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의 사회심리학]갈팡질팡은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

2019.12.28 07:00
미국 미시건대 데이비드 더닝 교수 연구진은 중간 성적의 사람들은 문제를 이렇게 풀었다가 저렇게도 풀어보는 다소 갈팡질팡한 모습을 보이고.스스로 자신의 실력을 평가할 때에도 가장 지식수준이 낮은 사람들에 비해 다소 낮게 평가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미국 미시건대 데이비드 더닝 교수 연구진은 중간 성적의 사람들은 문제를 이렇게 풀었다가 저렇게도 풀어보는 다소 갈팡질팡한 모습을 보이고.스스로 자신의 실력을 평가할 때에도 가장 지식수준이 낮은 사람들에 비해 다소 낮게 평가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어? 이거 분명 할 줄 알았는데. 어떻게 했더라? 이렇게 어려웠었나?”

 

분명 할 만하다고 생각해서 시작했던 일이 어느덧 시작했던 때보다 더 어렵게 느껴질 때가 있다. 주로 일을 시작한 초기를 넘어 배움이 깊어지고 이렇게 하면 안 되고 저렇게 해야 한다는 등 만족스러운 수행을 위한 요구 수준이 높아지면서 생기는 일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잘 써지던 글이 안 써진다든가 잘 풀리던 문제가 안 풀리는 등 이를 슬럼프라고 하던가.


원래 아무 것도 모를 때에는 자신이 뭘 모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따라서 되려 초보일 때에는 자신감이 높다가 배움이 깊어지면서 자신의 실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줄어들고 상대적으로 좌절이 늘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배우는 과정이라는 것 자체가 어설프게 알고 있었거나 잘못 알고 있었던 기존 지식 또는 잘못 배긴 습관을 깨는 과정이다. 어쩌면 배움은 나의 일부를 부쉈다가 다시 맞추는 과정이다. 전문성을 쌓아가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미끄러짐과 좌절 갈팡질팡의 아픔이 따르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결국 마지막까지 남는 사람은 똑똑하기보다 이 과정을 묵묵히 버텨내는 질긴 사람이라고들 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헤매지 않고 있다고 해서 잘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영역들이 그렇겠지만 수학은 대표적으로 논리력이나 사고력이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분야이다. 따라서 수학을 잘 못한다고 하면 논리력이나 사고력이 부족한 탓이라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 하지만 '더닝-크루거 효과'로 유명한 미국 미시건대 데이비드 크루거 교수에 따르면 수학 문제에서 정답을 틀린 아이들도 맞춘 아이들 못지 않게 나름 ‘논리적인 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더닝-크루거 효과란 능력이 없는 사람이 잘못된 결정을 내려 잘못된 결론에 도달하지만, 능력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인지 편향 현상을 가리킨다.

 

인생의 고통이 시작되는 ‘빼기’를 배우기 시작할 때, 예컨대 33에서 17을 뺀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묻는 문제가 나오면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오답은 24라고 한다. 그 이유로 많은 아이들이 다음과 같은 사고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우선 빼기란 큰 것에서 작은 것을 빼는 것이다. 3이 1보다 크니까 우선 3에서 1을 빼자. 그럼 2가 나온다. 남은 숫자로는 3과 7이 있는데 7이 3보다 크다. 그러니까 7에서 3을 빼면 답은 4다. 따라서 24가 정답인 것이다. 틀린 답일지언정 나름 논리적인 설명이다. 

 

흥미롭게도 비슷한 문제들이 여러개가 출제되면 100점을 받거나 아니면 다 틀려서 0점을 받는 경우가 많다. 해당 문제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 아이들은 계속해서 올바른 방법으로 풀지만 잘 모르는 아이들은 계속해서 잘못된 문제 풀이 방법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누가 가장 일관적인 문제 풀이 방식을 보이는지 살펴보면 정답률이 가장 높은 학생과 가장 낮은 학생이 나란히 가장 높은 일관성을 보이는 현상이 나타난다. 또 이런 일관성이 높을수록, 즉 잘못된 지식이나 습관을 확고하게 가지고 있을수록 자신이 이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는 ‘자신감’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는 하위10%에 속하는 학생들의 경우 많이들 이 문제는 이렇게 푸는 게 맞다고 잘못된 지식을 굳건히 가지고 있다. 그런 탓에 주관적으로는 자신의 점수가 상위 30% 정도일 거라고 자신의 실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실제 상위 10%에 속한 학생들은 자신의 점수가 상위 20% 정도될 것이라고 비교적 현실적으로 평가한 것과는 비교되는 반응이다. 

 

반면 중간 수준의 사람들은 이렇게도 풀었다가 저렇게도 풀어보는 다소 갈팡질팡한 모습을 보였다. 스스로 자신의 실력을 평가할 때에도 가장 지식수준이 낮은 사람에 비해 다소 낮게 평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어떤 일을 진지하게 시작한다는 것은 어쩌면 환상에서 벗어나는 과정이다. 이 일이 쉽고 해볼만하다는 환상, 나는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고 내 방식이 ‘제대로’ 된 것이라는 안일한 환상을 깨는 과정이다. 따라서 배움의 과정이 고통스러운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어떤 일을 열심히 할수록 이전보다 더 좌절이 늘어가고 뭐가 뭔지 더 모르겠는 혼란에 빠지고 있다면 이제 드디어 진지한 배움과 발전의 과정이 시작된 것이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물론 시간이 지나도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 것 같다면 재고해볼 필요가 있겠지만, 애초에 제대로 배우는 과정은 갈팡질팡과 혼란을 수반하므로 갈팡질팡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곧 내가 길을 잘못 들었다거나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신호는 아닌 것이다. 새해에는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방황해보도록 하자. 

 

참고자료

Williams, E., & Dunning, D. (2010). From formulae to faith: A consistency heuristic underlies mistaken confidence in self-performance.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게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에서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과 겸손, 마음 챙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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