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론·스마트시티 몰아주고 항공공학·건축공학은 빠져라?…유행에 빠진 BK21

2019.12.24 09:52
대학원생의 장학금과 인건비 등을 지원하는 두뇌한국(BK)21 4단계 사업의 윤곽이 3일 공개됐다. 동아사이언스 자료사진
대학원생의 장학금과 인건비 등을 지원하는 '두뇌한국(BK)21' 4단계 사업의 윤곽이 3일 공개됐다. 동아사이언스 자료사진

이달 초 공청회를 통해 윤곽을 드러낸 학문후속세대 양성 지원 과제인 두뇌한국21(BK21) 4차 사업 세부안에 놓고 건축이나 원자력, 조선, 항공우주, 에너지 등 학과들이 “인기 유행 분야에 지나치게 지원이 몰려 있어 학문 균형 발전을 해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하고 나섰다. 일부 유행 분야의 경우 전국에서 최대 13개 교육연구단이 선정될 수 있는 반면, 이들 분야는 전국에서 단 1개 학과도 선정되지 못할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 분야가 국가 기간산업이나 인프라와 관련된 분야를 다루는 만큼, 중요성에 비해 저평가가 심한 것이 아니냐 비판이 나온다. 유망하거나 분야, 국가적으로 중요성이 인정되는 분야에 지원이 좀더 많이 배분되는 일은 정책적 판단에 따라 충분히 일어날 수 있지만, 국가 기간산업과 관련된 분야에 극단적으로 지원이 줄어드는 것은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24일 공학계에 따르면, 대한건축학회와 대한산업공학회, 한국원자력학회, 한국자원공학회, 대한조선학회, 한국항공우주학회 등 6개 공학단체장은 최근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앞으로 보내는 의견서를 통해 “학문의 균형발전을 해치는 4단계 BK21 사업 기본계획을 재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들은 “건축학 및 건축공학, 에너지공학, 산업공학, 조선해양공학, 항공우주공학 등 5개 분야는 이번 4단계 BK21사업 기본계획에서 독립된 지위를 보장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한 분야에 단 한 개의 교육연구단도 배정을 보장받지 못해 학문이 고사 상태에 이를 우려가 있다”며 “공학과 기타 보건 분야를 구분하고, 분야별로 적절한 수의 연구단을 선정해 달라”고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건축과 조선, 에너지, 항공우주, 산업공학은 모두 유수의 공과대학에 설치된 학과이고, 상당수는 한국의 기간산업을 일군 뼈대 학문이다. 지원자가 많은 분야다. 하지만 이들은 4단계 BK21 계획안에서 ‘기타중점’이라는 한 분야로 묶여 있다. 기타중점은 치의, 한의, 수의, 통계, 간호, 보건, 체육 등 공학과 관련성이 적은 분야가 다수 속해 있는 분류군이다. 여기에 속한 공학 분야는 사실상 ‘마이너 학과’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이다. 

 

특히 교육부는 기타중점에 속한 총 12개 분야에서 전국적으로 12개(수도권과 과학기술특성화대 등 8개와 지역대학 4개) 교육연구단 또는 팀을 선정하도록 했다. 산술적으로는 한 분야에 평균 한 개씩의 교육연구단 또는 팀이 배정될 수 있지만, 지원이 적은 분야는 여러 분야를 묶어 하나의 교육연구단을 선정할 수 있도록 허용해 둬, 일부 분야는 교육연구단이 전혀 선정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분야에 따라 이번 BK21의 혜택을 전혀 보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교육연구단 또는 팀은 대학의 한 학과 전체가 선정되며, 그 학과에 속한 대학원생 전원이 연구장학금 등 미래인재 양성을 위한 예산을 지원받는다. 쉽게 말하면 A라는 분야의 교육연구단에서 B대학이 선정되면, B대학 A학과의 대학원생이 전체가 혜택을 받는다. B대학은 A학과 외에 다른 분야 BK21에 지원할 수 없다. A라는 분야 입장에서는 최대한 많은 대학이 선정될수록 그 분야의 연구와 교육에 유리하지만, 선정되는 교육연구단 또는 팀 수는 정해져 있다. 분야별 전문가들이 BK21 연구단 수 확보에 사활을 거는 이유다.

 

기타중점에 든 학과와 달리, 다른 분야에서는 하나의 분야에서 최대 13개까지 교육연구단 또는 팀이 선정돼 크게 대조된다. 4단계 BK21사업 기본계획의 ‘세부 분야별 교육연구단 수 및 지원 상한액’ 자료에 따르면, 전기전자공학은 전국에서 총 13개의 교육연구단 또는 팀을 선정한다. 기계공학과 화학공학, 의학은 10개, 컴퓨터는 6개, 재료는 9개, 건설은 6개, 응용생명공학은 5개, 농수산은 4개 교육연구단 또는 팀이 선정된다. 기초과학 분야에서도 생물은 10개, 물리, 화학은 9개, 수학은 6개, 지구과학은 5개 교육연구단과 팀이 선정된다. 

 

여기에 BK21의 예산 가운데 3분의 1이 투자되는 ‘혁신인재양성사업’의 분야까지 최근 유행 분야에 지원을 집중하면서 기간 산업을 다루는 기타중점 분야의 소외감은 더 커졌다는 평이다. 교육부는 ‘혁신성장 선도 신산업분야의 경쟁력을 제고하고 산업 및 사회문제 해결을 선도할 연구인력을 양성한다’는 목표로 8대 핵심선도산업과 13대 혁신성장동력분야를 선정해 연간 1188억 원을 지원할 계획을 밝혔다. 여기에는 스마트공장, 스마트팜, 핀테크, 바이오헬스, 스마트시티, 빅데이터, 차세대통신, 인공지능, 자율주행차, 신재생에너지, 드론 등 소위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 정부가 미는 정보통신기술(ICT) 융합분야가 대부분 포함돼 있다.

 

이들 가운데 바이오헬스에서는 18개의 교육연구단이, 맞춤형 헬스케어에서는 13개의 연구단이, 선정된다. 생명과학 분야에서만 31개가 추가로 선정되는 셈이다. 빅데이터에서도 20개 연구단이 선정된다. 가상증강현실 5개, 지능형반도체 7개, 차세대통신 7개, 첨단소재 9개도 선정될 예정이다.

 

서울 소재 한 공대 교수는 “혁신인재양성사업 분야를 보면 결국 유행하는 ICT 관련 융합분야를 지원한다는 것이지 전통적인 기간산업 분야를 지원한다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며 “스마트시티는 지원하지만 건축학과 건축공학과는 지원하지 않고 드론은 지원하지만 항공우주공학과는 지원하지 않는 모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 교수는 “정부는 미래인재양성사업의 기타중점분야가 부족하면 혁신인재양성사업 분야에 지원하면 된다는 입장인데, 이대로라면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해 세세하게 지정된 특정 분야에 맞춰 학과를 재구성할 수밖에 없어 정체불명의 졸속학과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일각에서는 8대 핵심선도사업과 13대 혁신성장동력분야에 대거 지원을 몰아주기로 한 이번 BK21이 결국 정부가 꼽은 분야에 대해 ‘정부가 예산을 이만큼 지원했다’고 생색내기 위한 게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세세하게 구분된 분야들 상당수가 학문적 체계를 세우기 어려운 협소한 주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교육부는 선정 연구단 수가 적은 것은 융복합 분야 사업단을 혁신인재양성사업으로 분류했기 때문이며, 현재 기타중점으로 묶인 분야는 이전 BK21 사업에서도 적은 수의 학교만 지원했던 전례가 있는 만큼 현재의 수가 적절하다는 입장이다. 교육부는 1월 말 공고 뒤 연구단 예비신청을 받아 보고 지원 숫자에 따라 독립 여부를 결정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4단계 BK21은 2020년 9월부터 2027년 8월까지 7년 동안 연간 4080억 원을 투자해 기초 및 핵심 학문분야의 연구 역량을 높이고 관련 인력을 양성하는 사업이다. 사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전체 예산의 3분의 2는 ‘미래인재 양성사업’으로 나뉘며 과학기술(80%)과 인문사회 분야(20%)에 ‘교육연구단’ 및 ‘교육연구팀’을 지정해 투자한다. 총 185개의 교육연구단과 174개의 교육연구팀이 선정돼 1만 2600명의 대학원생을 지원한다.

 

전체 예산의 3분의 1은 ‘혁신인재 양성사업’이며 지정된 신산업분야(80%)와 사회 및 산업 문제 분야(20%)의 인재를 키우는 데 투자한다. 총 218개의 교육연구단을 선정해 6400명의 대학원생을 지원한다.

 

교육부가 공청회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과학기술 분야에서 그 동안 BK21의 혜택을 받은 배출 인력은 연 평균 7178명으로, 이는 연평균 신규 공급 인력 2만 5945명의 22.1%에 해당한다. 한국에서 이공계 대학원생 4~5명 가운데 1명은 BK21의 지원을 받는다는 뜻이다.

 

BK21은 대학원생의 최소한의 안정적 생활을 제공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3단계 사업인 BK21플러스 사업의 경우, 석사는 월 60만 원, 박사는 100만 원을 연구장학금으로 지원 받는다. 교육부가 공개한 이공계 대학원생의 월 평균 등록금은 79만 6000원으로, 비록 부족하나마 등록금을 전부 또는 일부 낼 수 있다. 4단계 사업에서는 금액을 석사 70만 원, 박사 130만 원으로 상향조정했다. 신진연구인력도 현행 월 250만 원에서 300만 원으로 상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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