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길고 인생은 짧다 (1)

2013.12.23 18:00

 자유로운 사람은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의 지혜는 죽음이 아니라 삶의 숙고에 있다.
- 바뤼흐 스피노자, ‘에티카’

 

  지난해 마지막 과학카페에서 필자는 ‘과학은 길고 인생은 짧다’라는 제목으로 2012년 타계한 과학자들의 삶과 업적을 뒤돌아봤다. 시간은 강물처럼 흘러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2013년도 며칠 남지 않았다. 올 한 해 동안에도 많은 저명한 과학자들은 유명을 달리했다. 이번에도 마지막 과학카페에서 이들을 기억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과학저널 ‘네이처’와 ‘사이언스’에 부고가 실린 과학자들을 대상으로 했다. ‘네이처’에는 ‘부고(obituary)’, ‘사이언스’에는 ‘회고(retrospective)’라는 제목의 란에 주로 동료나 제자들이 글을 기고했는데 이를 바탕으로 했다.

 

  올해 ‘네이처’에는 24건, ‘사이언스’에는 7건이 실렸다. 그런데 연초에는 지난해 말 타계한 과학자들을 소개한 글이어서 올해 사망한 과학자만 치면 ‘네이처’가 21건, ‘사이언스’가 6건이다. 두 저널에서 함께 소개한 사람은 4명이다. 결국 두 곳을 합치면 모두 23명이 된다. (특이하게도 올해 ‘사이언스’의 부고 건수가 지난해의 3분의 1 수준으로 확 줄어들었는데, 웬만하면 다루지 않기로 편집방향이 바뀐 건지는 잘 모르겠다.)

 

  이미 과학카페에서 다룬, 4월 20일 93세로 타계한 분자생물학의 개척자 프랑수아 자콥(125회)과 7월 23일 63세로 세상을 떠난 인류학자 마이클 모우드(142회)를 뺀 21명을 사망한 순서에 따라 3회에 걸쳐 소개한다.

 

 

1. 브리지트 아스코나스 (1923. 4. 1 ~ 2013. 1. 9) 교과서에 실린 연구를 한 면역학의 대모

 

브리지트 아스코나스 - MRC NIMR 제공
브리지트 아스코나스 - MRC NIMR 제공

  1923년 빈에서 태어난 브리지트 아스코나스(Brigitte Askonas)는 1938년 나치를 피해 가족과 함께 오스트리아를 떠났고 1940년 캐나다에 정착했다. 맥길대에서 생화학을 공부한 뒤 영국으로 건너가 케임브리지대에서 역시 생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52년 평생직장이 될 영국 국립의학연구소(NIMR)에 들어가 처음에는 우유단백질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연구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스코나스는 항원이 혈액의 항체를 침전시키는 현상에 대한 면역학자 존 험프리의 세미나를 듣고 면역계로 관심을 돌렸다. 때마침 1957년 연구소가 험프리의 제안에 따라 면역학 분과를 열면서 아스코나스는 창설 멤버로 참여했다. 아스코나스는 백혈구 가운데 항체를 만드는 B세포를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그 결과 특정 B세포 클론이 특정 항체를 만든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뒤이어 또 다른 백혈구인 대식세포가 항원을 잡아먹고 분해해 일부를 세포 표면에 내놓아(항원 제시) B세포가 항체를 만들게 유도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다들 면역학 교과서에서 볼 수 있는 근본적인 발견이다. 1976년 면역학 분과 책임자가 된 아스코나스는 동료들을 이끌며 세포독성T세포가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를 죽인다는 사실 등 중요한 결과를 잇달아 내놓았다.

 

  아스코나스가 과학자의 삶을 시작할 무렵만 해도 여성 과학자는 드물었다. 아스코나스는 케임브리지대 생화학과에서 박사과정을 할 때 영국왕립학회 최초의 여성 회원이었던 마가렛 스테펜슨과 도로시 니담을 롤 모델로 삼았는데, 훗날 그녀 자신도 많은 여성 과학자들의 롤 모델이 됐고 실제로 뛰어난 면역학자들을 여럿 길러냈다. 아스코나스는 1973년 50세에 영국왕립학회 회원으로 선출됐다.

 

 

2. 로버트 리처드슨 (1937. 6.26 ~ 2013. 2.19) 색맹이 전화위복이 된 실험물리학자

 

로버트 리처드슨 - 코넬대 제공
로버트 리처드슨 - 코넬대 제공

  학창시절 과학을 좋아했는데 색맹 때문에 이과 대신 문과를 택했다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물론 화학이나 생물학을 전공할 경우는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수학이나 물리학(많은 부분)은 총천연색을 제대로 못 보더라도 큰 문제가 없다.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 태어난 리처드슨은 1954년 버지니아공대에서 화학을 전공했으나 색맹이 문제가 될 것 같아 물리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물리학과 졸업 뒤 석사과정으로 경영학을 공부할까 시도했지만 영 흥미를 못 느끼고 다시 물리학으로 돌아와 듀크대 박사과정을 들어갔고 여기서 아내가 될 매카시를 만났다. 그는 극저온에서 원자 무리가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연구했다. 1966년 학위를 마친 뒤 코넬대의 저명한 저온물리학자 데이비드 리 교수의 실험실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있다가 1968년 교수가 됐다.

 

  1970년대 초 리 교수와 리처드슨, 그리고 리 교수 실험실의 대학원생  더글러스 오셔러프는 헬륨의 동위원소인 헬륨-3이 초저온일 때 보이는 행동을 연구하다가 절대온도 0.002도에서 헬륨-3이 초유체가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헬륨-4가 절대온도 2.2도에서 초유체가 된다는 사실은 이미 1937년에 발견됐지만, 헬륨-3도 초유체가 될 수 있다는 건 놀라운 발견이었다.

 

  헬륨-3과 헬륨-4는 원자핵에서 중성자 하나 차이일 뿐인 것 같지만 둘은 양자역학의 관점에서는 근본적으로 다른 입자다. 즉 헬륨-4가 원자핵 스핀이 정수인 보손인 반면 헬륨-3은 반(半)정수인 페르미온이기 때문이다. 보손의 행동은 보스-아인슈타인 통계를 따르고 페르미온은 페르미-디락 통계를 따르는데, 둘 사이의 큰 차이는 여러 입자가 동일한 양자상태를 가질 수 있느냐 여부다. 헬륨-4가 저온에서 초유체가 되는 건 입자가 모두 바닥상태로 응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헬륨-3이 극저온에서 초유체가 되는 현상은 페르미온인 헬륨-3 원자 두 개가 쌍을 이뤄 보손처럼 행동하기 때문이다.

 

  이 업적으로 세 사람은 1996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네이처’에 리처드슨 부고를 쓴 사람이 오셔러프 스탠퍼드대 명예교수다. 오셔러프는 부고 말미에 리처드슨의 슬픈 가족사를 언급했는데 1998년 그의 둘째 딸 파밀라가 28살에 심장질환으로 세상을 뜬 사건이다. 이 슬픔을 잊기 위해 리처드슨 부부는 코넬대의 동료 앨런 지암바티스타와 함께 물리학 교재 ‘College Physics’를 집필했다고 한다.

 

 

3. 도널드 글레이저 (1926. 9.21 ~ 2013. 2.28) 맥주거품에서 노벨상을 발견한 물리학자

 

거품상자를 바라보는 포즈를 취한 도널드 글레이저. 노벨상을 받은 해인 1960년 34살 때의 모습이다. - LBNL photo 제공
거품상자를 바라보는 포즈를 취한 도널드 글레이저. 노벨상을 받은 해인 1960년 34살 때의 모습이다. - LBNL photo 제공

  어떤 종류의 일을 하던 간에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업무가 끝나면 술집에 들러 한 잔 걸쳐야 하루가 마무리된 것 같다고 한다. 지난 2월 28일 세상을 떠난 도널드 글레이저(Donald Glaser)도 그런 사람이었을까.

 

  1926년 미국 클리블랜드에서 태어난 글레이저는 케이스응용과학대에서 물리학과 수학을 공부했다. 그는 음악에도 소질이 있어 대학시절 클리블랜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에서 비올라 연주자로 활약하기도 했다. 1946년 졸업 뒤 명문 칼텍의 물리학과에서 박사과정을 했는데 그의 지도교수는 1932년 우주선(cosmic rays)에서 반물질인 양전자를 발견해 1936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칼 앤더슨이었다. 글레이저는 지도 교수가 역사적인 발견을 한 장비인 안개상자를 여전히 이용했지만, 이 과정에서 실험장비를 디자인하고 만드는 노하우를 쌓았다.

 

  1949년 불과 23살에 미시건대 교수가 된 글레이저는 1952년 어느 날 술집에서 맥주잔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거품이 생기는 모습에서 영감을 얻어 거품상자(bubble chamber)를 발명했다. 우주선 입자가 지나갈 때 안개상자에서는 기체 안에 액체 방울이 만들어지지만(제트기가 지나간 자리에 생기는 구름처럼), 거품상자에서는 액체 안에 기포가 만들어진다. 거품상자는 안개상자에 비해 감도가 훨씬 뛰어났고 이를 이용해 수많은 입자들의 존재가 밝혀졌다. 글레이저는 거품상자를 발견한 공로로 1960년 불과 34살의 나이에 단독으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한편 1959년 버클리대로 자리를 옮긴 글레이저는 입자물리학에 싫증을 느끼고 다른 많은 뛰어난 물리학자들이 그랬듯이 분자생물학을 기웃거리기 시작했고 1964년 아예 분자생물학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여러 실험장비를 고안했고 1971년에는 미국 최초의 생명공학회사인 세투스(Cetus)를 설립했다. 1980년대 이 회사를 다니던 괴짜 화학자 캐리 멀리스는 생명과학 분야의 가장 혁신적인 기술의 하나인 PCR(중합효소연쇄반응)을 발명했고 1993년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분자생물학도 시들해진 글레이저는 1980년대 초 안식년을 맞아 롤랜드연구소의 에드윈 랜드 박사 실험실에 머물며 우리 눈이 색채를 지각하는 메커니즘에 관심을 보였다. 그 뒤 그는 지각을 정량적으로 측정하는 시각 심리물리학과 시각계의 계산모형을 연구했다. ‘네이처’에 부고를 쓴 토마소 포기오가 MIT의 뇌․인지과학과 교수인 이유다. 글 말미에서 포기오는 글레이저의 천재성을 부러운 듯이 이렇게 묘사했다.

 

  “그에게 세계는 신기한 게 가득한 정원이었다. 글레이저는 분명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았음에도 사물이나 사람에 대해 놀랍도록 반직관적인 관찰을 해내곤 했다.”

 

 

4. 로버트 에드워즈 (1925. 9.27 ~ 2013. 4.10) 오백만 시험관아기들의 대부 잠들다

 

지난 2008년 로버트 에드워즈 교수(왼쪽)가 세계 최초의 시험관 아기 탄생 30주년을 맞아 당시 산모 레슬리 브라운(가운데)과 아기 루이즈 브라운(오른쪽)과 함께 했다. 루이즈가 안고 있는 아기는 아들 캐머런이다. - Bourn Hall Clinic 제공
지난 2008년 로버트 에드워즈 교수(왼쪽)가 세계 최초의 시험관 아기 탄생 30주년을 맞아 당시 산모 레슬리 브라운(가운데)과 아기 루이즈 브라운(오른쪽)과 함께 했다. 루이즈가 안고 있는 아기는 아들 캐머런이다. - Bourn Hall Clinic 제공

  결혼이 갈수록 늦어지면서 알게 모르게 시험관아기의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 적정 임신 시기를 놓쳐 자연임신이 잘 안 되기 때문이다. 만일 이 기술이 없었다면 예전만큼은 아니겠지만 자식을 보기 위해 두 집 살림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 4월 10일 시험관아기 기술을 개발한 로버트 에드워즈(Robert Edwards) 교수가 88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1925년 영국 배틀리에서 태어난 에드워즈는 웨일즈대에서 농학과 동물학을 공부한 뒤 4년간의 군복무를 마치고 에든버러대에서 동물유전학으로 박사과정을 하면서 쥐의 배란을 조작하는 기법을 익혔다. 브리지트 아스코나스보다 몇 년 늦게 국립의학연구소(NIMR)에 취직한 에드워즈는 여성용 피임약으로 쓸 백신을 개발하는 업무를 하면서 틈틈이 난자를 연구했다.

 

  그런데 1960년대 초 신임 소장이 부임하면서 인간 시험관아기에 대한 연구를 금지시켰다. 이에 실망한 에드워즈는 케임브리지대로 자리를 옮긴 앨런 파케스를 따라갔고 거기에 눌러앉았다. 에드워즈는 실험동물을 대상으로 시험관아기의 기초연구를 진행했고 사람을 대상으로 본격적으로 연구를 하고 싶은 열망이 갈수록 커졌지만 난자를 구하지 못해 애를 태웠다. 그의 과격한 연구 주제 때문에 의사들이 그를 기피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학회에서 부인학 전문의 패트릭 스텝토 박사를 만났다. 복강경 기술의 개척자인 스텝토 박사 역시 주위 의사들로부터 기피대상이었는데, 에드워즈는 복강경이 난자 채취에 이상적인 기구임을 알아차렸고 둘은 의기투합했다. 에드워즈는 간호사 진 퍼디를 훈련시켜 실험을 맡겼다. 이들은 인공수정을 한 뒤 자궁에 착상시키는 시도를 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고민하던 에드워즈는 자연 월경 주기 동안 성숙한 난자를 채취해야 함을 깨달았고 1978년 7월 26일 마침내 첫 번째 시험관아기 루이즈 브라운(Louise Brown)이 태어났다.

 

  첫 시험관아기가 태어난 뒤에도 그 전처럼 언론과 학계는 여전히 에드워즈를 맹비난했고, 에드워즈는 여덟 차례나 명예훼손소송을 벌이기도 했다. 시험관아기는 어딘가 비정상일 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자연임신으로 태어난 아이들과 별 차이가 없다는 게 확인되면서 시술은 점차 확대됐고 전 세계로 퍼져 지금까지 500만 명이 넘는 시험관아이가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2010년 노벨위원회는 30여 년 전 시험관아기 기술을 개발한 공로로 에드워즈를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는데, 두 가지 측면에서 이왕 줄 거였으면 좀 더 빨리 줄 것이지 하는 아쉬움이 든다. 먼저 공동 개발자였던 패트릭 스텝토 박사가 1988년 타계한 것. 그가 살아 있었다면 당연히 공동수상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슬픈 건 2010년 수상자 발표 때 에드워즈는 이미 치매가 중증이어서 시상식에 참여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상을 받았는지도 몰랐을 거라는 점이다. ‘인공’ 수정으로 수많은 불임부부들에게 큰 기쁨을 안겨다준 과학자에게 ‘자연’은 왜 이토록 잔인했던 것일까.

 

 

5. 크리스티앙 드 뒤브 (1917.10. 2 ~ 2013. 5. 4) 리소좀을 발견한 생화학자

 

크리스티앙 드 뒤브 - 록펠러대 제공
크리스티앙 드 뒤브 - 록펠러대 제공

  1917년 런던 근교에서 태어난 크리스티앙 드 뒤브(Christian de Duve)는 이름에서 짐작하듯이 영국인은 아니다. 그의 부모는 1차 세계대전을 피해 영국으로 건너온 벨기에사람으로 전쟁이 끝나자 다시 벨기에로 돌아갔다. 1934년 루뱅카톨릭대에서 의학공부를 시작한 드 뒤브는 인체가 연료인 포도당을 대사할 때 췌장 호르몬인 인슐린과 글루카곤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연구했다. 그는 다소 역마살이 있었는지 스웨덴과 미국의 실험실을 전전하다가 1947년 마침내 루뱅으로 돌아와 의대 교수가 됐다.

 

  그런데 귀국길에 록펠러대에 잠깐 들렀는데 여기서 벨기에인 과학자 알베르 클로드를 만났다. 클로드는 당시 막 개발된 실험장비인 전자현미경과 고속원심분리기로 세포 내부의 구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는 1945년 세포핵 주변의 주름 같은 구조인 소포체를 발견해 유명해진 인물이다. 드 뒤브는 루뱅에서 인슐린과 글루카곤 연구를 계속하면서 클로드의 방법론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포도당-6-인산가수분해효소가 소포체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인슐린에서 세포 구조로 관심이 옮겨간 드 뒤브는 1950년대 중반 세포내소기관인 리소좀(lysosome)을 발견한다. 수많은 가수분해효소가 들어있는 리소좀은 침입한 세균이나 손상된 세포내소기관 등을 분해하는 역할을 한다. 드 뒤브 교수팀은 뒤이어 산화와 관련된 효소를 지니고 있는 세포내소기관인 퍼옥시좀(peroxisome)을 발견했다. 1974년 드 뒤브는 클로드, 조지 펄레이드와 함께 세포내 구조와 기능을 규명한 공로로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드 뒤브는 루뱅의 실험실과 함께 1962년부터 1987년까지 미국 록펠러대에도 실험실을 운영하며 대서양을 오갔다. 또 여성과학자를 대상으로 하는 로레알-유네스코상 제정에도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참고로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유명희 박사(1998년)과 서울대 생명과학부 김빛내리 교수(2008년)가 이 상을 수상했다.

 

 

6. 조 파먼 (1930. 8. 7 ~ 2013. 5.11) 남극 오존층 구멍을 발견한 지구물리학자

 

영국남국조사단의 조 파먼(왼쪽)과 브리언 가디너(가운데), 존 샨클린의 1980년대 남극 성층권 오존수치 연구결과는 프레온이 오존층을 파괴할 수 있다는 과학자들의 우려를 확증했다. - BAS 제공
영국남국조사단의 조 파먼(왼쪽)과 브리언 가디너(가운데), 존 샨클린의 1980년대 남극 성층권 오존수치 연구결과는 프레온이 오존층을 파괴할 수 있다는 과학자들의 우려를 확증했다. - BAS 제공

  1970년대 대기화학자 셔우드 롤런드와 마리오 몰리나는 프레온이 성층권 상부의 오존층을 파괴해 지표가 자외선에 노출될 위험성을 경고하는 논문을 발표했지만 격한 반발에 부딪쳐 고전하고 있었다. 그런데 1985년 남극 오존층에 구멍이 뚫렸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면서 전세는 일시에 역전이 됐고 1987년 프레온 사용을 규제하는 국제환경협약인 몬트리올 의정서가 만들어졌다. 남극 오존층 구멍을 발견한 과학자 조 파먼(Joe Farman)이 지난 5월 11일 83세로 타계했다.

 

  영국 노퍽에서 태어난 파먼은 케임브리지대에서 자연과학을 공부한 뒤 군수업체에서 유도미사일을 연구하다 1956년 포클랜드제도보호령조사단(훗날 영국남극조사단(BAS)으로 개명)에 들어가 1990년 은퇴할 때까지 근무했다. 그는 오존수치와 복사수치 등 기본 지구물리 데이터를 측정하는 임무를 수행했는데, 1980년대 초 남극 핼리만(Halley bay) 상공 성층권에서 측정한 오존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낮다는 걸 발견했다. 파먼과 동료들은 측정오차를 비롯한 모든 가능성을 조사하며 반복해서 데이터를 얻었지만 결과는 같았다. 결국 파먼은 프레온의 분해산물이 오존층을 파괴했다는 주장을 담은 논문을 1985년 ‘네이처’에 발표해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파먼은 굉장히 깐깐한 사람으로 데이터의 디테일에 집착했다고 한다. 반면 컴퓨터시뮬레이션은 신뢰하지 않아 시뮬레이션 결과에서 오류를 찾을 때마다 무척 통쾌해했다. 파먼은 1990년 은퇴한 뒤에도 유럽오존연구조정단위와 영국남극조사단 등 여러 기관에서 무보수로 자원봉사하며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나눠줬다. 또 당시 마거릿 대처 행정부가 세계 기후 협약을 주도할 수 있게 자문을 하기도 했다.

 

 

7. 하인리히 로러 (1933. 6. 6 ~ 2013. 5.16) 주사터널링현미경을 발명한 고체물리학자

 

하인리히 로러 - IBM연구소 제공
하인리히 로러 - IBM연구소 제공

  1933년 스위스 부크스에서 이란성쌍둥이로 태어난 로러는 아인슈타인이 다녔던 스위스연방공대에서 물리학을 공부했다. 그의 전공은 초전도체였는데, 1963년 스위스 뤼슐리콘에 있는 IBM연구소에 들어가서는 반강자성체를 연구했다. 반강자성은 자성체가 특정 온도 밑에서 이웃한 원자의 자기모멘트가 서로 상쇄돼 전체적으로 자성이 없는 상태가 되는 성질이다.

 

  1970년대 들어 로러는 물질의 표면구조로 관심을 옮겼는데, 막상 연구를 하려하자 마땅한 실험도구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스스로 장비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는 뛰어난 젊은 독일 물리학자 게르트 비니히를 고용해 함께 연구에 착수했고 1981년 마침내 주사터널링현미경(STM)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STM은 통상적인 현미경과는 달리 렌즈가 없고 대신 탐침을 물체 표면에 가까이 댄 뒤 전자를 쏘아 보내 전자가 투과하는(터널링) 패턴을 스캔해 표면의 구조를 원자 차원에서 해석하는 장비다.

 

  STM과 함께 원자힘현미경(AFM) 등 탐침을 이용해 표면의 구조를 밝히는 장비가 개발되면서 나노분야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로러와 비니히는 STM을 개발한 공로로 주사전자현미경을 발명한 에른스트 루스카와 함께 1986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네이처’에 부고를 기고한 IBM연구소의 크리스토프 거버 박사는 글 말미에 로러의 한국 대중 강연 장면을 회상하고 있다(정확이 언제 어디서 한 건지는 모르겠음). 고등학생과 대학생 4000여 명은 STM개발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묘사한 로러의 강연에 매료됐고, 훗날 거버는 한 한국 학생으로부터 “당시 로러의 강연에 감명을 받아 물리학과 나노과학을 연구하게 됐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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