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중앙과학관장 '귀환'과 중력도움

2019.12.20 14:23

공무원은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는 사람이다. 이 부처, 저 부처로 자리를 옮겨다니는 고위공무원들의 입에서 흔히 나오는 말이다. 공직 사회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고개를 끄덕할 만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건 좀 심하다. 우리나라 과학문화의 중심지 국립중앙과학관의 이야기다. 19일 정병선 관장이 과기정통부 1차관에 임명되면서 중앙과학관장 자리는 공석이 됐다. 과기정통부 연구개발정책실장 출신 정 관장이 취임한 지 불과 백일이 막 넘은 시점이다. 

 

과학정책을 책임질 과기정통부 1차관에 능력있는 공무원이 돌아가는 게 뭐가 문제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짧은 기간이더라도 관장으로서 책임을 다했고 차관으로서 충분한 자격이 있다면 말이다. 사실 맞는 말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중앙과학관의 사정을 조금이나마 아는 사람이라면 반응은 달라질 것이다. 

 

중앙과학관장 자리는 한때는 은퇴를 앞둔 고위공무원들이 가는 자리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이 자리는 다시 중앙무대로 진출하는 데 활용되는 자리가 됐다. 현 과기정통부 전신인 교육과학기술부와 미래창조과학부를 거치며 지금까지 과기 관료들의 회전문으로 활용됐거나 거쳐가는 자리로 활용되면서다. 

 

실제 2010년 임명된 이은우 제37대 관장은 미래부 직할기관인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총장으로 옮겼고 박항식 제38대 관장은 미래부 창조경제조정관으로 복귀했다. 최종배 제39대 관장도 미래부 창조경제조정관으로 이동해 복귀했고 김주한 제40대 관장도 미래부 과학기술전략본부장으로 옮겼다. 제41대 양성광 관장은 부처는 아니지만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이사장으로, 제42대 배태민 관장은 육군 미래혁신연구센터장으로 옮겼다. 제43대 정 관장이 취임 116일만에 다시 과기정통부 차관으로 옮기면서 이 기간 평균 관장 재임기간은 1년 4개월에 불과하다. 모두가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정 차관은 그나마 금의환향한 셈이다. 이 가운데 몇몇은 고향인 과기정통부로 복귀하지 못한 채 적을 파고 떠나야 했다. 이쯤 되면 대전 지역에서 회전문 인사 좀 그만하라는 소리가 나오는 게 과해 보이진 않는다. 

 

이번 인사 직후 만난 과학관의 한 관계자는 “중앙과학관장으로 와서 과학관을 알만 할 때쯤 떠난다”며 “중앙과학관장 임기는 사실상 1년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과학관 직원들도 이런 반복된 상황을 더는 대수롭지 않게 보는 듯 했다.

 

문제는 중앙과학관을 언제까지 공무원 회전문 인사의 수단으로 내버려둬야 하는가다. 우리 사회가 기대하는 과학관의 비중과 역할이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립과학관은 우리 국민이, 시민이 가장 쉽게 과학을 접하는 공간이자 과학의 아름다움이 주는 영감을 제공하는  접점이다. 그래서 정부도 과학문화기본계획이니 과학문화산업혁신전략이니 하며 중앙과학관을 포함해 전국 5대 과학관을 과학문화 확산의 거점으로 삼았다. 행사나 예산도 과학관을 중심으로 집중하고 있다. 내년엔 이를 더 확대하는 장대한 계획도 세우고 있다.

 

하지만 정작 전국 국립과학관의 대표선수인 중앙과학관을 끌어갈 수장 인사에는 신중하지 못한 모습이다. 불과 100일만에, 1년만에 다시 데려갈 인사를 관장에 앉힌다는 건 인사에 대한 아주 단기적인 철학조차 없거나, 정말 부처에서 과학정책 끌어갈 사람이 없거나,  아니면 중앙과학관장은 그냥 잠시 거쳐가는 군대의 보충대쯤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과기 분야 고위공무원들은 물론 이들의 인사권을 쥔 청와대 보좌진들이 설마 중앙과학관장 쯤은 아무나 해도 할 수 있는거 아니냐는 수준의 인식을 하고 있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상황을 두고 과학계는 침묵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는 반복되는 회전문 인사에 질려서 중앙과학관장쯤은 누가 해도 상관이 없다는 건지, 과학문화 거점으로서 과학관 운영을 안정적이면서 혁신적으로 펼칠 사람은 필요가 없다는 건지 궁금할 따름이다. 더 나아가 우리 과학문화가 정말 건강하게 잘 자라나고 있는 건지 궁금하다. 

 

사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 건 중앙과학관 관장의 잦은 인사에 따른 여파를 계량하기 힘든 구조 때문이다.  국립과학관 성과의 주요 지표인 관람객수에서 중앙과학관은 5년간 하루 관람객 평균 5000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나마 이 역시 프로그램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거나 예산 부족 탓을 하다보면 그냥 넘어갈 구실을 준다. 관장들이 책임을 돌리고 빠져나가기에 딱 쉬운 구조다. 정작 우리 과학관은 큰 걱정거리들을 안고 있다. 국립과학관의 주요 방문층인 청소년층이 줄고 있고 성인을 외면한 채 학생 위주 전시물과 프로그램을 돌리는 상황을 타개할 책임감 있는 과학문화 행정가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제는 공무원 회전문이란 말좀 그만 썼으면 좋겠다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회전문이라는 표현이 너무 식상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그래서 하나 찾았다. 요즘 한국형 달탐사선 궤도 변경이 이슈가 되면서 중력도움(스윙바이)이란 종종 등장하는데  이 말을 회전문 대신 쓰면 어떨까 싶다. 중력도움은 우주 탐사선이 먼 우주로 나아갈 때 추진력을 얻기 위해 추진체가 아닌 중력이 큰 천체 주위에 가까이 돌면서 생기는 힘으로 먼 우주로 튀어나가는 우주 항행 방식이다. 토성 탐사선인 카시니와 토성의 위성 타이탄 착륙선인 하위헌스로 구성된 ‘카시니-하위헌스’가 지구와 금성, 목성에 접근해 이 방식으로 목적지 토성까지 간 사례가 유명하다. 마치 행성에 착륙할 것처럼 접근하지만 착륙하지 않고 중력의 도움을 받아 진짜 목적지로 날아가는 모습은 당장은 부처에 승진할 자리가 없어서 잠시 과학관장으로 왔다가 화려한 자리를 찾아 날아가는 전임 관장들의 모습과 왠지 닮아 보인다. 무리한 비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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