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에 반해서 수렵채집을 하던 구석기 시대, 아니 그 이전 인류가 나타나기 이전부터 같이 살던 미생물도 있다. 아주 오랫동안 공생했기 때문에 서로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가끔은 서로 돕는다. 오랜 친구라는 것이다.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나보자.
 
기생충

 

유명 영화 제목이 아니다. 기생충은 다른 생물에 기생하는 생물을 말하는데, 보통 박테리아나 바이러스는 제외한다. 그중에서 특히 단세포로 된 원충을 제외한 기생충, 즉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주로 장 속에 사는 기생충을 연충이라고 한다(물론 꼭 장 속에서만 사는 것은 아니다). 긴 원통처럼 생긴 선충은 요충이나 회충, 아니사키스, 사상충 등을 말한다. 

 

충분히 처리가 안 된 퇴비를 쓴 농산물을 잘 안 씻어 먹으면 감염된다는 그 녀석이다. 예전 이야기지만, 더러운 흙을 만지다가 직접 옮기도 한다. 빨판을 가진 녀석은 흡충이라고 하는데, 주혈흡충이나 폐흡충이 대표적이다. 민물고기나 참게를 먹거나 혹은 그냥 물에서 놀다 감염되기도 한다. 조충은 편절로 이루어져 있는데, 촌충이나 유구조충 등이다. 생선이나, 돼지고기, 쇠고기를 날로 먹으면 감염될 수 있다. 물론 요즘은 드물다.


그런데 기생충은 다른 세균이나 바이러스와 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간다. 일단 전염력이 다소 낮은 편이다. 급속도로 퍼지기 어려우므로 숙주에게 큰 피해를 주지 않도록 진화했다. 다른 숙주에 옮기기 전에 숙주가 죽어버리면 연충도 같이 죽기 때문이다. 또한, 대부분은 중간 숙주를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복잡한 생활사로 인해서 인간 및 다른 동물의 몸에서 같이 살기 위해 다양한 적응을 해왔다. 하지만 아예 한 몸이 되기로 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기생충 감염에 특화된 항체, 즉 IgE가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연충과 IgE의 공진화


우리 몸에는 항체가 있다. 항원에 반응하는 단백질을 일컫는다. 보통 Y자 모양으로 생겼는데, 갈라진 쪽 끝부분에는 항원에 붙는 조각이 있다. 이러한 항체는 대략 다섯 종류가 있는데, IgA, IgD, IgG, IgM, IgE 등이다. IgA는 침이나 눈물에 존재하는 항체이며, Ig D는 항원에 노출되지 않은 B세포의 항원 수용체다. 다섯 항체는 태반 포유류라면 거의 모두 가지고 있다. 

 

면역이란 몸 안에 들어오는 다른 생물을 쫓아내기 위한 적응이다. 그런데 쫓아내는 것도 에너지가 드는 일이므로 적당한 수준에서 타협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이나 벼룩, 모기 등은 몸 밖에 살기 때문에 쫓아내려면 손을 이용하여 잡거나 햇빛에 말리거나 모기 채를 써야 한다. 제법 성가시지만, 체외 기생충을 막는 내적 면역 반응은 없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말라리아는 원생생물이다. 그런데 이를 막는 제대로 된(?) 면역체계가 없다. 그래서 적혈구의 모양을 바꾸는 식의 놀라운 적응을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연충 수준부터는 면역계가 강력하게 작동하기 시작한다. 세균이나 바이러스는 말할 것도 없다.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감염력도 제법 높기 때문이다. 다양한 면역 반응이 활성화된다. 항체나 보체, 인터페론 등으로 공격하는 체액성 면역, 그리고 호중구나 단핵구 등으로 공격하는 세포성 면역이다. 특히 병원체 종류에 따라 특이적으로 기억, 반응하는 면역을 적응 면역이라고 하는데, T세포를 사용한 세포성 면역이나 항체 등을 이용한 체액성 면역이 바로 이런 역할을 담당한다. 적응 면역은 획득 면역이라고도 하는데, 선천 면역이나 비특이적 면역에 대응하는 개념이다. 

 

바로 IgE가 연충에 특화된 면역글로불린이다. 즉 체액성 적응 면역에 관여한다. 다른 항체에 비해서 최근에 진화했는데, 대략 3억 년 전으로 추정된다.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상대하는 다른 항체와 달리 연충을 집중 공략한다. 실험실 연구를 해보니, 동물의 IgE를 제거하면 연충에 대한 저항력이 약해졌다. 

 

아마도 쥐라기 무렵 포유류가 나타나면서 기생충과의 동침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1억 년이 훌쩍 넘는다. 포유류의 시대가 열린 신생대 이후만 고려해도 6500만 년이다. 긴 시간 동안 기생충, 특히 연충은 숙주와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 적당한 수준의 타협을 이뤄왔다. 
 
면역 반응과 기생충
 

일반인, 알레르기 환자, 기생충 감염 환자의 혈청 내 Ig E를 측정하면 어떻게 나올까? 대충 알레르기 환자는 일반인의 열 배, 그리고 기생충 감염 환자는 알레르기 환자의 열 배다. 혹시 그렇다면 알레르기 환자는 기생충에 약간 감염된 상태인 것은 아닐까? 과거에 그런 주장도 있었다. 하지만 여러 연구를 해보니 오히려 반대였다. 연충에 감염된 사람은 천식이 적었고, 천식 환자에게는 연충 감염이 드물었다. 급성 감염과 만성 감염에서 결과가 다르게 나오기도 하지만. 알레르기성 천식 환자는 아마 어떤 기생충에 감염되어 이미 알레르기 항원이 결합할 수 없도록 비만세포를 포화시켰다는 것이다. 이를 'IgE 차단 가설'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알레르기의 원인은 혹시 놀고 있던 IgE 때문은 아닐까? 기생충 감염을 위해 싸워야 할 Ig E이지만, 기생충 감염이 없는 상태에서는 마땅히 할 일이 없으니 알레르기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적군이 없어지니 민간인을 오인하여 공격하는 당나라 군대다. 아마 과거에는 기생충 감염이 흔했으므로 알레르기를 일으킬 여분의 Ig E가 없었을 것이라는 가설이다. 일견 그럴듯하다. 하지만 이유 없이 Ig E가 계속 생산될 리 없다. 외적이 없으면 군대를 줄이는 것이 옳다. 항체 생산도 비용이 드는 생물학적 과정이다. 

 

일단 연충에 감염되면 IgE가 활성화된다. 곧이어 호염구나 호산구 등이 활성화되고, 대식세포가 출동한다. B세포에 의해 일어나는 비특이적 체액성 면역 반응이 우선이다. 이때는 IgE가 중개하지만 항원 특이적이지는 않다. 물론 IgE는 적응 면역을 일으키는 항체이므로, 조금 시간이 지나면 기생충에 대한 특이적 면역을 일어난다. 즉 처음에 일어나는 비특이적 체액 면역 반응이 과도하게 일어나면 IgE 중개성 제 I형 과민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어서 일어나는 '항체 의존성 세포 매개 세포 독성 반응'이 일어난다. 바로 제 II 형 과민반응과 관련되어 있다. 이는 Ig G에 의해서 매개된다. 항체는 염증 세포나 보체 등을 통해서 기생충을 공격한다. 

 

이러한 반응에는 T세포라는 림프구가 관여한다. 림프구는 백혈구의 일종인데, T세포, B세포, NK세포 등으로 나뉜다. 참고로 백혈구는 세포질에 과립 존재 여부에 따라서 과립성 백혈구와 무과립성 백혈구로 나뉘는데, 전자에는 호산구, 호염기구, 호중구 등이 있고, 후자에는 림프구와 단핵구가 있다. 아무튼, T는 또다시 보조 T세포, 세포독성 T세포, 조절 T세포 등으로 나뉘는데, 가장 핵심은 보조 T세포다. 보조라고 하니까 왠지 부수적인 역할을 할 것 같지만, 사실은 획득 면역 반응을 지시하는 장교다. 


Th 세포는 직접 죽이는 기능은 없다. 하지만 다른 T 세포나 B 세포를 활성화시키는 기능이 있다. 이를 다시 둘로 나누는데, 각각 Th1 세포와 Th2 세포라고 한다. 전자는 박테리아나 바이러스에 반응하며 인터페론 감마와 인터류킨-2를 분비하는데, 후자는 연충이나 알레르기원에 주로 반응하며 인터류킨-4를 주로 분비한다(인터류킨-13도 같이 나온다). 

 

그런데 인터류킨-4는 IgE를 생산하는 핵심적인 사이토카인이며, 다른 T 세포나 비만세포, 대식세포도 활성화시키고, 활성화된 Th2 세포는 인터류킨-5를 통해서 호산구도 활성화한다. 최근 인터류킨-4나 인터류킨-13을 억제하여 B세포에서 IgE의 생산을 억제하거나 인터류킨-5을 억제하여 호산구 활성화를 억제하려는 약물 개발 시도가 있었다.

 
흥미롭게도 인터페론 감마와 인터류킨-4는 서로 반대작용을 한다. 즉 Th1 세포의 반응과 Th2 세포의 반응이 서로 음의 피드백을 가진다는 것이다. 알레르기는 아마도, 지금까지의 연구를 보면 거의 확실하게도, Th2 세포의 반응이 과도하거나 Th1 세포의 반응이 부족하여서 일어나는지도 모른다. 지난 편에 이야기한 위생가설이다. 어린 시절에 세균이나 바이러스 감염이 적었기 때문에 Th1 반응이 충분하지 못했고, 따라서 Th2 반응이 과도하게 일어나서 알레르기가 된다는 것이다. 

 

물론 위생가설은 조금 설득력이 약하다. 일단 우리 선조는 신석기 이전까지는 박테리아나 바이러스 감염에 많이 시달리지 않았다. 인구 밀도가 낮기 때문이다. 게다가 도시는 사실 별로 ‘위생’적이지 않다. 오히려 종종 인구마 많은 도시의 어린이가 어린 시절에 더 많은 감염에 시달린다. 일부 실험적인 연구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가설을 지지하는 일관된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알레르기와 달리 기생충 감염은 인터류킨-10을 증가시킨다. 이는 비만세포에서 주로 생산되는데, 인터루킨-4와 비슷하게 인터페론 감마를 억제한다. 연충에 감염되면 인터류킨-10과 인터류킨-4가 늘어나고 인터페론 감마가 감소한다. 그런데 인터페론 감마는 대식세포를 활성화해서 기생충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게다가 인터류킨-10은 인터류킨-4보다 한술 더 뜬다. 종양괴사인자 알파를 억제하는데, 이는 다시 인터페론 감마의 활성을 억제한다. 즉 Th2 반응을 상당히 억제하는 것이다. 연충이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다양한 장내 기생충알.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제공
다양한 장내 기생충알. 크리에이티브 커먼스 제공

길고 가는 삶의 전략


기생충은 세균이나 바이러스처럼 빠른 전파가 어렵다. 따라서 숙주 내에서 오랜 세월 지내야 할 수도 있다. 그런데 한 숙주 내에 개체 수가 너무 많아지면 결국 다 죽어버릴 수 있다. 자제(?)하며 기회를 노리는 전략이 진화했을 것이다. 즉 만성적인 연충 감염은 오히려 면역 반응을 유발하여 감염성 충란에 의한 새로운 감염을 억제할 수 있다. 물론 이미 몸 안에 자리잡은 연충은 끄떡없다. 먼저 들어온 놈이 오래 살겠다며, 새로 들어오는 놈을 막는 것이다. 

 

만약 일부 인구 집단에서 조금은 과도한 IgE 매개성 면역 반응이 일어나고, 이러한 개체는 만성적인 기생충 감염을 겪으면서도 몸 안에서 감염이 심각하게 진행되지 않아 기생충과 장기간 공생할 수 있었다고 가정할 수 있을까? 즉 기생충이 숙주의 항 기생충 면역반응을 살짝 조장하면서 역설적으로 ‘가늘고 긴’ 생명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는 가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 기생충에 만성 감염된 사람은 알레르기가 별로 없거나 심지어 기존에 앓던 알레르기가 좋아지기도 하는 것일까?


IgE 말고 기생충 감염과 관련된 또 다른 항체가 있다. 바로 IgG다. IgG는 총 네 종류가 있는데, 각각 1, 2, 3, 4 형이라고 한다. 물론 1형이 제일 많고, 4형이 제일 적다. IgG4는 인터류킨-4에 의해서 높아지고, 인터페론 감마가 억제한다. 앞서 말했듯이 인터페론 감마는 IgE도 억제한다. 하지만 IgG4를 억제하려면 더 높은 수준의 인터페론 감마가 필요하다. 즉 IgE는 억제되고, IgG4는 억제되지 않는 적당한(?) 인터페론 감마의 수준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IgG4는 충란을 생산하는 기생충에 의해서 높아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즉 기생충이 스스로 번식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수준으로 숙주와 타협하면서 장기간의 생존 전략을 추구했을 가능성이 있을까? 아직은 잘 모른다. 

 

복잡한 면역학 이야기가 나와 좀 힘들었지만, 알레르기성 질환에 관한 면역 가설을 대략 정리하면 이렇다. 인간과 기생충은 오랫동안 같이 살면서 서로 군비경쟁을 벌였다. 그러면서 기생충과 관련된 다양한 면역 반응이 진화했고, 대표적인 항체가 바로 IgE다. 물론 여러 복잡한 상호 작용도 같이 진화했다. 

 

가장 좋기로는 특정한 기생충에 관한 특정한 IgE 반응이다. 그러나 너무 다양한 기생충이 여러 방식으로 인간 몸에 적응하면서 그러한 특이적 반응이 어려워졌다. 길고 오래 버티는 전략도 그중 하나다. 일부 개체는 차라리 비특이적인 면역 반응을 통해서 기생충을 일소하는 전략이 더 유리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모든 개체가 같은 전략을 취할 리 없다. 지역적인 혹은 시간적인 기생충의 감염 수준에 따라 그 최적 수준이 달라졌을 것이다. 기생충도 가만히 팔짱 끼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앞서 말한 대로 숙주의 Th2 반응을 억제하는 방법으로 적합도를 높였을 것이다. 기생충은 기생충대로, 인간은 인간대로 끝없는 군비경쟁을 벌였다. 
 
독성 물질에 대항하는 방어 전략

 

진화의학자 마지 프로펫은 인간이 독성 물질을 배출하는 방어 기전을 진화시켰고, 알레르기도 그러한 기전중 하나라고 주장했다. 알레르기에 관한 초기의 진화적 주장이다. 대부분의 식물과 상당수의 동물, 일부 광물은 독성을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독성 물질에 노출되면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기침과 설사, 침, 구토, 눈물이 나고, 온몸을 긁으면서 이물질을 털어낸다는 것이다. 이를 따로 독성 가설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프로펫의 독성 회피 전략으로서의 진화적 질병관은 임신성 오심, 즉 입덧을 설명하는 아주 유용하다. 태아에게 가장 위험한 시기에 해로운 음식을 피하려는 전략이 입엇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독성 가설은 알레르기를 설명하는 데는 좀 안 맞는 부분이 많다. 외부의 독성 물질은 주로 피부로 접촉하지만, 알레르기는 접촉보다는 섭취나 흡입으로 인해 많이 발생한다. 접촉성 알레르기도 있지만, 일반적인 알레르기와 달리 제 4형 과민반응이다. 게다가 주된 알레르기 항원은 엉뚱하게도 새우나 조개, 곡류, 집먼지진드기 등이다. 해롭지 않다. 물론 곡물 알레르기에 대해서는 신석기 농업 혁명 이후 곰팡이에 오염된 곡류 때문에 나타났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긴 하다. 

 

‘그렇다고 해도 도대체 보통의 곡물에 대해서는 왜?’라는 질문에 대답하기는 어렵다. 곰팡이에 오염된 곡류를 피하는 이점보다는 밥이나 빵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손해가 훨씬 커 보인다. 게다가 땅콩이나 꽃가루는 아무리 생각해도 과민한 방어가 필요한 독성 물질이 아니다. 수억 년동안 이런 흔한 항원에 대한 적당한 방어 수준(예를 들면 그냥 안 먹는 전략)이 진화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오랜 친구

 

위생가설은 매력적인 주장이었지만, '너무 나쁜' 친구를 대상으로 하여 일관된 결과를 얻지 못했다. 수두 파티를 해야 한다는 유사 과학을 믿는 사람이 여전히 있지만, 세균과 바이러스로 아무리 파티를 해도 면역력이 좋아지지 않는다. 기생충과 관련한 면역 가설은 알레르기와 기생충 저항성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데 큰 성과를 거두었지만, 앞뒤가 안 맞는 부분도 많다. 기생충과 면역계가 공진화한 것은 알겠는데, 질병으로서의 알레르기와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는다. 


2003년 그레이엄 루크는 위생가설의 대안을 제안했다. 사실 오랜 친구 가설이나 면역 가설, 독성 가설, 위생가설 등은 서로 배타적인 주장은 아니다. 물론 초점은 조금씩 다르지만. 오랜 친구 가설의 주인공은 세균이나 바이러스, 기생충, 독성 물질 등 질병을 일으킬 정도로 더럽거나 비위생적인 환경이 아니다. 오랜 세월 동안 포유류가 적응해온 보통의 환경에서 면역 반응이 가장 최적으로 발달한다는 것이다. 

 

인간과 오랫동안 공생하던 미생물, 바로 오랜 친구다. 오랜 친구 가설에 의하면 인간은 오랫동안 소위 ‘유익균’과 같이 더불어 살았다. 물론 유익이라는 말은 다분히 정서적인 표현이다. 인간을 위한 선량한 마음을 가진 균은 없다. 어떤 경우에는 유익하고 어떤 경우에는 해롭다. 적당히 익은 김치와 부패한 김치의 차이다. 아무튼 우리의 피부와 장, 폐, 질 등은 이러한 미생물이 가득하다. 어머니의 자궁에서 발달할 시점부터 이러한 오랜 친구에 적절하게 노출되지 않으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분만 과정, 수유 과정, 어머니와의 접촉, 적절한 유년기의 환경 등이 면역 발달을 돕고, 이 과정에 문제가 생기면 알레르기를 비롯한 다양한 질병에 걸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 
 
다음 편 미리 보기: 오랜 친구는 누가 있을까 


오랜 친구 가설에 의하면 인간은 다양한 미생물과 중생물이 공생적 관계를 맺고 만들어진 총생명체다. 이러한 공생적 관계가 5억 년을 넘도록 이루어졌고, 다양한 구성 성분을 조정하는 역할을 면역계가 담당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의하면 면역계는 외부의 침입에 대한 방어 기전이 아니라 적절한 공생을 위한 조절 기구다. 예를 들어 인간의 위장은 약 2kg의 세균총을 포함하고 있으며, 혈액 내 작은 분자의 30%는 미생물이 만든 대사물이다. 

 

최근 오랜 친구 가설은 부모나 가족과 공유하는 환경을 통해 얻는 미생물무리, 자연환경의 포자나 유기체, 연충이나 헬리코박터 파이로리 등 오래되고 치명적이지 않은 감염 등을 모두 친구로 ‘쳐주고’ 있다. 사회적 삶에서도 친한 친구와 그냥 친구, 서로 아는 지인, 경쟁하는 라이벌, 철천지 원수의 경계는 아주 불분명하고 유동적인데, 미생물과 인간도 마찬가지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친구가 되는 일은 사회 관계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아무튼 그동안 인류의 오랜 친구를 하나하나 만나보자. 

 

참고자료

Trevathan, et al. Evolutionary Medicine / Edited by Wenda R. Trevathan, Euclid O. Smith, and James J. McKenna. 1999.
Fallon PG, Mangan NE (2007) Suppression of TH2-type allergic reactions by helminth infection. Nat Rev Immunol 7: 220-230.
Yazdanbakhsh M, Kremsner PG, van Ree R (2002) Allergy, parasites, and the hygiene hypothesis. Science 296: 490-494.
Falcone FH, Pritchard DI (2005) Parasite role reversal: worms on trial. Trends Parasitol 21: 157-160.
Hadge and Ambrosius 1984
http://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284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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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진화와 인간 사회에 대해 강의하며, 정신의 진화과정을 연구하고 있다.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 《진화와 인간행동》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때문이야》, 《마음으로부터 일곱 발자국》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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