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0년전 아라가야 지배자 무덤천장에 새긴 별자리 그림

2019.12.21 21:43
경남 함안 말이산 13호 고분 정밀발굴조사 현장. 함안군
경남 함안 말이산 13호 고분 정밀발굴조사 현장. 함안군

경남 함안군 가야읍 말이산 고분군은 고령 대가와야 함께 위세를 떨친 아라가야의 왕릉이다. 신라, 왜(倭)로 가는 길목에 있던 아라가야는 주변 강국들의 틈바구니에서 고유문화를 지키며 수백 년 동안 생존했다. 5~6세기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1000기 크고 작은 무덤들은 해발 50m 구릉 능선을 따라 늘어서 있다. 


일제강점기인 1917년 일본 학자가 조사를 시작한 이후 최근까지도 무덤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말이산 고분군에서 가장 규모가 큰 13호분의 경우 1918년 일본 학자 야쓰이 세이이스가 조사가 진행됐지만 도면과 사진 몇 장만 남고 역사적 가치는 알 수 없었다. 함안군과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은 말이산 13호분이 처음 발견된 지 100년만인 지난해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정밀 발굴조사를 하고 이달 20일 결과를 공개했다.

 

정밀 조사 필요성은 2017년 처음 제기됐다. 13호분 봉분 중앙에 싱크홀이 발생하면서 원인 규명과 보존조치를 위해 구조 조사가 필요했다. 지난해 조사에 이어 올해는 고분의 축조방법과 구조를 파악하는 데 집중됐다. 조사단은 아라가야 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13호분 대형 돌덧널무덤(석곽묘)의 축조와 관련된 ‘특수통로시설’과 봉토를 효율적으로 쌓기 위한 ‘중심분할석벽’ 축조공법을 확인하는 성과를 거뒀다. 아라가야 왕묘에서만 나타나는 독창적인 토목기술이다. 

 

북쪽에서 발견된 특수통로는 벽 석재와 부장품 운반, 제의공간으로도 활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보통 위에서 아래로 매장이 이루어지는 돌덧널무덤에서는 처음 발견된 독특한 구조다. 
중심분할석벽은 삼국시대 봉토 고분에서는 처음 확인된 구조다. 대규모 암반대 조성공정에서 생성된 암반석재를 봉분축조에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석성의 성벽과 유사한 모습이다. 높이만 무려 3m에 달한다. 

 

석벽은 정확히 돌덧널의 중심축 위쪽에 쌓아 13호분이 치밀한 설계를 통해 축조됐음을 짐작게 핸다. 지난해 조사된 함안 안곡 산성의 성벽 축조기술과도 유사한 특성을 가진다. 
돌덧널은 길이 8.7m, 너비 2.1m 규모로, 암반대 위쪽에 정지작업을 한 뒤 무덤구덩이를 파고 축조했다. 덮개돌 14개를 덮었다. 

 

함안 말이산 고분 13호분에서 발견된 ‘별자리’ 덮개돌. 문화재청 제공
함안 말이산 고분 13호분에서 발견된 ‘별자리’ 덮개돌. 문화재청 제공

강도가 높은 화강암 석재를 5개층 정도를 사용해 봉분 하중을 견딜 수 있도록 기획했다. 덮개돌과 벽석 최상단석 사이에는 점토를 깔고 너비 10cm 정도의 얇은 각재를 놓아 최상단 벽석이 손상되는 것을 방지하면서 개석의 수평을 조절한 흔적이 확인됐다. 

 

돌덧널 내부는 모두 적색안료(산화철이 포함된 석간주)를 칠해 붉게 채색했다. 양장벽과 남단벽에는 말이산고분군의 특징적 시설인 들보시설이 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다. 들보시설이란 목재를 돌덧널에 걸어서 돌덧널 상부의 덮개돌과 봉분의 하중으로부터 붕괴를 방지하기 위한 시설이다. 아라가야 돌덧널무덤, 특히 말이산고분군에서 주로 확인되는 독특한 구조다. 바닥면에는 나무재질의 흔적도 관찰된다. 이러한 돌덧널의 세부적인 축조기술은 앞으로 고대 기술사적 비교에서 좋은 자료로 활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말이산 고분군은 1918년 약식조사 이전부터 1980년대까지 도굴피해를 크게 입었다. 원래 형태도 많이 훼손된 상태이긴 했지만, 북벽 아래 부장공간과 인접한 주피장자(무덤주인) 공간에서 꽤 많은 유물이 출토됐다. 

 

대표적인 출토유물은 두 귀 달린 장군을 비롯한 그릇받침(통형기대ㆍ발형기대), 굽다리접시 등 조형미가 뛰어난 토기류를 비롯해 청동제 말갖춤장식편, 갑옷, 금동제 투조 허리띠 장신구, 비취곡옥이다. 출토된 토기로 볼 때 13호분은 5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해 12월 18일 첫 중간 성과 공개에선 덮개돌에 새겨진 청룡별자리와 남두육성 등 가야 최초의 별자리 구멍과 무덤방 네 벽면의 붉은 채색, 고암반대 축조기법이 공개되며 주목을 받았다. 

 

당시 13호분 천장을 구성하는 덮개돌 아래쪽에서는 인위적으로 뚫은 구멍 125개가 발견됐다. 조사단은 이 구멍들은 성혈(星穴), 즉 별자리일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구멍 크기와 깊이가 제각각인 것은 별 밝기를 의미한 것으로 추정된다. 조사단은 한국천문연구원과의 공동연구를 거쳐 서쪽에는 전갈자리, 남쪽에는 궁수자리를 새긴 것으로 파악했다. 동양에서는 각각 청룡별자리와 남두육성으로 통한다. 

 

이 별자리 구멍은 일반적으로 청동기시대 암각화에서 주로 발견된다. 삼국시대 무덤 덮개돌에서 확인된 것은 드문 일이다. 대가야 고분인 고령 지산동 30호분 덮개돌에서도 성혈이 확인됐지만 이는 암각화를 재사용한 사례다. 말이산 13호분은 암각화를 재활용한 것이 아니라, 무덤을 축조하면서 별도로 그려 넣은 것으로 추정된다. 조사팀은 성혈을 새긴 덮개돌과 양쪽 벽면이 맞물리는 부분에는 구멍이 없다는 점을 근거로 보고 있다. 또 덮개돌 중 가장 중앙에 놓인 덮개돌에 자리한 것도 성혈이 무덤 축조 기획에 포함됐을 것이란 분석에 힘을 더하고 있다. 

 

조사단은 이 별자리 구멍이 가진 의미를 분석하고 있다. 먼저 남두육성이 땅과 생명, 장수를 뜻한다는 점을 주목했다. 13호분 내부 벽면이 생명 부활, 불, 태양 등을 상징하는 붉은색으로 칠해진 점도 이와 연결된다.

 

조사단은 이런 점을 고려하면 무덤 주인이 아라가야 군주 중에서도 가장 최전성기를 보낸 왕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13호분이 1000기에 달하는 말이산 고분군에서 가장 중앙부, 가장 높은 자리에 있다는 입지적 특성도 이런 주장에 설득력을 더한다.

 

봉분은 유실됐지만 주변에 있던 돌덧널무덤인 86호분과 129호분 두 기에 대한 조사도 이뤄졌다. 86호분은 돌덧널의 길이가 6.5m로 들보시설을 갖춘 중형급의 무덤이다. 내부에선 그릇받침, 불꽃무늬굽다리접시와 화살촉, 창 등 무기류, 등자와 재갈 같은 말장구가 나왔다. 129호분은 86호분보다 규모가 작지만 무덤주위를 둘러판 도랑(주구)이 있고 내부에서 뿔잔(각배), 굽다리항아리 등 토기가 나왔다. 두 무덤은 13호분보다 약간 늦은 시점에 들어선 것으로 추정됐다. 13호분과의 배치관계로 보아 딸린 무덤과 같은 성격으로 추정된다. 

 

함안군은 “말이산 13호분에 대한 100년 만의 재발굴조사를 통해 자칫 잊힐 수 있었던 고대 아라가야의 왕묘의 모습과 가야의 발전된 천문사상을 실증할 수 있는 고고학적 자료를 확보하는 성과를 얻었다”고 설명했다. 

 

함안군 제공
함안군 제공

 

메일로 더 많은 기사를 받아보세요!

댓글 0

작성하기

    의견쓰기 폼
    0/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